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화
아이돌 팬덤에는 웬만하면 ‘총공팀’이라고 불리는, 음원 스트리밍을 주도하고 독려하는 팬들의 모임이 있다.
아이돌 그룹의 활동이 있을 때면 팬들은 이런 곳을 중심으로 모여들어 응원 활동을 이어나가곤 했다.
회사가 운영하거나 공식적인 건 아니지만, 팬덤이 클수록 총공팀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굴러갔다.
SPID의 총공팀도 그룹의 인기만큼이나 규모가 제법 컸다. SPID의 컴백 계획이 나오고부터 바로 활동할 준비에 들어갔던 이들은 그룹의 컴백이 미뤄지면서 마찬가지로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그리고 이들이 낸 결론은 이것이었다.
[안녕하세요. SPID 총공팀입니다. 저희 총공팀은 응원의 의미로 기존 컴백일에 맞춰 음원 스트리밍 총공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미 기간이 시작된 스트리밍 이용권도 있고, 이번 활동을 위해 준비했던 것은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요지였다.
그리고 이 뒤에 모노크롬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총공팀 회의 결과, 권장 스트리밍 리스트에 모노크롬분들의 타이틀곡을 포함한 버전, 미포함된 버전을 같이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모금해 주신 분들 중 이러한 방향에 동의하지 않거나 개인적으로 응원 스밍을 진행하고 싶으신 분들은 입금 내역을 보내 주시면 환불 절차 안내를……]
나는 이 글을 찾아서 보여준 윤희에게 질문했다.
“이건 컬러즈와 같이 스트리밍을 해주겠단 건가요……?”
“따지자면 SPID가 원래 컴백하기로 했던 날은 저희보다 뒤라서, 가장 중요한 컴백 1주 차 화력에 보탬이 되는 건 아니지만요. 총공팀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저희 곡을 들어주는 스피디는 있겠지만.”
“이런 일이 보통 있어요? 드물죠?”
“드문 것도 아니고 아예 없죠. 그런데 애초에 재민이가 윤규를 구한 상황 자체가 전례 없는 일이니까요.”
“그, 그렇죠…….”
1시간짜리 권장 스트리밍 리스트에 4분이 안 되는 우리 곡 하나를 넣는다는 게 별거 아닌 일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건 굉장한 일탈이었다.
‘이 배타적인 아이돌 팬덤계에서 다른 그룹을 도와준다고 나서다니…….’
뭐든 순위를 매기는 업계이다 보니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가 잘되려면 다른 가수보다 위로 올라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이런 생각은 가수가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밀어주는 게 아니라, 다른 가수를 깎아내리는 태도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니 다른 그룹에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서서 싫어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모노크롬이랑 SPID가 친하다고 팬덤까지 친한 건 아니니까.’
응원하는 가수와 엮이더라도 다른 연예인은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 팬들도 있었다.
전에 해랑의 열애설 기사가 떴을 때도 SPID의 팬덤이 갑자기 참전한 적은 있지만, 그것도 팬덤 전체가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단지 전체 규모가 커서 일부만 반응을 보여도 큰 반응처럼 느껴졌을 뿐.
그때도 굳이 모노크롬 얘기에 말을 섞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구보다 한 팀만을 응원해야 하는 이런 총공팀에서 다른 아이돌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반향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화면을 내려보니 예상대로 이런 결정에 불만을 표하는 스피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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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안 되는데 스피디 돈으로 타돌 스밍을 왜 하나요?
@그래서 스밍리스트를 두 가지 버전으로 안내할 예정이고 선택은 자율입니다. 모금 환불을 원하시는 경우 입금 내역을 보내주시면 환불 절차 안내 드립니다. :)
@그래서 총공팀에선 어느 버전으로 스밍하실 건데요? 솔직히 사심이 들어간 게 아닌지 의심되네요
@저기 지나가다가 죄송한데 진짜 친구 없어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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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기분으로 이런 반응을 보고 있으니 윤희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얼마 전까지 그쪽 팬덤 분위기가 완전 지옥이었대요. 눈을 심하게 다쳤다는 소문이 돌아서. 정말로 그렇게 크게 다쳤으면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잖아요.”
“컴백 미루는 게 문제가 아니었겠죠…….”
재민이 큰 사고를 몸으로 막은 덕분에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만일 재민이 없었다면 부상 때문에 은퇴까지 고려할 상황이었을 것이다.
‘나도 당시엔 눈 아래까지 피가 흐른 걸 보고 큰일 났다 싶긴 했어.’
경황이 없어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던 탓에 정말로 크게 다친 줄로만 알았다.
나중에 SPID 측 직원이 윤규의 부상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소식을 전해줬을 때 안도했던 기억이 있었다.
“재민이 아니었으면 완전체를 더 못 봤을 수도 있다고, 저희 이번 활동을 같이 응원해주겠다던 팬들도 있었고요. 그쪽은 총공하더라도 아무래도 비활동기니까 활동기만큼 성적에 집착할 필요도 없고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라면 몰라도 이렇게 대대적으로 응원해준다고 나서는 게 놀랍네요.”
“좀 인간미 없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모노크롬이랑 엮인다고 크게 나쁠 게 없거든요. 외부에서도 두 그룹이 엮여서 얘기가 나오고 있다 보니까.”
“으음…….”
이야기를 들어보니 팬덤 외부에서도 두 그룹이 무사히 복귀했으면 좋겠다는 반응도 꽤 있다고 한다.
아이돌판은 견제와 경쟁이 일상이라지만 보통 피해자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까지 각박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 상황에서 평소처럼 자기 가수만 응원한다면 그저 팬덤 내부에서만 영차영차 하고 끝나겠지만, 두 팬덤이 결속하는 모습을 보이면 이런 외부 반응들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그냥 호의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이게 일이다 보니까 자꾸 이유를 찾게 되네.’
그래도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계속 알쏭달쏭했던 기분이 조금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이들도 손해를 보면서까지 우리 일에 나서는 게 아니라면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그래도 팬덤의 의견이 하나로 모일 수는 없거든요. 도저히 납득을 못 하는 사람도 있어서 당분간은 좀 시끌시끌할 것 같아요.”
하긴 컬러즈도 컴백 강행 때문에 의견이 나뉘어서 시끄러웠었지.
그 말대로 해당 총공팀의 발언이 도화선이 되어 서로 다른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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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할 수는 있겠지만 총공팀에서 나서서 권장하는 건 다르지
말그대로 스피드 총공팀인데? 다른 그룹 성적 신경 써줘야 함?;;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감사 표시라고 생각하면 안되냐 어후 이럴 때도 성적만 신경쓰는거 진짜 숨막힌다
└총공팀이 소속사한테 돈 받고 일하는 것도 아니고 ㅋㅋ 그냥 맘에 안 들면 참여 안하면 됨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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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도움을 받았을 때 주변인이 대신 감사 표시를 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팬덤이란 자기들만의 바운더리가 확실하다 보니 이 범위를 침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윤희는 “이것도 저희가 어떻게 할 일은 아니고 그냥 알려드리려던 거였어요.”라고 하며 사실만을 전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윤희 씨는 내가 커뮤 중독이란 것을 잊은 걸까?’
내게 처음 그 말을 한 사람이 바로 윤희였는데.
커뮤 중독으로서 모노크롬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고 있다는데 완전히 신경을 끌 수는 없었다.
일하다가 시간이 나면 틈틈이 온라인 반응들을 확인했는데, 볼 때마다 이 일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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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다 요즘은 스밍 품앗이도 하네
└?? 어디서?
└스핃 팬덤이 몬클 도와준다던데
└아 거긴 ㅇㅈ
└거긴 품앗이라기보단 좀 ㅋㅋㅋㅋ 도의적인 답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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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도 이 상황에 ‘그럴 만하다’, ‘좀 오바다’ 하면서 각자의 의견을 내고 있었다.
스피디 또한 커뮤니티와 SNS 등지에서도 총공팀의 의견을 지지한다, 못 한다 하면서 한창 토론 중이고.
스피디가 대형 팬덤이라 적이 많은 건지, 혹은 다른 판에 싸움이 난 게 재밌어 보인 건지,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이 놀리면서 싸움을 부추기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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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피디’ 할 거라서요. 타 그룹 응원할거면 ‘잡덕’ 표시 해주세요. 피해가게 ^^
@타그룹 응원이 아니라 이건 오히려 스피디라서 권장하는 일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요. 컬러즈세요?ㅎ
@컬러즈 아니고 칼라즈인데요?
@꼴라주인데요?
@껄렁즈인데요??
@아 ㅅX 좌표 찍고 몰려왔나 남 일에 끼어들지 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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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이런 식으로 스피디나 컬러즈를 사칭하며 팬인 척 의견을 얹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제대로 된 토론이 이뤄지지 못할 정도였다.
화력 부족에 시달렸던 컬러즈는 도움을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기에 ‘해주면 당연히 고맙다’라는 태도로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되니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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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ㅁㅊ 껄렁즈가 대체 뭐임 자기 컬러즈 되고 싶은 껄렁즈라고 팔로우 받아달래
└헐 나도 방금 그런 사람 봤음
└잉 다들 팬 사칭하는 사람 아녀??
└다 꺼졋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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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좀 더 지켜보다가 결국 인터넷 창을 닫았다. 이 혼란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 인터넷 세상은 무서워.’
인터넷이란 커뮤 중독을 유발하는 요소가 있는 한편 커뮤 중독 치료제로 작용하기도 했다. 지금은 도저히 더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다.
해랑을 보고 태풍의 눈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 모노크롬 전체가 태풍의 눈 특성이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이렇게 주변이 더 시끄러워지는 일이 종종 있단 말이지.
컬러즈가 당황스러워하고 있긴 하지만, 이런 상황들이 우리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 같진 않아서 일단은 잠시 신경을 꺼 두기로 했다.
***
우리가 컴백을 준비하는 사이에, <쉰셋돌>은 뮤직비디오 촬영 에피소드까지 방영되었다.
보통이라면 뮤직비디오를 먼저 공개하고, 나중에 뮤직비디오 비하인드를 공개한다.
그러나 신셋은 기획 과정을 시청자들과 함께하는 아이돌 그룹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방송으로 스포일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연예대상에서 1절뿐이지만 무대까지 선보였으니까.’
그래도 오히려 조금씩 보여줬기 때문에 최종 완성본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기도 했다. 아이돌 팬이 아닌 일반 시청자들도 있었기에 이런 방법도 유효한 듯했다.
그리고 방송에 함께 나오는 모노크롬도 여전히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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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백해랑 롱코트 쩐다
비주얼 무슨 일이냐 진짜로 무슨 그림에서 튀어나온것 같음
└진심 오피스물 드라마 하나 찍어줬으면
└하지만 그는 연기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왜 그래 원만호랑 상황극하는거 나름 좋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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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기 안무 지도하는 멤이 이번에 레몬어워드에서 다친 그 사람인가?
└ㅇㅇ맞아 몬클 메댄ㅠㅠ
└에궁ㅠ
└ㅜㅜㅜ쉰셋돌 다시보기 하고 있을때 기사 떠서 진짜 놀랐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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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셋돌>의 내용이 현실 시점을 거의 따라잡으면서, 이제는 정말 신셋의 정식 데뷔만이 남았다.
만호가 지은 타이틀 곡명은 <반투명인간>.
좋아하는 이의 시선에 담기지 못하는 노래 속 화자의 신세가 마치 투명인간 같다는 의미인데, 투명인간은 범죄에 쓰일 것 같은 이미지니까 한발 양보해서 반투명으로 했다나. 무슨 뜻인지 알 듯 말 듯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결정되었다.
동명의 앨범이 발매됐고, 곧이어 수록된 세 곡 중 2번 트랙으로 들어간 우형과 성운의 데모곡이 잠시 화제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