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과거의 공백은 미래의 비하인드로 메꾼다. 그게 나의 지론이었다.
기껏 들어온 신입 컬러즈에게 더 한이 생기기 전에, 난 그들을 잡기 위해 열심히 컨텐츠를 제공할 계획을 짰다.
‘일단 비하인드는 질보다 양.’
영상이란 결과물이 간단해 보여도 편집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고 한다.
처음 뉴마에 왔을 때 난 그걸 모르고 디자인 팀에 비하인드 원본 파일을 잔뜩 가져다주며 편집을 요청했었지.
영상 편집 디자이너는 산더미처럼 들어온 일거리에 칠색 팔색을…… 하려다가 이사인 나를 의식했는지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 혹시 기한이 언제까지…….”라고 돌려 묻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는 또 직장 생활 할 적을 떠올렸다.
그제야 ‘아, 이거 어려운 요청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요청 사항을 변경했다.
[그럼 진짜 다른 효과 안 넣어도 되니까 필요 없는 장면만 자르고 자막만 달아주세요.]
안 그래도 사람이 부족한데 있는 직원들까지 탈주하면 안 되니까.
대사 텍스트를 작성하거나 자막 싱크를 맞추는 건 아르바이트를 써서라도 얼마든지 일거리를 줄일 수 있었다.
오프닝, 엔딩과 중간 화면 전환 영상은 만들어져 있는 소스를 활용하면 되고.
내가 그렇게 편의 사항을 봐주자 “그럼 괜찮을 것 같아요.”라는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이렇게 완성된 대량의 비하인드엔 가끔 이런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게 아이돌 비하인드야 휴먼 다큐멘터리야]
일단 물량으로 승부하려고 그렇게 부탁한 건데, 별다른 효과도 배경음도 없고 덜렁 자막만 달려 있으니까 사람들에겐 마치 다큐멘터리 컨셉처럼 보였던 모양.
우리 이웃들의 삶을 밀착 취재하는 시사 교양 프로그램. 인간 나오는 극장. 그런 거.
‘편집을 기가 막히게 할 거 아니면 그냥 포기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물론 편집으로 심심한 컨텐츠도 재미있게 살릴 수 있겠지만, 그건 편집자 개인의 센스에 달린 영역이었다.
회사 차원에서 ‘편집으로 재밌게 만들어주세요.’ 하고 요구할 수는 없다는 뜻.
편집이 과해도 좋지 않고, 편집 센스가 아무리 좋아도 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고.
‘일단 컬러즈에게 중요한 건 편집이 아니라 멤버들이 뭘 했는지니까.’
그래서 깔끔하게 질을 버리고 양을 택했더니 오히려 컬러즈는 이걸 좋아했다.
일단 컨텐츠가 올라온다는 것부터 감격스러운 컬러즈가 뭐든 안 좋아하겠냐마는.
그들에게 급한 것은 소수의 양질 컨텐츠보다는 대량 수급이었다.
게다가 화면에 이것저것 들어가 있지 않으니 원본 소스로 사용하기 좋았는지 우리가 안 해도 컬러즈가 알아서 센스 있게 편집해서 팬 채널에 올리고, 알아서 보정해서 움짤 만들고.
멤버들을 보면 창의력이 솟아오르는지 열심히 2차 컨텐츠를 제작하는 그들이었다.
‘멤버들의 소소한 일상 같은 건 그렇고. 소속사가 나서야 하는 건 또 따로 있지.’
비하인드야 어디에나 있는 친구 같은 느낌이어도 괜찮지만, 노래하거나 춤을 추는 영상은 최대한 ‘프로’ 느낌에 치중해야 했다.
아티스트적인 면모가 드러나야 하는데 일반인이 찍어 올린 것처럼 어설프다면 괜히 실력까지 낮아 보일 수 있으니까.
그러니 이런 컨텐츠만큼은 애초에 퀄리티를 신경 써서 올리는 것이 기본이었다.
‘어디까지나 아이돌이니까. 실력 영업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야지.’
웃긴 것도 좋지만 일단 뒷받침이 되어야 할 건 아티스트로서의 실력이다.
그래서 지금 준비 중인 건 두 가지. 커버 영상과 안무 영상이었다.
커버 영상이란 OST 녹음 때부터 생각했던 한이의 노래 커버 영상을 말하는 것.
녹음 스케치 촬영 때 한이가 추천곡이라며 한 소절 불렀던 것이 라솔의 노래였는데, 마침 지금 해랑이 라솔과 작업 중이지 않은가.
‘딱히 큰 의미는 없지만 예고처럼 올리면 재밌을 것 같으니까.’
나중에 해랑의 피처링 곡이 공개됐을 때 ‘설마 그게 스포일러였어?!’ 하고 놀랄 수 있도록 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안무 영상은 쇼케이스 팬미팅 때 선보였던, 모노필름에서 시퀄로 이어지는 그 ‘모노필름 완전판’ 특별 안무 영상으로 준비 중이다.
유아이TV 그림자 안무 영상의 댓글란을 확인하니 [추천 영상 떠서 봤는데 의외로 춤 잘 추네요.]라는 반응이 종종 있었다.
‘의외……라는 건 ‘실력 없어서 망돌인 줄 알았는데’라는 의미겠지.’
요새 자꾸 그런 소리를 들었더니 억울해서라도 더 실력을 영업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우리는 무려 댄스 레벨 10짜리 메인 댄서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 재민을 시작으로 다들 뒤처지지 않는 실력이 있는데 이걸 영업하지 않으면 국가적, 아니 뉴마적 실수였다.
모노필름과 시퀄의 안무는 팀 미로와 함께 일하기 전에 이미 만들어졌지만, 이 모노필름 완전판에는 팀 미로의 리메이크를 추가했다.
팀 미로와 재민의 스타일인지, 군무 중에도 각자 디테일이 조금씩 다른 것 등 안무에도 제법 재밌는 포인트가 있었다.
‘쇼케이스 팬미팅에서만 보여줬던 것들은 이렇게 기회가 될 때마다 풀어야지.’
우형과 해랑의 자작곡 무대도 있었으나, 지금 특히 바쁜 멤버가 그 두 사람이었다.
활동이 끝나자 멤버들 개개인은 각자 할 일이 있었기에 바쁘게 움직였다.
해랑의 할 일은 물론 피처링 작업. 하지만 이건 라솔의 스케줄도 고려해야 했기에 우리가 급하게 진행할 순 없어 중간중간 비는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제일 바쁜 건 우형이고.’
엔피버의 소속사인 온세계 엔터테인먼트는 ‘엔피버 멤버들이 원하니, 괜찮다면 다음 앨범 수록곡으로 넣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덕분에 우형은 엔피버의 다음 앨범 일정에 맞추기 위해 <이리> 활동이 채 끝나기 전부터 작업실에 붙어있곤 했다.
활동이 끝나고부터는 온세계 엔터에 몇 번 왔다 갔다 하기도 했고.
우형이 특히 의미를 담아 만든 곡이고, 엔피버가 그 의미를 이어갈 예정이라 이런 식으로 직접 대면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진행하는 듯했다.
그렇게 잘 되어가는 줄 알았는데, 온세계 엔터에 다녀온 우형은 왠지 심각한 표정이었다.
“뭐가 잘 안 돼? 의견이 잘 안 맞아?”
저 표정을 어디서 봤나 했는데, <기다림의 끝>에서 윤환의 파트를 없애던 때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적극적으로 곡을 주겠다고 나섰던 것치고 잘 안 풀린다는 듯한 얼굴이라 이유를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형은 자신이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었다는 자각이 없었는지, 내 질문에 금방 표정을 풀고 대답했다.
“아, 아니요.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싶어서요.”
“누가 뭐라고 하디?”
멤버들의 거의 모든 스케줄을 따라다니는 나였지만, 이번엔 부담스러울까 봐 온세계 엔터까지 쫓아가진 않았다.
모노크롬 멤버로서가 아니라 작곡가 우형 개인으로서 하는 일이었기에 매니저도 대동하지 않고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고.
그러니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엔피버 멤버들도 착해 보이고, 거기 소속사 사람도 괜찮아 보였는데.’
뭔가 안 좋은 소리라도 들은 걸까?
만일 그렇다면 아티스트 보호를 위해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아서 미간을 좁히며 물어보니 우형은 손사래를 쳤다.
“누가 저한테 뭐라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제가 조금 자만했던 게 아닐까 하고…….”
그러니까 바로 얼마 전까지는 자신감이 좀 붙었었단 얘기 같은데. 지금은 왜 그걸 자만했다고 표현하는 걸까.
내가 이해를 못 하고 있으니 우형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제가 지금까지 만든 곡이 전부 모노크롬 노래였잖아요.”
“응. 그렇지.”
리더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형은 자연스레 모노크롬이 부를 노래만 만들어왔다.
“모노크롬이 아니라 다른 사람 목소리가 들어가는 곡 작업은 처음인데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그, 노래 부를 때의 버릇이라든지 음역대를 제가 완벽히 파악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기다림의 끝>에 예정에 없던 재민의 파트도 빠르게 만들어내길래 원래 곡 작업을 술술 해내는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그건 우형의 머릿속에서 모노크롬이 부를 때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다른 가수와 작업하는 게 처음이어서 우형도 이제야 그 점을 깨닫게 된 거고.
‘흐음. 음악 얘기가 나오니까 내가 할 말이 없네.’
안타깝게도 이쪽은 내가 조언을 해 줄 수 없는 분야라 그냥 들어주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내가 엔피버의 녹음 버전을 들어본 게 아니니까 ‘아니야. 잘했어!’ 하며 칭찬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넌? 좀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아?”
“으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은 다한 것 같아요. 정말 좋은 곡으로 만들어주고 싶어서.”
“그럼 됐지.”
불만족스러울 정도로 작업을 망쳐서 자책하고 있었던 건 아닌 듯하다.
“그래도 겨우겨우 맞춘 느낌이라 좀 아쉽네요.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제 경험치가 부족해서 빠듯하게 완성된 것 같아서요. 좀 더 잘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갈 길이 멀었다는 게 이 소리였군.
내가 작곡은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딱 맞는 곡을 만든다는 건 아마 누구에게나 어렵지 않을까.
다만 우형은 그게 모노크롬 한정으로는 쉬웠기 때문에 이번의 경험이 더 뼈아프게 다가왔을지도.
그래도 납득할 만한 완성도는 냈다는 것 같아서 나는 크게 신경 쓰지 말라는 한마디만 남겼다.
아마 그의 성격상 계속 신경 쓰겠지만.
‘경험치. 경험치라…….’
우형은 그 경험치를 말한 건 아니었겠지만 나는 게임의 경험치를 먼저 떠올렸다.
이사실로 돌아와 혼자가 된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우형의 작곡 레벨을 확인했다.
그의 작곡 레벨은 현재 7. 게임을 생각하면 확실히 높은 수치였다.
‘아마 원래 재능이 있었거나, 공백기엔 그만큼 작업에 몰두할 시간이 많았을 테니 경험치가 많이 쌓였거나.’
혹은 둘 다거나.
내가 음악을 잘 모르니 귀로 들을 땐 그냥 좋다고밖에 못 했지만 레벨로는 객관적인 수준을 알 수 있었다.
맡겨도 안심할 만한 레벨이었기에 아무 조건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에게 타이틀까지 턱턱 맡겼던 거고.
‘그런데 얼마 전에 잠깐 봤을 땐 이 정도로 레벨 8에 가깝진 않았던 것 같은데.’
우형의 작곡 경험치가 오르는 건 주로 앨범을 준비할 때, 그리고 발매되었을 때.
다르게 말하자면 그가 작곡할 때와 그 작업물이 대중들에게 공개되었을 때다.
지금은 활동이 끝난 상태고 이번에 엔피버에게 준 곡도 이미 예전에 작업해둔 곡이라고 해서 경험치가 오를 거라고는 생각 안 했는데.
이번 작업이 성장의 발판이 되었는지, 경험치가 다시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아마 한 단계 성장을 앞두고 잠시 벽에 부딪힌 게 아닐까.
‘레벨이 오르는 걸 확인할 수는 있는데 더 올리도록 도와주지는 못한다니.’
애초에 송 피디에게서 작곡을 배운 우형이었으니, 지금 다시 송 피디에게 조언을 구한다고 해도 큰 깨달음은 얻기 힘들지 않을까.
이쪽은 너무나 문외한이라, 내가 뉴마의 이사로서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