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48화 (48/430)

# 48화

모노크롬은 자기들끼리 소소하게 놀던 경험만 많았지, 방송용 컨텐츠에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았기에 이러한 게임엔 면역이 없었다.

그 때문인지 멤버들은 한이의 방송용 연기에 완전히는 아니지만 의심을 어느 정도 거뒀다.

“아냐. 내가 생각하기엔 해랑 형 같아.”

“내가 왜?”

안내 방송을 듣자마자 해랑을 쳐다봤던 재민이 다시 발언권을 가져갔다.

“저 형, 열쇠에 엄청 집착하면서 찾아다니더라니까.”

“진짜냐?!”

“여기 열쇠 안 찾아다닌 사람 있어……?”

서로를 의심하는 분위기 속, 해랑이 게임에 집중했던 모습은 어느새 열쇠에 대한 집착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시간 얼마나 남았어?”

“몰라. 아까 2차 출구 오픈했으니까 좀 남지 않았을까?”

“그럼 일단 해랑이부터 보내버리자.”

“뭐?”

우형의 밑도 끝도 없는 정리에 해랑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나머지 멤버들은 일단 자기가 아니란 점에서 안심했는지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

그렇게 재빠르게 해랑이 첫 번째 희생양으로 선정되었다.

안내 방송으로 전해 들은 장소로 이동하니 정말로 중앙에 떡하니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현관에 한 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밖에 있으래.”

퇴마 의자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이 붙은 평범한 모양새의 의자에는 친절히도 설명서가 붙어 있었다.

뭐라고 해 봤자 들어주지 않을 것을 깨닫고 포기한 해랑은 별다른 저항 없이 의자에 얌전히 앉았다. 그리고 나머지 멤버들이 현관과 이어진 복도로 나간 순간.

“뭐야! 뭐야!”

갑자기 빨간 사이렌 조명이 켜지더니 현관 주변의 방에 포진되어 있던 연기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멤버들은 본능적으로 도망치고, 다시 돌아왔을 때 해랑은 사라지고 없었다.

“제물이 된다는 게 이런 거였어……?”

조용해진 현관에 멍하니 서 있는 멤버들.

제작진과 주인이 그 모습을 모니터로 지켜보는 동안, 상황실로 해랑이 너덜너덜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고생했다.”

“이게 대체 뭐…….”

갑자기 탈락당해버렸으니 황당할 법도 하지.

해랑은 끌려오느라 흐트러진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마련된 의자에 털썩 앉았다.

주인은 그 표정을 보고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억울함이 남아있었다.

촬영 전부터 의욕 넘치게 몸을 풀던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게임에 꼭 성공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돌대회 때도 그러더니. 의외로 승부욕이 강하다니까.’

그게 반대로 의심을 사 버렸지만.

할 일이 없어진 해랑은 제작진과 함께 모니터로 멤버들을 지켜보았다.

생각보다 더 공포스러운 연출에, 멤버들은 더 절실하게 무고함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필 남은 것이 겁쟁이 세 명에 위험인물 한이.

“나 빨리 나가고 싶어.”

“그럼 빨리 범인을 찾아야지.”

이제 서로에게 신뢰감이란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멤버들은 곧바로 다음 희생양을 찾았다.

“형이 아까부터 누구 한 명 계속 몰아갔잖아.”

“맞아!”

이번 타깃은 우형이었다. 의심이 많았다는 이유로.

결국 똑같은 방식으로 연행되어 상황실로 돌아온 우형은 퀭한 얼굴이었다.

“원래 이런 게임 아니었잖아요. 처음 규칙이랑 다르잖아요……. 어쩌다 바뀐 거예요…….”

보통 눈치를 보면 봤지, 이렇게 먼저 불만을 터트리지 않는 그였지만 지금은 이미 진이 빠져 그런 것은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우형의 물음에 다들 주인을 쳐다보았다. 발단은 한이였어도 그 이후는 그녀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으니까.

“이사님이……?”

우형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주인을 바라보고, 주인은 시선을 피했다.

“재민이가 처음부터 해랑 형 몰아갔던 거 알지.”

“그래!”

“아냐, 나 진짜!”

세트 안에선 한이가 여전히 활약 중이었다.

이번엔 재민이 안내 방송을 듣자마자 해랑을 먼저 몰아갔다는 이유로 그를 지목했다.

결국 재민은 우형과 똑같은 얼굴로 끌려와선 우형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주인 님이 이런 거예요……?”

“아니, 꼭 내가 했다기보단…….”

방송을 살리려 했을 뿐인데 멤버들을 배신의 소용돌이 가운데로 몰아넣어 버린 상황.

그리고 결국 모니터에 비치는 현장 속엔 한이와 준해, 둘만이 남았다.

“빙의자가 여기 있고…… 내가 아니면…….”

준해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상황 파악에 나섰다.

천천히 ‘여기’와 ‘나’를 가리키던 준해의 손가락은 이번엔 한이에게 향했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더니…….”

준해는 온 팔에 소름이 돋았다.

제가 무서워서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말이 복선이 되어 돌아올 줄이야.

“준해 네가 형들을 속일 줄은 몰랐다. 지능캐를 믿는 게 아니었는데.”

한이는 여전히 준해가 범인이냐며 몰아갔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정말 믿을 정도로 결백한 표정이었다.

“으으……. 진짜로 무서우니까 그만해! 저 나가게 해주세요!”

한이도 소름 돋고 이 상황도 무섭고. 준해는 당장 현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일대일 상황에선 다수결을 진행할 수 없었기에 천장에 대고 얘기하니 안내 방송이 다시 흘러나왔다.

[현관 어딘가에 1인 즉시 탈출 열쇠가 숨겨져 있는데요. 그걸 찾아내는 단 한 명만이 탈출할 수 있습니다! 빙의자가 남을 것인가, 제물이 남을 것인가!]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목소리였지만 지금 그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서 있던 공간 주변을 여기저기 살펴보기 시작했다.

“준해야.”

“왜!”

한이에게 내내 속았음을 이제 알게 된 준해는 까칠 모드가 되어 대답했다.

“솔직히 내가 형인데 막내 남겨두고 혼자 나가면 뭐가 되겠냐.”

씁쓸한 표정으로 열쇠를 내미는 한이. 준해는 그 열쇠를 홀린 듯이 받아들었다.

“혀, 형……. 진짜로 양보하는 거야?”

그러자 한이는 다른 손에 감추고 있던 열쇠를 들어 올려 보였다.

“아니. 거짓말이었어.”

준해가 자신이 받은 열쇠를 확인해보니, 그것은 이 사태의 원흉인 전원 탈출 열쇠였다. 한이가 손에 든 것은 1인 즉시 탈출 열쇠였고.

한이가 마지막 멘트를 내뱉음과 동시에 사이렌 경고음이 울려 퍼지고, 마지막 희생자를 잡으러 연기자들이 총출동했다.

“아악! 형, 복수할 거야!”

준해까지 탈락하고 한이 혼자 남아 휑해진 공간.

[지금부터 5분간 출구가 열립니다.]

한이는 흥얼거리면서 여유롭게 출구로 걸어 나왔다. 출구에 설치된 카메라를 보며 밝게 씨익 웃어주는 엔딩 장면까지.

‘소, 소름이다.’

마지막까지 모니터로 보고 있던 주인도 소름이 돋는 듯하여 팔을 쓸어내렸다.

연기하라고 요청한 건 자신이었지만 이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해낼 줄은 몰랐으니까.

정말 준해 말대로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에 걸맞은 기승전결이었다.

출구로 나온 한이를 제일 먼저 반긴 건 멤버들이었다.

“유한이, 가만 안 둬!”

“어엌.”

세트 안에서 독주하던 한이는 나오자마자 둘러싸여 몰매를 맞았다.

그러나 최후의 승자여서 그런지 표정은 아직도 즐거워 보였다.

한차례 엎치락뒤치락하던 멤버들은 다시 오프닝 세트로 돌아와 일렬로 섰다.

“다 탈락했는데 어떡하죠…….”

“저희도 갑자기 없던 규칙을 추가한 책임이 있으니까.”

처음에 말했던 대로라면 벌칙은 전원 동물옷, 동물탈 착용 후 신곡 안무였다.

그냥 춰도 숨이 차는데 거기에 핫팩까지.

“딱! 한 분만 동물옷을 입는 건 어떠신가요?”

제작진의 제안에 멤버들의 시선은 곧바로 한이에게 몰렸다.

“와. 다수결 너무하다.”

방금까지 다수결을 이용해서 모두를 탈락시킨 한이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핫팩은 좀 봐주라.”

“네가 잘못한 만큼 붙이고 입어.”

“그럼 딱 한 개?”

“양심이 없다, 너는.”

결국 한이는 잠시 후 커다란 다람쥐가 되었다.

멤버들과 제작진 일부가 안무 영상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작가는 주인과 따로 모여 대화를 나눴다.

“제안해 주신 포맷을 컨텐츠에 참고해도 괜찮을까요?”

“저 혼자서 다 짠 것도 아닌데요, 뭘.”

작가는 처음에 한이가 열쇠를 찾았다고 했을 땐 컨텐츠가 망한 줄 알고 덜컹했다.

촬영이 끝난 지금은 완전히 밝은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당초에 1~2화 분량으로 예상했는데, 멤버분들이 잘해주셔서 3화는 나오겠네요.”

“정말요?”

홍보가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던 주인에게, 애들 얼굴을 몇 분이라도 더 내보일 수 있다면 이런 얘기는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하아. 덕분에 촬영이 무사히 끝난 것 같아서 정말 감사해요. 나중에 제대로 된 안무 영상 제작 기회를 드릴 테니 또 찾아와 주세요! 물론 저희 채널이 살아있다면요.”

마지막에 신생 채널다운 현실적인 한마디가 붙었지만, 좋은 이미지로 남았다면 다행이었다.

이제 모노크롬 팀은 다시 쇼케이스 팬미팅 준비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쇼케이스는 지정된 몇 음반사에서 앨범을 구매한 고객 중에 추첨하여 입장권을 부여하는 시스템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다음 날, 유아이 레코드 마케팅 부서에서 뉴마 엔터테인먼트로 연락이 왔다.

자신들에게 배정된 쇼케이스 자리를 더 추가할 수 있냐면서.

***

(후일담 1)

“혹시 모노크롬 섭외됐어? 봤어? 애들 나왔어?”

작가에게 모노크롬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컬러즈 언니. 그녀는 작가를 붙잡고 질문 공세를 쏟아냈다.

하지만 그대로 대답해줄 순 없었다. 공개 이전에 정보가 새어나가면 차질이 생기니까.

“누구 촬영했는지 스포하면 안 된단 말야.”

그러나 너무나도 간절한 표정을 앞에 두고 있으니 작가는 마음이 약해졌다. 결국 십여 년간의 친분을 걸고 말했다.

“남들한텐 비밀인 거 알지? 나 잘려. 그럼 모노크롬 부르자고 못 해.”

“물론이지. 정말 나만 알고 있을게.”

그녀는 내 아이돌에게 손해 끼칠 일이면 절대 안 하는 이성적인 컬러즈였다.

“나왔어. 뭐 찍었는지는 얘기 못 해주는데, 생각보다 더 잘 나올 것 같아. 솔직히 왜 망, 아니, 인기 적은 편이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

“그치?! 우리 애들 잘한다니까! 회사가 앞길 막아서 그렇지.”

팬들은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 애들’ 칭찬이 술술 나오기 마련이었다. 거기에 회사에 대한 평가까지 들어가면 막을 수 없었다.

감격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작가는 촬영 현장 분위기가 기억났다. 그녀가 하는 말과 달리 멤버들은 회사 직원들과 편해 보였다.

“의외로 분위기 좋던데?”

“응?”

“언니가 너무 소속사 욕해서 나도 좀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잘 챙겨주고. 좀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할까.”

“그래……?”

그 말을 전해 들은 언니는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변했다.

“요새 왜 그러지…….”

올해 들어 멤버 탈퇴로 팬덤이 크게 한번 뒤집힌 뒤로는 의외로 별일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잘하는 편이었다. 회사도 미안함을 안 걸까. 이제야.

“그리고 진짜 여기까지만 말해줄게. 신곡 좋더라.”

앨범이 나오기 전에 안무 영상까지 미리 촬영했기 때문에 작가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신곡을 미리 들을 수 있었다.

노래가 좋다, 나쁘다 정도의 감상은 스포일러가 되지 않았으니까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었고.

오묘한 표정이던 컬러즈 언니는 다시 얼굴이 화악 밝아졌다.

“그치! 우리 애들 음색이 아주~. 얼마 전에 자작곡이 나왔는데 피아노도 치고 막…….”

맨날 회사 욕하는 것만 들었는데, 이제야 처음 보는 다른 아이돌 팬 같은 반응이었다.

그녀는 한차례 모노크롬 자랑과 칭찬을 쏟아내고는 뭔가 생각난 듯이 주춤했다.

“그런데 가사가 막 악동 같진 않았지……?”

여전히 악동 알레르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컬러즈였다.

***

(후일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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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이티비 제작진 SNS인데 이거 울 스핃 애들 맞지?

나가는거 진짜 소취했단 말여 ㅜㅜㅜㅜ

└헐헐 맞다맞아

└뭐 찍는거지?

└귀신의집인듯!

└엌ㅋㅋㅋㅋㅋㅋㅋ

└울 애들 귀신에 약한데ㅠㅠㅠ 어떡해 벌써 존잼

└여기 내 머글친구들도 가끔 본댔는데 이참에 영업해야겠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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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촬영 이후로 개편된 공포 탈출 게임. 첫 촬영부터 일회성으로 끝날 위기를 맞았지만, 다행히도 해결책을 금방 찾아 채널을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회차를 몇 번 거치며 당당하게 유아이 레코드 예능 채널의 대표 컨텐츠로 자리 잡기까지.

캐릭터성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컨텐츠에, 아이돌에 관심 없던 구독자 비율까지 늘어나며 팬덤들은 내 아이돌도 나가게 해달라며 성화였다.

거기엔 유아이 채널에서 첫 번째로 섭외하려다 실패했던 SPID의 팬덤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7인 보이그룹인 SPID도 첫 촬영을 거치며 추가된 마피아 시스템의 제물이 되었다. 인원이 많은 만큼 더 많은 배신과 권모술수를 지나 최후의 승자가 남았다.

혼자 출구로 나온 그에겐 승리의 영광보다 상처가 많았다.

“대체 이런 배신 게임 누가 왜 만든 거죠?”

“배신 시스템은 모노크롬 한이 씨가…….”

“아……. 유한이…….”

첫 타자로 나와서 먼저 멤버들을 배신 때리겠다고 나선 한이.

주인의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결국 발단은 그였기에, 모두의 동의하에 한이가 만든 것으로 하기로 심플하게 정리가 되어버렸다.

SPID는 모노크롬과 같은 연도에 데뷔한 동기였기 때문에 멤버끼리도 친분이 있었다.

그는 한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한이 씨에게 영상편지라도.”

“하아. 한이야……. 네 덕분에. 정말. 좋은. 인생 경험을 했다.”

덕분에 한이는 컨텐츠 출연진들에게 악마 같은 존재가 되어 그 이름이 널리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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