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가장 먼저 공개할 자작곡은 최대한 멤버들의 색을 살리기 위해 가능한 부분은 직접 멤버들이 나섰다.
작곡, 작사뿐만 아니라 멤버들이 주체적으로 진행하는 편이 의미가 클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녹음실에 모인 것은 모노크롬 멤버들 외엔 엔지니어 한 명이 전부. 디렉팅은 우형과 한이가 맡았다.
작곡가인 우형이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맞춰 의견을 내고, 메인 보컬인 한이가 보컬 부분에서 조언했다.
먼저 가이드를 맡았던 준해의 녹음이 한차례 끝나고.
“너 원래 이 정도로 노래 잘 불렀나?”
“준해는 잘 불렀지.”
재민도 준해의 가이드 버전을 미리 들었다.
그때도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들어보니 더더욱 발전한 부분이 뚜렷하게 들려왔다. 자신이 기억하던 것보다 목소리에 안정감이 있었다.
원래 리드 보컬이었으니 이전에도 잘 불렀다지만 재민이 없는 동안 실력이 는 것도 사실이었다.
재민은 자신의 파트가 조금 걱정되는 듯 가사지로 시선을 내렸다.
“괜찮아. 해랑이 형도 노래 안 늘었어.”
준해가 도움이 안 되는 격려를 보냈다.
재민의 원래 포지션은 메인 댄서에 서브 보컬. 반대로 해랑은 보컬 포지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리드 래퍼인 우형은 서브 보컬이기도 하지만 해랑은 거의 랩 파트만 맡았으니까.
“나 있던 댄스팀에 랩 하는 형도 있었거든?”
재민이 공백기에 속해있던 댄스팀 얘기를 꺼내자 해랑이 ‘무슨 소릴 하려나.’ 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래서 어깨너머로 랩도 배웠어. 랩 배틀 떠서 이기는 사람이 랩 파트 가져가기 어때?”
“그게 나한테 무슨 이득이야?”
“형 메인 댄서도 하니까 메인 래퍼는 나한테 넘겨. Yo! 네가 한 발짝 내디딜 때 난 두 걸음을 걷지~.”
재민이 가사지를 휘두르며 과장된 제스처를 보였다.
누가 봐도 진심으로 임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랩이 장난이냐.”
“오올~. ‘랩이 장난이냐.’ 내가 졌다. 형이 진정한 메인 래퍼다.”
“으…….”
해랑이 상체를 숙여 귀를 막았다.
레코딩 장비 앞에 앉아 있던 우형이 의자를 빙글 돌려 대화에 참여했다.
“푸핫. 얘 지금 숙소에선 한이, 나오면 재민이한테 시달려서 피곤해.”
해랑은 쉴 때만큼은 있는 힘껏 쉬어야 하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원체 말하길 좋아하는 한이와 룸메가 된 데다가, 까부는 재민까지 늘어나니 조용히 휴식할 시간이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이전까지 계속 룸메였던 우형의 눈엔 그게 보여서 재밌었다. 해랑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게 해랑만 괴롭고 다들 신난 녹음실에 누군가가 방문했다.
“잘들 돼 가냐?”
“어! 팀장님.”
예고 없이 들어온 것은 중년 남성. 현재는 뉴레인으로 소속을 옮긴 전 프로듀스팀 팀장, 송준오 프로듀서였다.
옛 상사가 나타나자 엔지니어도 멤버들처럼 그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우형이 갑자기 나타난 그에게 의아한 듯이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네가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해서 들들 볶길래 얼마나 잘하나 보러 왔다.”
작곡가 출신인 그는 우형의 작곡 스승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말대로 시도 때도 없이는 아니었지만, 주인이 곡을 들려달라고 했을 때부터 더 잘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자주 조언을 구한 것은 사실이었다.
우형이 그냥 헤실헤실 웃어넘기자 준오는 그 표정과 함께 녹음실의 분위기를 눈에 담았다.
‘확실히 예전이랑 다르긴 해.’
다들 즐거워 보였다. 게다가 오랜만에 돌아온 재민까지 이 밝은 분위기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었다.
“잘해주냐?”
“네?”
“그, 이사란 사람.”
“주인 님이요?”
“뭐? 주인님?”
“야! 주인 님이 뭐야. 신주인 이사님이지.”
거침없는 언급에 재민이 거침없는 호칭으로 맞받아쳤다.
‘주인 님’ 호칭을 처음 들은 멤버들은 흠칫 놀라고 우형이 주의를 줬다.
“그러고 보니 주인 님은 주인 님이네.”
“너까지…….”
한이가 진지하게 받아들이자 우형이 이마를 짚었다.
이런 모습들을 보니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특이하네.’
레이블 분리에 멤버 탈퇴까지 겪어 힘든 상황이리라 생각하여 격려라도 할 겸 찾아왔는데 분위기가 좋았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그런 멤버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그 당사자인 ‘주인 님’이 나타났다.
“다들 잘하고 있…… 누구세요?”
음료수를 들고 문을 연 주인이 처음 보는 사람이 있는 것을 깨닫고 멈칫했다.
전 직원이긴 해도 일단 주인과는 면식 없는 외부인이었으니까.
우형이 뉴마 소속도 아닌 그를 뭐라고 소개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준오가 먼저 주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프로듀서 송준오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여긴 무슨 일로……?”
“뉴레인엔 일이 없어서 여긴 뭐라도 있을까 해서요.”
“네?”
주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악수를 받았다.
‘프로듀서’라고만 소개하기엔 누군지 파악하기 어려웠기에 우형이 소개를 덧붙였다.
“예전에 저희 프로듀싱 맡아 주셨던 팀장님이에요.”
주인은 그제야 그가 뉴마에 다니던 전 직원이란 것을 알았다.
‘아. 뉴레인으로 옮긴 사람 중 한 명이란 거지…….’
아이리스의 소속사이자 윤환을 빼돌린 뉴마의 산하 레이블.
잘되길 바라는 동시에 뭔가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게 있는 곳이었다.
인사를 하고 주인은 잠시 뒤로 물러나 녹음 현장을 지켜봤다.
우형은 준오에게 고민되는 부분의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혼자서도 알아서 잘하지만 아직 자신감이 부족한지 전문가의 의견이 보태져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프로듀서라…….’
현재 프로듀스팀은 많은 인원이 빠져나간 이후로 아직 안정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구심점이 없어 보인다고 할까.
“근데 계속 저희 봐주고 계셔도 되는 거예요?”
“하나만, 하나만, 하면서 붙잡은 놈이 할 말이냐?”
“아니, 계속 계시니까…….”
우형이 뒤늦게 물어보자 준오가 장난스럽게 면박을 줬다.
하지만 우형이 그렇게 묻는 것도 이해가 가는 것이, 준오는 잠깐 들른 것치고는 아예 자리 잡고 앉아서 녹음 작업을 봐주고 있었다.
“쫓겨난다면 돌아가겠다만…….”
준오는 그렇게 말하며 이 공간에서 가장 높은 직급인 주인을 쳐다봤다.
“아뇨. 전 신경 쓰지 마시고……. 오히려 봐주시면 감사하죠. 피디님 시간만 괜찮다면.”
“이 직업이 워낙 시간이 자유로워서요.”
작곡가 등의 직업은 회사 소속이더라도 직원들처럼 일정 시간에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계약 형태로 동업하는 케이스도 있었다.
“그래도 뉴레인 전속이신 거죠?”
“일단 그렇습니다만. 제가 여기 있는 게 불편하시다면…….”
“아뇨. 프리랜서라면 스카우트하고 싶어서요.”
대뜸 주인이 내뱉은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주목됐다.
“저를, 말입니까?”
“……회사에 경력 있는 프로듀서가 들어오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럼 스카우트하시죠?”
가벼운 준오의 대답에 멤버들의 시선이 다시 한번 돌아갔다.
“하면 오실 수 있나요?”
“조건만 맞으면, 뭐.”
일단 직진하는 이사와 그에 못지않게 직진하는 팀장의 만남.
필요한 인재가 있으면 마다하지 않는 주인은 얘기를 좀 해보자며 그와 함께 나가버렸다.
남은 멤버들이 하나같이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 재민이 입을 열었다.
“……나도 저렇게 데려온 거 아니지?”
“아닐걸……?”
주인이 직접 자기 입으로 업계 경력이 없다고 하긴 했지만, 이렇게 주먹구구식일 줄이야.
‘……알아서 잘하시겠지.’
하지만 멤버들은 금세 다시 하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주인식 운영에 익숙해진 그들이었다.
***
우형에게 적절히 조언을 해 주는 숙련자의 모습. 그 모습을 보니 이런 사람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그런 도움은 주인이 줄 수도 없었고, 프로듀스팀 사람들에게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우형의 자작곡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태반이었지.’
그들은 우형이 작업실에 박혀있는 건 알아도 뭘 만드는지까지 관심을 가지진 않았다.
처음 프로듀스팀을 찾았을 때 느낀 그 의욕 없던 분위기가 이해되었다. 기존 회사 운영에 그저 따라가기만 하던 직원들.
직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표의 의견 하나로만 돌아가던 이 조직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뉴레인으로 옮기신 지도 얼마 안 되셨을 텐데.”
“돈이 얼마나 많은지, 프로듀서니 감독이니 해외 유명 제작진들은 다 섭외하더군요.”
왜 회사를 옮기고 바로 스카우트에 호의적으로 나오는지 의아해서 물은 것인데, 준오가 뉴레인의 근황을 꺼냈다.
‘그 이상으로 투자를 많이 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뜻인가?’
하지만 그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었다.
“굳이 제가 없어도 될 정도로요.”
그가 처음 인사하며 뉴레인에 일이 없어서 왔다고 했던 건 그냥 하는 농담은 아니었다.
정말로 일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레이블이 해외 진출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에 하던 일이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었다.
“저도 음악 하던 사람이니 제가 하고 싶은 게 있지 않겠습니까. 그게 뉴레인이냐 하면 글쎄요.”
아티스트와 함께 경력을 쌓아온 사람이 아니라, 글로벌한 네임 밸류가 더 필요하다면 굳이 자신이 아니어도 되지 않겠는가.
마찬가지의 이유로 뉴마도 떠난 것이었다. 아랫사람의 의견이 개입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분위기였기 때문에.
하지만 자신이 떠나 있던 그 짧은 사이에 분위기가 바뀐 것이 느껴졌다.
“죄송한데…… 제가 프로듀서님이 지금까지 무슨 작업을 하셨는지 몰라서요.”
주인은 그가 기존에 했던 작업을 모르니, 그 ‘하고 싶은 것’이란 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면접 아닌 면접 자리가 갑작스럽게 마련되는 바람에 이력서가 준비된 게 아니었으니까.
“여기에서 했던 작업만 말씀드리자면…… 아이리스 앨범 대부분은 제가 기획하거나 참가했죠.”
“오. 아이리스!”
주인에겐 신뢰감이 확 올라가는 경력이었다.
“그 전엔 모노크롬 데뷔 앨범도 담당했고요.”
“모노필름이요?”
순간 주인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데뷔 앨범이기도 하고 가장 모노크롬의 시그니처다운 앨범이었다.
‘……이렇게 들어보니 다 내가 정성 들여서 만들었던 앨범들이네.’
주인이 게임 유저로서 ‘제대로’ 플레이할 땐, 그 아래서 준오가 중간에서 지휘하며 결과물로 만들어냈단 뜻이었다.
주인이 가장 아티스트의 색깔에 맞춰 기획했던 앨범들. 아마도 그의 음악적 욕심은 그런 부분에 있는 게 아니었을까.
기획에 아티스트를 맞추기보다는 아티스트에 맞춘 기획을 하는 것.
“잠시만요.”
순간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그녀는 양해를 구하고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다이어리에 깨알 같은 글씨로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사람을 앞에 두고 갑자기 뭘 하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준오의 눈엔 어쩐지 작곡을 처음 시작하던 우형의 모습이 그녀에게 겹쳐 보이는 듯했다.
짧게 메모를 마친 주인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들어 준오를 바라봤다.
“만일 돌아오시면 꼭 같이 하고 싶은 작업이 있어요. 아마 피디님이 가장 잘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우형을 포함한 모노크롬의 멤버들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본 것일까.
짧은 대화였음에도 준오는 이곳의 분위기가 바뀐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저희랑 함께해 주실 수 있을까요?”
주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준오가 하고 싶다는 것과 같기를 바랐다.
준오는 그런 그녀의 시선을 마주했다. 이 회사에선 보기 힘들었던 의욕적인 시선.
“책임자로서 괜찮으시겠습니까?”
“저희 쪽에서도 팀장 한 명 옮겨간 거 아시죠?”
아. 윤환과 함께 옮겨왔다던 매니지먼트 팀장.
준오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한 명씩 뺏어간 거로 쌤쌤 치죠.”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후련해 보였다.
***
라이브 클립 촬영일.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고, 무엇보다 연출이 가미되지 않은 담담한 영상이 더 곡의 의미에 맞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다만 잔잔한 피아노 곡조로 진행되는 곡이니만큼, 멤버들이 노래하는 모습 외에도 피아노 연주 장면을 따로 촬영하여 넣기로 했다.
촬영장에 설치된 피아노 주변으로 조명과 카메라가 세팅되는 동안 나는 그 연주자가 준비를 마쳤는지 확인하러 갔다.
“우형아. 준비…….”
“잘하자, 여우형. 틀리지 말자, 실수하지 말자. 잘하자. 할 수 있다…….”
우형은 메이크업용 거울 앞에 서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