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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571화 (571/726)

#571화

-우우웅.

처용이 게이트를 열며 아라한 왕국 왕궁에 돌아오고.

-파지직!

곧장 왕궁을 나가 동북쪽으로 향했다.

가장 마지막에 들려온 소식이 북쪽 해안 방어선에서, 적들과 공성전을 펼치고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아나샤는 아직 왕궁에 돌아오지 않은 상황.

그렇다면, 아직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으로 보였다.

-파직! 샥!

발걸음을 서두른 처용이 동북쪽 해안 방어선 중심에 모습을 드러내자.

“……역천군주.”

가장 가까이 있던 성자가 처용의 기척을 눈치채며 다가왔고.

“다행히, 전투가 끝난 것 같군요.”

처용이 방어 주둔지 내의 주변을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마법에 의한 폭발 흔적, 칼날과 발톱에 의한 흔적, 핏자국이 가득 새겨진 성벽.

부상자들을 챙기며 광역 힐링 스킬을 사용하는 성역의 사제와 성수의 기사들.

최전방에서 몬스터들의 사체를 불태우는 오크들과 헌터들의 모습.

작금의 상황은, 막 아스터 교단의 공세가 끝나고 주변을 수습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처용이 주변을 살필 때.

“오셨습니까?”

아나샤 역시 처용을 발견하며 다가왔고.

“오랜만이에요.”

옆에서 아나샤를 돕던 빛의 교단의 성녀, 호네아가 반가움을 드러내듯 말하며 다가왔다.

처용은 다가온 아나샤와 성녀, 호네아를 바라보고는.

“……아무래도, 그 괴물과 마주쳤나 보군요?”

호네아를 보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듯 물었다.

본래 그녀는 외형은 백색 피부와 어울리는 새하얀 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모습.

‘빛의 성녀’라는 말이 어울리는 외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긴 머리와 눈동자가 칠흑처럼 변해 하얀 피부가 더 창백하게 대비되어 보였다.

육체의 절반만 어둠으로 변한 혼돈(Chaos) 상태가 아닌, 완전한 어둠(Darkness)의 형태.

이러한 형태가 잠시 유지되는 경우는 단 한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처용도 딱 한 번 봤었던 성녀의 새로운 기술.

완전한 어둠의 형태에서 발현하는 올 딜리트.

그리고 성녀가 그 기술을 사용할 법한 경우 역시 하나뿐이었다.

“이겼습니까?”

처용이 작은 미소를 보이며 성녀, 호네아에게 물었다.

사실 그녀가 어둠의 형태를 띤 채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다.

그런 처용의 질문에.

“발라 버렸- 아니, 제가 이겼죠. 당연히. 히히.”

호네아가 자신감 어린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평소 조곤조곤하고 내향적인 성향과는 다르게 외향적인 성향의 톤이 조금 높은 목소리.

본래 그녀의 성격과는 조금 바뀐 듯한 느낌이었다.

빛과 어둠이 서로 대비되듯, 성녀의 형상이 바뀌면, 성향과 성격이 조금 바뀌는 듯한 현상.

이는 성녀가 절반만 타락하여 빛과 어둠을 모두 지닌 것에 대한 작은(?) 부작용이었다.

다만, 성녀의 성격 자체가 잔혹하게 변하거나 정신이 망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성녀 본인도, 성자도 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자신감이 일렁이는 성녀의 대답에, 처용이 작은 안도가 일렁이는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방금 호네아의 대답을 듣는 것으로.

‘성녀나, 성자가 라사벨에게 붙잡힐 가능성은 거의 제로로군.’

회귀 전과는 다르게, 호네아가 라사벨에게 당할 가능성은 배제해도 될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나도 이겼다. 친구!”

-쿵!

멀리 떨어진 곳에서 높게 뛰어오르며 처용 앞에 나타난 우람한 덩치의 오크.

쿠르타가 어깨에 도신이 넓은 대검은 짊어진 채 나타났다.

“도와주어서 고맙다. 친구.”

처용이 쿠루타의 말에 미소로 답하고는 쿠루타의 대검을 바라보았다.

붉은 파도가 일렁이는 듯 물결무늬가 돋보이는 검은 칼날.

그 칼날이 조립된 각진 형태의 넓은 대검.

넓은 대검의 검면에는 오크들의 언어로 ‘화산’을 상징하는 붉은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새로운 그릇이 마음에 드나 보군?”

대검을 관찰한 처용이 그 대검 속에 깃든 존재, 불카를 향해 묻자.

[로메라의 번개를 정면으로 받아쳤는데도 흠집조차 나지 않더군.]

-우우웅. 화륵.

대검에 새겨진 붉은 문자가 짧게 불꽃을 빛내며 불카의 대답을 울렸다.

[덕분에…… 나 또한 후손들과 나란히 서서 싸울 수 있게 되었다. 모두 그대 덕분이다.]

“화산의 전사들은, 저 악신들과의 전쟁에서 가장 앞장설 것을 약속한다!”

-탁!

불카의 대답에 이어 쿠루타가 약속하듯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말했다.

악신들에게 굴복하는 것이 아닌, 그들과 맞서는 이들과 힘을 합쳐 싸운다.

모든 오크 부족들이 동의하여 내린 최종 결정이었다.

이 전쟁에 참여한다는 오크 부족의 확실한 결정에, 처용이 미소를 지을 때.

“다 끝났는데, 너무 늦게 온 거 아냐?”

-쏴아아-!

처용의 위에서 물줄기가 모여, 연아가 나타나더니.

“데비~! 그 배들은 부서지지 않게 잘 세워 놔!”

주둔지와는 조금 떨어진 동북쪽 해안가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쿠우우!

공기를 울리는 무거운 울음소리가 크게 울렸다.

처용이 동북쪽 해안가를 바라보자.

-쏴아! 쿠구구!

거대한 검은 크라켄, 데비가 다소 멀쩡해 보이는 네 개의 범선을 붙잡아 끌고 오고 있었다.

해안선을 지키는 아라한 왕국의 병사들이 그 거대한 크라켄, 데비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볼 때.

-쿵! 쿵!

데비가 끌고 온 범선들을 해안가에 나열해 놓았다.

그런 크라켄의 뒤, 넓은 바다에는.

-쏴아. 쩌적. 쩌저적……!

엄청난 숫자의 범선이 반파된 채,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다.

마치, 대규모의 바다 전쟁이 끝난 듯 보이는 참혹한 모습.

“천교 놈들도 쳐들어왔었나 봐?”

처용이 데비가 이끌고 오는 범선 위의 깃발, 천교를 상징하는 문양을 보며 묻자.

“아주 그냥 떼거지로 몰려오더라고? 그래서, 두 번 다시는 바다로 올 생각 못 하게 만들어줬지.”

연아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저 배들이 좀 쓸만해 보여서, 가장 튼튼하고 큰 놈들로 골라 빼앗아 왔어.”

“……전투 범선이 없는 저희로서는 많은 부분에서 활용할 수 있겠습니다.”

범선을 강탈해왔다는 연아의 말에 아나샤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라한 왕국은 아직 전투에 쓸 법한 배가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연아가 적들에게서 거대한 범선들을 빼앗아 왔다.

그 범선들은 전투만이 아닌, 보급이나 정찰 등, 많은 부분에서 활용할 수 있어 보였다.

“아, 그리고 몇 놈 붙잡아서 정보를 털어 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죽어 버리더라?”

연아가 처용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녀가 범선을 노획한 이유 중 하나는, 적을 생포해 정보를 캐묻기 위함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연아의 손에 붙잡힌 순간.

-크어어!

-커헉!? 신이시여……!

온몸이 딱딱하게 굳거나, 얼어 버리는 등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죽었다.

그들이 찬양하는 신을 위해 자결한 것은 아닌 듯 보였다.

저주와 비슷한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누군가가 그들의 입을 막기 위해 죽인 듯 보였다.

“등이랑 어깨에 이런 문양이 있었고.”

-쏴아. 후두둑!

연아가 물줄기 속에서 딱딱하게 굳은 채 사망한 시체들을 꺼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들은 범선들을 이끌고 아라한 왕국을 침범한 배들의 선장과 지휘관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찢어진 상의 위, 피부에는.

“핏방울 모양의 문신…… 이거 그거 맞지?”

공통적으로 붉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연아가 시체에 새겨져 있는 문신들을 보며 무언가 짐작한 듯 처용에게 묻자.

“순혈신교.”

처용이 그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언급하며 답했다.

고통을 호소하듯,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딱딱하게 굳은 채 사망한 시체.

그 모습은 이전, WHU에 잠입해 뤼장첸을 돕다가 처용에게 발각된 순혈신도.

WHU의 비서실장이자 고위 임원, 엠마가 순혈자의 정체를 발설하려다가 죽었을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이거, 저 바다 너머 동방국이 단순한 천교와 마인들의 거점만이 아니라…….”

“순혈신교의 본부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처용의 읊조림에 성자가 답하듯 입을 열었다.

아스터 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세워진 에스라 대륙.

그와는 조금 떨어진 바다 건너편의 작은 대륙.

배를 이용한 교류를 제외하고는 소식을 잘 들을 수 없는 멀리 떨어진 장소였다.

악신들은 그런 고립된 환경인 동방 대륙을 이용해, 지상에 세력을 구축해 놓은 듯 보였다.

심지어, 특정 악신만의 세력이 아니라, 천교, 마인, 순혈자 등.

악신들의 종합적인 세력이 구축되어 있는 것 같았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악신들이 지상에 구축한 세력의 총본산인 셈.

“당장 조지러 가고 싶긴 한데…….”

처용이 바다 너머 먼 곳을 응시하며 적대감 어린 목소리로 읊조렸다.

악신들의 총본산인 그곳을 밀어 버린다면, 놈들의 세력을 확 약화시킬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당장 처용이 직접 움직이기에는 조금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런 고민이 일렁이는 말이 울리자.

“조금 전, 신계에 습격이 있었다고…… 빛의 신께 들었습니다.”

성자가 처용이 왜 적을 앞에 두고도 고민하는지 짐작한 듯,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신들이 거주하는 세계인 신계.

그곳도 태양신이 주신으로 자리 잡은 헬리오폴리스가 악신들과 악마들에게 습격을 당했다.

성자는 그 말에, 왜 처용과 라진을 포함한 세 명의 신관이, 갑자기 자리를 비웠는지 이해했다.

그리고 방금 처용의 읊조림으로, 신계를 향한 악신들의 공격이 끝나지 않았음을 짐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최악의 상황만큼은 면했습니다.”

처용이 성자의 말에 많은 의미가 담긴 간략한 대답을 건네자.

“태양신께서는 무사하시군요. 다행입니다.”

성자가 안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또 다른 성운이 습격당할 조짐이 있군요.”

경각심 어린 목소리로 짐작했던 바를 물었다.

“네, 문제는 어디가 습격받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며 성자의 말에 답했다.

그때.

[습격받은 성운을 찾았구나.]

여래에게서 전음이 들려왔다.

바로 신들이 조사하려던 것, 악신들이 어디를 습격할 것인지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어딥-.’

처용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고 여래의 말에 대답하려던 순간.

‘……잠깐, ‘습격받은’ 성운이요?’

여래의 말에서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고 다시 물었다.

여래는 곧 습격당할 성운이 어디인지 찾았다고 한 게 아니었다.

이미 악신들에게 ‘습격을 당한’ 성운을 찾았다고 했으니까.

[……그래, 헬리오폴리스보다도 더 심각한 피해를 받은 것 같구나.]

처용의 질문에 여래가 맞다는 듯, 대답이 들려왔다.

[아스가르드가 폐허가 되어 버렸다.]

습격받은 성운은 다름 아닌 아스가르드였다.

게다가.

[토르를 포함한 아스가르드의 생존자들이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태룡사에 찾아왔다.]

그들 역시 헬리오폴리스처럼 갑작스러운 기습에 대처하지 못한 듯 보였다.

무수한 사상자가 발생했고 토르를 포함한 몇몇 성좌들과 신군들, 신민들만이 겨우 도망친 상황.

그리고.

[아스가르드의 주신 오딘이…… 소멸했다.]

여래에게서 최악의 소식이 하나 더 이어졌다.

바로 아스가르드의 주신, 오딘이 소멸했다는 것.

“이런 망할!”

처용이 여래의 말에 인상을 확 찌푸리고는.

“도대체, 뭘 어찌했길래 주신급 성좌가 소멸한답니까!”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며 소리치듯 말했다.

“방금……?”

“누가 소멸했다고!?”

그 말에 성자가 눈을 크게 뜨며 경악을 드러냈고 연아 역시 경악하며 처용에게 물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이들 역시, 소리 없는 경악을 드러내고 있었다.

“멍청하게 가만히 서서 암살이라도 당해 줬다는 겁니까?”

처용이 멍청하게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몬 오딘을 질책하듯 소리쳤다.

그토록 경계하고 주의를 기울였었다.

내부의 배신자들을 조심하라고 그토록 경고를 전했었다.

그런데, 악신들의 기습 공격 한 방에 주신급 성좌가 허무하게 소멸한 상황.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너무나도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뭔데? 어느 성운의 주신이…….”

연아가 답답한 마음을 담아 처용에게 묻자.

“아스가르드가 헬리오폴리스처럼 습격을 받았고…… 오딘이 소멸했다.”

처용이 방금 여래에게 들은 말을 일행들에게 전했다.

동시에.

“성자, 길드장들에게 내 말을 전해 주십시오. 각 성운에 성좌들, 특히 주신들은 무조건 살아남으라고.”

성자를 향해 각 길드, 그들의 성운을 향한 메시지를 전했다.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오딘처럼 뒤져 버리면 성운도 끝장이니, 무조건 살아남으라고 전하십시오.”

악신들의 습격을 받아 성역이 초토화되는 것은 성운에게 있어 엄청난 피해였다.

그러나, 그 성운의 주신급 성좌, 성운을 대표하는 이가 소멸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피해였다.

헬리오폴리스처럼, 주신과 주요 성좌들이 살아남기라도 한다면, 이후를 도모할 수 있었다.

추후 성역을 재건하여 성운의 피해를 충분히 복구할 수 있었다.

당장 성역을 대처할 만한 수단, 태룡전도 있었고 황룡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헬리오폴리스는 이번 위기를 훌륭하게 넘겼다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아스가르드는 달랐다.

주신(主神)의 소멸.

이는 그 성운의 이름이 지닌 힘과 세력의 주체가 송두리째 흔들릴 정도로 심각한 피해였다.

차라리, 오딘이 소멸하기 전, 주신의 자격을 살아남은 토르에게 넘겼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 늙은이가 그럴 리가 없겠지.’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런 경우는 없는 듯 보였다.

가능성 또한 희박해 보였고…….

“젠장, 다시 가 봐야겠다.”

-우우웅.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태룡사와 이어지는 게이트를 열며 말했다.

“이곳은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반드시 이곳을 사수하겠습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아나샤가 처용을 향해 강하게 말했다.

처용은 신들에게 생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

아나샤는 그런 처용의 발목을 붙잡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오늘, 처용의 도움 없이 아스터 교단의 총공세를 막은 것처럼, 맡은 바 임무를 다할 생각이었다.

“여긴 우리에게 맡겨라. 친구!”

“그대의 할 일을 하십시오. 우리도 맡은 바를 다하겠습니다.”

쿠루타와 성자를 포함한 다른 이들 역시 믿음 어린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용은 믿음 어린 일행들의 말에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웅. 스르륵.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게이트를 타고 다시 태룡사로 돌아갔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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