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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238화 (238/240)

238화

불사신 같은 루체를 쓰러트릴 방법을 알려 주겠다는 의문의 목소리.

반가운 제안이었으나 정도현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녀석이 조건을 붙였기 때문이다.

‘드래곤 하트가 말했어. 그럼 이클립스인가? 아니면 그 악마 녀석이 수작을 부린 건가?’

정체도 확실치 않은 녀석이 뭘 요구할지도 모르는데 덥석 물 순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의문의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난 악마가 아니라 이클립스다. 죽기 전 드래곤 하트에 사념을 담아 뒀었지.』

속마음을 들켰다. 정도현이 놀란 기색을 보이자 이클립스가 말했다.

『마음을 읽는 건 용들에겐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네 정신 방벽은 상당히 견고해서 원래 같았으면 힘들었겠지만, 너와 난 지금 한 몸에 융화됐으니 가능하다.』

‘…되게 불쾌한데.’

『그럼 앞으론 마음을 읽지 않겠다. 일일이 대화를 주고받긴 귀찮지만 싫으면 어쩔 수 없지.』

의외로 이클립스는 순순히 양보했다.

하지만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다. 이클립스는 과거 최종 보스로서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던 용.

저렇게 말해 놓고 방심시킨 뒤 다른 수작을 부릴지도 모른다.

정도현이 의심을 거두지 않자 이클립스가 말했다.

『시간이 없다. 곧 저 몸에 마왕의 혼이 깨어날 거다.』

‘마왕이라고?’

『그래. 녀석의 몸속에 고위 마족들과 마왕의 혼이 느껴진다.』

이클립스는 마왕의 혼이 완전히 깨어나면 이길 방도가 없다고 주장했다.

태양신에게 치명상을 입혔던 구시대의 절대자. 그런 존재를 어찌 이기겠냐고 말이다.

그 말에 정도현은 침묵으로 동의했다.

이클립스 말대로 시간이 없었다.

“큭큭. 포기한 거냐?”

정도현이 아까부터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자 루체는 비웃으며 먼저 달려들었다.

정도현은 정신없이 날아드는 불꽃과 권각을 피하고 막아 내며 이클립스한테 질문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설마 내 몸을 내놔라, 뭐 그딴 건 아니지?’

『내 무덤을 찾아가 줬으면 한다.』

‘무덤?’

뜻밖의 부탁에 정도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검을 휘둘렀다.

서걱!

순간 방심했던 루체의 머리가 싹둑 잘려 나갔다.

정도현은 머리 잃은 몸뚱이를 걷어차고 뒤로 거릴 벌렸다.

“좋아. 어딨는진 몰라도 찾아 줄게.”

『약속한 거다.』

촤악-!

신화 속 히드라처럼 잘린 머리가 다시 돋아난 루체. 녀석이 흥분해서 아까보다 난폭하게 달려들었다.

정도현은 투우사처럼 놈의 돌진을 슬쩍 흘린 뒤 빨리 방법을 알려 달라고 재촉했다.

『녀석의 회복을 막고 싶으면 내 마력을 쓰면 된다.』

‘네 마력?’

네 마력은 뭐가 다르냐고 묻자, 이클립스가 자부심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마력은 세상의 법칙을 뒤튼다.』

“그게 뭔 개소리야.”

쾅-!

정도현은 칼을 가로로 눕혀 상대의 발차기를 받아냈다.

제때 막았는데도 수십 미터나 밀려났다. 칼자루를 움켜쥔 손바닥이 찢어졌다.

팔뼈엔 금이 갔는지 욱신댔다.

루체의 마력이 또 강해졌다. 이젠 정면으로 받아 내기도 벅찰 정도였다.

“크하하핫!”

정도현이 맥없이 밀려나자 루체는 거나하게 취한 사람처럼 몸을 가누지 못하며 폭소했다.

콰득, 콰드득!

놈의 이마를 찢고 한 쌍의 뿔이 더 솟았다.

『내 마력은 세상의 법칙을 뒤틀어 막는다. 가령, 저놈의 성가신 재생력도 한동안 봉인할 수 있지.』

“거, 대단하긴 한데. 지금 네 마력 잘 쓰고 있는데?”

그는 이클립스의 드래곤 하트가 쉴 새 없이 생산해 주는 마력을 아낌없이 검에 눌러 담고 있었다.

그러니 이클립스의 마력을 빌려 쓰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 말에 이클립스는 손들고 질문해 온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잘못된 부분을 짚어 줬다.

『넌 내 마력을 무의식적으로 정제해 평상시 마력으로 변환하고 있다. 아마 폭주해서 날뛴 기억 때문이겠지.』

그는 이성과 자아를 잃고 괴물이 되기 직전까지 내몰렸었다.

그 탓에 본능적으로 이클립스의 마력을 다루길 거부한 것이다.

「조화심법」의 힘으로 평소 다루던 마력으로 격하시켰다.

『넌 이미 드래곤 하트와 완전한 합일을 이뤘고 안정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내 마력을 두려워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사용해 봐라. 그럼 다를 거다.』

‘그러다 통제에 실패하면 또 괴물 돼서 날뛰는 거 아냐?’

정도현이 그렇게 반박한 순간.

콰앙-!

루체가 미사일처럼 날아왔다.

녀석은 몸이 망가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정도현을 마구 두들겨 팼다.

그도 검을 휘둘러 되받아쳤으나, 검강이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얼마 못 가 깨졌다.

마력을 계속 쏟아부었지만, 검강이 유지되는 시간보다 무너지는 게 더 빨랐다.

검강이 사라지자 검이 아예 증발한 것처럼 손이 허전했다.

쿵, 투웅, 콰앙!

주먹과 발차기를 막아 낼 때마다 정도현의 몸이 들썩이며 자세가 무너졌다.

루체는 씩 웃으며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콰직-!

측면으로 날아든 주먹이 몸에 꽂히자 갈비뼈가 부서졌다.

정도현이 피를 왈칵 토하며 바퀴처럼 굴렀다.

『날 믿어라. 네가 폭주할 가능성은 없다. 그럴 위험이 있었으면 애당초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쿨럭, 허억……. 하긴… 것도 그렇네.”

정도현이 죽거나 폭주해 괴물이 되면 이클립스도 곤란했다. 자신의 무덤을 찾아 줄 사람이 없어지는 셈이니까.

정도현은 입안에 잔뜩 고인 핏물을 뱉고선 땅을 짚고 일어섰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고 기립하는 오뚝이처럼.

“크르르!”

루체가 침을 뚝뚝 흘리며 반쯤 맛 간 눈으로 이쪽을 노려본다.

다른 놈은 몰라도 저 녀석한테만은 지고 싶지 않았다.

“후우…….”

정도현은 눈을 감고 집중했다. 전신의 감각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이클립스의 조언대로 무의식적으로 걸어 둔 목줄을 풀었다.

드래곤 하트의 마력을 가다듬지 않고 곧장 검에 흘려 넣었다. 그러자 검이 터질 것처럼 요동쳤다.

“이건…….”

정도현은 지금껏 드래곤 하트의 힘을 제법 잘 다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순수한 용의 마력은 경이로움을 넘어 황홀함마저 느끼게 해 줬다.

정도현은 슬며시 눈을 뜨고 코앞까지 다가온 상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쩌엉-!

검에 담긴 강대한 마력은 공간을 휘다 못해 우그러트렸다.

반쯤 정신줄을 놓은 루체조차 그 살 떨리는 힘에 화들짝 놀라, 공격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완전히 벗어나기엔 조금 늦었다.

검의 경로가 기이하게 휘어지며 루체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콰드득-!

칼끝에 슬쩍 닿았을 뿐인데 어깨뼈와 살점이 압착기에 뭉개지듯 터졌다.

“크아악!”

루체는 여느 때보다 우렁차게 비명을 뱉었다.

칼에 썰리고, 살갗이 찢겨 나가는 고통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공격은 차원이 달랐다.

루체가 달아나듯 황급히 물러나 거릴 벌리자, 정도현은 발끝에 용의 마력을 담아 가볍게 땅을 박찼다.

“……!”

용의 송곳니와도 같은 칼날이 자신의 머릴 가루로 만들어 버릴 기세로 날아온다.

루체는 급히 양팔을 들어 올려 칼날을 받아 냈다.

콰드득!

머리는 가까스로 지켰으나 양쪽 팔이 보기 흉하게 짓이겨졌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이 엄습했다.

루체는 숨넘어가는 듯한 비명을 꺽꺽 토했다.

루체는 곧장 팔을 재생했다. 그런데 위화감이 들었다.

“……?”

팔을 살펴보던 루체의 눈동자가 떨렸다. 몸이 재생되다 말았다.

어깨에 뻥 뚫린 구멍도, 찢겨 나간 팔뚝도 재생 도중 멈췄다.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마력이 부족한 건 아니다. 충분하다 못해 아주 차고 넘쳤다.

그런데 어째서?

“……!”

그에게 원인을 찾을 여유 따윈 없었다.

정도현이 쉴 틈을 주지 않고 그의 골통을 노리며 쇄도해 왔으니까.

“크아아아!”

화르륵-!

루체는 본능대로 행동했다.

불꽃의 마력으로 사라진 팔 일부를 대체했다.

용의 힘이 담긴 검과 화염이 꽝 부딪혔다.

두 마력은 불길한 소릴 내며 강하게 반발하더니 이내 폭발하며 서로를 밀어냈다.

이번에 땅바닥을 구른 건 루체였다.

그가 균형을 잃고 쳇바퀴 돌듯 땅바닥을 마구 굴러갔다.

반면에 정도현은 땅에 몸이 닿기 전, 빙그르르 돌며 두 발로 착지해 자세를 바로잡았다.

배를 깔고 누운 루체와 그런 그를 오연히 내려다보는 정도현.

누가 우위에 섰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승부가 났군.』

이클립스는 제법 놀랐다.

설마 첫 시도에 자신의 마력을 이토록 능숙히 다룰 줄이야.

그래도 몇 번의 시행착오 정도는 거칠 줄 알았는데. 실로 무서운 재능이었다.

“크, 아, 으…….”

루체는 재생되지 않는 신체를 불꽃으로 메꾸곤 다시 일어섰다.

난 아직 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듯 으르렁댔지만. 그런다고 얼굴에 맺힌 두려움이 감춰지진 않았다.

“후…….”

재생 능력을 봉인한 덕에 여유가 생긴 정도현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곤 그도 그르렁대며 최후 통첩을 날렸다.

“넌 뒈졌어.”

“……!”

콰아아아-!

이번 공격으로 끝장을 볼 셈인지 정도현은 용의 마력을 모조리 검에 때려 부었다.

쩍.

검이 조금씩 휘어지고 뒤틀리며 금이 갈라졌다.

용의 마력은 레전드리 등급 무기마저 잡아먹을 만큼 흉포했다.

‘곧 부서지겠군.’

겪어 본 적 없던 미증유의 힘에 압도된 루체는 벌벌 떨며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정도현은 놓치지 않겠단 일념을 담아 힘껏 치고 나갔다.

도망칠 수 없단 걸 깨달았는지, 루체는 불꽃으로 이뤄진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고 모든 마력을 밀어 넣었다.

화아아아아-!

드높은 태산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고도 남을 지옥불이 쏘아졌다.

그러나 정도현의 칼날에 닿자마자 불길이 좌우로 갈라졌다. 지리멸렬하게 흩어져 소멸했다.

용감한 소방대원처럼 거센 불길을 뚫고 상대의 지척에 도달한 정도현.

루체는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정도현이 검을 들어 올려 힘껏 내리쳤다.

콰드득-!

인간에게 짓밟힌 개미처럼 루체의 전신이 납작해졌다.

꾸물, 꾸물.

뭉개진 살점과 핏방울이 슬라임처럼 꼼지락대며 어떻게든 재생하려 버둥거렸지만 소용없었다.

그 가엾은 몸짓은 점차 느려지더니 이내 완전히 멎었다.

[타락한 반신족 대천사장, 루체를 처치했습니다!]

[위대한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200씩 영구히 상승합니다.]

[추가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최고 레벨(LV.150)을 달성했습니다!]

[1원 상점에 새로운 품목이 추가됩니다.]

“허억, 헉…….”

알림이 쭉 떴지만 힘들어서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정도현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칼날은 산산이 부서져 사라지고 손잡이만 덩그러니 남은 검.

정도현은 미련 없이 내버렸다.

루체의 마지막 발악도 만만찮았다.

정면으로 돌파하느라 제법 내상을 입었다.

이 정도면 최소 몇 년은 요양해야 다 나을 터.

“쿨럭, 쿨럭, 후우…….”

『훌륭했다.』

“…그래, 네 덕에 이겼다.”

『아니. 난 조언만 했을 뿐. 그걸 해낸 건 너다.』

이클립스는 그렇게 겸양을 떨곤 입을 다물었다. 정도현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곤 질문했다.

“근데 왜 구경만 했냐? 일찍 알려 줬으면 서로 좋았잖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

마왕의 마력이 점차 강해져서 이클립스도 눈을 떴을 뿐. 그전엔 깊은 잠에 빠진 것과 비슷한 상태였다고 했다.

정도현은 엘릭서를 꺼내 마시곤 궁금한 걸 물었다.

“마왕은 죽은 거지?”

『그래. 불완전한 상태였긴 했다만. 틀림없이 죽었다.』

저게 불완전한 상태라니.

만약 완전히 부활했었으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엘릭서로 내상을 말끔히 회복하고, 최상급 포션을 몇 병 꺼내 마시던 중.

스스스.

곤죽이 된 루체의 시체에서 뭔가가 공명하며 빠져나왔다.

그건 핏빛의 구슬이었다.

정도현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심상치 않다고.

그가 벌떡 일어나 예비용 검을 꺼내 들었다.

“저건…….”

『마왕의 혼이다.』

“뭐? 방금 죽었다며?”

『혼을 담을 육신이 없으니 소멸해야만 하는데, 어째서…….』

이클립스는 뭔가 깨달았는지 말을 멈췄다.

『지하에서 악마왕의 마력이 느껴진다. 놈이 올라오고 있다.』

“하, 그 새끼. 역시 안 뒈졌네.”

내 이럴 줄 알았지. 정도현은 그렇게 구시렁대며 전투 자세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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