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미팅은 앞으로의 일정을 조율하고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안지택 PD는 현재까지 진행된 사항들을 브리핑하듯이 전달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작곡 팀 두 분께 여쭤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네, 네!”
안 PD가 성운과 우형을 지목하자 우형이 대표로 대답했다.
“팀으로 작업한다는 건 좋은데 말입니다. 아직 공개된 곡이 하나도 없다는 게 시청자들에게는 방송 때문에 급조한 것처럼 보일까 봐서요. 공개된 작업물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만.”
그는 모노크롬 전체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직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하기도 전이니 당장은 아니고, 혹시 방송 일자 전에 공개가 가능할까요? 이미 만들어진 곡도 있지 않습니까. 전달해 주셨던 데모곡이라든가.”
“아니, 그 곡은 날 주는 게 아니고?”
만호가 줬다 뺏는 것은 너무하다는 듯이 눈썹을 팔자로 만들었다.
데뷔곡은 새로 만들겠다고 했는데도 데모곡이 마음에 꼭 들었던 모양이다.
가이드는 우리 멤버들이 맡긴 했지만 애초에 모노크롬이 부를 노래로 만든 건 아니었다. 우형도 그 점을 말하며 만호가 안심할 만한 대답을 내놓았다.
“데모곡은 마음에 드신다면 프로젝트 그룹의 수록곡으로도 넣을 수 있으니까요.”
“네. 꼭 절 주십쇼.”
투정이라도 부리는 듯한 말투에 방송 스태프들도 웃었다.
재치 있게 분위기를 전환하면서도 방송과 관련해서는 노련하게 의견을 내놓기도 하는 프로 방송인. 25년 차나 되면 저렇게 자유자재로 현장의 분위기를 움직일 수도 있구나.
덕분에 긴장하던 우형도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조금은 빠진 듯했다.
‘아무튼 안 PD님 말도 맞지. 우리도 고려하던 사항이니까.’
갑자기 방송에서 ‘저흰 팀입니다.’라고만 소개하면 정말 작곡을 같이 하는 게 맞는 건지 설득력이 떨어진다.
방송 출연이 확정된 덕분에 팀이 유지될 명분을 얻었으니, 이제는 결과물이 하나쯤은 나와줘야 했다.
‘데모곡을 쓰지 않는다면 새로운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곡을 만드는 건 우형과 성운인데 나 혼자서 ‘됩니다!’ 하고 답변할 수는 없기에 나는 우형을 쳐다봤다.
우형은 자신은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고.
“성운 씨는 곡 작업, 괜찮으세요?”
우형 다음으로 성운에게 확인받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라솔은 가끔 성운의 얘기를 할 때 말을 안 듣는다며 답답하다는 표정이었는데, 나와는 그리 친분이 없는 사이어서 그런지 고분고분했다.
“네. 그러면 그건 부탁드리겠고, 다음은…… 멤버 구성 관련해선 신 이사님과 모노크롬분들께 조언을 구하고 싶은데요.”
안 PD는 다음으로 우리에게 화제를 돌렸다.
지원한 많은 신인 중에서 최종 멤버를 캐스팅해야 하는데, 캐릭터성뿐만 아니라 그룹 내 포지션까지 고려해야 해서 어려운 듯했다.
“보컬, 래퍼, 댄스 포지션이 기본이긴 한데 요즘은 워낙 올라운더가 많아서 공식적으로 포지션을 정해두지 않는 그룹도 있고요.”
“전 어느 포지션으로 갈까요?”
만호가 궁금한지 설명하던 날 보며 질문했다.
예능을 위해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한 게 아니라 정말 아이돌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으, 으음……. 난 능력치를 봐야 아는데.’
마이 엔터에서는 포지션이란 게 따로 없었다. 아마 이 세상에선 능력치 레벨에 따라 알아서 정해진 것 같았다.
포지션을 결정해 본 경험이 없어서 잠시 대답이 막혀 있는데, 게임 뇌로 돌아가는 나 대신 준해가 먼저 대답했다.
“음원 내신 적 있으니까 역시 보컬 포지션 아닐까요?”
그 말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만호는 다른 쪽에 관심을 보였다.
“래퍼는 따로 공부해야 할 수 있습니까?”
그는 처음에 메인 래퍼로 소개했던 해랑을 보며 물었다.
해랑은 당황할 법도 한데 의외로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허스키한 목소리라 잘 어울리실 수도…….”
“하하! 댄스는 사실 자신이 없고, 래퍼는 진짜 아이돌이란 느낌이라 궁금했거든요.”
그는 자신에게도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게 기분 좋았는지 웃었다.
시청자들도 그가 보컬을 맡으리라 예상할 텐데 갑자기 랩을 한다고 하면 확실히 더 흥미를 느끼지 않을까.
오랫동안 방송을 하던 사람이다 보니 본능적으로 방송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를 찾아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 포지션이라고 해야 하나. 가끔 비주얼 멤버라고 있거든요.”
자주 비주얼 멤버에 욕심을 부리던 한이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말대로, 무대 위에서의 포지션은 아니지만 가끔 공식 비주얼 멤버 호칭이 붙는 아이돌이 있긴 했다.
“그 말은 내가 비주얼 멤버다?”
“그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안 PD가 동의하자 회의실에 다시 웃음이 번졌다.
그의 얼굴을 보러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가장 많을 테니 반박 불가한 비주얼 멤버가 맞긴 하지.
멤버로 누가 들어오건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 지금 상황에서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포지션이었다.
“그룹 전체의 밸런스도 맞춰야 하니까, 정확한 포지션은 멤버가 다 모여야 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신인이라고 해도 다들 연습생 가운데 뛰어나서 데뷔한 거니까 포지션은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극단적으로 한 포지션을 담당할 인원이 아예 없는 것만 아니라면.”이란 말을 덧붙였다.
내 말에 안 PD는 포지션 결정도 방송 에피소드로 만들 수 있겠다며 작가에게 체크를 부탁했다.
이런저런 안건으로 꽤 길게 이어진 미팅이 끝나고 돌아가려는데, 라솔이 밝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이사님!”
“네?”
“방금 미팅에서 얘기 나왔던 작곡 팀 노래 공개 말인데…….”
뒤돌아보니 그녀는 뭔가 기대하는 게 있는 것처럼 눈을 반짝였다.
“둘이 만든 곡 중에서 정말 불러보고 싶은 곡이 있어서요.”
“둘이라면…….”
피처링 작업을 할 땐 라솔과 성운이 뉴마로 찾아왔지만, 아니, 라솔이 성운을 끌고 찾아왔었지만.
이번에 데모곡을 만들 땐 우형이 라솔의 회사로 찾아갔었다. 외부로 나오기 싫어하는 성운에게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라솔은 우형이 회사에 찾아왔을 때 두 사람이 같이 작업한 곡을 들었던 모양이다. 나도 들었던 데모곡이 아니라 다른 곡을.
“곡을 더 만든 게 있어?”
“완성된 게 아니라 코드에 리듬이랑 멜로디만 얹은 스케치 단계 곡이라면 다섯 개 정도…….”
“다섯 개?!”
우형이 하는 말을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일주일도 안 되었을 텐데 데모곡 외에 미완성곡이 다섯 개나 더 나왔었다니.
“같이 작업하는 게 처음이라 스타일만 한번 맞춰보려고 만든 거여서 말씀 안 드렸는데, 1분도 안 되는 것도 있고 정말 스케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것도 들어보시면 아실 거예요. 정말 좋은 곡으로 완성될 거란 느낌이 왔거든요.”
라솔도 자체 프로듀싱이 가능한 사람이라 스케치 단계의 곡만 듣고도 완성되었을 때의 이미지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걸까.
그렇게 좋은 곡이었다면 왜 완성하지 않았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왜 미완성으로 남겨둔 거야?”
“부를 사람, 들려줄 사람이 다르다고 생각해서요.”
데모곡은 방송국 사람들에게 ‘새로 데뷔할 프로젝트 그룹의 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만든 곡이란 뜻이었다.
“그럼 그 미완성곡은 누가 부른다고 생각하고 만든 건데?”
“처음부터 정하고 만든 건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저희 둘 스타일대로 만들다 보니…….”
우형은 거기까지만 말했으나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모노크롬의 곡을 만들던 우형과 라솔의 곡을 만들던 성운. 그 두 사람이 자신의 스타일을 서로에게 맞춰가며 만든 곡.
‘결국 모노크롬과 라솔이 부르기에 적당한 노래가 되었다는 거지.’
그리고 라솔은 그걸 알아본 듯했다.
“제가 전에, 다음엔 제가 모노크롬 곡에 피처링하게 되는 게 아니냐고 했었잖아요? 이 노래는 정말 욕심이 나서.”
우형과 성운의 시너지 효과는 가수가 부르고 싶어지는 노래를 만드는 힘이 아닐까.
정말 욕심이 난다는 얼굴로 내게 부탁하는 라솔. 내가 할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저희야 참여해주시면 환영이죠.”
그렇게 나 또한 기대되는 발매 예정곡 하나가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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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속보)데뷔 시동거는 전국적 인기 아이돌 연습생
..은 원만호(53세)
연습생이 벌써 뉴스도 뜸
[‘쉰셋돌(가제)’은 아이돌 지망생 원만호가 멤버를 모아 새로운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는 과정을 담은 데뷔 리얼리티다. 특히, 프로듀서로 이라솔이 합류하여…]
└아이돌 연습생이 무슨 전국적 인기야 하면서 들어왔는데 진짜네 ㄷㄷ
└#만호_데뷔축하해 #너의_새꿈을_응원해
└연예대상에 음악대상ㅋㅋㅋㅋㅋㅋqbc가 신나서 만든 느낌인데
└근데 멤버할 아이돌 아직 뽑는중이라며 모노크롬은 머임?
└프로듀서롤이라고 써있짢아
└모노크롬은 자체리얼리티도 한적 없는데 다른그룹 리얼리티에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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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듀서로 최종 결정된 출연진이 발표되었다.
물론 라솔의 이름이 가장 앞에 있고 기사도 두 대상의 콜라보에 주목을 했기에 사람들은 모노크롬은 이름만 올리고 비중은 적으리라 예상했다.
‘애초에 메인은 프로젝트 그룹이니까 우리 분량이 아주 많지야 않겠지만.’
이름을 올렸단 점에서 최소한의 출연은 보장되는걸.
게다가 컬러즈가 그동안 ‘우리 애들 잘하는 거 세상이 알아줘야 한다’고 얼마나 부르짖었던가.
프로젝트 그룹의 노래와 무대는 멤버들 손을 거쳐 완성될 테니, 멤버들의 실력 또한 간접적으로라도 알려지겠지.
다만, 사람들은 아이돌이 오랫동안 뜨지 못했다면 뭔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거기에 평범한 게스트도 아니고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탓에 더욱 실력이 어떤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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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크롬은 프로듀서쪽 경력이 있는거야?
탈망돌했단 얘기만 들었지 잘 몰라서 ㅇㅇ
└아직 1위도 못했는데 탈망돌까지는…
└요즘 앨범 타이틀 다 멤버작곡이긴 하더라
└거기 리더가 엔피버한테 준 곡 들어봤는데 꽤 좋던데
└근데 작곡멤만 말고 전체 나오는걸 보면 걍 방송에 아이돌 필요해서 부른듯?
└아하 걍 아이돌 선배 잠깐 나와서 조언해주는거? 그런건가 보네 ㅇㅋ
└듣고싶은것만 듣고가는것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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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좋아 실력을 궁금해한다는 거지. 이건 그러니까…….’
모노크롬이 나올 급이 되나? 하고 물어보는 거잖아.
비중이 작을 것이라고 자체 판단을 마치고 안심하며 사라지는 모습. 인지도가 떨어지는 그룹이 실력 있는 사람들과 함께 방송에 나오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이돌부 방학캠프> 때도 그랬지. 모노크롬은 뭔데 같이 섭외됐냐고.
단순히 게임 하는 예능에서도 사람들은 아이돌로서의 급을 따졌다.
이런 건 주목을 받으면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반응이었다.
‘후우.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우리 할 일만 잘하면 돼.’
멤버들의 실력은 객관적인 수치로 파악하고 있으니 걱정할 것은 없다.
열심히 하면 분명 많든 적든 사람들이 알아봐 줄 것이다. 그렇게 믿고 나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실력을 의심하는 글을 보고 처진 기분을 회복하기 위해 컬러즈의 기뻐하는 반응을 보려고 했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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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크롬 예능에서만 보고 노래는 잘 못들어봤는데 뭐뭐 불렀어?
대표곡 있음 추천좀
└12345 들어봐ㅇㅇ
└너 컬러즈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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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예능 소식에 축제를 벌이고 있을 줄 알았던 컬러즈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