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61화 (161/430)

# 161화

어디까지나 방송의 메인은 춤 경력이 없는 원만호. 그러니 기존에 메인 댄서 포지션을 맡은 멤버가 없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만호에게 맞추려면 댄스 난도를 높일 필요가 없고, 다른 멤버들은 현역 아이돌이니 기본적인 실력은 있을 테니까.

‘그런데 메인 보컬만 세 명이라…….’

메인 보컬이 무엇이던가. 그룹의 대표 목소리 아니던가.

그냥 보컬 포지션도 아니고 메인으로만 세 명!

“프로젝트 그룹은 포지션 정해서 가는 겁니까?”

내 옆에서 촬영을 지켜보던 송 피디가 질문했다.

역시 아이돌 그룹 프로듀서로 오래 일해와서, 멤버 구성을 보며 같은 점이 눈에 걸린 듯했다.

“글쎄요. 아직 잘 모르겠네요. 이전에 회의에선 포지션 정하는 것도 촬영하면 재밌겠다고 작가분이 적어 가시긴 했는데…….”

포지션을 정해놓지 않는 그룹도 있다지만, 이 그룹은 어떻게 될지 확정된 것이 아직 없었다.

포지션을 결정하는 장면을 따로 찍는다면 확실히 정할 테고, 제작진 측에서 포지션 결정으로 재미를 뽑지 못하겠다고 판단한다면 안 정할 수도 있고.

언제까지 녹음을 하고 뮤비를 찍는다, 언제쯤 앨범을 발매한다 등의 큰 일정은 잡혀 있지만, 그 사이사이 과정은 아직 세세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송 피디는 내 대답을 듣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는지 “흐음.” 소리를 내며 생각에 빠져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5인조에 메인 보컬을 세 명이나 두기엔 역시 조금…….”

“프로젝트 그룹이고 예능이니까 별로 상관없지 않을까요? 몇 명을 두든 재미만 있으면.”

진지하게 몇 년이나 키울 그룹을 만드는 것이라면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이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원만호가 아이돌을 체험하는 예능.

촬영 초반인데도 제작진이 계속 재미 요소를 추구하는 것을 보면 포지션과 관련된 부분도 재미있게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송 피디는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단순히 재미로만 보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죠.”

“으음…….”

우리가 그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원만호가 15년 전 발매했던 자신의 발라드곡을 부르자 노래방 기계에선 75점이 떴다.

원곡 가수의 처참한 점수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아니, 왜!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쇼.”

“라이브에 ‘다시’란 없어요.”

라솔이 웃는 얼굴로 촌철살인을 날리자 만호는 입을 합 다물었다.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 경력이 있는 라솔다운 멘트. 냉정해 보일 수 있지만 이는 방송을 위해서였다.

‘노래방 기계로 게임을 진행하면 항상 촬영 시간이 예정보다 훨씬 늘어지더라. 그러니 적당히 커트해달라.’라는 작가의 경험이 담긴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수가 생기면 만회할 수 없다는 사실에 프로젝트 그룹의 다른 멤버들의 얼굴에 긴장이 어리는 게 보였다.

물론 카메라를 의식해서인지 다들 애써 웃고 있긴 했지만.

‘……확실히 예능이라고 재미로만 할 순 없겠네.’

물론 여기서 90점을 받지 못하더라도 탈락하는 건 아니다.

다만 단 한 번의 기회로 ‘실력 어필’과 ‘재미’ 중의 하나는 잡아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되긴 하겠지. 특히 데뷔 2년 차 이내 신인들이라면.

조금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주듯이 라솔 옆에 앉은 우형이 질문을 건넸다.

“기계랑 사람 귀는 다르니까요. 전 잘 들었습니다. 이 곡을 선곡한 건 발라드가 특기여서인가요?”

“제일 자신 있는 곡을 골랐는데. 다음엔 도전 정신을 발휘해서 랩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2차 평가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우형이 웃으면서 테이블 옆에 준비된 작은 화이트보드에 만호의 이름표를 붙였다.

90점 기준선 아래에 붙은 자신의 이름을 보고 만호가 원통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옆에 앉은 러너스하이의 메인 보컬 류현이 “수고했어요, 형님.” 하면서 그의 어깨를 살짝 토닥였다.

‘연습생이란 설정이라 다들 반말을 하려나 했는데 그건 아닌가 봐.’

만호의 나이는 프로그램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쉰셋.

프로젝트 그룹 멤버들의 나이는 쉰셋의 반도 안 됐다. 프로듀서로 붙은 모노크롬의 최연장자인 우형이 쉰셋의 반에 가장 가까우니까.

확실히 존댓말이 섞여 있는 게 본인들도, 보는 시청자들도 편할 것이다.

만호의 다음 순서로는 세 메인 보컬이 차례대로 나왔다.

그야말로 메인 보컬의 가창력 대잔치……였으나, 작가가 ‘노래방 점수 게임을 하면 촬영이 길어진다.’라고 말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와. 노래방 기계가 웬만한 평가위원보다 까다롭네.’

도한은 초고음으로 유명한 팝송을 선택했다가 만호의 옆에 이름이 붙었다.

더클랜의 메인 보컬 이담은 아슬아슬하게 89점을 받아서 그들 옆에 이름이 붙을 뻔했으나, 우형이 아깝다면서 기준선에 겹치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네 번째 순서로 나선 러너스하이의 메인 보컬 류현이 91점으로 겨우 기준선 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앞에 앉아 있는 라솔과 우형, 카메라 뒤에 있는 송 피디와 멤버들까지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을 만한 가창력이었는데 노래방 기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마지막은 브이스타일의 메인 래퍼인 제오의 순서.

“이건 래퍼인 제게 유리한 것 같습니다.”

“어째서죠?”

“제가 노래방 기계 공략법을 알고 있거든요.”

호언장담한 제오는 음정을 무시하고 박자에만 집중해서 유명 래퍼가 피처링한 알앤비곡을 부르고, 최고 점수인 99점을 받아냈다.

“와! 부럽다. 어떻게 한 거죠?”

“노래방 기계는 박자랑 볼륨만 맞추면 돼요.”

만호가 부러워하면서 묻자 제오는 당당하게 공략법을 공개했다.

‘이래서 가장 마지막 순서로 배정됐구나. 미리 알면 다들 그 방법을 쓸까 봐.’

가장 치열했던 것은 메인 보컬 세 사람의 가창력 경쟁이었는데 결국 1등을 따낸 것은 래퍼의 비트감.

최고 득점자 자리를 빼앗긴 러너스하이의 류현이 “이걸로 정말 실력 평가가 되는 건가요?!”라는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네. 이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기계조차 만족시키지 못하면 차세대 아이돌이 될 수 없습니다. 이번 평가 점수를 납득하지 못한 연습생은 다음 2차 평가에서 본 실력을 보여 주세요.”

대본에 쓰여 있는 건지, 라솔이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연습생 평가를 마무리했다.

기계를 만족시켜야 한다니 그건 무슨 소리야. 그게 말로만 듣던 기계픽인가…….

그녀의 말대로 연습생 평가는 이게 끝이 아니라 2차 평가가 또 있었다. 그 전까지는 ‘트레이닝’이란 이름으로 멤버들끼리 촬영을 진행한다나.

‘그런데 다들 눈빛이…….’

만호는 그저 해맑고, 최고 득점자인 브이스타일의 제오는 만족스러운 표정.

그러나 애매한 평가밖에 받지 못한 메인 보컬 세 명은 ‘2차 평가’란 말을 듣고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이 연습생 평가가 그들의 경쟁심에 불을 붙여버린 건 아닐까.

왠지 이어질 촬영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쉰셋돌>의 멤버 선출이 끝나고 첫 정식 촬영일. 첫 촬영엔 라솔과 프로젝트 그룹 멤버만이 모였다.

러너스하이의 소속사인 베터 엔터테인먼트의 매니지먼트 팀장은 오늘 멤버 류현의 매니저로 특별 투입되었다.

“예능이 아니라 서바이벌이라고 생각해. 이미 한 번 해 봤잖아.”

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서바이벌이라면 경험이 있었다. 러너스하이는 데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그룹이었으니까.

“오디션 때 PD님 표정 봤지? 기대 많이 하고 계시니까 분량, 화제성 다 잡아야 해. 그게 다 네 밑거름이 되는 거야.”

“네.”

“촬영에서 뭐 신경 써야 하는지 기억하지?”

“리액션 크게 많이 하고 원만호 선배님 옆에 최대한 붙어 있는 거요.”

“그렇지.”

팀장은 메이크업 스태프에게 류현을 맡기고 곧바로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는 그저 매니저의 업무만 하러 온 것이 아니라 따로 할 일이 있었다. 그의 목표는 바로 안지택 PD.

“안녕하십니까, PD님! 베터 엔터테인먼트 매니지 팀장 김우철입니다. 저번 연습실 촬영에서도 뵈었었죠?”

“오. 네. 기억납니다.”

안지택 PD는 무슨 분야건 1위와 최고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방송을 함께 하는 원만호에게도 ‘대상을 타면 소원을 들어주겠다.’라는 공약을 내건 것이었고.

데뷔 후 최단기 1위를 쟁취한 러너스하이. 기록으로 줄 세우자면 역대 아이돌 그룹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그래서인지 안 PD는 러너스하이의 연습실에서 촬영할 때 내내 흐뭇한 표정을 보였었다.

게다가 베터 엔터테인먼트 역시 쟁쟁한 연예인들이 소속된 대형 소속사이니 그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저희 러너스하이 담당하는 박형주 프로듀서님이 <캠핑투어> 애청자시거든요.”

“호오. 박형주 씨가 저희 프로그램을요.”

“저번에 오디션 때 다른 일정이 있어서 못 뵈었다고 아주 아쉬워하시더라고요.”

“그래요? 같이 나오셨어도 좋았을 텐데 아쉽군요.”

안 PD가 관심을 보이자 팀장은 대화가 잘 풀리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미끼를 슬쩍 뿌렸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작곡가 모집이 있었다면 참여했을 거라고 참 서운해하셨는데……. 이미 정해졌으니까요.”

“흐음. 앨범 수익은 전액 기부할 거고 작곡도 거의 재능 기부식으로 진행되어서 따로 모집은 하지 못했습니다.”

“에이, 돈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같이 만들어간다는 게 중요한 거죠.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할 수만 있다면 손드는 작곡가들이 많을걸요?”

대상과 대상의 콜라보. 라이징 아이돌 그룹 멤버의 출연. 쉰셋의 나이에 신인 아이돌을 꿈꾼다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기획.

이 방송은 잘될 것이 뻔했다. 적어도 망할 일은 없었다. 그러니 작곡가에겐 이보다 더 빠르고 좋은 홍보의 기회는 없을 것이다.

이전 연습실 촬영 때, 팀장은 프로듀서로 모노크롬이 확정되었다는 것을 듣고 그 말을 박형주에게 전달했었다.

[프로듀서가 아이돌 그룹? 모노크롬? ……아. 예전에 나랑 같이 방송에 게스트로 나왔던 게 거기 리더였나?]

박형주는 몇 초를 생각하고 나서야 모노크롬이 어떤 그룹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정도로 그의 기억에 남지 않는 부류의 그룹이었다. 아직 1위도 못 했다고 말한 것은 기억났다.

그런데 그런 그룹이 이 좋은 기회를 먼저 채갔다고? 박형주는 얼굴을 푹 찌푸렸다.

[어떻게 제작진이랑 미리 접촉했지?]

[얼마 전에 멤버 한 명이 이라솔 씨와 피처링으로 같이 작업을 했습니다. 아마 이라솔 씨 추천이 아닐까…….]

[흠…….]

라솔이라면 박형주도 뭐라 할 순 없었다. 그러나 모노크롬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류현이 프로젝트 그룹의 멤버로 확정된 뒤, 팀장에게 슬쩍 정보를 흘리도록 지시했다.

그게 제대로 먹혀들었는지, 첫 촬영 이후 팀장에게 안 PD의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다. ‘타이틀곡 작곡가가 확정된 건 아니다’라고.

작곡팀은 이미 있지만 타이틀곡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수록곡 작곡으로 그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안 PD는 성적을 좋아함과 동시에 귀가 아주 얇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찾아온 두 번째 촬영 날.

노래방 기계로 진행한 연습생 평가를 마치고, 프로젝트 그룹 멤버들끼리 희망하는 앨범 컨셉을 말하며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를 마치고 촬영도 마무리되어가려던 때.

“앨범에 관해서 공지가 하나 있는데…….”

안 PD가 출연진들은 처음 듣는 계획을 전달했다.

“타이틀곡과 팀명은 지금 멤버들이 말한 내용을 토대로 공모할 예정입니다.”

***

‘으응? 공모?!’

프로젝트 그룹 멤버들의 희망 컨셉을 열심히 메모하면서 듣고 있었는데, 안 PD의 폭탄 같은 발언이 떨어졌다.

PD가 그 말을 내뱉자마자 나는 라솔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도 처음 듣는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 옆에 있던 우형과도 시선이 마주쳤는데 우형은 곧이어 성운에게 시선을 옮겼다. 나도 그 시선을 따라 성운을 바라보니 그도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 QBC 앞에서 방심하면 안 됐는데.’

QBC 특유의 뒤통수 전개가 여기서 터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만호가 곡을 마음에 들어 해서 결국 우리가 작곡 팀으로 들어가게 된 건데, 갑자기 타이틀곡은 공모하겠다?

타이틀곡 공모에서 우리가 떨어지면 수록곡으로만 넣어주겠다는 소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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