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677화 (677/726)

#677화

처용이 디아블로의 결계에 갇히며 사라진 순간.

[거슬리는 모든 것들을 치워 버려라!]

바알이 균열을 찢고 나오는 악마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캬아아!

-카아!

가장 먼저, 판데모니움의 마수들과 하위 악마들이 주변으로 넓게 퍼지듯 달려들었고.

[이 세계를 집어삼킬 때도다!]

[모조리 먹어 치워라!]

대악마들과 고위 악마들이 휘하 군세를 이끌고 진군을 시작했다.

그에 맞서.

[무신전의 형제들이여! 투쟁의 때가 왔도다!]

-쿵! 타아앙!

투지가 가득한 환희를 내지르며 돌진하는 강완을 시작으로, 무신들이 악마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태산-! 붕괴!]

-우드드! 콰쾅!

오른손에 힘을 압축한 강완이 태산 붕괴를 내지르며 전방의 마수들을 휩쓸어 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쿠구!

-차카캉! 쿠콰콰!

무신들과 악마의 군세가 서로 충돌하며, 정면으로 맞붙었다.

동시에.

-하늘의 뜻을 따라라!

-천림맹을 위해!

장벽 안에 있던 천림맹의 무인들이 광기 어린 눈빛을 번들거리며 사방으로 뛰쳐나갔다.

검붉은 안광이 번들거리고 그들이 내뿜는 기에 검고 칙칙한 무언가가 섞여 일렁이는 모습.

평범한 무인이라기보단, 좋지 않은 무언가에 영향을 받아 미쳐 버린 듯 보였다.

광기 어린 함성을 내지르는 천림맹의 군세는 악마들이 자리한 서쪽이 아닌,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어 진격했다.

그때.

-천림맹을 저지해라!

-무림을 지켜라!

그런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나선 무림인들.

천마신교와 암영단, 전 무림맹에 속한 무인들이 천림맹의 무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천림맹의 군세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인 이들.

그들만으로는 천림맹의 군세를 저지하기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선두에는.

“판데모니움의 악마들에 비하면, 별것 아닌 놈들이네.”

“어디 얼마나 강해졌는데, 내 직접 옆에서 지켜봐 주마.”

여유 넘치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 진호와 어깨를 풀며 전투를 준비하는 백호.

그들을 포함한 스피릿 팀의 헌터들이 선봉에 서 있었다.

가장 레벨이 낮았던 정훈도, 이제는 200레벨 중반에 다다른 상태.

비록, 소수에 불과한 이들이라고 해도, 그들 하나하나가 무림 세계에서는 현경의 경지에 닿은 이들이었다.

천림맹에서 가장 강한 무인들인 십성 장군과 같은 경지라 볼 수 있는 전사들.

아니, 스피릿 팀의 헌터 중 가장 강한 몇몇은, 십성 장군보다도 웃도는 힘을 가진 이들이었다.

“감히, 나 팔성 장군의 앞을 가로막는-!”

가장 화려한 갑옷을 입은 천림맹의 무인 중 하나.

스스로를 팔성 장군이라 지칭하는 무인이 참마도(斬馬刀)를 크게 휘두르며 소리쳤다.

짙은 강기가 일렁이는 칼날이 진호를 향해 내리칠 때.

“카운터 마스터(Counter Master).”

-차캉.

진호는 쌍검의 칼날 끝을 모으고 팔성 장군을 향해 겨누며 자세를 낮추었다.

팔성 장군이 내리친 참마도가, 정확히 진호의 칼날 끝.

-후욱! 차캉!

살짝 벌어져 겹쳐진 쌍검과 쌍검 사이에 끼며 저지되었다.

참마도의 칼날이 손쉽게 저지된 순간.

-까강! 스르륵-!

진호가 쌍검의 칼날을 비틀어 좌·우로 쳐내자, 팔성 장군의 참마도가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동시에.

“폭풍참 – 반검(反劍)!”

-사가각!

참마도를 튕겨 낸 진호의 쌍검이 가위를 치듯, 다시 좌·우로 모여들며 팔성 장군을 가격했다.

진호의 반격에 참마도가 튕기고 무방비해진 상태에서 당한 반격.

-촤아아!

그 공격에 당한 팔성 장군은 허리가 잘려 나가며 최후를 맞이했다.

-파지직! 콰쾅!

“진호야, 너 그 스킬은?”

백호가 달려드는 천림맹의 무인 하나를 정권 지르기로 날려 버리며 물었다.

방금 진호가 선보인 반격 검술과 자세.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두 달 동안, 베무스 그 양반한테 좀 배워 봤거든.”

안드로말리우스의 권속 악마, 베무스가 사용하는 반격과 같은 기술이었다.

진호는 미소를 지으며 백호의 말에 답하고는.

“지금부터 내가 악마 하나를 불러낼 거야. 우리 편이니까 공격하지 말라고.”

-탁!

곁에 선 아군들에게 잘 들리도록 강하게 말하며 왼손으로 땅을 짚었다.

“계약 소환, 약속을 지킬 시간이다.”

땅을 짚은 진호가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자.

-푸쉬이이!

진호의 손아귀에서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오더니.

[날 불러낼 일은 없다고 하지 않았었나?]

-스르륵. 차캉.

안개가 걷어지며 양손에 곡도를 쥔 베무스가 나타났다.

“상대해야 할 놈들이 좀 많아서 말이야. 우리 좀 도와줘야겠어.”

[……은혜에 보답하도록 하지.]

-철컥!

도움이 필요하다는 진호의 말에, 베무스가 다가오는 천림맹의 무인들을 향해 칼을 겨누며 말했다.

베무스가 진호와 직접 맺은 계약이자, 니알라의 공증을 통해 체결된 소환 계약.

진호가 처용을 설득해 주고 바질리아 종족을 구해 준 대가로 베무스에게 받은 대가였다.

무림의 파멸을 위해 검을 든 이들과 무림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든 이들.

그들이 격렬히 맞붙으며 거친 전쟁을 이을 때.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콰쾅! 쿠구구!

천림맹의 군세 한가운데에 누군가가 나타나며 거대한 고함을 내질렀다.

“천림맹의 무인들은, 당장 전쟁을 멈춰라!”

그는 다름 아닌 검성이었다.

본래라면, 검성이 나타나 고함을 지른 순간, 천림맹의 무인들이 주춤하거나, 그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천림맹을 위하여!

-악도들을 처단하라!

그들은 검성의 말을 무시하고 광기를 내지르며 계속 달려 나갔다.

천림맹의 무인들은 모두 무언가에 홀린 듯, 눈동자에 검붉은 안광이 비치며 살짝 풀려 있었다.

심지어, 불길한 기분이 확 느껴지는 검붉은 기운까지 내뿜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

무인들의 상태를 확인한 검성이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릴 때.

“제가 기다려 달라 하지 않았습니까?”

-탓.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인상의 노인, 천림맹주가 검성 앞에 나타나며 말했다.

그러자.

“천림맹주,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제대로 설명해 주시오.”

검성이 천림맹주를 바라보며 작금의 상황에 대해 물었다.

며칠 전, 처용에게서 진실을 들은 검성이 천림맹주를 찾아갔을 때.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검성.

천림맹주는 검성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전했다.

그 말에 검성은 오래 기다릴 수 없다고 말하며, 천림맹주의 말대로 ‘조금만’ 기다려 보기로 했었다.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폐관 수련용으로 사용되는 지하 수련장에서 잠시 명상에 잠겼었다.

그러던 와중, 정신을 흐트러트리는 정체불명의 기운이 검성의 명상을 방해했다.

검성은 자신의 정신을 좀먹으려 하는 사악한 기운을 단번에 떨쳐 버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이 바로 현재 상황이었다.

천림맹주는 검성을 바라보며 작게 인상을 찌푸려 보이고는.

“형님, 왜 하늘의 세례를 거부하시는 겁니까?”

이내, 침착한 목소리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하늘의 세례라고? 지금 장난하는 것이오? 천림맹주!”

그런 천림맹주의 태도와 말에, 검성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천림맹의 무인들을 미치게 만든 사악한 기운을 하늘의 세례라 말하고 있었으니까.

“……서존아, 이건 아니다. 다시 생각해다오!”

검성이 천림맹주를 설득하듯, 그의 이름을 부르며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만.

“돌이키기엔, 이미 늦었습니다. 형님.”

천림맹주의 입에서는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든 것은 무림을 위해서입니다.”

모두, 무림을 위함이라는 천림맹주의 말이 울린 순간.

-스르릉! 촤자자자!

백 자루의 칼날이 허공을 가르며 나타나 천림맹의 무인들을 베어 내 밀쳐내었고.

“무림을 위해? 웃기는군.”

-탓.

무록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네 동생 놈이 벌이려는 짓거리를 보거라. 검성.”

-촤라라-! 스릉!

백 자루의 칼날이 천림맹주의 주변을 포위하듯 나열되더니, 일제히 쏘아졌다.

“검성류 – 풍차.”

-스릉. 화아아!

그 모습을 본 검성이 검으로 크게 원을 그리듯, 휘두르며 넓게 검기를 쏘아 보냈다.

검성의 검기가 돌풍처럼 퍼지며 천마가 쏘아 보낸 검들을 모두 튕겨 냈다.

“아직, 아직 내 말이 끝나지 않았다. 방해하지 마라. 무록.”

“이런, 미련하고 어리석은 도사 녀석이-.”

방해하지 말라는 검성의 말에, 무록이 인상을 찌푸리며 두 손을 합장했다.

그 모습을 본 검성 역시 칼날에 강기를 더 강하게 응축하기 시작했다.

두 무림의 절대자가 서로를 적대하며 충돌하려는 순간.

“같은 동료끼리 서로 싸우는 건 좋지 않아.”

-탓.

돌연, 검성과 무록 사이에 작은 체구의 아이가 나타나며 맑은 목소리를 내었다.

싱긋 웃으며 작은 미소를 짓는 여아, 보살의 모습을 드러내자.

“자비의 대신?”

-스르르.

무록이 즉시 강기를 거두며 황당한 목소리로 말했고 검성 역시 칼날을 내렸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한 적대를 거두며 황당한 표정을 내비칠 때.

[저것을 잡아 당장 내 앞에 대령하라!]

-쿠릉! 쿠구구!

하늘이 흔들리며 옥황상제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슈르륵. 스륵.

구름이 모여들고 뭉치며 하늘문이 나타남과 동시에.

[저 사악한 것을 붙잡아 정화해야 하느니라!]

하늘문에서 나타난 옥좌에 앉은 옥황상제가 다급한 고함을 내질렀다.

검지를 들고 누군가를 가리키며 소리치는 모습.

옥황상제의 검지가 향한 대상은 다름 아닌 보살이었다.

직접 나타나 명령을 내리는 옥황상제의 고함에.

“무림을 위해, 하늘의 명을 받들어라.”

천림맹주가 보살을 가리키며 명령을 내리듯 말했다.

그러자.

-하늘을 위하여!

-재물을 바쳐라!

검성과 천마를 피해 물러나던 천림맹의 무인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천마군림보!”

-스륵. 콰콰쾅!

그 광경을 본 무록이 땅을 강하게 밟아 천마군림보를 사용하며 땅을 크게 부수었다.

-쿠구! 쿠르르!

보살과 무록이 있는 땅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지면이 크게 갈라지며 요동쳤고.

-크아아!

-아아-!

달려들던 천림맹의 무인들 대부분이 지면 위를 구르며 멀리 나가떨어졌다.

그때.

-탓! 스르릉!

몇몇 무인들이 쓰러지며 나뒹구는 무인들을 밟으며 쇄도했고 칼날을 앞으로 내질렀다.

천림맹의 무인 중, 화경에 경지에 접어든 정예 무인들이었다.

그들의 칼끝이 향하는 방향은 다름 아닌 보살을 향해 있었다.

보살은 자신에게 위협이 다가오는데도.

“…….”

자신의 앞에 있는 검성을 지긋이 응시하고만 있었다.

그런 보살의 시선을 받은 검성은 검을 쥔 손을 떨고 있었다.

-탓! 스르릉!

악의와 살의를 내뿜는 무인들이 검성을 지나쳐 보살에게 향하는 순간.

-툭.

떨리던 검성의 손이 딱 멈추었고.

“……검성류 – 반류(反流) 베기!”

-철컥! 탓! 촤아아-!

보살의 옆에 바람처럼 나타난 검성이 달려드는 무인들을 모조리 베어 날려 버렸다.

천림맹의 무인들에게는 일절 공격하지 않던 검성이 돌연 칼날을 돌려 그들을 공격한 모습.

“뭐 하시는 겁니까? 당장 그 사악한 존재를 잡아 오십시오.”

갑자기 변한 검성의 태도에, 천림맹주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말했다.

“자비의 대신이 사악하다고……?”

천림맹주의 말에 검성이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고.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격한 심정이 가득한 고함을 내질렀다.

“정녕 제 뜻을…… 무림을 살리려는 제 뜻을 방해하시려는 겁니까?”

천림맹주가 그런 검성을 향해 자신의 대의(大意)를 언급하며 말하자.

“……서존아.”

그런 천림맹주의 말을 들은 검성이 짧고 굵은 한숨을 토해내며 입을 열었다.

“무인들의 생명력과 검은 신력을 온전히 흡수한다고 해도, 넌 너만의 신화를 이룩할 수 없다.”

천림맹주 본인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실을 검성이 언급한 순간.

“……!”

튀어나올 듯 커다래진 눈으로 천림맹주가 경악했다.

혈육인 검성에게조차 숨기고 있었던 진실이었으니까.

“네가 변하기를 바랐다. 마음을 고쳐먹기를 바랬다. 제발! 내 말을 들어주기만을 바랬단 말이다!”

격한 감정이 일렁이는 검성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그토록 총명하던 네가 왜…… 이리도 추악해진 것이냐.”

참담한 심정이 일렁이는 검성이 목소리가 울리자.

“……모든 것을 가진 형님은 모를 것이오.”

잠시 침묵하던 천림맹주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지지 못한 자의 비참함을, 빼앗기기만 하는 자의 참담함을 말이오.”

“나는 그 무엇도 가진 적이 없다! 네게서 무엇도 빼앗은 적이 없다!”

검성이 천림맹주의 말에 반박하듯 소리쳤다.

그 말은 한 치의 거짓 없는 진심이었다.

검성, 아니 남궁 진은 가문의 장자로 태어났지만, 가문을 이끄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가주의 직위를 잇는 것도 원하지 않았고 동생인 서존에게 양도했다.

자신보다 총명한 서존이 무림을 잘 이끌어 주리라고도 생각했으니까.

검성은 그저, 오롯이 ‘검술’에만 관심이 있는 자였다.

그렇게 검술에만 몰두한 덕분인지, 어느 순간 무림에서 검을 다루는 최강자가 되어있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단 한 가지만을 추구하며 스스로를 단련한 결과였다.

하지만.

“가진 자는 모르는 법이지요.”

천림맹주, 검성의 아우인 서존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점에 오른 검성의 평판은 점점 높아지는 반면.

-역시, 맹주님의 형님이시다.

-저분이 맹주가 되었어야 해.

누군가의 평판은, 드높이 솟구치는 검성의 그림자에 점점 가려지기 시작했다.

그 또한 검성과 같은 경지에 올라 그와 나란히 서고 싶었었다.

그러나 아무리 스스로의 무공을 단련해도, 자존심을 굽히고 검성에게 조언을 구해 봐도.

-언젠가는 깨달을 날이 올 것이다.

검성은 애매한 답변만 해 줄 뿐이었다.

더 나아지는 것 또한 없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검성이라는 드높은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손대는 것조차도, 오르는 것조차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검성의 그림자에 가려진 자는, 그 어둠 속에서 머문 시기만 무려 백 년이 넘어갔다.

그리고 지금, 그 그림자에 가려져 악의를 품고 키워 오던 이가.

“본래 나의 것이었어야만 했던 그 모든 것들이, 지금에서야 내 손에 돌아오는 것일 뿐입니다.”

-우우웅!

칠흑처럼 어두운 기운을 넘실넘실 내뿜으며 제 진의(眞意)를 드러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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