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누구 내 이어폰 본 사람!”
방에 있던 한이가 거실로 나오며 큰 소리로 이어폰을 찾자, 거실에 앉아있던 재민과 준해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형. 주인 님이 목 조심하라 그랬잖아.”
“그럼 난 의사소통 어떻게 하냐?”
“다운. 다운.”
재민은 볼륨을 줄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평소 일상에서도 목을 좀 아끼라는 주인의 지령이 있었던 후, 요 며칠 새 계속되던 일이었다.
두 사람은 말하는 내용보다는 주로 목소리 볼륨에만 반응했다. 큰 소리로 말하면 아예 대화를 해 주지 않았다.
“하아…….” 하고 한숨을 내뱉은 한이는 소리를 낮춰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다시 얘기했다.
“누구. 내. 이어폰. 봤냐고.”
“뭐라고? 안 들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건만 재민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크게 말하면 작게 말하라고 하고. 작게 말하면 안 들린다고 하고.
분명 아까 나오면서 하는 말을 들었을 텐데 일부러 이러는 것이었다.
“야, 이것들이……!”
“형! 목.”
이번엔 준해가 검지를 들어 자신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이건 놀리는 거다. 확실히 놀리는 거다.
한이는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예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 재민과 준해의 스마트폰이 동시에 울렸다.
[한이: 내 이어폰 봤냐고]
말하는 대신 모노크롬 멤버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겨 소통하기로 한 한이.
동생놈들은 그제야 대화를 받아주었다.
“이어폰 회사에 두고 온 거 아냐?”
[한이: 나 들어올 때 노래 들으면서 들어왔던 것 같은데]
[재민: 나도 본 듯.]
“형은 말해도 되는데?”
준해가 덩달아 메시지로 소통하기 시작한 재민을 쳐다봤다.
그러나 재민은 똑같이 스마트폰으로 대화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재민: 방이나 어디에 있겠지.]
[한이: 없으니까 나온거 아냐]
[준해: 침대 아래로 굴러떨어진거 아니고?]
세 사람이 실속 없는 얘기로 메시지창을 채워나가자, 이번엔 방에 있던 우형이 자다 깬 얼굴로 문을 열고 나왔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그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선 세 사람의 메시지로 알림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너네 뭐 하냐……?”
거실에서 말없이 각자 스마트폰 화면만 보고 있던 세 사람이 한꺼번에 돌아봤다.
고작 1m 남짓한 거리에서 굳이 메신저로 대화하는 세 사람.
[한이: 너네 때문에 형 화났잖아]
[재민: 형 목 쉬라고 도와준 건데.]
[준해: 한이형 때문이잖아]
[우형: 조용히 해 얘들아]
[한이: 여기서 어떻게 더 조용하라고]
거실에는 알림 소리만 울려 퍼질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기에 확실히 이보다 더 조용히 할 수는 없었다.
이번엔 다른 방문이 열리며 해랑이 나타났다.
그의 손엔 우형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돼?”
한이가 좀 조용하려나 싶더니 다른 데서 다른 방향으로 시끄러운 멤버들이었다.
해랑이 이렇게 나오자 한이가 반겼다.
“그렇지? 형도 그렇게 생각하지?”
“적당히만 하고 살자.”
고강도 수다 금지령은 결국 금지령을 가장 반기던 해랑에 의해 풀렸다.
***
이번 활동의 마지막 생방송까지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온 모노크롬 멤버들.
나는 우리 직원들과 함께 2주간의 활동을 끝낸 그들을 반겼다.
“웬 케이크예요?”
“무사히 막방까지 마친 기념.”
“우와.”
막방을 맞아 작게라도 기념하기 위해 미리 케이크를 준비해 뒀다.
대기실에 돌아오자마자 멤버들 눈에 그게 바로 들어왔는지, 곧바로 호기심 어린 시선이 모여들었다.
‘이전엔 회사에서 이런 사소한 것까지 챙겨준 적이 없을 것 같아서 준비했는데.’
멤버들의 얼굴을 보니 역시나 처음 받아보는 듯한 반응.
다들 들어오자마자 케이크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이더니 각자 핸드폰을 들어 사진으로 남겼다.
한차례 촬영이 끝났는지 재민이 시선을 돌려 내게 물었다.
“이거 먹을 수 있는 거예요?”
케이크는 이번 앨범 CD에 프린팅된 이미지대로 주문 제작한 것이었다.
다만 이번 앨범이 모노필름, 흑백영화 컨셉이다 보니 CD는 새까만 색에 심플하게 앨범 타이틀이 텍스트로 들어가 있었다.
따라서 케이크를 뒤덮은 크림 또한 새까만 색.
“……먹물 파스타 같은 거라 생각하고 먹으면 되지 않을까?”
조형물이었다면 “오!” 하겠지만,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확실히 식욕 돋는 색깔은 아니었다.
맛보다는 모양새를 중시하긴 했어도 좀 더 맛있어 보이는 색깔로 주문할 걸 그랬나, 뒤늦게 후회가 들었다.
‘나도 주문해서 오늘 받아본 거라 이렇게 새까맣게 완성되어 나올 줄은 몰랐지.’
위풍당당하게 시커먼 색을 자랑하는 케이크. 다들 눈으로 구경은 잘 했는데 막상 입에 넣기에는 선뜻 손이 안 가는 모양이었다.
먹어볼까 말까 고민하던 멤버들은 이내 케이크를 사이에 두고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먹으면 혓바닥 까매지는 건 아니겠지?”
“차우차우냐.”
설마 먹으라고 만든 케이크인데 혀까지 까매지겠어?
……라는 생각이었는데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혀가 파랗게 물들던 색소 사탕이 문득 생각났다.
에이. 그래도 케이크집에서 알아서 잘…… 해 줬겠지?
“형이 먼저 먹어봐.”
“지금 먹으라고?”
크림만 한 번 찍어 먹어 보라며 한이가 해랑의 팔목을 잡고 케이크가 있는 쪽으로 끌어당기자, 해랑은 힘으로 버텼다.
무슨 독극물인지 아닌지 기미 하는 것 같잖아.
“……숙소 가져가서 먹어.”
나도 차우차우가 될지 안 될지는 확신하지 못했기에 소심하게 말했다. 그 말에 한이도 해랑의 팔목을 놓았다.
우형은 아까 또 새삼스레 막방의 감회에 젖었는지 그렁그렁하더니, 거울을 보곤 눈화장이 다 번졌다며 메이크업을 지우러 갔다.
그가 잠시 나가는 뒷모습을 보고 나는 준해에게 다가가 계략이라도 꾸미듯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준해야. 너 그거 했어? 활동 기간 안에 우형이한테 복수한다 그랬잖아.”
“아. 맞다!”
우형이 잠든 준해의 사진을 마음대로 올리는 바람에 준해가 펄쩍 뛰었던 그 사건.
활동 첫날이었고 그 후에 정신이 없어서 준해의 기억에서 잊혔던 듯했다.
마침 그 우형은 잠시 대기실을 비운 상태.
“짠.”
내가 갑자기 스마트폰 하나를 꺼내자 준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너네 뷰이라이브하는 핸드폰 오래 썼잖아. 요즘 나오는 게 카메라가 많이 좋아졌더라고.”
업무용 핸드폰을 새로 개통하면서 따로 통 크게 일시불 구매한 스마트폰이었다.
전면 카메라 화질도 우수하고 후면에는 카메라가 용도별로 여러 개 달린 최신 기종. 다른 기능은 필요 없으니 철저하게 카메라 기능에만 집중해서 골라온 것이었다.
“이거 저희 거예요?”
“응. 그리고 우형이는 아직 모르지.”
스마트폰을 받아든 준해는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이해한 듯 웃었다.
잠시 후, 대기실로 돌아온 우형은 멤버들이 모여있는 뒷모습을 보고 의문이 담긴 눈으로 슬그머니 다가갔다.
“너희 뭐 해……?”
“오~. 주인공은 항상 마지막에 나타나지.”
[앜ㅋㅋㅋㅋㅋ]
[주인공 등장!]
[리더 지각ㅋㅋㅋㅋㅋㅋㅋ]
우형은 준해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하곤 손으로 얼굴부터 가렸다.
그 화면엔 실시간으로 채팅과 하트가 올라오고 있었다.
“야! 나 방금 메이크업 지우고 왔는데!”
“형이 저번에 맘대로 사진 올려서 내가 복수하기로 했잖아.”
[포대기준해♡♡]
[그거 첫방날 아니에요?ㅋㅋㅋㅋㅋㅋ]
[복선 회수 확실한 것 보소ㅋㅋㅋ]
[오빠 얼굴 왜 가려요ㅜㅜㅋㅋㅋㅋㅋㅋ]
[얼굴 보여주라]
“얼굴 왜 가리냐잖아. 숙소에서도 뷰이라이브 하면서 뭘 부끄러워해.”
“지금은 나만 너무 생얼이잖아!”
멤버들과 우형은 얼굴을 가리느니 마느니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얼굴을 가리던 손을 내린 우형은 화면으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곤 작게 말했다.
“아이돌이랑 그냥 지나가던 사람 같지 않아……?”
아직 의상에 메이크업도 그대로인 멤버들 사이에 우형 혼자만 티셔츠 차림이었다.
그가 말하자 다른 멤버들이 재밌는 생각이라도 난 듯이 말을 이어갔다.
“여기 모노크롬 대기실이라 아무나 들어오시면 안 되는데.”
“아, 구경 좀 할게요.”
자연스레 일반인 대기실 난입 상황극을 시작한 멤버들.
“어디서 오셨어요?”
“저기 상암에서 왔는데요.”
“사인해 드려요?”
한이가 옆에 있던 펜을 하나 집어 들며 말하자, 우형이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대답했다.
“종이가 없는데.”
“하~. 준비가 안 되어 있으시네.”
[싸인 부럽다 ㅠㅠㅠㅠ]
[오빠 여기서 종이 던질 테니까 받아!!]
[ㅋㅋㅋㅋㅋㅋ진리의 덕계못]
[저 주머니에 종이 5백장 구비해 다녀요ㅠㅠ!!!]
모노크롬에게 계 타는 모노크롬 리더를 부러워하는 컬러즈.
그렇게 막방 기념 뷰이라이브는 상황극부터 막방 소감에 새까만 케이크 자랑까지, 한참이나 이어졌다.
***
모노크롬의 재결합 이후 첫 번째 활동이 끝나고 나는 오랜만에 사무실에 딱 붙어있었다.
그간 회사에 있어도 프로듀스팀에 들렀다가, 활동 일정 맞추러 매니지먼트팀에 들렀다가, 스타일리스트와 의견을 나누러 왔다 갔다 하면서 온갖 곳을 돌아다녔으니까.
이제는 앨범도 내 봤고, 활동도 한번 끝냈고.
하나씩 경험치를 쌓아 성장해서 돌아온 듯 뿌듯한 느낌이었다.
이제 또 뭘 해야 하나. 스케줄러를 뒤적거리고 있는데 오랜만에 듣는 듯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응. 들어와.”
가볍게 대답하는 나와 달리, 최 비서는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업무용 태블릿.
“이사님. 꼭 확인해 보셔야 할 일이…….”
“뭐, 뭔데?”
서류철도 아니고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들고 들어온다는 건, 주로 인터넷에 뭔가 일이 터졌을 때가 많았는데.
‘활동도 끝났는데 뭐 문제 될 게 있었나……?!’
뭔가 일이 터졌다기엔 지금껏 아무 전조도 없었기에 머리를 굴려봐도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난 불안한 마음으로 그 태블릿을 받아들었다.
태블릿 화면에 떠 있는 것은 한 기사.
[‘아이리스’ 레드의 그는 누구?]
그것도 레드에 관한 기사였다.
‘아이고, 레드야…….’
마이 엔터를 플레이할 때, 열심히 스타일링에 열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 중앙에 떡하니 스캔들이 떠서 벙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연례행사는 이번에도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리스 기사를 나한테 왜?”
뉴마 대표가 뉴레인 대표이기도 하고, 내가 그 딸이니까 완전히 관련이 없는 건 아니라고 해도.
업무적으로는 모노크롬 한 팀만을 담당하고 있기에, 레드의 기사를 굳이 내게 보여주려고 들고 올 이유까지는 없었다.
“……끝까지 직접 읽어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난 얼떨떨한 기분으로 다시 태블릿으로 시선을 내렸다.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본문은 레드의 열애설에 관한 내용이었다.
[인기 걸그룹 ‘아이리스’의 멤버, 레드(본명 홍수연)가 또다시 열애설에 휩싸였다.]
아래에는 어딘가의 포토존에서 기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레드의 사진이 있었다.
마이 엔터에서만 보던 찌라시를 이렇게 본격적인 기사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기사가 이 시기에 나왔다는 건…… 혹시 돌대회인가?
그러고 보니 내가 플레이할 때도 이런 기사가 날 때는 주로 연초에 가까웠는데.
‘그게 다 돌대회 때문에 기사가 났던 거야……?’
어쩐지 돌대회 촬영을 지켜볼 때 괜히 레드에게 자꾸 시선이 가더라니, 그래서였나.
또다시 플레이와 현실이 맞닿는 생소한 기분을 느끼며 나는 다시 기사로 시선을 내렸다.
[내부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시선을 피해 회사에서 만남을…]
[두 사람은 예전부터 소속사 선후배 관계로…]
……응?
아니. 잠깐.
아이리스와 소속사 선후배 사이라면…….
나는 이미 게임에서 세 번이나 접해봐서 내용이 대충 예상이 갔기에 기사 본문을 대충 훑어보기만 했다.
그러나 읽다 보니 뭔가 심상치 않음이 느껴져, 자세를 바로 하고 진지하게 기사를 다시 읽어내렸다.
‘레드, 아이돌 대운동회, 촬영 현장……, 인사하는 장면, 포착…….’
그리고. 발견한. 아주 익숙한 이름.
[상대는 ‘모노크롬’의 멤버…]
……뭐?
“우리 애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