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나와 멤버들은 댄스 경연 대회가 열리는 공연장으로 찾아왔다.
다행히 미리 말해둔 덕분에 뒤쪽이지만 팀 관계자로 다 같이 입장할 수 있었다.
“형, 형! 저 사람 제이케인이잖아.”
“헉. 진짜네.”
“알아? 누군데?”
“프로 댄서인데 인터넷에 유명한 채널이 있거든요.”
멤버들은 무대 위에 선 유명 댄서를 알아봤다. 외국 사람인데도 멤버들이 알아볼 정도면 상당히 유명한 모양.
얘기를 듣다 보니 문외한인 나도 어느 정도 레벨의 대회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대회는 당연하게도 영어로 진행되었지만, 댄스 경연이라는 특성상 언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참가자도 관객들도 국적이 제각각인데도 퍼포먼스 하나로 모두가 통했다.
나는 범접할 수 없는 프로의 세계를 보는 기분이었다.
‘사람한테 저런 움직임이 가능해?’
각국의 예선을 거치고 올라온 실력파 팀들만 모여 있어서 그런지 무대가 하나같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춤에 관해선 잘 모르는 내가 관객으로서 대회를 잘 즐길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였다.
“[Team MIRO!]”
그렇게 현장 분위기에 동화되어 즐기던 와중에 드디어 팀 미로의 등장 순서가 찾아왔다.
호명된 팀 미로가 등장하자 알아보고 반응하는 관객들도 있었다.
팀원들 사이에 섞여 있는 재민은 사극에 나오는 자객처럼 두건 같은 것으로 눈을 제외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금발이라 우리는 금방 알아볼 수 있었지만.
이번에 동행하게 되면서 팀 미로의 다른 사진을 봤을 때도 재민은 저렇게 얼굴을 가린 모습이었다.
이번에도 가리고 나온 것을 보면 항상 저 모습으로 공연을 해 왔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래서 실력 있는 댄스팀에 있는데도 안 알려졌었구나…….’
팀 미로의 팀원들은 의상의 베이스 색상과 포인트를 통일시키고, 그 외엔 각자 개성 있게 스타일을 살렸다.
그중에 재민은 얼굴을 가린 것이 트레이드마크가 된 모양이었다.
전 아이돌 멤버로서 얼굴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을 테고, 이런저런 이유로 선택한 소품인 듯했다.
공연장 전체를 비추던 조명이 암전되고, 무대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동기화된 듯이 관객들마저 조용해진 현장에 준비된 음악이 깔리기 시작했다.
원래 재민의 파트를 대신하려던 팀원이 다이어트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며, 며칠 동안 닭가슴살이랑 샐러드만 먹었다고 죽을상을 지었던 것이 생각났다.
왜 갑자기 그 기억이 떠올랐냐면, 무대를 보니 그 이유가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거의…… 날아다니잖아.’
나도 지금껏 정확히 알지 못했던 댄스 레벨 9의 진면모가 펼쳐졌다.
가벼운 움직임이 필요한 부분은 재민이 메인으로 나섰다.
‘난 너무 말라 보여서 밥 좀 잘 챙겨 먹이라고 했는데.’
몸이 가벼운 것을 장점으로 극대화한 모습이었다.
살이 잘 붙는 체질이 아니라 다행인가. 본의 아니게 대회 전에 체중 관리를 시킬 뻔했다.
몇 년간이나 동고동락한 사이여서인지 팀원들은 서로 합이 뛰어났다.
특히나 단장은 역시 단장. 무대 장악력이 엄청났다. 게임 레벨로 환산하면 거의 15 정도는 되지 않을…….
‘아니, 자꾸 수치로 확인하다 보니 머릿속 기준이 이상해지는 기분이야.’
나는 잡생각을 떨쳐내고 다시 무대에 시선을 고정했다. 집중하지 않으면 내 눈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고난도 동작을 선보일 때마다 중간중간 관객석에선 함성이 터졌다.
“헐. 재민이 완전 멋있어.”
“다른 팀원들도 와…….”
“단장 형이랑 누나는 포스가 장난 아니다.”
멤버들도 관객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연습실에서 웃고 떠들던 모습과는 달리, 진지한 표정의 카리스마 있는 모습.
그 갭 덕분에 우리에겐 더 멋있게 느껴지는 무대였다.
이후에도 몇 팀의 순서가 이어지고, 잠깐의 심사 시간 후 바로 결과가 발표되었다.
팀 미로는 세계 대회 준우승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재민은 팀원들과 함께 수상의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
댄스팀은 내일 아침 일찍 먼저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 미로 팀원들과 뒤풀이를 마치고 온 재민은 곧바로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호텔을 옮겼다.
캐리어를 둘 자리를 물색하던 재민의 눈에 객실 한구석에 쌓여있는 뭔가가 보였다.
분명 출국할 때만 해도 없었던 쇼핑백들.
“허어, 이게 다 몇 개……. 나 잠깐 없는 동안 다들 뭘 하고 다닌 거야?”
“주인 님 통이 크시더라……. 말릴 새도 없었어. 이건 네 거라던데.”
한이가 그중 한 꾸러미를 재민에게 내밀었다.
그 말이 정말인지 쇼핑백 몇 개가 따로 한데 묶여 있고, 손잡이엔 ‘재민’이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있었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갑자기 옷이 생긴 재민은 이 급전개를 따라가지 못하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주인의 거침없는 쇼핑을 바라보던 멤버들과 똑같은 표정이었다.
“사이즈 맞는지 한번 입어 봐.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더라.”
쇼핑백 안에 들어있는 것은 옷 몇 벌과 모자. 거기에 피어싱까지 빠지지 않았다.
“주인 님…… 엄청 부자인가?”
“우리보다야 그렇지 않을까?”
전부터 주인은 멤버들에게 뭔가 자꾸 주려고 했다. 마치 빚이라도 갚는 듯이.
지금껏 멤버들이 이 회사에 있으며 겪어본 적 없는 일이라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이게 외국 스타일인가.’
해외 거주 경험이 전혀 없는 주인이었지만 다들 그녀가 외국에서 지내다 온 줄 알고 있었다.
주인이 자꾸만 베푸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본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기에 다들 그러려니, 이게 주인의 스타일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재민이 캐리어를 풀어놓자 옆 객실에 있던 해랑과 준해가 넘어왔다.
방은 누구와 함께 쓰든 상관없었지만, 객실을 정할 때 준해가 “형.” 하고 해랑을 부르면서 눈짓했었다.
멤버들은 몰랐지만 그들끼리 아는 얘기가 있는지 두 사람은 눈빛으로 통했다. 슬쩍 한이를 쳐다본 건 비밀이었다.
그렇게 해랑과 준해가 2인실을 함께 쓰고, 우형과 한이는 재민이 돌아올 것을 고려하여 3인실로 배정되었다.
당연히 3인실이 더 넓었기에 재민이 부재중일 때도 멤버들은 이 방에서 모였다.
“재민이 형도 분량 채워야지.”
준해가 들고 온 것은 멤버들끼리 서로의 모습을 촬영하던 캠코더.
정해진 분량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언제 어떻게 쓸지, 혹은 안 쓸지도 모르는 영상이라 촬영이 강제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다섯 명이 모였으니 뭐라도 하자는 표현이었다.
“우리 뭐 하냐, 근데?”
“멍석말이!”
“아악!”
느닷없이 재민이 침대 아래에 앉아 있던 한이 머리 위에 이불을 뒤집어씌우고 달려들었다.
재민이 체중을 실어 깔아뭉개자 우형과 해랑도 그 위에 같이 엎어졌다.
“어흑. 잠깐, 잠깐. 한이 형이 아니라 내가 깔리잖아.”
“아, 한이 형 너무 분량 몰아주지 마. 이건 창고행.”
“내 희생을 소중히 해 줘.”
금방 해산한 멤버들 아래에서 머리가 온통 흐트러진 한이가 이불을 걷어내며 나타났다.
준해는 창고행이라고 말하면서도 한이의 산발을 클로즈업했다.
“아이디어 없어? 형 맨날 뷰이라이브 했잖아.”
공백기에도 팬들에게 꾸준히 뭐라도 보여주고자 다양한 소재로 뷰이라이브를 진행하던 우형이었다.
멤버들이 그를 지목하자 우형은 벌떡 일어났다.
“기타 가져와서 노래…….”
“그건 좀 이따 하고. 먼저 재밌는 걸 하자고.”
일어서서 기타를 가지고 오려던 우형이 시무룩하게 다시 앉았다.
재밌는 소품이 없을까 둘러보던 우형의 시선에 한구석에 쌓여있는 쇼핑백이 들어왔다.
“패션쇼 하자. 옆 사람 제일 멋없게 입힌 사람이 우승하는 거로.”
마침 출장을 위해 각자 옷도 몇 벌씩 골라서 챙겨왔고, 아직 뜯지 않은 새 옷까지 잔뜩 생겼다.
지금 준비된 것들을 가장 잘 살릴 만한 아이디어였다.
“무슨 게임이 그래. 난 찬성.”
“재밌겠다.”
“올~. 아이디어뱅크~.”
멤버들도 그냥 물어본 것인데 정말로 아이디어가 금방 나왔다.
우형은 멤버들의 칭찬에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기면 뭐 줘요?”
“주긴 뭘 줘. 승자의 영예를 얻는 거지.”
우형은 옆 사람이 자신의 모델이라고 하며 반시계방향으로 손가락을 돌려 가리켰다.
한이는 제 옆에 있는 멤버를 확인하곤 의욕을 잃었다.
“아~. 패완얼이라 이 형 어려운데.”
말은 옆 사람 입히기였으나, 자연스레 다 같이 한 명을 골라 뭐가 더 안 어울릴까 고민하는 시간이 펼쳐졌다.
“악! 멋있는 포즈 하지 말라고.”
“막내 눈에 형이 그렇게 멋있어 보여? 감동이야.”
“저기요, 심사위원님들. 포즈 금지로 해 주세요.”
“패션쇼인데 포즈 금지가 웬 말이냐.”
첫 순서는 준해. 모델은 우형이었다.
멋없어야 우승하는 승부. 그러나 모델을 포함하여 모두가 적이었다.
이후로 각자 순서마다 온갖 기상천외한 스타일이 시도되었다.
“솔직히 이게 멋있진 않지. 그쵸? 제가 우승 후보죠?”
“아니. 나 저런 스타일 잡지에서 본 것 같아.”
“시대를 좀 앞서갔을 뿐이지 멋없는 건 아냐.”
“저게 다음 시즌 유행 아이템이다.”
명예뿐인 우승이 뭐라고, 다들 다른 사람의 순서엔 온갖 난해한 패션도 어떻게든 멋있다고 평가를 쥐어짰다.
그렇게 자기들끼리 즐기면서 팬들이 좋아할 만한 자체 컨텐츠 하나가 완성되었다.
***
웃고 떠들다 보니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노는 것도 좋지만 늦게까지 깨어있다간 다음 날 일정에 지장이 있을 테니, 해랑과 준해는 밤이 더 깊기 전에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줄어들자 방이 급격히 조용해진 느낌이었다.
“맥주라도 마셔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인데.”
“내일 촬영이다.”
“그냥 분위기가 그렇다는 거지.”
한이가 창밖을 보며 맥주 얘기를 내뱉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우형이 핸드폰을 보던 자세 그대로 째릿 하는 시선을 보냈다.
단박에 엄포를 놓긴 했지만 한이가 무슨 의미로 한 말인지는 그도 알 수 있었다.
조명도 은은하고, 발코니로 이어진 통창 너머로는 밤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도 잘 지나다니지 않는 연습실 층에서 시간만 때우던 자신들이었는데.
이렇게 해외로 나와 여유롭게 분위기를 즐기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것도, 함께 데뷔했던 다섯 명으로.
우형은 고개를 돌려 재민이 있는 방향을 슬쩍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
아까부터 조용하다 싶더니만.
“재민이 잔다.”
목소리를 낮추며 말하자 한이도 목을 쭉 빼고 재민이 앉아 있던 침대를 쳐다봤다.
침대 등받이에 기대서 대화에 참여하던 재민은 점점 자세가 낮아지더니 어느새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잠에 푹 빠져 있었다.
최근 모노크롬과 댄스팀 일정을 병행하기 위해 무리한 스케줄을 강행했던 그였다.
대회까지 끝나고 나니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온 듯했다.
“고생했지. 재민이.”
“그래도 진짜 멋있더라.”
“그치.”
자신들과 떨어져 있는 동안 재민이 어떻게 지내왔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 시간이었다.
정말 좋은 사람들과 함께였는데, 망설이지 않고 다시 자신들의 손을 잡아준 재민에게 새삼 고마웠다.
다른 곳에 다녀와도 돌아올 곳이 모노크롬이란 점도.
멀리 떨어져 있다 돌아온 재민이기에 더욱 각별했다.
우형과 한이도 재민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대화를 나누다 적당한 시간에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자신들도, 재민도, 모노크롬으로서의 본격적인 일정은 내일부터 다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