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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03화 (303/430)

# 303화

귀여운 새 악기를 옆에 소중히 모셔둔 재민은 선물 개봉을 이어나갔다.

“이번엔 한이 형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풀어볼까.”

“아니……. 내가 다이아몬드는 준비 못 했다.”

재민이 아까 해랑이 집어 들었던 상자를 집어 들자, 한이는 설명을 포기한 얼굴로 말했다.

반지 케이스가 들어있을 만한 작은 상자에는 티켓 크기의 종이 한 장이 돌돌 말려 들어 있었다.

안의 내용물이 자신의 의견으로 준비된 품목인 것을 확인한 한이는 갑자기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보다 더 좋은 걸 골랐지!”

한이의 멘트과 함께 재민이 펼쳐 든 종이는, 바로 즉석 복권 용지였다.

“오. 1등 당첨금이 5억이야.”

“이번엔 특별히 재민이 생일이니까, 1등 당첨돼도 나눠달라고 안 할게.”

“나눠달라고 할 생각이었냐고.”

한이의 대인배 같으면서도 소인배 같은 발언에 해랑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천 원으로 5억 원어치의 생색을 낼 수 있는 아이템.

‘복권을 사 온 천 원도 내 돈이었지, 한이의 주머니에서 나간 건 아니지만.’

다른 선물들은 회삿돈으로 구매했지만 복권은 너무 사행성이 강한 상품이라서 회삿돈으로 사도 될지 고민되었기에 그냥 사비를 지출했다.

사실 복권은 ‘친한 사람에게 선물할 수 있다, 없다’로 많이 의견이 갈리는 품목이었다.

정확히는 ‘복권을 선물했는데 고액에 당첨되었을 경우 질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였다.

‘선물하지 말고 내가 가질걸!’이라며 질투하거나, 조금이라도 나눠주기를 은근히 강요하다가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한이는 그런 부분에선 쿨한 모양이었다.

“그럼 이건 5억 원짜리 선물일 수도, 0원짜리 선물일 수도 있는 거네?”

“하지만 마음만큼은 5억 원짜리다.”

말은 참 잘한다니까.

한이는 연극을 하듯이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표현했다.

복잡한 선물에 재민은 복권 용지를 잠시 쳐다보더니 다시 돌돌 말아 상자에 집어넣었다.

“만일 제가 마지막에 이걸 고르게 된다면 안 긁고 놔둘게요.”

“왜?”

“안 긁은 채로 두면 이건 5억 원의 가능성을 가진 종이로 남아있을 수 있잖아요? 선물이니까 그렇게 두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하고.”

만일 낙첨이면 이 복권이 정말 쓸모없는 선물이 되어버리니까, 슈뢰딩거의 당첨 상태로 놔두겠다는 뜻이었다.

양자역학적, 혹은 철학적 사고가 담긴 심오한 멘트였다.

“그런데 5억 원일 수도 있는데?”

그러나 가치관의 차이로 한이에게는 그 말이 와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음만큼은 5억 원짜리라고 했지만 실은 천 원짜리 재미를 선물할 마음이었던 게 아닐까.

컬러즈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릴 듯한 ‘복권을 긁을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토론은 이쯤 하기로 하고, 재민은 또 다른 상자를 열었다.

“아니, 이건!”

방금 나온 전자악기에 우형이 괴로워했다면 이번엔 해랑에게 괴로움을 선사할 만한 아이템이었다.

“저거 몬클하우스에 있던 거 아니에요?”

준해가 상자에서 나온 가정용 미러볼 조명을 가리키며 카메라 뒤에 있는 스태프들을 바라봤다.

설마 집에 멀쩡히 있던 것을 선물처럼 포장해서 가져왔냐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설명은 우형이 대신했다.

“아냐. 몬클하우스에 있는 건 그대로 있고 저건 새거야.”

“형이 골랐어?”

미러볼 조명을 보자마자 표정이 복잡해진 해랑이 선물 출처를 잘 아는 우형을 의심했다.

재민은 좋아하고 해랑이 안 좋아하는 ‘반짝거리면서 자기’ 필수템.

새 미러볼의 등장으로 해랑은 ‘두 배로 반짝거리면서 자기’의 위험에 처하고 말았다.

우형은 자신도 24시간 같은 멜로디 듣기 형에 처할 위기여서 그런지 해랑의 시선을 무시했다.

***

큰 상자엔 크기만큼이나 심상치 않은 게 들어 있을 것 같다는 멤버들의 의견에 따라, 가장 큰 상자의 오픈은 맨 마지막 순서였다.

마지막으로 상어 인형을 꺼내 상어에게 먹히는 장면을 시연하던 멤버들은 이번엔 인형이 들어 있던 빈 상자에 주목했다.

“여기 사람도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며 한이는 준해를 상자에 들어가도록 했다.

옆으로 눕힌 상자에 준해가 허리를 숙여 들어가고, 안에 들어간 그와 타이밍을 맞춰 상자를 세웠다.

준해가 상자 안에서 자세를 바로 해 몸을 일으키자 깜짝 상자처럼 뿅 하고 준해의 상체가 나타났다.

장난감 인형 같은 등장에 형들은 마치 조카의 재롱을 보듯이 미소 지었다.

“재민아. 선물 하나 더 생겼다.”

“왜 내가 선물이 돼야 해?”

“그래도 준해면 경쟁력 엄청나지.”

다른 선물들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우형의 말에 준해는 입을 약간 내밀며 투정이 담긴 말투로 말했다.

“그런데 여기 있는 선물들은 선물로 주기에는 애매한 것들이잖아요. 저는 엄청 쓸모 있는데요?”

“무슨 쓸모가 있죠?”

“저……는 청소를 할 수 있어요.”

선물이 되기 싫다면서 장점은 착실히 말하는 준해를 보며 멤버들은 또 훈훈한 웃음을 지었다.

결국 한이가 “스물여섯 번째 선물은 로봇청소기.”라며 준해를 선물 목록에 강제 입후보시켰다.

“그러면 이 중에서 선물로 받고 싶은 10개를 골라 주세요.”

“그럼 나머지는요? 여기 컬러즈가 골라준 선물도 있는데.”

재민의 질문에 멤버들이 다시 카메라 뒤의 스태프들을 바라봤다.

그의 말대로 멤버들과 컬러즈가 재민을 생각해서 의견을 낸 선물들도 있는데 선택을 받지 못했다고 처리하기엔 아쉬운 감이 있지.

그래서 그냥 통 크게 진행하기로 했다.

“다른 멤버들 갖고 싶으면 가지래요.”

“결국 다 준다는 거 아니야? 재민이 형 소유는 아니지만 왠지 다 몬클하우스로 갈 것 같은데.”

“좋은 일인데 갑자기 희소성이 좀 떨어져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가지기 어려우면 더 탐이 나는데, 그냥 가져가라고 널려있으면 묘하게 흥미가 떨어지는 법이다.

그런 점까지 이번 기획의 주제와 상통하지 않을까?

받으면 좋긴 한데, 그렇게까지 간절하게 갖고 싶지는 않은 선물인 거지.

그래도 버려지는 게 없다는 것을 알면 재민은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선물을 고를 수 있을 터였다.

“전 마음을 정했어요.”

“미러볼은 꼭 가져가 줘.”

우형이 미러볼을 추천하자 해랑은 전자악기를 추천했다. 둘만의 신경전이었다.

결국 재민은 둘에게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며 첫 번째로 전자악기를 고르고, 두 번째로 미러볼 조명을 선택했다.

‘평화주의자…….’

그렇지. 다 같이 고통받으면 굳이 뭐가 낫니, 나쁘니 할 필요 없지.

멤버들의 의견과 별개로 재민은 그냥 그 선물이 마음에 든 것 같았지만. 가장 먼저 골라서 더 신경전이 더 펼쳐지지 않도록 했다.

재민은 차근차근 일곱 가지의 선물을 더 골라 나갔다.

그리고 복권 용지도, 스물여섯 번째 선물인 준해도 남은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고른 것은…….

“마지막은 이 귀여운 강아지 모양 티슈 케이스로 하겠습니다.”

팬미팅에서 ‘실용성 없는 물건’의 예시로 나왔던 티슈 케이스였다.

팬미팅에서 시작된 복선을 이렇게 깔끔하게 회수해내다니.

그의 예능 레벨에 감탄하고 있는데 한이가 준해의 어깨를 붙잡고 슬픈 얼굴로 말했다.

“그럼 우리 로봇청소기는요?”

“준해는 누구 한 명이 독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니까.”

“그럼 선택받지 못한 이 로봇청소기 내가 가져야겠다.”

“저는 제 겁니다.”

청소 기능이 있는 준해는 그렇게 말하며 주체성을 갖고 자신의 힘으로 상자에서 탈출했다.

“그럼 선물은 전부 몬클하우스로 배달해 드릴까요?”

“네! 아, 이건 제가 가지고 갈래요.”

스태프가 결제를 마친 손님을 대하듯 말하자 재민은 전자악기를 품에 안으며 대답했다.

재민의 선물 쇼핑은 끝이었지만 우형의 환청은 시작이었다.

그렇게 재민의 전자악기 연주와 함께 생일 기념 영상은 촬영 종료……가 아니라, 비하인드용 카메라가 한이를 비췄다.

“하아. 설마 복권이 선택 못 받을 줄은 몰랐다. 5억 원짜리인데.”

“복권 네가 긁어 봐.”

“동전 가지고 계신 분?”

스태프에게 동전을 빌린 한이가 테이블 위에 복권 종이를 두고 러그에 앉아 자세를 잡았다.

복권을 고르지 않은 재민도 결과는 궁금했는지 악기를 연주하며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5억 원 당첨되면 나눠줄 거야?”

“나는 너한테 나눠달라고 안 했는데!”

“5억 원이니까 한 사람당 1억 원씩 가지면 되겠다.”

멤버들은 한이의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알아서 당첨금을 나눠 가지기 시작했다.

“그럼 긁는다?”

“여기서 5억 원 진짜 당첨되면 오늘 찍은 거 조회 수 폭발하겠다.”

준해의 그 말에 한데 모여 있던 멤버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지금 나한테 복권 당첨되게 해 달라고 소원 비는 거야?’

5억 원보다 조회 수가 중요한 거냐고.

훌륭한 크리에이터의 자질을 보이는 멤버들에게 머쓱하게 웃어 보이자 멤버들은 다시 복권에 집중했다.

“오오!”

“어! 여기 숫자! 똑같다!”

숫자가 드러나자 멤버들이 복권을 긁는 한이의 어깨를 신나게 두드렸다.

‘뭐야. 진짜 당첨됐나?’

분위기상 뭔가 나오긴 한 것 같은데.

비하인드 카메라가 복권 용지를 클로즈업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고, 한이가 용지를 들어 올렸다.

“짠. 천 원에 당첨됐습니다.”

천 원짜리 재미는 결국 천 원으로 돌아왔다.

이보다 더 깔끔한 마무리는 없었다.

멤버들은 한 명당 200원씩 나눠서 나중에 건물을 사는 데에 보태기로 하며, 정말로 촬영은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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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뮤비 티저 왤케 귀여워??ㅠㅠㅠㅠ

뭔가 아기자기하고 이뻐ㅋㅋㅋㅋ

└ㅁㅈ 우주래서 거창한 스케일로 나오나 했는데 귀여웤ㅋㅋ

└사운드 통통 튀어서 더 귀엽

└여름에 진짜 잘어울리는듯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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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의 티저 공개가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이번엔 뮤직비디오 티저가 공개되었다.

첫 번째 티저는 멤버들의 얼굴이나 의상은 나오지 않고 손, 신발, 소품 등 키워드가 되는 요소들만 클로즈업되어서 나왔다.

인트로 멜로디와 함께 나오는 영상은 컬러즈의 말대로 아기자기한 느낌이 강했다.

‘역시 애니메이션이 들어가니까 귀여워지네.’

이번 <궤도>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우주를 달리는 열차. 창문 밖으로 우주가 보여야 하기에 합성이 필수였다.

사실적인 우주 배경을 합성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번엔 곡의 분위기에 맞춰 3D가 아니라 2D, 심플한 모션 그래픽을 이용하기로 했다.

별은 정말 반짝이 기호 모양으로 빛나고, 거기에 텍스처까지 덧씌우니 마치 옛날 애니메이션과도 같은 빈티지한 느낌이 났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역시 애니메이션을 넣으면 단가가 많이 올라간단 점이지.’

딱 작년 여름에 <이리>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며 탕진 컨셉을 처음 개시했는데 말이야.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열심히 회삿돈을 탕진할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했다.

뮤직비디오 티저 외에도 이번 스페셜 앨범 의 정보는 감질나게 조금씩 계속 공개되었다.

그리고 컬러즈를 한바탕 소란스럽게 만든 것은 또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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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트랙 뭐냐????

작곡에.. 백해랑이요..?

└여우형 백해랑???????이건 된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아서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작곡가 이름보고 이마 팍팍침

└해랑이 작곡해서 이런 날이 언젠가 올줄은 알았는데 그게 지금이었구나ㅜㅜㅜㅜㅜㅜㅜㅜ

└아 발매일 언제 오냐고 시간 너무 안 지나가서 짜증날라그래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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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형과 해랑이 공동작곡한 2번 트랙 <달의 뒷면>.

이 곡이 바로 이번 앨범의 서브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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