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오오. 회사에서 패션에는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나 봐요.”
“덕분에 요즘 옷장에 옷이 엄청 늘어나고 있어서……. 그런데 왜 네 옷이 아니라 멤버들 옷이야?”
우형이 뒤늦게 그 부분을 지적하자 한이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제 옷은 제가 잘 입고 다니니까요.”
“그럼 우리는 안 입고 다녀?!”
“……얘는 이미 양심을 판 것 같습니다.”
준해가 곧바로 그 멘트에 태클을 걸고 해랑도 어이없다는 듯이 한이를 바라봤다. 물건을 팔라고 했더니 양심을 팔았다는 멘트와 함께.
“그럼 전 한이 형을 5만 원에 팔겠습니다!”
“5만 원이 뭐냐?!”
황당한 건 마찬가지였는지 이번엔 재민이 팔 아이템으로 한이를 들고 나왔다.
한이는 자신을 판다는 소리보다 자신에게 책정된 가격에 발끈했다.
“그럼 저희가 한이 씨를 10만 원에 사도 괜찮을까요?”
“어……. 으음.”
카드로 결제하면 서명도 따로 필요 없는 5만 원이란 금액. 에디터가 그 파격적인 가격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정작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니까 손을 들고 나섰던 기세는 어느새 사라지고 고민에 빠진 재민.
“그럼 15만 원?”
“야. 너……. 와아.”
순간 분위기는 인터뷰 현장이 아니라 경매장처럼 바뀌어 버렸다.
한이는 재민을 향해 뭐라 말을 꺼내려다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가격이 오른 점은 고마워해야 할지. 아니, 그래도 15만 원은 너무하지 않은가.
“저는 보컬 레슨도 가능하거든요. 보컬 학원 등록하면 한 달에 15만 원보다 더 나오는 거 아시죠.”
“오. 한이 씨가 직접 자기 자신 영업에 나서셨어요.”
“푸하. 또 무슨 기능이 있나요?”
한이가 직접 몸값 올리기에 나서자 에디터와 멤버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굉장히 잘생겼기 때문에 같이 길을 걸으면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어요.”
“방금 발언으로 100만 원 깎겠습니다.”
뭐 잘하고, 뭐도 잘하고. 그렇게 한이는 자신의 장점을 나열하며 몸값을 올려 나갔다.
그렇게 5만 원에서 시작한 금액은 대충 2조 5천억 원 정도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 왜 더 생각이 안 나지? 멤버들도 생각나는 거 있으면 도와주세요.”
“이 정도면 더 나올 게 있나?”
결국 아이디어는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한이는 안타까워하며 손가락으로 미간을 짚었다.
“2조 5천억 원 낙찰! 5천억은 DC 해드리겠습니다.”
“와! 그럼 2조 원이면 한이 씨를 얻을 수 있는 건가요?”
“그건…… 회사에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한이가 있는 장점, 없는 장점을 쥐어짜며 열심히 몸값을 올려댔건만, 그를 부추긴 멤버들은 마지막에 발뺌하고 나섰다.
그리고 결정권은 회사에 있다며 멤버들의 시선이 다시 한번 주인에게 몰렸다.
주인은 손가락으로 X자를 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의사를 함께 확인한 에디터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웃었다.
“아~, 회사를 팔아서라도 살 수 있을까 했는데 안 파신다네요. 역시 여러분의 가치는 숫자로 정할 수 없는 거겠죠?”
“휴우.”
열심히 자기 자신 세일즈에 나섰던 한이. 그도 내심 팔리고 싶지는 않았는지 과장되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대화가 사차원을 넘어 우주까지 가는 듯했지만 예상외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자 현장 스태프들도 다 같이 웃었다. 인터뷰도 무사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많은 연예인분들이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된다면 이런 회사 생활이 궁금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요, 혹시 아이돌이 아니었다면 어떤 모습이 되어있었을지 상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이돌이 아니었다면.
그 질문에 우형은 진중한 표정으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진지한 분위기를 깬 것은 또 한이였다.
“전 회장.”
“저, 전 본부장!”
촬영 전 멤버들이 골랐던 그 직위. 그들의 권력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준해는 가장 먼저 팀장을 골랐다가 최약체가 되어버린 기억에, 본부장이라는 있어 보이는 직위로 업그레이드했다.
“전 이사님.”
재민은 여전히 이사직을 고집했고.
“전 최대 주주.”
해랑도 꿋꿋하게 최대 주주를 밀고 나갔다.
그리고 멤버들의 시선은 이번엔 마지막 남은 우형에게 모여들었다.
“……전 대통령 하겠습니다.”
“에이. 재미없어.”
더 높은 자리를 말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대충 떠오르는 것을 내뱉자 곧바로 멤버들에게서 ‘재미없다’는 평가가 돌아왔다.
“그건 정치적 발언이에요.”
“이게 무슨 정치적 발언이야. 어릴 때 장래희망으로 대통령 한 번씩 적어보고 그러잖아!”
“요새 애들은 장래희망으로 크리에이터 같은 거 적어요.”
“그래……?”
밑도 끝도 없는 몰이에 벌떡 일어나 대꾸하던 우형. 그러나 가장 젊은이인 준해의 말에 어쩐지 세대 차이가 느껴져서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머쓱하게 자리에 다시 앉은 우형은 이 상황을 재밌게 구경하던 에디터와 눈이 마주쳤다.
“죄송해요. 좀 정신없죠. 제대로 된 인터뷰가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리고 급기야 사과하기 시작했다.
리더로서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도 모자랄 판에 멤버들의 아무 말에 동참이나 하다니.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에 에디터는 또 웃어 보였다.
“괜찮아요. 분위기가 좋아서 저도 재밌는걸요? 잡지에 다 싣지 못한 부분은 영상으로 남기면 재밌을 것 같아요.”
인터뷰 내용은 나중에 지면에 실을 형식으로 다시 써내야 했기에 음성 파일로 남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현재 인터뷰 현장엔 녹음기 대신 촬영용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요새는 젊은 층을 겨냥한 잡지들도 자체 채널을 가지고 있어서 촬영 현장이나 비하인드 영상을 올리곤 했다. 현재 모노크롬이 인터뷰 중인 <멘즈 서클> 또한 마찬가지였고.
촬영은 잡지사뿐만이 아니라, 뉴마 쪽에서도 진행하고 있었다.
컨텐츠 양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주인이 최근 비하인드 제작에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앨범 제작 비하인드 외에도, 오늘 촬영을 포함한 활동 비하인드도 만만치 않은 양으로 올라올 듯했다.
“그럼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아이돌이 아니었더라면…….”
우형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아까 한이가 또 역할극 스타트를 끊는 바람에 잠시 옆길로 샜지만, ‘아이돌이 아니었다면’, 혹은 ‘아이돌이 되지 못했더라면’이라는 가정은 예전부터 여러 번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저는…… 데뷔하지 못했다면 동생들 데뷔시키고 프로듀서로서 같이 일하고 싶었어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에 멤버들의 시선은 그에게 주목되었다.
***
데뷔를 못 하는 상황까지 생각해 봤다는 이야기에 놀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마이 엔터를 처음 플레이하면서, 모노크롬 결성 멤버를 정할 때 우형을 뺀 적이 있었던가.
잠시 머리를 굴려봤으나 딱히 기억나는 것은 없었다.
‘솔직히 한 명씩 다 뺐다 넣었다 해봤던 것 같은데.’
튜토리얼 단계였고 조작법도 잘 몰랐기에 별생각 없이 이랬다저랬다 했던 것은 확실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것은 얼마 전 소속을 옮긴 연습생을 포함한 동생 라인이었고, 우형은 아니었다.
‘내 플레이의 문제라기보다는 아마 당시 상황 때문이 아닐까.’
튜토리얼 내용은 ‘연습생을 골라 그룹을 결성해 보세요!’였지, ‘보이그룹을 결성해 보세요!’는 아니었으니까.
내가 보이그룹을 만든 것도, 모노크롬이 5인조가 된 것도 전부 나의 충동적인 결정일 뿐이었다.
멤버들은 그런 상황에 우연히 선택받아 데뷔한 것이었고.
‘만일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연습생이었던 그는 언제일지 모르는 데뷔를 기다리며 계속 뉴마에 남았을까.
아니면 소속을 옮겨 또 기약 없는 연습생 시기를 견뎠을까. 혹은 꿈을 포기했을까.
나에게는 그저 터치 몇 번에 불과한 단계였지만, 연장자인 우형에겐 그게 마지막 데뷔 기회였을지도.
‘……항상 끝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우형이 내게 가장 먼저 들려줬던 자작곡이 <기다림의 끝>이었던 것이 생각났다.
내가 이 세상에 들어오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생기지 않았다면, 어쩌면 정말로 모노크롬을 기다리던 이들과의 이별로 끝이 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그는 항상 마지막을 생각하며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 왔던 것 같았다.
방금까지 멤버들의 장난스러운 이야기에 함께 웃고 즐기고 있었지만, 평소에 끝을 생각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2년이 지나면 모노크롬은 다시 재계약을 결정해야 할 터였고.
‘다음 계약 시기가 오면…….’
나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적어도 뉴마에선 떠나 있지 않을까.
퀘스트가 종료되는 시점을 목표로 생각해왔던 나도 덩달아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그냥 가정일 뿐이니까요. 지금은 벌써 데뷔 6년 차고. 요즘 음악 방송에 나가면 저희가 어느새 선배가 되어 있더라고요.”
무거워지는 듯한 분위기에 우형이 살며시 웃으며 덧붙였다. 현실이 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현실이 아닌 가정이기에 꺼낼 수 있는 얘기.
“말씀을 듣다 보니 이렇게 다섯 분과 만날 기회가 생겼다는 게 더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우형 씨는 특히, 모노크롬 앨범의 작곡가로도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에디터는 우형의 대답을 받아 자연스레 이번 앨범 이야기로 화제를 옮겼다.
“이렇게 꾸준히 활동을 이어와 주신 덕분에 이번 같은 곡도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요즘 계절에 정말 잘 어울려서 저도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두고 자주 듣고 있거든요.”
“하하. 감사합니다.”
“뮤직비디오를 LA에서 촬영하셨다고 들었는데, 이 곡도 LA에서 영감을 받으신 건지 궁금해지는데요.”
“사실 그 전에 러프하게 완성은 되어 있었는데…….”
방금까지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끌벅적하던 멤버들은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성실하게 답변을 이어나갔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지만.
“대기 시간엔 다들 쉬는 편이죠. 해랑이는 주로 자고 있고요.”
“해랑 형은 중간에 깨는 거 싫어해서, 자는 데도 엄청 공들이거든요. 주변을 최적의 환경으로 만들어둬서 옆에 끼어서 자면 편해요.”
“멤버분들만의 꿀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쩐지 답답해서 깨보면 꼭 누가 절 지지대 삼아서 자고 있더라고요.”
이번 앨범명의 의미, 활동하면서 있었던 일 등을 풀어내니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양쪽이 적극적으로 나오니, 인터뷰는 많은 대화를 나눈 것에 비해 일찍 끝났다.
멤버들은 다 같이 모여 잡지 발행일에 맞춰 홍보용으로 올릴 SNS용 사진을 간단하게 촬영하고.
“진짜 퇴근이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퇴근 시간을 맞이했다.
***
어느새 활동도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막방이라는 특수한 날에 맞춰, 오늘 의상에는 특별히 소품이 추가되었다.
“너희 안경 쓰고 춤출 수 있어?”
소품은 바로 잡지 화보 촬영에서 영감을 받은 안경!
촬영에 쓰였던 안경을 그대로 쓰는 것은 아니었고, 이번엔 의상에 맞춰 좀 더 테가 뚜렷한 캐주얼한 스타일의 안경이었다.
그리고 안경을 쓸 멤버는 잡지 촬영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메인 댄서 두 명이었다.
“형은 이 부분만 신경 쓰면 될 것 같은데.”
재민은 안무 담당답게 바로 해랑의 안무 파트를 떠올리며 체크에 나섰다.
두 사람은 곧바로 안경을 걸쳐 쓰고 몇 가지 안무를 해보더니 안경이 벗겨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벗겨질까 봐 불안하면 안경줄도 있어.”
“없어도 괜찮아요.”
오, 자신감.
믿음직한 발언에 나도 집어 든 안경줄을 다시 내려놓고 끄덕였다.
“그럼 그대로 가자.”
아직 잡지 정보가 풀리기 전이었기에 컬러즈들은 왜 갑자기 안경을 쓰고 나왔는지 모를 터였다.
의상 소품에 이유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공개되고 나서야 알게 될 소소한 재미 요소라고 해 둘까.
“모노크롬 리허설 준비해 주세요!”
“네!”
그리고 이번 활동은 정말 마지막 무대만을 남겨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