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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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노크롬이 드디어 우주 진출을 하는구나
우주는 티켓값 얼마나 하려나 숙소는 우주정류장에 잡아야 할듯
└연차 며칠 내야할지 감도 안 잡혀ㅋㅋ큐ㅠㅠ
└우주는 시차가 어떻게 됨? 콘서트 시간 kst로 보면 돼?
└하 진짜 벅차다 우리 천재만재 아이돌 몬클이들을 드디어 온 우주가 알게되다니 컬러즈1기로서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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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즈는 모노크롬의 앨범 티저를 마치 NASA의 우주선 발사 티저를 보듯이 감상했다.
모노크롬이 우주에 나가면 자신들도 우주 진출을 해야 한다며 벌써부터 준비 중이었다.
이런 반응들만 모아놓고 보면 우리나라 우주과학의 장래는 밝아 보였다.
그 와중에, 한이가 작년 팬미팅 앵콜에서 [모노크롬 평생 가자 100회 팬미팅은 우주에서]라는 문구가 적힌 화환 리본을 달고 나갔었는데 그게 스포일러였다며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우주 진출은 사실이 아니지만 우주 컨셉 스포일러였다면 놀랍긴 하네.’
물론 그 당시엔 우주 컨셉이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우주의 어떤 기운이 시간을 초월해서 작용했을 수도 있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곳이니까.
내 삶에서 가장 판타지 요소가 강한 사람이 나였기에 그 어떤 상상도 ‘그럴 수 있지.’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아이리스의 활동으로 한국에 장마가 찾아왔다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도 말이다.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뜨는 게 중요한 건데 내내 장마가 안 끝나서 오히려 비 오는 날 이미지가 강해져 버렸어…….’
활동 마지막 날, 일기예보와 다르게 맑은 하늘이 드러나고 무지개가 떠오르면 하늘까지 도와주는 완벽한 컨셉 소화를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여름의 장마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 장마는 끝날 테고 아이리스가 다음 활동을 하게 될 때쯤이면 맑을 테니까, 다음 활동까지 생각한 우기 컨셉이었다고 생각하자.
나는 습기를 먹어 축 처지려 하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며 복도를 걸었다.
‘작년엔 장마가 시작되고 기분도 축 처지려고 했었는데.’
얼마 전에 워낙 기분 변화를 심하게 겪었던 탓인지 올해 장마 기간은 그냥 무덤덤했다.
작년의 정전 사태 이후에 회사의 보조 전력 시스템을 더욱 철저히 했으니 업무도 안심.
아티스트 팀 직원들이 모노크롬의 컴백을 앞두고 정전되지 않는 공간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지나가면서 보는데, 작년과 변함없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복도 끝에서 재민이 멀뚱히 서서 창문 밖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많이 와서 산책 못 나가는 우울한 강아지 같아…….’
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재민은 잠깐 오는 비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도, 장마 기간엔 확실히 날씨의 영향을 받았다.
내가 우울할 땐 회사 최고의 힐링 요소인 멤버들을 구경하면서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그 힐링 요소 당사자인 모노크롬이 우울할 땐 뭐로 치유하지?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여 내가 옆으로 다가가자 재민은 나를 흘끔 보고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인 님, 비가 그쳤으면 좋겠어요.”
재민은 내 토템 능력에라도 기대고 싶었는지 내게 불가능한 소원을 빌었다.
“해랑이한테 말해 봐. 해를 불러온다며.”
“그 형은…… 비가 오는 것도 나쁘지 않대요.”
능력이 있는 것과 의지가 있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해랑의 해를 불러오는 능력은 태풍의 눈 특성과 합쳐져서 폭풍 전의 고요 상태를 만들어낼 수도 있단 말이지.
“그럼 비를 그치게 하는 캐릭터는 네가 가져가 보면 어떨까? 요즘 시대엔 초능력 하나쯤 있으면 좋다더라.”
원본은 ‘요즘 가요계에 특수 능력 필수냐?’ 하는 글이었지만 좋을 대로 해석해보기로 했다.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막연히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어떻게든 극복한다!’ 하는 마음으로 있으면 기분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취준생에게 새로운 자격증을 따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듯이 말하자 재민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초능력…… 공중회전 기술로는 부족할까요?”
“너한텐 그게 초능력은 아니잖아? 필살기지.”
나 같은 일반인에게는 불가능한 영역이지만 재민에게는 가능한 영역이니까 초능력이라고 하기에는 모호했다.
사실 가볍게 농담처럼 한 이야기였는데 재민은 정말로 초능력이 절실하기라도 한 듯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비가 그치는 능력 있었으면 좋겠어요. 생일에만이라도.”
“생일은 왜?”
“제 생일이 주로 장마 기간에 껴 있어서 항상 비가 왔거든요.”
장마 기간은 매년 달라지지만 재민의 바람을 배신하듯이 항상 생일에 비가 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일어나면 비 와서 어둡고, 다리도 아프고…… 방에 혼자고.”
혼자 방에서 일어나는 게 싫었다는 건…… 아마도 멤버들과 함께 지내다 숙소를 나간 시기의 일을 말하는 거겠지.
단순히 날씨가 흐려서 싫은 게 아니라, 안 좋은 기억이 비를 싫어하는 데에 일조한 듯했다.
가수들이 이벤트에서 시끌벅적하게 팬들과 만난 후에 귀가하면 혼자 있는 기분이 들어서 우울해지기도 한다던데. 게다가 그런 경험을 공감하는 연예인은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재민이는 아예 연예인 생활을 끝내버렸던 적이 있으니…….’
공식적으로 팬들에게 생일을 축하받던 재민은 그룹을 나가 있던 동안 팬들에게 ‘없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재민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생일이 되면 자연스레 그가 떠올랐을 터.
어딘가에서 평범하게 지내고 있을 재민에게 생일 축하를 건넬 수단이 없어서 바다에 유리병을 띄우듯이 축하 메시지를 남겼을 수도 있다.
그런 복합적인 상황 때문에 재민에게 생일은 오히려 더 슬픈 날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니까 안타까웠다.
‘다행히 이제는 혼자 있지 않아도 되지만…… 역시 비가 올 때 다리가 아픈 건 맞았나 봐.’
꼭 다친 부위가 아픈 게 아니라 저기압일 때 다리가 쑤시는 일반적인 증상일 수도 있지만.
뭐가 되었건 추적추적한 날씨가 계속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켰다면 항상 밝은 재민이 이 정도로 우울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생일 선물로 갖고 싶은 건 있어?”
“생일 선물은 왜요?”
“내가 생일에 비가 그치는 거랑, 원하는 걸 받는 것 중 하나는 이뤄줄게. 그럼 어느 쪽이든 네 생일은 소원이 이뤄진 날이 되는 거니까.”
슬픈 날이 아니라 말이다.
좋지 않은 기억이 계속 떠오른다면 좋은 기억을 덧씌워야지.
건물이나 복권 당첨 기회 같은 게 받고 싶다고 하면 아무래도 어렵겠지만.
만일 내게 가능한 선을 넘어서면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재민은 의외로 소소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럼…… 저 운동화요.”
“운동화는 전에도 그냥 준 적이 있었잖아? 생일이 아니더라도.”
“그래도요. 운동화 받으면 저한테 계속 춤추라고 하는 것 같아서 좋아요.”
천생 메인 댄서잖아.
그가 운동화를 신고 하는 일이 주로 춤추는 것이긴 하지만, 그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니.
만일 재민의 생일날 비가 그치더라도 운동화 선물은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도 비가 오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재민의 생일은 7월 10일. 재민의 말대로 장마 시작이 늦든 이르든, 기간이 짧든 길든 웬만하면 장마 기간에 포함되는 날이었다.
작년 재민의 생일은 <이리>로 컴백하기 위해 준비하던 시기였지만, 올해 재민의 생일은 활동과 겹칠 예정이었다.
생일에 가족과는 같이 있더라도 쓸쓸한 기분이 들어서 싫었다던 재민이 올해는 더 많은 사람과 축하할 수 있을 듯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생일 특집 영상 촬영도 물론 빼놓을 수 없지.’
이번 컴백은 콘서트와 함께 준비하느라 준비 기간을 여유 있게 두었기에, 무리하지 않는 한에서 연습 스케줄을 잠시 뺄 수 있었다.
그래도 계속 안무 연습을 하느라 힘들었을 테니 편안한 공간에서,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도록.
그런 생각으로 기획된 재민의 생일 특집은, ‘생일 선물 대량 오픈’이었다.
“우와, 상자가 몇 개야?”
“이거 뜯는 것도 일이겠는데요.”
“그래서 포장지 없이 리본만 풀면 되게 포장해뒀어.”
홈웨어 스타일로 입은 멤버들이 카메라 뒤에서 마이크를 차며 상자 개수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사실 상자 개수 자체가 엄청나게 많은 것은 아니었다.
딱 재민의 나이에 맞춰서 스물다섯 개.
하지만 일반적인 선물 상자의 크기로 통일된 것이 아니라, 손바닥에 올릴 수 있을 만한 것부터 두 팔로 감싸 안기 어려울 정도로 큰 것 등 크기가 제각각이라 산더미로 쌓인 것처럼 보였다.
여름 러그와 테이블, 푸릇한 화분과 소파를 배치해 시원한 여름 주택 스타일로 꾸민 세트 안에 들어선 멤버들은 이번 촬영의 룰을 들었다.
“재민이는 이 25가지의 선물 중에서 마음에 드는 선물 10개를 골라서 가지게 되는데요.”
“오.”
“그럼 재민이는 여기서 선물을 뜯고.”
“뜯고!”
“멤버들은 재민이가 가장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같이 고민해주면 된다고 하네요.”
우형이 준비된 대본을 읽고, 어려울 것 없는 내용에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특집은 저번 팬미팅 때 진행한 앙케트에서 영감을 얻었다.
컬러즈 공인, 그리고 멤버들 공인 ‘가장 실용성 없는 물건을 잘 사 올 것 같은 멤버’ 1위.
그래서 멤버들과 컬러즈, 회사 직원들의 의견을 모아 다양한 품목을 준비했다.
준해가 그에 관해서도 설명을 덧붙였다.
“요즘엔 특별한 날에 쓸모없는 선물 교환식 같은 걸 하잖아요. 그런 건데 좀 업그레이드 버전?”
“사실 나는 아직도 쓸모없는 선물이 뭔지 잘 이해를 못 했어. 그냥 그런 게 있다고 설명을 듣긴 했는데.”
“형은 몰라도 요즘 젊은이들은 잘 알아요.”
젊은이라고 선을 긋는 준해의 새침한 대답에 우형이 눈을 흘겼다.
그래도 생일 특집인데 너무 쓸모없는 것들만 모아놓기는 좀 그랬다. 팬들도 멤버가 좋은 선물을 받는 것을 더 기뻐할 테고.
그래서 완전히 쓸모가 없는 건 아닌데 25세 남성에게 일반적으로 선물로 주지 않을 것 같은, 그 미묘한 선을 찾아 라인업을 짜왔다.
의외로 재민의 취향에 맞는 특별한 선물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번 특집의 포인트였다.
‘몬클하우스의 살림이 늘어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지금 세트에 나와 있는 것 중 가장 큰 상자 안에는 상어 인형이 들어있다. 침낭처럼 입 안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인형.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이기에 당연히 상자도 컸다. 다른 선물들과 너무 크기 차이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꾹꾹 눌러 담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아마 재민이 저런 것들을 고르면 고스란히 몬클하우스의 인테리어가 되겠지.
상자 크기로 선물을 예측하던 멤버들 사이에서 한이가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난 정말 좋은 품목으로 적어서 제출했거든요?”
“어떤 건데? 크기 알면 상자로 맞혀볼 수도 있겠다.”
“내 건 좀 작은 거야.”
그 말에 해랑이 앞에 있던 작은 상자 중 하나를 집어 들어 흔들어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이아몬드 반지?”
“아니, 지금 그런 프러포즈 같은 시간이 아니라고요. 그리고 기획에 비해 기대가 너무 크잖아.”
한이가 해랑이 집어 든 상자를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어쨌든 상자를 오픈하는 것은 재민의 권한.
처음은 무난하게 중간 크기 상자부터 열어보자는 의견에 재민은 첫 상자의 리본을 풀었다.
“오, 오오!”
재민이 눈을 반짝이며 상자에서 꺼낸 것은 음표 모양의 장난감처럼 생긴 전자악기.
‘아, 저건 컬러즈가 고른 거다.’
재민이 기타를 치느라 손가락이 아프다고 했던 걸 걱정한 컬러즈의 의견이 반영된 선물이었다.
현을 짚거나 튕길 필요가 없어서 손가락이 덜 아플 것이라는 상냥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멤버들이 앉아 있는 소파에서 “안 돼!”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멤버들 모두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우형이 귀를 막으며 두려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재민이한테 악기를 들려주면 옆에 있는 사람은 24시간 같은 멜로디를 들어야 해.”
그 말에 한이가 씩 웃으며 손을 들고는 재민에게 의견을 냈다.
“재민이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건 꼭 가져가는 걸로 하자. 난 룸메가 아니거든.”
“찬성.”
“나도 찬성.”
해당 전자악기는 멤버들의 찬성표 3표를 얻어 강력한 최종 품목 후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