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7화 (17/430)

# 17화

거울 앞에 서서 자기 자신을 격려하는 것은 우형의 버릇이었다.

격려하는 것보다는 격려받는다는 행위가 중요한 것 같지만.

곡을 들려주고는 내 눈치를 보며 어떤지 물어보던 것하며, 녹음 현장에서 준오에게 의견을 구하던 것하며, 꼭 그렇게 누군가에게 확인받아야 안심이 되는 듯했다.

그 누군가가 없으면 자기 자신에게라도 용기를 받으려 저렇게 거울 앞에 서는 거고.

‘왜 저렇게 자신감이 떨어질까.’

그간 잘해도 잘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혼자서라도 버틴 건가 싶어 안타깝기도 했다.

난 조용히 옆으로 가서 거울에 비친 우형과 눈을 마주쳤다.

“이 곡은 너밖에 연주 못 하니까 자신 좀 가져. 너 진짜 잘해.”

“아, 이사님.”

방 안에 혼자 서서 자신과의 대화에 집중하던 우형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조금 놀란 듯했다.

그러나 그 또한 바로 거울에 비친 나를 확인하곤 눈을 접으며 웃었다.

“피아노 세팅됐는데 가서 손 먼저 풀래?”

“네.”

우형과 세트장으로 나오니 멤버들이 피아노 주변에 몰려 있었다.

그 중간에선 해랑이 서서 피아노 건반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피아노 칠 줄 아네?”

“우형이 형이 배워두면 좋을 거라고 해서요.”

“나도 계속 배울걸. 되게 멋있네.”

옆에서 지켜보던 한이가 말했다. 나도 동감.

차분한 의상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으니 귀공자 같다고 표현해야 하나. 머리에 헤어 고정핀을 꽂고 있긴 했어도.

언젠간 이런 퍼포먼스도 보여줄 일이 있을까 해서 이 모습을 머릿속에 저장해 뒀다.

조명 세팅이 완료되어 이번엔 우형이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새하얀 배경에 새하얀 피아노. 새하얀 의자에 앉은 우형도…… 새하얗게 질린 것 같은 건 착각이겠지?

우형은 피아노 연주 촬영이 있어서 먼저 헤어 및 메이크업 세팅을 마친 것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구경할 사람은 남고 마저 준비할 사람은 들어갔다.

긴장되는 듯 바지에 손을 문지르던 우형이 옆을 힐끔 쳐다봤다.

“부담되면 보지 말까?”

“아뇨. 봐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

그도 몇 년을 활동한 아이돌이지만 첫 자작곡 공개다 보니 더 긴장하는 것 같았다.

시작에서 삐끗하면 다음은 없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린 듯도 했다.

‘또 칭찬 요법이 필요한 때인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옆에서 준해가 주먹을 불끈 쥐고 내밀어 보였다.

우형도 그걸 봤는지 똑같이 주먹을 불끈 쥐더니 건반으로 시선을 내렸다.

다행히도 그가 꼭 자기 자신에게만 격려받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조용해진 촬영장에 우형의 피아노 연주가 울려 퍼졌다.

카메라가 그의 길쭉한 손가락을 비추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움직이는 모습 촬영하는 건 처음이잖아?’

프로필 사진 이후 첫 촬영이었고 영상 촬영은 오늘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날도 윤희가 옆에서 비하인드 영상을 찍긴 했지만…… 결국은 공개하지 못했다.

걱정과 다르게 우형은 실수 없이 잘했다. 구도를 바꿔 연주하는 뒷모습 촬영도 무사히 마쳤다.

음원엔 이미 녹음한 우형의 피아노 소리가 들어가 있지만, 라이브 클립엔 지금 녹음한 버전 위에 멤버들의 목소리가 얹힐 것이다.

진지하게 잘해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니 흐뭇한 게 뭔가…….

‘피아노 콩쿠르 나간 아들 지켜보는 느낌이네.’

게임으로 아이리스를 키우며 내 새끼 소리가 절로 나왔는데 실제로는 이런 느낌이려나.

연주 촬영이 끝나고는 멤버들의 라이브 촬영이 있었다.

피아노가 화면 구석에 들어오도록 옆으로 옮긴 후, 앞으로는 높은 스툴 다섯 개가 놓였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멤버들은 헤어나 메이크업 등의 마지막 체크를 마쳤다.

그리고 빈 공간에서 혼자 목을 풀고 있었는지 “아아아.” 하는 목소리만 들리던 재민과 오늘 처음 마주쳤다.

“주이…… 이사님.”

지금 주인 님이라고 부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주변에 스태프들이 있어서인지 그는 날 부르려다 멈추고 바로 호칭을 바꿨다. 그보다.

‘깜짝이야.’

재민은 나를 보자마자 성큼성큼 다가왔다.

메이크업한 모습은 오늘 처음 봤는데 그 역시 아이돌이었다. 익숙한 얼굴인데도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 같은 느낌.

그 얼굴이 눈앞에 훅 들어오니 놀랐다. 재민은 그런 내 앞에 뭔가를 내밀었다.

“뭐가 더 잘 어울려요?”

그 손에 들린 것은 두 종류의 피어싱. 한쪽씩만 있는 것을 봐선 한쪽만 바꿔 끼려는 것 같았다.

하나는 심플한 작은 링 형태였고, 하나는 귀 밑으로 가느다란 체인이 살짝 늘어지는 형태였다.

‘훗. 내 안목의 소문을 들은 건가.’

조금 자만한 감이 있긴 했지만 난 스타일링에 자신감이 상승한 상태였다.

오늘도 의상은 스타일리스트가 구해왔지만, 재킷을 걸칠지 카디건을 걸칠지 등은 내가 결정해 요청한 것이었다.

지금 멤버 중 피어싱을 착용한 것은 재민 하나였다.

내가 살펴보며 고민하고 있으니 재민은 자신의 귀에 가져다 대며 보여주었다.

둘 다 은색이어서 크게 튀지도 않고 의상과 무난하게 어울렸다.

“음……. 이거.”

내가 고른 것은 가는 체인형 피어싱. 그는 바로 거울 앞에 가서 평소에 끼던 것과 바꿔 꼈다.

게임 내에서도 스타일링은 내가 좋아하던 컨텐츠였는데 이렇게 실제로 바뀌는 모습을 보면 게임보다 훨씬 보람이 있었다.

‘회사가 안정되면 아예 스타일링에 집중해 볼까……?’

오늘 멤버들의 의상은 화이트를 베이스로 통일시켰다.

화이트 톤 배경에 하얀 피아노, 하얀 의상. 아련한 곡 분위기에 하얀색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아 결정한 이미지였다.

다섯 명은 높은 스툴에 앉아 마이크를 하나씩 들었다.

그리 세지 않은 조명 빛이 새하얀 바닥에 반사되는지 마치 보정한 것처럼 보여서, 나는 또 모니터 너머로 구경하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

다들 만반의 준비를 했는지 라이브 촬영은 큰 문제 없이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준해와 붙어서 직전까지 마저 목을 풀던 재민도.

‘이게 레벨 3 수준이라고?’

2년 동안 노래를 부르지 않았단 얘기부터 들어서 걱정된 것은 사실이었다.

많은 기교는 없었지만 담백한 목소리가 오히려 곡 분위기에 잘 어울렸다.

‘그럼 나는 뭐, 마이너스 3 정도 되는 거 아냐?’

이 능력치 레벨이란 것은 숫자를 보고 대충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실제로 어느 정도 수준인지 체감하기가 어려웠다.

중간에 잠깐 확인해 보니 4에 가까운 3이던 그의 보컬 레벨이 이미 4로 올라있었다.

‘이건 또 언제 올랐대?!’

내가 없을 때 오르면 알림이 안 뜨는 건가.

아마도 녹음실에서 한이가 보컬 부분에서 의견을 주던 것이 반영된 듯했다.

지금껏 회사가 앞길을 막아도 준수한 능력치가 유지되던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며 시너지가 생기는 것.

‘그게 그룹이란 거지…….’

그 그룹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나는 미처 상상할 수 없지만. 이제는 내가 등을 떠밀어줄 차례였다.

***

[모노크롬(monochrome) Digital single <기다림의 끝> 20**.**.** 7PM]

모노크롬의 모든 공식 SNS 페이지에 곡 발매를 알리는 예고가 떴다.

함께 올라간 사진은 라이브클립 촬영 시 찍은 사진으로, 얼굴이 보이지 않게 멤버들의 발 부근만 찍혀 있어서 하얀 여백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미지 중앙에 적힌 타이틀명.

사진에선 우형이 피아노 앞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멤버가 네 명인 것처럼 보이기도, 다섯 명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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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ㅁㅊ 지금 뜬 거 뭐야????

지금 회사인데 악 소리지를 뻔ㅠㅠㅠㅠㅠㅠㅠ

└분위기 뭐야ㅠㅠㅠㅠㅠㅠ벌써부터 개존멋

└발라드인가 봐 ㅜㅜㅜㅜㅜ

└나 일하다가 놀라서 벌떡 일어났잖아ㅠㅠㅠㅠ화장실로 도망와서 앓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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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스러운 컨셉인 거 맞지?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맞는듯ㅠㅠㅠㅠㅠ죽기 전에 어른스러운 컨셉 볼 줄이야 이제 승천함

└아이고 컬러즈들아 벌써 승천하면 안 된다 나오는건 보고 가라

└이러고 까봤는데 반전으로 악동이면 진짜 뉴마 죽이러간다

└뉴마라서 불안하긴 한데 설마 티저로 장난질하진 않았겠지. 못 믿겠지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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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발목인지 구분가는 컬러즈?

어떤 순서로 앉아있는 건지 궁금ㅠㅠ

└오른쪽에서 두번째 해랑이 확실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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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 보고 누군지 어떻게 알아……?’

댓글이 지목한 것은 기억상 진짜 해랑이 맞았다.

다 똑같은 남자 발목 같은데 그걸 또 알아보는 팬들의 매의 눈에 나는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아무튼 오랜만에 발매되는 단체곡. 게다가 지금까지의 그 악동 컨셉과는 분위기가 다른 사진에, 팬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물론 소속사 욕은 자연스럽게 덤으로 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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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마 맨날 디싱만 내서 이제 앨범에도 종류가 있다는 건 까먹은 거냐?

실물앨범 좀 내달라고ㅅXㅅX

└실물앨범 나온 지 하도 오래돼서 방금 박물관에서 연락 옴 기증하면 고대유물로 전시한다고

└직원들 월급도 사이버머니로 받아야 정신을 차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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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온라인 음원 발매만 하는 디지털 싱글이란 점에 대한 불만.

물론 팬들이 원하는 실물 앨범 제작은 지금 기획 중이었다.

‘소속사 욕이야 상관없는데…….’

재민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넷인지 다섯인지 모호한 사진을 사용한 덕분에 한구석에선 오해를 낳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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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 앞에 있는 것도 멤버임?

피아노까지 합치면 다섯 명? 전에 누구 소속 옮기지 않았나?

└엥 그룹 활동은 같이함?

└걔 탈퇴 맞는데

└근데 왜 다섯 명이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피아노 치는 사람 아님?

└멤버도 아닌데 저렇게 같은 비율로 찍힌다고?

└멤버 아니면 어떡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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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탈퇴멤 끼워팔기 작작하란 생각만 듦ㅋㅋ;;

우리 애 이름 서치하는데 갑자기 예전 그룹 얘기 뜨길래 뭔가 했네.

└222 사진 보고 당황ㅋㅋㅋ;;

└진짜면 답없고 아니어도 애 이름 자꾸 끌려 나오게 하는 거 좀 아니지 않나

└윤환이라고 밝혀진 것도 아닌데 뭐 벌써 궁예질로 까고 있어

└상식적으로 설마 그러겠냐

└상식이 없으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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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중엔 이런 글도 있었다.

[게시글 어그로 신고 좀. : http://~]

링크를 타고 들어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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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ㄴㅋㄹ 해체함?

갑자기 저러니까 무슨 작별인사 같네;

└개소리 그만…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뇌 좀 거치고 말해라~!~!

└별 이상한 것들이 초치고 앉아있네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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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해체하냔 소린 뭐예요?”

“소속사가 죽기 직전에 제정신 차리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 아닐까요?”

같이 반응을 모니터링하던 윤희가 내가 보던 게시글을 흘끔 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정말 그 말이 맞는지 아래엔 ‘뉴마 곧 망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도 있었고.

반박 댓글로 뉴마의 배우 풀은 나름 잘나간단 이야기도 나왔지만, 그 와중에도 모노크롬에겐 잘나간단 소리를 하긴 어려웠는지 언급이 없었다.

‘이건 좀 뼈 아프다…….’

이별을 두려워하는 느낌의 가사라 더 이런 반응이 나오는 듯했다.

공백기 이후에 처음 내는 곡치고 너무 어두운가 싶어서 가사를 조금 수정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결국 수정은 없었다.

내가 작업실에서 처음 들었을 때의 그 기분을 전해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멤버들이 느낀 감정이 그대로 담겼으니까.

‘그래도 정말 종잡을 수가 없네.’

물론 무조건 좋은 반응만 나올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해체하냔 소리까지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것도 다 소속사에 대한 신뢰감이 없는 탓이겠지.

“모든 의견을 담아두실 필요는 없어요. 답변은 결과물로 하면 되니까요.”

“그렇죠…….”

그래. 천천히 가자,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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