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85화 (85/430)

# 85화

모노크롬의 다음 앨범은 여름에 발매할 예정이었다.

마침 내려고 했던 시기이기도 했고, 여름 방학 테마의 예능 프로그램 방영일에 맞췄으니 당연한 일.

굳이 컨셉을 계절에 맞출 필요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계절마다 선호하는 컨셉은 있기 마련이었다.

봄에는 달달한 사랑 노래가 듣고 싶다거나, 여름엔 시원한 청량 컨셉의 노래가 듣고 싶다는 등의 수요가 있으니까.

그래서 모노크롬의 다음 앨범 컨셉이 청량이다?

‘그건 아니지.’

바로 이전 앨범인 가 청량 컨셉이지 않았던가.

여름이라 하면 덥고, 햇살이 쨍쨍하고, 바다나 백사장 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겠지만.

“우리는 여름밤으로 간다.”

여름도 대개 두 가지로 나뉘었다. 여름낮과 여름밤.

그리고 우리는 여름밤을 공략할 생각이었다.

내가 키워드를 던지자 회의실에 모인 멤버들은 각자 여름밤에 어울릴 만한 게 뭐가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당장 앨범 컨셉을 정하려는 건 아니고, 마인드맵처럼 아무 의견이나 던지다 괜찮은 안이 나오면 거기에서 본격적으로 발전시켜나갈 생각이었다.

“여름밤 하면 뭐가 떠올라?”

“모기…….”

내가 질문하자 준해는 퍽 현실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그렇지……. 모기야 낮에도 있지만 막 잠들려 할 때 들리는 모깃소리가 제일 짜증 나지.

“하지만 모기 컨셉으로 나갈 순 없잖아?”

아이돌이 모기 컨셉으로 활동이라니. 진짜 한다면야 화제는 되겠지만.

화력이 간절하다고 그런 반짝 화제에 기댈 수는 없는 일.

“굳이 이어붙이자면 드라큘라 같은 것도 있겠네요.”

“안 돼. 이미 모기 얘기를 들어서 이제 모기 생각밖에 안 나.”

해랑이 컨셉으로 쓸 만한 키워드로 발전시켰으나 옆에서 우형이 양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모기 생각에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썼다.

그 말대로 이미 우리 머릿속엔 모기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게 남고 말았다.

“……모기는 잊고 다른 쪽으로 접근해 보자.”

아이디어 회의란 게 이렇게 버려지는 의견도 있고 그런 거지.

준해도 아무 말이나 꺼내 놓은 거라 딱히 아쉬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아. 저 생각나는 거 있어요. 여름에 공포영화 많이 개봉하잖아요.”

“오.”

이번엔 재민이 괜찮아 보이는 의견을 꺼냈다.

그렇지. 여름 하면 공포도 빼놓을 수 없지.

평소에 영화를 자주 본다던 재민다운 발언이었다.

“여름에 공포영화 보고 자면 더 무서운 거 아세요? 습기 차고 꿉꿉해서 더 섬뜩한 기분.”

“은근히 무서운 거 좋아하나 봐?”

“무서운 건 싫은데 공포영화는 가끔 봐요.”

전에 웹 예능 촬영할 때 보니까 귀신에 약해 보이던데 의외였다.

무서움보다 호기심이 더 앞서는지 굳이 고통을 경험해 보는 타입인가 보다.

“올여름에 좀비 영화 개봉한다는데 누구 보러 갈 사람?”

괜찮은 의견이 나와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데 재민은 영화 얘기에 갑자기 떠올랐는지 멤버들을 둘러보며 영화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생각나는 대로 의견을 내라고 했지, 딴 길로 새라고는 안 했어.

“약속은 나중에 잡고. 여름엔 역시 납량이긴 하지. 혹시 최근에 무서운 일 있었던 사람?”

“저 있어요. 숙소에서 있었던 일인데.”

준해가 바로 생각나는 게 있는 듯 손을 들었다.

“밤중에 물 마시려고 방에서 나왔는데 거실에 해랑 형이 앉아서 베란다 창문으로 바깥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뭘 그렇게 보고 있나 해서 옆에 가서 봤더니.”

“봤더니?”

숙소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소리에 멤버들도 모두 준해의 말에 집중했다. 언급된 당사자인 해랑도 마찬가지.

“……아무것도 없었어요.”

말을 이어나가던 준해는 지금 떠올려 봐도 소름이 돋는지 팔을 감싸 안았다.

“하늘에 별도 없고 달도 없는데 그냥 아무것도 없는 허공 쳐다보고 있는 거 너무 무섭지 않아……? 남들한텐 안 보이는 뭔가가 보이는 것 같잖아.”

준해는 멤버들을 둘러보며 공감을 구했다. 그 사이엔 당연히 해랑도 섞여 있었고.

해랑은 바로 앞에서 자기 얘기를 하는데도 마치 남 얘기라도 듣는 것처럼 별 반응이 없었다.

‘그냥 앉아 있었을 뿐인데 그걸로 옆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으면 남 얘기처럼 들릴 법도 하지.’

무덤덤한 그와 다르게 멤버들이 대신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거랑 비슷한 거네. 강아지들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 보면서 짖고 그러잖아. 거기 귀신 있는 거라고.”

“악! 하지 마.”

사람보다 청력, 시력이 발달해서 그렇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지만.

한이 입에서 기어이 ‘귀신’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우형이 듣고 싶지 않은 듯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해랑이 형이 개 같다는 거야, 지금?!”

“형이 짖지는 않았어.”

“짖었으면 더 무서웠을걸.”

재민은 장난치기 좋은 타이밍이라 생각했는지 느닷없이 언성을 높이고, 사람이 짖을 리도 없건만 준해는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떡하니 자기를 앞에 두고 왈가왈부하는 소리에 해랑은 기가 찬다는 얼굴로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전에 내가 작업실에서 귀신 봤다고 그랬잖아. 형이 요즘 계속 작업실에 있는 게 설마…….”

“작업실 귀신의 제물이 된 거야?”

한이와 재민은 또 둘이 쿵짝이 맞았는지 신나서 설정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봄에 촬영한 웹 예능의 설정이 계절을 건너 복선이 되어 찾아오다니.

어디까지 하나 지켜보는 태도로 말없이 듣고 있던 해랑은 자신에게 시선이 몰리자 입을 열었다.

“맞아. 있더라, 귀신.”

“…….”

웃지도 짜증 내지도 않고 덤덤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멤버들은 잠시 조용해졌다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수긍하지 마. 제발 농담 그렇게 살벌하게 하지 마.”

“다시 말할래요. 전 지금이 제일 무서워요.”

아까부터 이 얘기에 끼고 싶지 않아 보였던 우형은 해랑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를 말렸다.

준해의 무서운 경험은 새로 갱신되어 버렸고.

재민은 자신이 먼저 말해놓고는 정작 해랑이 긍정하니 입을 꾹 다물고 자기 손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게 무서운 건 싫다면서 왜 그렇게 신나서 귀신 얘기를 한 거야…….’

오직 한 사람. 한이만이 재밌다는 듯이 멤버들의 반응을 관찰했다.

우형은 “이런 얘기 그만하면 안 될까요……?” 하며 다른 화제로 바꾸기를 간청했다.

그런 바람이 있어서일까. 화제를 바꾼 것은 이번에도 준해였다.

“아참. 개 같다고 해서 생각난 건데, 아니, 그 ‘개 같다’는 게 아니고.”

‘개 같다’라는 어감이 좀 이상한 말이 재민에 이어서 준해의 입에서도 나오자 우형이 시선을 보냈다.

전에도 준해가 자기 입에서 튀어나오는 또라이라는 말을 다시 삼키는 걸 몇 번 봤었지. 나는 다 알아들어 버렸지만.

그래도 리더인 우형이 나름 비속어 단속은 잘 시키는 모양이었다.

준해는 우형을 먼저 이해시키고 말을 이어나갔다.

“늑대 같았어요, 뭔가.”

“웬 늑대?”

“늑대인간 얘기 있잖아요. 보름달을 보면 사람이 늑대로 변한다는 거.”

늑대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에 그런 게 있었다.

절벽 위에 늑대 한 마리. 뒤에 깔린 새까만 하늘. 그리고 보름달.

‘늑대인간도 보름달의 정기를 받아 늑대로 변한다는 설정이었지, 아마.’

그만큼 늑대와 달은 상징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키워드였다.

그가 설명하는 이미지를 곧바로 떠올릴 수 있었기에 나는 가져온 다이어리에 준해가 말한 것들을 추가했다. 달. 늑대.

그 정형화된 이미지를 말하는 것으로 끝인 줄 알았는데, 준해가 뒤이어 꺼낸 것은 조금 다른 식의 해석이었다.

“달이 없어서, 인간으로 남아있는 거예요.”

***

오늘 회의에선 제법 좋은 키워드가 많이 나왔다.

회의를 파하는데 재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도돌이표 질문 공격을 퍼부었다.

[그래서 해랑 형은 언제 늑대로 변한대?]

[보름달을 봐야 된다잖아.]

[그럼 형은 추석마다 늑대로 지내는 거야?]

다섯 살쯤 된 아이가 말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왜? 왜?” 하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건네 부모들이 피곤하다더니 딱 그런 느낌이었다.

어째서인지 멤버들 사이에서 해랑의 이미지는 자연스레 늑대가 되어 버렸다.

그 옆에선 한이까지 “늑대도 갯과니까 정말 귀신 본 거 아니야?” 하며 재민의 질문 공격에 가세했다.

3인분의 오디오를 채우는 두 사람이 양옆에서 시끄럽게 굴자 해랑은 귀를 막으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옆에서 보니 두 사람은 그냥 해랑이 그런 반응을 보이며 피하는 게 재밌어서 자꾸 장난을 치는 듯했다.

‘전에 송 피디님이 그랬지. 입 다물고 있는 것보다 싸우는 게 나아서 그냥 놔뒀다고…….’

지금도 어찌 보면 비슷한 상황이었다.

해랑은 시끄러워서 듣기 싫어하는 모습이었지만, 오히려 옆에서 시끄럽게 하니까 우울할 틈이 없다고 할까.

‘동생 일로 상처받은 마음을 멤버들이 달래주는 거네.’

친형제는 따로 있지만 멤버들이 정말 형제 같아 보일 때가 가끔 있었다.

오히려 진짜 형제가 아니라 더 사이가 돈독한 것일 수도 있겠지.

친형제처럼, 동시에 주어진 것들을 공유하느라 경쟁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예를 들면 엄마의 애정 같은.

‘해랑이 동생이 그러는 게 왠지 그것 때문인 것 같단 말이야.’

남의 속이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해랑의 동생인 연찬은 어린 나이에 엄마가 없는 상황에 상처를 받았고, 다시 생긴 엄마에게 집착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그녀는 이제 두 사람의 엄마지만, 연찬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의 엄마이기 이전에 해랑의 엄마였다.

그런데 남이 봤을 때 자신과 형은 닮지도 않았고 성씨도 달라 형제 같지가 않았으니.

해랑이 자신만 없으면 완벽한 가족이 되는 것 같다며 쉽게 섞이질 못했는데, 연찬도 같은 생각을 한 게 아닐까.

해랑이 없으면 자신은 완벽한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

‘……이건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일이니 자꾸 생각하는 건 그만두자.’

나는 “푸후-.” 하며 숨을 내뱉고 다시 내 업무에 집중했다.

조금 전 아이디어 회의는 어쩐지 ‘해랑=늑대’라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늑대란 동물은 무리 생활을 한다지만 고독한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준해는 아마 그 대상이 해랑이었기에 더 늑대를 연상한 게 아니었을까.

‘……왠지 준해가 말한 내용은 다음 앨범보다 믹스테이프에 어울리는 것 같아.’

해랑의 믹스테이프는 말 그대로 믹스테이프.

애초에 팔리는 음악, 대중적인 음악을 노린 게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더 자유로운 형식으로 발매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심의만 지킨다면 회사가 관여할 일은 없었기에 온전히 해랑에게 맡긴 상태.

애초에 가진 작업물도 많았고 내내 작업실에 틀어박히기까지 했으니 현재 곡 작업은 마무리 단계였다.

그가 정한 믹스테이프 타이틀은 <미드나잇 블루>.

파란색의 한 종류로 어두운 파란색에 붙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대로 해석하자면 한밤중의 우울.

‘준해가 말한 이미지 그대로잖아.’

한밤중에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올려다본다는 해랑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이보다 더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걸 늑대라는 이미지로 표현한 거고.

나는 다이어리에 적힌 밤, 달, 늑대라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며 생각에 빠졌다.

‘음……. 믹스테이프에서 앨범까지. 이어서 갈 수 있을 것 같아.’

내 머릿속에선 하나의 구상안이 짜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