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아이리스 멤버 일곱 명에 붙은 매니저가 네 명. 모노크롬은 다섯 명에 매니저 한 명…….’
최 비서의 답변을 듣고 이 한 명이란 숫자가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저번 프로필 사진 촬영 때, 모노크롬 단체 촬영과 윤환의 개인 스케줄이 겹치자 매니지먼트 팀장이 직접 지원에 나섰던 게 떠올랐다.
‘그렇게 두 명은 회사를 나가버렸지…….’
뼈아픈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날 외에는 스케줄이 많거나 겹친 적이 없어서 지금껏 깨닫지 못했는데, 전담 매니저 한 명으론 턱없이 부족했다.
이 한 명이 없으면 아예 없는 거니까.
‘그간 스케줄이 없어서 지금껏 이 인원으로 어떻게든 버텨왔던 건가.’
매니지먼트팀은 특히나 노동 강도가 높아서 사람이 자주 바뀌는 곳이라고 들었다.
그나마 현재 모노크롬 매니저는 스케줄이 없어서 적당히 혼자서 맡아왔는데 내가 갑자기 일정을 만들어냈으니 피로를 호소할 법도 했다.
이런 상황을 이상하다고 여기지 못한 이유는 더 있었다.
최근엔 나까지 매니저처럼 붙어 다녔고, 무엇보다…….
‘다들 그냥 혼자 알아서 잘하니까 몰랐지.’
멤버들은 자기들끼리 스스로 챙기는 게 익숙한 모습이었다.
스케줄 있으면 알아서 일어나고, 시간 되면 나오고, 숙소가 가까워서인지 회사도 알아서 출퇴근하고.
그래서 차량 이동 외에는 매니저가 필요할 일이 별로 없었다.
‘이런 방식에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지금까지 괜찮았다고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될 일!
인원이 필요하면 매니지먼트팀의 다른 직원들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매번 그렇게 임시로 넘기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같이 일하던 사람과 계속 일하는 게 우리도, 직원들도 편할 테고.
그래서 일단 매니지먼트팀에 속해있는 윤희에게 슬쩍 떠볼 겸 물어봤다.
“매니지먼트팀 직원 중에 모노크롬 팀으로 오려는 사람은 없을까요……?”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회의적이었다.
“제가 보기엔 지금은 없는 것 같은데……. 배우랑 아이돌은 활동 범위가 좀 다르기도 하고요.”
배우 쪽 업무는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는 분야였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지만 평균 노동량은 아이돌 매니저가 더 많으려나?
기존 매니저도 배우팀에 있는 직원들을 약간 부러워하는 눈치던데……. 이건 매니저를 한 명 두고 굴려 먹던 내 잘못인가.
그래서 그가 휴가를 붙여 쓰는 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허가해 준 것이었다. 복지라도 잘 챙겨주려고.
‘신경 쓸 일이 많아서 그런 거라면 아예 여러 명을 포섭해서 개인당 업무량을 줄이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윤희는 내 표정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읽었는지 어쩔 수 없다는 듯 솔직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사실…… 소문도 있어서요.”
“무슨 소문이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얘기에 나는 깜짝 놀라 반문했다.
“이사님께서…….”
나? 회사에서 나에 대한 뒷소문이 돈다고?
잠시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러나 윤희의 입에서 뒤이어 나온 얘기는 완전히 예상 밖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장님과 불화가 있다던가…… 그런 거요.”
“……?”
무슨 불화? 사장이랑 회사에서 별로 마주치지도 않았는데.
내가 이해를 못 하고 눈만 껌뻑이자, 윤희는 조금 씁쓸한 기억을 꺼내는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윤환이 탈퇴했을 때도 그렇고요.”
“아.”
내가 사장실에 쳐들어갔었지…….
하긴, 대표가 부재한 지금 가장 높은 직책인 사장과 대표 딸인 낙하산 이사. 어쩌면 직원들에겐 살벌한 권력 구도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 직원들은 사장이 신경 쓰일 텐데.’
고용된 입장에서 사장 눈치 안 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회사에 사장 눈치 안 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모노크롬이 지금 완전히 안정적인 것도 아닌데,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이 모노크롬 팀으로 옮기고 싶어 할까?
‘……나라면 아니지.’
나도 일반 회사원이었던 적이 있으니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회사 정치에 끼지 않고 일만 하고 싶어도, 조직에 속해있는 이상 주변의 영향을 받고 시선을 신경 쓰게 되는 법이니까.
“음. 일단 그건 알았어요. 인력 충원은 제가 더 알아볼 테니까 윤희 씨는 조금만 더 부탁해요.”
“따로 부탁하실 것도 없죠.”
매니저가 없는 동안 현재 그 일을 커버하는 사람은 같은 매니지먼트팀 소속인 윤희였다.
역시나 비활동기라 일이 많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윤희 씨도 휴가 필요하면 말해요. 주말 붙여 써도 괜찮으니까.”
“저까지 없으면…… 인수인계할 직원도 찾긴 찾아야겠네요.”
“뭐, 제가 하면 되죠.”
“흐흠……. 네.”
윤희는 작게 미소 지으며 할 일을 하러 떠났다.
최 비서도 그렇고 윤희 씨도 그렇고, 왜 요즘 그런 표정으로 날 보는 거지. 내가 못 미더운 걸까…….
어쨌건 그녀가 있어서 일이 편하긴 했다. 매니지먼트팀에서 필요한 일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녀가 나서기도 했고.
멤버들과 친근하게 지내는 윤희를 떠올리며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같이 붙어 다닐 사람이면 윤희처럼 낯익고 편한 사람이 확실히 좋을 텐데.
‘……모노크롬 담당하던 사람이 혹시 뉴레인엔 있나……?’
‘사람을 새로 뽑아야 하나?’에 이어서 ‘또 스카우트 해와야 하나?’ 하는 위험한 생각까지 떠올리던 와중.
도움 되는 이야기를 들고 온 것은 요즘 곡 작업으로 바쁜 우형이었다.
“사촌 형이 잠깐 저희 매니저로 일한 적 있었는데.”
아마 윤희에게 내가 매니저 충원을 두고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사촌 형?”
“네. 한 몇 달? 짧게였지만요.”
“언제 일하셨는데?”
“저희 3년 차 때인가……. 애들이랑도 다 아는 사이라 필요하시면 한번 물어봐도 좋을 것 같아서요.”
우형이 어느 시기였는지 가늠하는 듯 눈을 굴리며 천천히 대답했다.
3년 차에 재민이와도 얼굴을 알 정도면…….
‘회사에서 방치하기 시작해서 재민이까지 퇴출당할 때쯤이었던 거 아냐……?’
지금껏 들은 얘기를 종합해보면 내가 아이리스를 결성한 후 그곳에 집중하면서 회사 인력들도 아예 아이리스 팀으로 옮겨간 것 같았다.
모노크롬을 맡다가 후반엔 아이리스를 맡았다던 송준오 피디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모노크롬 관리창을 자주 들어가지 않던 게 여기에선 그렇게 반영된 건가?
‘그럼 모노크롬은 아예 매니저 자체가 제대로 없었던 거야? 멤버 친척이 맡을 정도로?’
윤환이 들어온 이후로, 모노크롬의 매니저는 윤환의 솔로 활동에 많이 동원되었을 터.
멤버들이 스스로 하는 데 익숙한 것에는 생각보다 더 심각한 이유가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제대로 케어를 못 받고 지내왔던 거야……?
방심하다가 훅 들어온 죄책감에 빠져있는데 우형이 눈치를 보며 내 표정을 살폈다.
“혹시 바쁘신데 방해 된 건…….”
“아니, 아니! 안 바빠. 완전 한가했어.”
표정 관리! 난 이성을 부여잡고 현실로 돌아왔다.
그 정도로 멤버와 가까운 사이면 내가 바라던 조건에 부합하긴 했다.
그러나 잠깐 일하다 말았다면 그만둔 이유가 있을 텐데.
“다른 일 있어서 그만두신 거 아니고?”
“그게…… 공무원 시험 본다고…….”
우형은 머쓱하게 손으로 목덜미를 쓸며 말했다.
게임 세계관치고 너무나 현실적인 이유에 나는 잠시 말문이 턱 막혔다.
엔터사 직원들이 평균적으로 그렇지만, 매니저 또한 직급이 따로 있지 않은 이상 대개 박봉이었다.
게다가 당시 모노크롬이면 회사에서 크게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멤버의 친척이라고 우대받을 것도 없고.
차라리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서 결국 오래 일하지 않고 그만둔 듯했다.
“시험은 아직…… 준비 중이시란 거지?”
“……네.”
모노크롬이 3년 차일 때 시험을 보겠다고 일을 그만뒀는데, 지금 모노크롬이 6년 차…….
남의 아픈 부분을 건드린 것 같지만, 그렇다면 선택지로 삼아줄 수 있겠다 싶어서 나는 우형에게 연락을 부탁했다.
***
뜬금없지만 우형 이름의 ‘형’이 돌림자였다는 TMI를 알게 되었다.
정말로 같은 항렬인 친척인 게 맞는지 우형의 사촌 형 이름이 여민형이었으니까.
‘게임 내에서 이름은 랜덤 조합으로 나왔던 것 같은데.’
마이 엔터 공식 카페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의 글을 보면 연습생이나 멤버 이름이 전부 달랐다. 평범한 이름은 종종 겹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같은 게임 세계 속 캐릭터여도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별개의 인물이란 걸까.
가끔 멤버들의 과거 이야기라든지, 친척이라든지, 플레이어였던 나로선 알 수 없었을 부분들을 접하면 그런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게임에서부터 정해져 있던 배경 설정인 걸까. 아니면 내게 부여된 설정처럼 현실화하면서 적당히 생겨난 걸까. 아니면 이 세계에선 원래 있었던 사람들이고 나만 이질적인 존재였다든지.
‘음. 모르겠다.’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없는 건 미뤄두고 일단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 게 생산적이었다.
우형에게 연락을 부탁하고 다행히 바로 그의 사촌 형과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면접이라기보단 일단 부담 없이 얘기만 먼저 들어보라고 부른 것이었다. 사람이 급한 건 이쪽이었으니까.
그리고 처음 만난 그는 의외로 호의적이었다.
“시험을 준비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사실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고요. 아버지가 언제까지 사촌 동생 뒷바라지만 하고 살 거냐고 하셔서.”
“그……랬군요.”
이 세상 뭐가 이렇게 현실 반영이 잘 되어 있어……?
내가 이 세상에 처음 왔을 땐 굉장히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를 재차 마주하고 나는 또 말문이 막혔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을 케어하는 거면 몰라도, 사촌 동생이면 아버지로선 마음이 좀 그렇기도 하려나. 자기 아들이 조카 매니저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는다고 하면.
“그래도 오래 준비하셨을 텐데…….”
포기하고 다시 이쪽으로 오기엔 아깝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조심스레 물어보니 그의 대답은 심플했다.
“아. 적성에 안 맞아서요.”
우형의 친척이라기에 조금은 그와 비슷한 스타일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이 사람 엄청 자유로운 영혼이잖아.’
그래도 얘기가 빠르면 나야 좋았다.
“바로 일하실 수 있으면 좋거든요. 저희 팀으로 들어오시면 연봉은 전보다 높아지실 거예요. 대략…….”
곧바로 채용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의외로 이해관계가 맞는 걸 보고 마음을 바꿨다.
나는 테이블에 올려진 종이에 펜으로 숫자를 적었다.
일자리를 결정하는 데는 우선 돈이 가장 중요하니까.
“……이 정도?”
회사에 체계란 게 있으니 연봉을 내 마음대로 올리고 내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 사비를 털어서 월급을 더해주기엔 법적으로도 이런저런 제약이 있었고.
그래서 난 매니지먼트팀 안에 모노크롬 전담팀을 하나 만들어 일반 사원 위로 직급을 새로 추가하는 꼼수를 썼다.
그렇게 윤희도, 매니저도 연봉협상을 새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런 식으로 팀을 개편해 버리니까 사장이 뭐라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긴 했는데.
그도 어쩐지 내 눈치를 보는 사람이라 큰 방해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
‘혹시 이것도 그 불화설 소문의 원인 중 하나인가…….’
내가 바로 패를 꺼내 들자 그는 내가 적은 숫자를 보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만족스러운가? 부족하려나?’
아버지가 반대했을 정도면 그걸 커버할 만한 연봉이어야 할 텐데.
내가 돈을 이 정도로 받는다! 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문제 될 일은 없지 않겠는가.
솔직히 자식이 만족할 만큼 돈을 번다는데 반대할 부모도 없을 테고.
그리고 그는 잠깐 고민하더니.
“……콜.”
협상은 빠르게 성공했다.
그가 흔쾌히 손을 내밀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나도 바로 맞잡아 악수했다.
“그래도 매니저 일은 적성에 맞으셨나 봐요?”
자세한 근로 계약은 차차 하기로 하고, 한결 마음을 놓은 나는 후련한 마음에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시험 준비는 적성에 안 맞았다고 했는데 다시 돌아올 정도면 의외로 매니저 일이 천직일지도. 그렇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인재를 찾은 게 아닐까?
그러나 툭툭 잘 대답하던 그가 의외로 이 질문엔 머뭇거렸다.
뭐지?
“……리스…….”
“네?”
갑자기 목소리가 작아지는 바람에 내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되묻자, 그는 조금 어색한 얼굴로 다시 대답했다.
“아이리스가 있어서…….”
“…….”
더, 덕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