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84화 (284/430)

# 284화

뉴레인이 분리되기 전, 뉴마 아티스트팀은 모노크롬을 맡는 이들과 아이리스를 맡는 이들로 나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노크롬 전담 직원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아이리스 전담 직원의 수는 많아졌다.

이렇게 아티스트팀 내의 균형이 바뀔 때, 라인을 타서 아이리스 전담팀으로 옮긴 이들이 있었다.

그렇게 뉴레인으로 옮겨올 수 있었던 직원들은 사내 권력 구도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도 작년에 뉴마에 남은 직원한테 전해 들었다니까. 사장님이 이사님 앞에선 맥을 못 추더라고. 그땐 그냥 대표님 따님이셔서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이사님이 공격적으로 자기 라인을 만드느라 그랬나 싶기도 하고.”

윤환의 일을 계기로 주인이 사장과 불화가 있었다는 소문은 뉴레인에도 퍼져 있었다.

당시 주인은 라인을 만들기는커녕 모노크롬의 매니저를 맡을 사람을 찾지 못해 고민 중이었으나,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는 각자의 해석이 추가되며 점점 사실과 달라지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번 우리 회사 신인도 말이야. 이사님 라인을 타서 데뷔조에 든 애가 있다던데?”

“네?! 진짜요?”

“원래 뉴마 연습생으로 있었다더라고. 처음부터 모노크롬 팬이라고 말하고 다녔다던가.”

“그런데 데뷔조는 서바이벌로 뽑은 거잖아요?”

“그건…… 뭐, 어느 정도는 영향이 있지 않았겠느냐-, 하는 소리지.”

정확한 정보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들은 직원들은 ‘이사님이 생각보다 영향력이 셌구나.’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강제로 이 대화 자리에 끼게 된 다혜는 찝찝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리스가 회사랑 불화 있을 때도 뒤에서 이렇게 수군거렸던 건 아니겠지?’

그러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긴 해서 일단 일어서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허 실장님도 뉴레인으로 옮겨온 후에는 거의 대표님 대리처럼 일하시더니, 이사님 오신 후에는 이사님 의견대로 움직이시는 것 같지 않아?”

“맞아. 이번에 아이리스 싱글 제작이 갑자기 결정 난 것도 이사님이 ‘진행해!’라고 해서 바로 시작된 거라면서요.”

“헉. 완전 직진 스타일이신가 보다. 하긴 대표님도 그러셨잖아.”

뉴마에서 일해본 직원들은 대표와 직접 만날 일은 없어도 대표의 업무 스타일은 알고 있었다.

‘역시 핏줄이라 그런지 대표님과 닮았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자 가만히 듣고 있던 다혜가 슬쩍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사님은 관리자보다는 프로듀서 쪽에 더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요. 기획 회의에도 일일이 다 참여하고 의견을 내시더라고요. 다른 직원들 의견도 잘 들어주시고요.”

“그래요? 대표님 스타일은 아니신가 보네.”

다혜는 동생 같은 아이리스 멤버들이 요새 많이 밝아진 것에 주인의 덕택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원들이 주인에 관한 근거 없는 소문보다는 좀 더 정확한 사실을 알기를 바랐다.

주인을 직접 옆에서 지켜본 다혜가 그렇게 말하자 귀가 얇은 이들은 바로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윤희 씨 있잖아요.”

“모노크롬 팬매니저 윤희 씨?”

“네. 윤희 씨가 이사님은 믿을 수 있다고, 엄청 잘 따르는 것 같던걸요.”

“뭐?!”

윤희는 일을 잘하는 직원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일에는 반항적이기로 유명했다.

몇 번 매니지먼트 팀장과 싸운 적도 있었고,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한 직원도 있었다.

그런 윤희가 주인을 완전히 신뢰하며 옆에 붙어 있다니.

“……능력자이신가 본데?”

지금까지 직원들에게 주인은 멀기만 한 소문의 대상이었으나, 잘 아는 인물인 윤희 이야기가 나오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확 체감되었다.

주인은 윤희를 옆에 둔 것만으로도 낙하산이 아니라 능력이 있어서 부임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래서 대표님이 이사님을 불러오신 거 아닐까요?”

“그런가 보다. 우리 회사 개편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는데?”

이런 이야기가 돌고 돌아, 직원들 사이에서 ‘이사님 라인’에 대한 환상은 커져만 갔다.

***

뉴레인에서 빼 왔던 송 피디를 스파이처럼 뉴레인에 다시 심어놓은 보람이 있었다.

나와 같이 뉴레인을 오가던 송 피디는 뉴레인의 직원들에게서 뭔가 정보를 얻어냈다.

“이번 아이리스 싱글 활동이 끝나면 해외에서 활동하던 3인 유닛을 국내 데뷔시키는 게 어떠냐는 말이 나오고 있나 보더군요.”

“완전체 앨범이 아니라요?”

“네. 해외에서만 활동했던 유닛이라 국내 팬들도 보고 싶어 한다던가.”

그렇다고 유닛 활동을 지금 시키면 안 되지!

해외 활동에서 눈을 돌린 건 좋은데 지금은 완전체 활동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윤환의 솔로 활동만 이어지던 시기의 모노크롬 팀 직원들 기분이 이랬을까.

마침 대표도 따로 있겠다, 내가 플레이하던 시절의 뉴마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로 유닛 활동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려는 건지, 뉴레인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었다.

“단체 앨범을 준비하려면 오래 걸리니까 그 전에 유닛 활동으로 공백기를 메우자는 거지. 그러면 다음 앨범도 좀 더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고.”

뉴레인 기획실의 진명희 팀장이 오렌지의 의향을 떠보려는 듯이 말했다.

앨범 준비가 오래 걸려서 중간에 유닛 활동을 끼워 넣는 게 아니라, 유닛 활동을 우선하고 단체 활동을 뒤로 미루는 게 본 목적인 것 같은데.

오렌지도 그 점을 느꼈는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이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한숨을 섞어 말했다.

“보라가 힘들어하던 거 알고 하시는 말씀이시죠?”

“이번에는 국내 활동이잖니. 네가 유닛 리더니까 한번-.”

“저기…….”

나는 스마트폰으로 방금까지 통화하던 척을 하며 슬쩍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 목소리에 두 사람은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지금 작곡가분께서 파트 때문에 의견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잠깐 데려가도 될까요?”

기획실의 설득이 길어져봤자 좋을 것은 없었다.

다행히도 이번에 아이리스의 타이틀곡을 작곡하는 성운은 바쁜 사람이었다.

일을 까다롭게 골라 받는 것을 보면 실제로는 안 바쁠지도 모르겠지만 뉴레인 기획실은 그를 바쁜 사람으로 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 귀한 작곡가 이름을 대자 진명희 팀장은 나중에 다시 대화하자며 오렌지를 놓아주었다.

나는 적당히 빈 회의실에 오렌지를 끌고 들어가 문을 닫았다.

“파트 때문에 의견이 필요하시다고…….”

“아니, 거짓말이었어.”

“네……?”

성운도 변명으로 뉴마를 사용하고 있으니 양심의 가책은 없었다.

나는 성운과 통화하는 척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책상에 내려놓고 의자 하나를 꺼내 앉았다.

“연습하느라 바쁘지? 로아 씨가 너희 퍼포먼스 라인이 잘한다고 좋아하더라. 그래서 더 굴리는 것 같긴 한데…… 아니, 이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라. 얘기 나누는 척은 해야 하니까 잠깐 앉아 있다가 해산하자.”

오렌지는 수상하다는 눈길로 잠시 나를 보더니 내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이어진 침묵.

먼저 입을 연 것은 오렌지였다.

“전 진짜 이사님이 무슨 생각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야 하나? 전에 말한 것처럼 너희가 보고 괜찮다 싶으면 따라주면 되는 건데.”

처음엔 이 연약한 병아리 같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전전긍긍하는 마음이 컸는데, 비즈니스 마음가짐으로 대하자고 생각하니 대화하기가 한결 편해졌다.

민형의 마음 같은 거지. 좋아하는 마음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팬의 마음이고 공과 사는 구별하는.

“유닛 이야기 중인 거 듣고 저 데려오신 거죠? 그럼 이건 어떤 의도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기획실과는 다른 생각이신 거예요?”

오렌지는 마치 압박 면접처럼 질문을 우다다 쏟아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라고 했는데도 내 진의가 계속 궁금한 모양이었다.

계속 날 의심하는 듯해서 그냥 ‘안 믿어도 된다’라고 하며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물어보면 대답을 안 해 줄 수가 없었다.

“응. 나는 지금 상황에서 유닛은 별로라고 생각해. 이번엔 시간이 없어서 싱글이 됐지만, 나는 너희가 앨범을 냈으면 좋겠어.”

“왜요?”

“음……. 좀 여러 이유가 있어.”

제대로 된 앨범을 내고 싶어 하는 아이리스를 위한 마음도 있지만…… 실은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번 아이리스 퀘스트에는 기한이 표시되지 않았다.

이번 싱글에서 대성공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어쩌면 다음 음반으로 목표를 넘겨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때도 제작에 참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앨범 계획을 세우도록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때까지 아이리스 멤버들이 잘 버텨주는 게 전제가 되어야겠지만.’

플레이할 때처럼 퀘스트를 안 하고 넘긴다는 선택지도 있긴 했다.

퀘스트 보상은 아이리스의 유지. 내가 얻는 보상은 없다. 단지 엄마와의 대화창이 다시 생기지 않을까 혼자 기대하는 것뿐이지.

그런데 내가 얻을 게 없다고 아이리스가 해체되게 두고 볼 수 있나?

‘그렇게는 못 두지…….’

대표와 다르게 난 아이리스를 가만히 둘 수 없다.

그땐 화면 너머였지만, 각박한 현실 속 그나마 기쁨을 줬던 아이들인데 내가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어.

게다가 뉴레인 신인 데뷔조에도 내가 도움을 준 연습생이 포함되어 있지, 모노크롬과 같이 고통받았던 윤환도 뉴레인에 있지.

뉴레인을 나 몰라라 하기에는 내가 책임을 느낄 이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이번 싱글을 제작하는 짧은 기간 동안 대표와 확실히 결판을 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내가 계속 대표에게 거슬리는 존재로 있으려면 지금 뉴레인에서 가장 비중이 큰 아이리스와 엮이는 게 제일 효과적이다.

그러니 나는 여러 이유로 아이리스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너희가 원하는 것과 내 목표가 별반 다르진 않을 거야. 그러니 우리는 충분히 전략적 동맹 관계로 있을 수 있는 거지. 그냥 쉽게, 비즈니스 파트너라고 생각해.”

내 말뜻이 잘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오렌지는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책상을 바라봤다.

“그리고 레드…… 수연이한테도 아무나 잘 믿는다고 너무 뭐라고 하지 마. 수연이가 은근히 사람 보는 눈이 예리하더라.”

얼마 전에 레드가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 나를 봤을 땐 마치 대표님 같은 시선이 느껴져서 무서웠다고. 직감이 거의 민형급이었다.

실은 잠깐만 보고도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서 금방 마음을 주기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레드 이야기를 하자 오렌지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건…… 저도 알아요.”

처음엔 레드가 내 편을 든 탓에 오렌지의 날 선 시선을 받기도 했었는데.

레드 이야기로 오렌지와 처음으로 뜻이 통한 기분이 들었다.

***

모노크롬 멤버들은 알아서 잘하고, 뉴레인의 직원들은 왠지 내게 친절해졌고. 아이리스 멤버들도 나를 신경 쓰기보다는 자신이 할 일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는지 표정에서 경계심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일이 수월하게 돌아가는 탓에 긴장이 조금 풀린 게 문제였을까.

방심하지 말라는 듯이, 대표는 마치 납량 특집처럼 나타났다.

“악!”

퇴근 후 귀가한 나는 집 안에 있는 사람의 형체를 보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무도 없어야 할 불 꺼진 집. 창문으로 들어오는 어렴풋한 빛을 받은 머리 긴 여자.

최근 공포 영화나 폐교 사진 같은 것을 잔뜩 본 탓에 귀신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눈이나 심장 중 하나는 튀어 나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던 와중, 머리 긴 여자가 천천히 뒤돌았고 나는 다행히 기절하지 않고 그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표……?”

있지도 않은 쌍둥이를 보는 기분이었다. 아니지, 지금은 도플갱어지.

언제 한번 만나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공포 영화처럼 마주하기를 기대한 건 아니었어.

‘어떡하지? 최 비서를 다시 불러와서 제압할까?’

방금 차로 나를 여기 내려놓고 귀가 중일 테니 멀리 가지 않았을 터.

대표는 직접 이사실로 와서 핸드폰을 부쉈으니, 순간 이동을 하거나 염력을 사용하지는 않을 거 아니야.

얼마 전에 본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나오는 영화를 떠올렸다가 머리를 털어냈다.

‘아니지, 이건 심령 현상이 아니니까 대화를 해야지.’

여기까지 온 건 대표도 내게 할 말이 있어서겠지.

너무 놀란 탓에 심장은 아직도 두근거렸지만 이성을 되찾은 나는 차분히 대화를 시도했다.

“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무표정하던 대표는 황당한 질문이라도 받은 듯이 피식 웃었다.

머리카락 길이는 달라도 나와 똑같은 얼굴을 지녔는데, 그 태도에 순식간에 그녀가 타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표는 역시나 나와 똑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한 거 아냐? 여긴 네 집이 아니라 내 집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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