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04화 (204/430)

# 204화

이번 <체크메이트>는 비주얼로도 흑과 백을 내세웠다.

흑과 백의 대비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주 많았다. 크게는 뮤직비디오 세트장부터 작게는 의상, 액세서리까지.

그리고 언제나 ‘검은색’으로 유지되어있던 요소에도 이번엔 변화가 생겼다.

“……너 진짜 두피 괜찮니?”

“네.”

내게 대답하는 해랑의 머리카락은 현재 파란빛이 돌 정도로 새하얗게 탈색, 염색된 상태였다.

새빨간 머리카락을 유지하다가 검은색으로 덮은 그에게 컬러즈가 ‘흑해랑’이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지금은 그야말로 이름대로 ‘백해랑’.

이번 앨범에서 그의 비주얼 컨셉이 ‘백해랑’으로 잡힌 이상, 뮤직비디오 등의 촬영을 위해서는 탈색이 불가피했다.

‘이걸 활동 때도 또 유지해야 한다니.’

아무리 비현실적인 외모를 지녔다 해도 그도 사람이고 두피는 일반인과 같을 텐데.

처음 해랑을 봤을 때도 염색한 지 오래되어서 검은 머리가 많이 자란 상태였다.

그 후에 머리를 완전히 검은색으로 덮고 1년을 자연 흑발로 유지하며 두피를 쉬게 해 줬는데, 이번엔 탈색의 끝판왕인 백발이었다.

검정에서 흰색이 된 그의 머리카락을 보니 두피뿐만 아니라 머릿결도 걱정되었다.

오늘은 헤어도 조금 거친 스타일로 세팅된 상태라 이게 머릿결이 상해서 부스스해진 건지,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건지 잘 구별되지 않았다.

“탈색이나 염색 여러 번 하면 힘들지 않아?”

“탈색 자주 해 봐서 괜찮아요.”

“아니, 자주 해 봐서 더 걱정인 거야.”

해랑은 별문제 없다는 얼굴로 어깨를 작게 으쓱였다.

두피도 예민한 사람이 있고 튼튼한 사람이 있었다. 예민한 경우엔 아프기도 아프고 상처까지 나는 경우가 있다나.

헤어샵 스태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해랑은 다행히 그런 문제는 없는 듯했다.

‘그래도 다음에는 탈색 없는 갈색 정도로 하는 게 좋겠어.’

걱정되는 것과는 별개로, 이 백발 비주얼만큼은 정말 최고였다. 무슨 색이든 안 어울리겠냐마는 그의 성씨가 ‘백’이라서 더욱 의미가 있기도 했다.

컬러즈도 같은 이유로 백발을 한 번쯤은 보고 싶다고 했었지.

어쩌면 그는 태어나서 백씨 성을 받은 순간부터 백발은 피하지 못할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왕 운명적으로 하게 될 거면, 딱 맞는 컨셉이 있을 때 하는 게 가장 좋긴 하지.’

머리카락이 상해서 끊기진 않느냐, 샵에서는 어떻게 관리하라고 하느냐 등등 머리카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옆에서 대화를 듣던 준해도 궁금한지 해랑에게 물었다.

“탈색 여러 번 하면 그렇게 머리 아픈가?”

“사람마다 다르다는데 난 괜찮은 편이어서.”

“하긴 그냥 염색도 따갑다는 사람 있지.”

준해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내 눈길도 저절로 그의 머리카락으로 향했다.

“너도 해볼래?”

“저, 저도요……?”

준해는 내 말을 듣고 주춤했다.

해랑과 반대로 준해는 대학 축제 때처럼 아주 새까만 흑발이었다.

‘축제 때 새까만 흑발로 염색한 게 잘 어울리는 걸 보고 확신을 얻었지.’

준해는 자연모 자체가 색이 살짝 옅어서 이번에도 검은색으로 새로 염색을 했다.

옅은 머리카락 색도 평소 분위기와 어울리지만, 새까만 색으로 덮으면 뽀얀 얼굴색과 대비가 되어서 이목구비가 더 뚜렷해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다른 색으로도 한번 덮어보고 싶기는 해. 몽실몽실한 느낌으로. 분홍색, 민트색, 연노란색…….’

준해의 머리카락을 보면서 온갖 무지개색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자 그는 내게서 조금 거리를 뒀다.

이전의 해랑처럼 탈색모를 한참이나 유지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가.

멤버들은 신인 시절을 제외하고, 3년 차부터는 내 플레이의 영향으로 한 가지 머리 색만을 유지했었다.

해랑 외엔 염색과 탈색을 자주 할 필요가 없었기에 알록달록한 머리 색에는 면역이 없었을 터.

‘그런데 옆에서 해랑이가 독한 탈색에 색이 쉽게 빠지는 새빨간 염색을 오랫동안 반복하는 걸 지켜봐 와서 더 두려움이 생겼을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아이돌 염색을 포기하진 않을 거지만.

두 사람 말고 다른 멤버들도 평소 자주 하던 머리 색상에서 조금 변화를 줬다.

붉은 기가 돌던 한이의 머리카락은 조금 더 옅어져서 조명을 받는 부분은 다홍색으로 보였다.

우형과 재민은 평소처럼 브라운 계열이었으나 약간의 채도와 명도의 변화가 있었다.

한쪽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긴 재민은 왠지 평소보다 얼굴이 날렵해진 느낌이었다.

‘이건 메이크업 탓인가? 피곤해서 살이 빠진 건 아니겠지?’

앨범 준비를 하며 레몬 어워드 퍼포먼스 연습도 병행하느라 재민은 멤버 중에서도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런 단체 촬영 스케줄이 있을 때 최대한 대기 시간이 짧은 순서로 배정해 주는 것뿐이었다.

“오늘 컨디션은 괜찮아? 연습 겹쳐서 피곤하지는 않고?”

“네. 의외로 합이 잘 맞더라고요. 그래서 무대에서 좀 더 재밌는 걸 하기로 했거든요? 나중에 보시면 처음에 받았던 안무 영상이랑 조금 달라진 거 아실 거예요.”

피곤할까 봐 걱정했는데 돌아오는 건 무대를 기대하라는 이야기라니.

‘분명 결원이 생겨서 커버하려고 불려간 거 아니었나……?’

말만 들어선 오히려 리드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뭐, 순조롭게 되어간다면야 다행이다.

재민은 정말로 걱정이 없는지 연습 얘기보다는 세트의 원형 테이블 위에 놓인 소품용 리볼버에 더 관심을 보였다.

실물이 아니고 모형이지만 테이블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서 위험한 게 없는지 확인하고는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가 시선이 마주친 우형에게 총구를 겨누고는 입으로 총 소리를 냈다.

“피슝.”

“악! 제발 사람한테 겨누지 마.”

“안에 아무것도 안 들었어.”

“그래도!”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던 우형은 몸을 움츠리며 그런 재민을 말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앉아 있는 모습이 분위기 있다고 생각했는데 속은 이런 쫄보라니.

재민은 우형의 말도 잘 듣는 편이라 그의 말을 듣고 바로 총구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이번엔 의상 체크를 마치고 세트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는 한이가 타깃이었다.

“피슝. 피슝.”

“팅, 팅.”

한이는 재민이 쏘아낸 가상의 총알을 손을 대충 휘둘러 막아냈다.

무슨 이런 긴장감 없는 대응이 다 있나 싶지만 오히려 맥이 빠져서 웃긴 장면이었다.

비하인드 영상 촬영은 담당 스태프가 챙기는 중이고, 윤희는 멤버들이 총 놀이에 빠져 있는 모습을 유심히 보더니 다른 카메라를 들었다.

“잠깐, 방금 그 포즈 좀.”

“이거?”

아마도 촬영 현장 스케치로 올릴 사진 촬영인 듯했다. 멤버들은 방금 어린애들처럼 놀던 것도 잊고 금방 멋있는 포즈를 취했다.

리볼버를 든 모습이 세트장 분위기에 어우러져서 뭐라고 할까…….

‘매체에서 묘사하는 멋있는 마피아 느낌?’

<체크메이트>의 컨셉은 도플갱어지만, 정점을 차지하기 위해 쫓고 쫓기는 ‘게임’이라는 이미지에 더 중점을 뒀다. 그래서 시리즈로 연결된 에 비하면 좀 더 경쾌한 느낌의 곡으로 완성되었다.

뮤직비디오 또한 저번 앨범과는 분위기 차이가 있었다.

마치 스릴러 드라마처럼 연출되었던 의 뮤직비디오와 달리, 이번 뮤직비디오는 곡 분위기에 따라 좀 더 ‘색상’에 집중한 감각적인 이미지가 메인이었다.

멤버들의 스타일은 ‘승부를 거는 세련된 겜블러’, 혹은 ‘젊은 부호’가 컨셉이었다. 마피아 느낌이라고 표현해도 딱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여기서 또 올해의 탕진이 시작됐지.’

이번 뮤직비디오는 전부 세트장 촬영이다. 현재 우리가 있는 세트만 해도 비싸 보이는 아이템이 잔뜩 모여 있었다.

세트장 전체를 둘러싼 보라색 벨벳 커튼부터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세트 가운데 놓인 큼직한 원형 테이블 위엔 체스판이 있고, 테이블 주위로는 금장이 달린 일인용 가죽 의자 다섯 개가 놓였다.

여기에서 촬영할 것은 리볼버로 테이블에 놓인 체스말을 쏴서 날려버리는 장면. 체스 게임을 마치 러시안룰렛과 비슷한 분위기로 연출한 것이었다.

체스나 체크메이트는 비유일 뿐이고, 결국 이번 뮤직비디오의 주제는 한 명의 ‘나’가 되기 위한 도플갱어들의 경쟁이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이 게임이 진행될수록 리볼버의 총구가 향하는 대상이 체스말인지 다른 이들인지 불확실하게 연출될 예정이었다.

“카메라가 테이블 중앙에서 시계 방향으로 세 번을 돌 테니까 그동안 포커페이스를 계속 유지해주시면 됩니다.”

멤버들이 각자 자리에 가서 앉고 감독이 카메라의 이동 방향을 설명하며 촬영을 지시했다.

그리고 촬영을 위해 리볼버 모형을 들게 된 우형은 느닷없이 멤버들을 한 명씩 저격하는 시늉을 했다.

“아깐 나한테 사람 겨누지 말라고 뭐라고 하더니!”

“이게 손에 있으니까 마음이 달라지네.”

“이런 사람한테 총기를 쥐여주면 위험합니다.”

“저 사람 신고해.”

총을 받자마자 멤버들부터 쏘다니, 멤버들에게 내심 쌓인 거라도 있던 걸까.

한이가 그런 우형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번부터 준법정신이 철저한 해랑은 우형을 신고하겠다고 하고.

아무것도 들지 않은 총이라도 총구가 자신에게 향하는 건 싫은지 준해도 아까 우형처럼 질색하는 표정이었다.

“형은 마음속에 악마가 있는 것 같아.”

“악마?”

“내면의 악마가 때때로 다른 걸 통해 나타나는 거지. 방금 갑자기 총 쏘는 것도 그렇고, 아니면…… 요리 같은 거로 사람을 해치거나.”

“내가 언제 요리로 사람을 해쳤어.”

준해가 제법 판타지한 발상을 떠올렸다. 지옥의 떡볶이를 그렇게 멋진 설정을 붙여서 표현해낼 줄이야.

‘악마…… 악마 컨셉 같은 것도 좋겠어.’

스테디한 요소지. 그만큼 매력적이란 거고.

준해는 그저 ‘우형이 나쁜 행동을 보인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겠지만 내 귀에 소재 필터라도 생겼는지 저절로 필터링이 되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인 것들을 다 할 수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뮤직비디오 촬영은 하루 만에 끝나는 게 아니었고, 안무 파트 촬영은 다음 날 진행했다.

멤버들은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어떻게든 이번 안무를 외워왔지만 아직 연습이 더 필요한지 동선 실수가 생기기도 했다.

‘그만큼 이번 안무가 복잡하다고 했으니.’

아직 발매까지는 몇 주 남았으니 벌써부터 안무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몇 번을 반복해서 진행하며 점점 실수도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번 활동이 시작되면 댄스 쪽으로 멤버들의 경험치가 꽤 많이 늘지 않을까.

이제는 익숙해진 준비 현장. 나는 나중에 공개되었을 때를 상상하며 기대감을 키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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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요즘 해랑이 뷰이라이브는 하면서 머리카락 왜 안 보여주냐구ㅜㅜㅜㅋㅋㅋㅋㅋㅋㅋㅋ

저번에 체크메이트 의상 대놓고 가리던 거 너무 생각나구요?

└삐빅 염색한 사람입니다

└진짜 다 티나서 넘 웃겨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무슨 색으로 염색했을까 설마 진짜 체스 컨셉 맞춰서 백발일까???

└다 좋지만 청발 한번만.. 청해랑파는 고개를 들어주세요

└요즘 매일 자정마다 사진 뜰까봐 피곤해도 안 자고 버티는중이다ㅠㅠ 다음 티저 빨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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