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처용이 포세이돈에게서 트라이던트를 압수(?)하자.
“…….”
“…….”
[…….]
지켜보는 모두가 경악과 놀람, 의문스러운 표정을 보이며 침묵했다.
그저 단순한 트라이던트가 아니었다.
복제품, 성물이 아닌 진짜 신의 무구, 진짜 트라이던트였다.
신의 무구는 자격을 갖춘 신들만이 다룰 수 있는 전용 무구다.
처용이 어떻게 트라이던트를 사라지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떤 방법을 썼든 간에 불가능한 것을 현실로 만든 셈이었다.
물론, 이 상황에서 가장 당황한 인물은.
[무슨? 이럴 순 없다!]
압수당한 트라이던트의 원래 주인인 포세이돈이었다.
[돌아와라!]
그는 벌써 트라이던트를 향해 ‘돌아와라’라는 말만 다섯 번째 외치고 있었다.
트라이던트는 바다의 대신만이 다룰 수 있는 그만의 전용 무구였다.
멀리 떨어져 있든 손에 쥐고 있든, 신과 신의 무구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돌아와라!]
그 무구를 향해 명령을 내려도.
[돌아오란 말이다!]
트라이던트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오른팔이 잘린 채 허우적거리고 있는 포세이돈이 처용에게 노성을 질렀다.
“말하지 않았나?”
포세이돈을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본 처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넌 두 번 다시 트라이던트를 쓸 수 없다고.”
처용이 한 짓은 별것 없었다.
포세이돈은 현재, 대신의 자격조차 잃은 상황이었다.
무리한 권능 사용과 시스템의 제약을 몇 번이나 힘으로 거스른 탓이었다.
그는 이제 지상을 향해 강신은커녕 작은 권능조차 사용하기 힘든 상태였다.
이런 악조건이 쌓이고 쌓여 포세이돈과 트라이던트 간의 연결도 약해졌다.
처용은 그 약해진 연결을 눈치채고 트라이던트를 뺏은 것이었다.
물론, 처용을 제외한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원래 트라이던트는 주인을 제외한 그 누구도, 손대는 것조차 불가능하니까.
사실…….
트라이던트를 뺏은 처용 자신도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잘 몰랐다.
그저 신들의 무구를 함부로 사용할 순 없지만.
‘손을 대거나 만지는 게 가능하다’ 이 정도로 알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원래 주인에게 ‘허락’을 받으면 신의 무구가 가진 권능도 발휘하는 것이 가능했다.
회귀 전, 죽어가는 무신전의 성좌 중 하나가 처용에게 자신의 무구를 넘겨준 일이 있었다.
처용도 이때 알게 되었을 뿐,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이유는 모르고 있었다.
그저 짐작으로는.
‘계승자’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 하계종 놈이!]
처용은 분노에 발버둥 치는 포세이돈을 보며 비웃음을 끌어올렸다.
“트라이던트는 잘 녹인 다음, 네놈 묘비로 만들어 선물해 주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였지만, 포세이돈을 농락하기에는 충분한 말이었다.
[감히! 바다의 대신인 날 능멸하다니!]
분노에 잠식된 포세이돈이 죽어가는 몸을 일으켰다.
[당장 저놈을 죽여라!]
포세이돈이 처용에게 왼손을 겨누며 명령하듯 말했다.
그를 따르는 성좌와 헌터들이 응답하고 움직여야 했지만…….
“…….”
[…….]
포세이돈의 명령에 움직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정확히는 처용의 손에 포세이돈이 쓰러지고 그가 트라이던트를 잃은 순간.
전장의 모든 싸움이 멈춰 있는 상황이었다.
[네놈들이 감히 내 말을-!]
포세이돈이 휘하 성좌들과 병사들을 바라보며 고함을 내지를 때.
[네놈은 더 이상 자격이 없다. 포세이돈.]
제시카, 정확히는 그녀에게 강신한 아테나가 포세이돈의 말을 자르며 다가왔다.
그러자.
-탁.
아테나의 주변으로 포세이돈의 휘하 성좌들.
테티스와 오케아노스를 포함한, 강신한 성좌들이 다가왔다.
[너희들은 아직도 포세이돈을 따를 생각인가?]
아테나가 그들을 지긋이 바라보며 묻자.
[저희는 투항하겠습니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가 대표로 나와 아테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자, 다른 S급 헌터들도 고개를 숙이며 항복의 의사를 보였다.
포세이돈은 바다의 대신이라는 자격을 잃었다.
거기에 올림포스 성운에서의 파면까지…….
더 이상 그를 따를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강압과 억압, 힘으로 휘하를 다스리는 포세이돈이었다.
그런 그를 진심으로 따르는 이도 없었다.
[이이!]
그것을 본 포세이돈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 무능한 놈들이! 감히 나를 배신하느냐!!]
분노에 잠식된 포세이돈이 남은 신력을 끌어올리려 할 때.
[아스트라페.]
아테나가 올림포스 주신의 성물, 아스트라페를 불러냈고.
-투콰앙!
포세이돈에게 투척했다.
[크허억!]
복부에 아스트라페가 박힌 포세이돈이 피를 뿜으며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동시에.
[올림포스의 주신으로서 명령하나니.]
아테나가 입을 열어 말하자.
-파지지직!
아스트라페에서 흘러나오는 샛노란 번개가 포세이돈을 감쌌다.
[성운의 명과 법칙을 어긴 포세이돈의 모든 자격을 박탈하겠다!]
아테나가 말을 끝마치자.
-쿠르릉!!
하늘에서 샛노란 번개가 포세이돈을 향해 내리쳤다.
[이, 이럴 수는!]
벼락에 맞은 포세이돈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눈치챘다.
이에 저항하려고 했지만.
[이럴 수는 없다!!]
이미 대신의 자격도 잃고 신력까지 거의 바닥으로 소모된 상태.
심지어 트라이던트까지 잃은 상태였다.
[안 돼!!]
포세이돈이 자신을 구속하는 힘에 저항하지 못하고 절망하듯 소리쳤다.
그러자.
-슈우우.
눈을 하얗게 뒤집은 데이비드에게서 포세이돈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하늘로 빨려 올라갔다.
-쿠르릉!!
아스트라페에서 뿜어져 나온 번개가 그런 포세이돈의 형상을 사슬처럼 휘감았다.
그리고.
[안 돼! 이럴 수는 없단 말이다!]
절규하듯 외치는 포세이돈의 형상을 마치 죄인처럼 잡아끌며 하늘로 올라갔다.
-파지직!!
포세이돈을 휘감은 번개가 샛노란 스파크를 뿜어내며 사라졌다.
아스트라페를 회수한 아테나는.
[너 역시 같은 이유로 파면한다.]
아폴론 또한 같은 방법으로 구속했다.
[아테나!!]
강제로 강신이 풀려 아스트라페의 번개에 잡힌 아폴론이 분노하듯 외쳤다.
[다른 대신들이! 형제들이!]
아폴론은 곱게 끌려가지 않겠다는 듯 자신을 구속한 번개에 저항했다.
[이걸 용납할 것 같아!?]
올림포스에서 아테나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많다.
그들이 지금 독단적으로 주신의 권한을 사용하는 아테나를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그러나.
[너희들한테 용납받을 이유 따윈 없어, 받고 싶지도 않고.]
아테나는 분노를 감춘 듯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이번에 선을 넘었다.]
힘든 와중에도 항상 형제들을 챙기려 노력했던 아테나였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는 더 이상 형제라는 단어가 없었다.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거다! 아테나!]
아폴론은 아테나를 향해 증오를 담아 말하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너희들의 죄는 차후에 묻겠다.]
아테나가 남은 성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테티스가 대표로 대답하고.
-스르르.
S급 헌터들의 강신 상태가 풀리며 성좌들이 올림포스로 돌아갔다.
역시나 무리한 강신이었는지 S급 헌터들이 모두 쓰러졌다.
S급 헌터들을 포함한 오션 엠퍼러 길드와 태양 마차 길드 헌터들이 모두 연행될 때.
“아직 살아있네?”
쓰러진 재앙급 몬스터들.
레비아탄과 어비스 웨일의 희미한 기척을 느낀 처용이 그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솔직히 아무리 재앙급 몬스터라고 해도 여기까지 버틴 것이 용했다.
무엇보다 커맨더의 성지에서 발사된 플라즈마포는 한 지역을 날려버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고스란히 받아냈으니, 만신창이가 되어 나가떨어진 게 당연했다.
이나마도 재앙급 괴수라서 살아있는 것.
처용이 두 괴수를 보며 화염의 절에 검기를 응축했다.
아무리 쓰러져 있다고 해도 S급 몬스터.
이대로 두면 위험했으니까.
그때.
“잠시만요. 용님!”
다시 작은 잉어 형태로 변한 니모가 날아와 처용을 말렸다.
동시에.
[저 아이들 어비스로 돌려 보내주지 않을래?]
카투라의 전음이 들려왔다.
[포세이돈의 지배는 풀렸으니 적의를 보이진 않을 거야.]
카투라의 말을 들은 처용은.
“게이트에서 이 녀석들이 튀어나와 지구를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내가 잘 말해 두면 문제없어.]
“……알겠습니다.”
처용은 카투라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기를 풀었다.
이번 전쟁에서 그녀가 도와준 것이 너무나도 컸으니까.
그러자.
[음, 아주 그냥 걸레짝이 됐네?]
니모에게서 카투라의 말이 들려왔다.
카투라가 니모에게 한 것은 성좌가 신관에게 강신하는 것과 비슷했다.
상위 신수가 휘하에 있는 하위 신수를 통해 의지를 전달하는 것.
[……들리니?]
카투라가 두 재앙급 괴수를 바라보며 자신의 신력을 흘려보냈다.
그것에 반응하는 듯.
-우우웅.
두 재앙급 괴수가 작은 울음을 토함과 동시에 상처가 조금 회복되었다.
그리고.
[지구와 이어지는 게이트가 열리거든 이쪽으로 넘어오지는 마. 알았지?]
카투라가 레비아탄과 어비스 웨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우우.
두 괴수는 마치 카투라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울음을 토했다.
[니모의 머리에 열쇠 좀 대 줄래?]
처용은 카투라의 말대로 태룡전의 열쇠를 꺼냈다.
“이 두 녀석이 성역에 다 들어갈까요?”
궁금증이 든 처용이 카투라에게 질문했다.
[여래가 알아서 해 줄 거야.]
“그렇군요.”
카투라의 말에 대답한 처용이 열쇠를 대자.
-슈와아아!
니모가 입을 크게 벌리더니 입 앞에 마치 심해처럼 짙은 푸른색의 게이트를 만들어냈다.
-슈루루룩!
그 게이트에 두 괴수가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리고 두 괴수가 사라지자.
“아, 하나가 더 있었네?”
처용이 드러난 광경을 보며 말했다.
레비아탄과 어비스 웨일 뒤에 있어 잘 보이지 않았던 크라켄이 드러났다.
크라켄 역시 재앙급 괴수답게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있었다.
“이건 어떻게 할까요?”
처용이 카투라에게 묻자.
[일단 이놈도 데리고 가야지.]
카투라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난 이제 조금 힘에 부치는데 이놈 좀 치료해줄래?]
처용이 카투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덩치가 큰 만큼 부상이 심했지만, 전부는 아니고 적당히만 회복시킬 생각이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동시에 카투라가 신력을 전달하며 크라켄에게도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다.
그때.
-우우웅.
크라켄이 작은 울음을 토했고.
[신수의 격이 발동합니다.]
“음?”
처용은 그 울음과 동시에 전해져 오는 의지에 의문을 표했다.
해석하자면 자신을 포세이돈에게서 해방해 준 것에 대한 감사였다.
동시에.
[괴수 크라켄이 당신의 무리에 합류하기를 원합니다.]
“……??”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처용이 고민하며 바로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
[일단 데려갈 테니 천천히 생각해 봐.]
상황을 눈치챈 카투라가 처용에게 말하며 게이트를 만들어냈다.
-슈루루룩.
크라켄 역시 짙은 푸른색의 게이트로 빨려 들어가며 사라졌다.
그때.
[대략 정리는 된 건가?]
-파지직!
현장을 쭉 둘러본 아테나가 아스트라페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저벅. 저벅.
청룡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본 해전무신이 그녀를 경계하듯 청룡의 앞을 막아섰다.
아직 윤아와 청룡의 수계가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괜찮소이다. 장군.]
청룡이 다가오는 아테나를 바라보며 해전무신에게 말했다.
[그녀는 적이 아니외다.]
그 말에 해전무신이 칼을 집어넣고 잠시 물러났다.
청룡의 앞에 도달한 아테나가 청룡을 바라보자.
[미안합니다.]
아테나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건넸다.
[왜 그대가 사과하는 것이오?]
청룡이 묻자.
[포세이돈이 저지른 만행은 성운의 주신인 제 잘못이기도 합니다.]
아테나가 청룡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올림포스 주신의 사과를 받아들이겠소. 하지만.]
그녀의 대답을 들은 청룡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적어도 난 그대를 탓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구려.]
청룡의 말은 진심이었다.
백성들을 보살피며 그들을 이끌고 책임지는 것이 군왕(君王)이었다.
하지만, 왕도 신도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었다.
아무리 현명하고 뛰어난 왕이라 해도, 모든 이들을 보살피고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포세이돈처럼 힘과 광기에 사로잡혀 죄 없는 이들을 고통받게 하는 악인이라면 더더욱.
청룡, 문무 역시 한때 왕이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테나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고 그녀를 높이 평가했다.
그녀는 올림포스를 책임지는 주신으로서 성운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줄 아는 군주였으니까.
청룡과 아테나의 대화가 끝날 때쯤.
“배신자들을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처용이 아테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아테나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인간을 잠시 바라보더니.
[날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작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다른 성좌도 아니고 무려 올림포스의 주신이었다.
그런 성좌와 맞대면하는 처용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긴장한 듯 보였지만.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요?”
처용은 무엇이 문제냐는 듯 오히려 아테나를 향해 물었다.
[신기하네, 다들 나를 피하는 눈치인데.]
아테나의 말은 사실이었다.
커맨더조차도 딱히 그녀와 마주하고 싶은 눈치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피할 이유도 없습니다.”
처용은 이전의 대답처럼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문제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하하.]
아테나는 처용의 대답에 작은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세계보다 형제들을 우선시하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지.
티케를 통해 전해 들었던 처용의 말이 떠올랐다.
-그 형제들이 정말 세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 보라고.
지금까지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휘하 성좌들조차도, 자신의 신관도, 올림포스를 따르는 인간들도…….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대악마와 손을 잡은 머저리 같은 성좌가 과연 아레스 하나일까? 올림포스에만 있을까!
악에 맞서 싸우는 한 인간만이 자신을 향해 질책하듯 말했다.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일반적인 성좌라면 건방진 인간이라며 길길이 날뛰었겠지만.
아테나는 솔직히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준 처용에게 고마웠다.
그가 직설적으로 말해준 덕분에 현실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었으니까.
[마침 잘 말해 주었다.]
아테나의 말은 처용이 처음 꺼낸 질문에 대한 말이었다.
그리고.
[포세이돈의 만행으로 피해를 본 모든 이들에게 유감을 표합니다.]
현장에 있는 모두가 들으라는 듯 이야기했다.
[해서 이번 일에 대한 차후 대책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아테나는 현장에 있는 이들에게만 말하는 것 아니었다.
커맨더의 성좌, 데우스 엑스 마키나.
처용의 성좌인 여래.
이 자리에 있는 청룡 등.
성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