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대성당에 침투했다니. 너무 위험한 거 아녜요?]
성준휘와 결투하고 다음 날 아침.
정도현은 서아린에게 연락해 상황을 전했다.
그가 메시아인 척 사기 치고 대성당에서 머무른단 말에 그녀는 기겁했다.
그러다 정체라도 들키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어쩔 수 없잖아.”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직접 들어가야만 하듯, 대성당에 꼭꼭 숨어 있는 성녀를 처리하려면 이럴 수밖에.
정도현의 설명에 서아린은 한숨을 푹 쉬었다.
[신호영, 그 남자의 복수 때문에 무리하는 거예요?]
“꼭 그런 건 아니고, 민하은이 또 뭔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최근의 행적들을 역추적하면 동부에 신호영의 아지트 혹은 본거지가 있다고 유추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럼 그의 할아버지나 주변인들이 피해 보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되기 전에 처리해 두고 싶었다.
“그 녀석, 복수는 겸사겸사 노리는 거야. 신호영한텐 말해 둬.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내 손으로 죽이겠다고.”
[알았어요.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 마요.]
정도현은 통신구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교단이 보관 중인 성유물들을 받으러 갈 예정이다.
교황 측이 그걸 순순히 내놓진 않으려 하겠지만 상관없다.
약속을 안 지키면 성준휘가 미친개처럼 짖어 댈 테니까. 주기 싫어도 내어 줄 수밖에 없으리라.
“메시아 님, 모시러 왔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성준휘가 문을 두드리며 그를 불렀다.
성유물이 보관된 사원으로 직접 안내해 주러 온 모양.
덕분에 교황 세력 눈치를 볼 필요도 없어서 편했다.
성준휘가 눈 돌아가서 칼을 빼 들면 성기사단도 그 뒤를 따를 테니까.
순식간에 무신정변(武臣政變)이 일어날 터.
아무리 고위 사제들이 교단의 큰 돈줄이고 권력을 행사한다 해도, 그들을 지켜 왔던 성기사들이 칼을 거꾸로 겨누면 그들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럼 가시죠.”
정도현이 문을 열고 나오자 성준휘는 싱글벙글 웃으며 호위를 자처했다.
참 특이한 녀석이었다.
자신보다 강하니 충성하겠다니. 뭔 늑대나 들개도 아니고.
“근데 넌 나한테 이러는 거 자존심 안 상하냐?”
“뭐가 말입니까?”
“성기사단의 수장이 굴러 들어온 놈한테 굽신대는 거.”
몇몇 사제들은 뒤에서 흉을 봤다. 줏대도 없다느니 뭐니 하면서.
정도현이 그렇게 말하자 성준휘는 껄껄대며 말했다.
“약해 빠진 놈들이 뭐라 지껄이든 전혀 신경 안 씁니다. 원래 그런 놈들이니까요.”
“흠. 그래? 그런 것치곤 나한테 감정적으로 굴더니만.”
“아, 그게……. 별것도 아닌 놈이 대단한 척 으스대는 건 또 못 참아서…….”
성준휘는 머릴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한마디로 자신보다 잘난 척하는 놈은 못 보겠단 건가.
정도현은 성준휘가 어떤 인물인지 대충 가늠이 잡혔다.
‘자신보다 약한 놈들은 뭘 하든 신경 안 쓰고. 본인 눈앞에서 강한 척 건방을 떨면 어떻게든 짓밟고 보는 거군.’
“그럼 나한테 져서 무릎 꿇은 건 괜찮냐?”
“메시아 님, 강자한테 지는 건 쪽팔린 게 아닙니다.”
너무도 당당하게 정신 승리를 해 버리자 뭐라 따지기도 뭣했다.
정도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성준휘와 함께 사원으로 향하다 걸음을 멈췄다.
정도현이 돌연 하늘을 빤히 쳐다보자, 성준휘는 고갤 갸웃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상공엔 아무것도 없었다.
“메시아 님?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정도현은 다시 걸음을 뗐다.
그의 표정은 마치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떨떠름했다.
‘지박령이 뭐 저리 많아? 여기가 공동 묘지도 아닌데.’
상공에 유령이, 그것도 철새 무리처럼 수백 명씩 뭉쳐서 우르르 날아다녔다.
더 기이한 건 전부 아이들이었다. 죽기엔 너무나도 어린.
F구역 빈민가면 몰라도 B구역 수도 한복판에 저리 어린 애들이 저렇게나 많이 죽은 건 이상했다.
“혹시 전에 수도에 역병이라도 크게 돌았었냐?”
“예? 역병이요? 그럴 리가요. 어지간한 질병은 신성 주문에 정화되니 크게 번질 수가 없죠.”
“아니면 사고로 수백의 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했다거나.”
“으음… 제가 알기론 그런 사건은 없었는데. 한번 알아볼까요?”
“아니, 그냥 잊어.”
“예? 아, 알겠습니다.”
정도현은 고갤 저었다. 괜히 들쑤시고 다니면 성녀랑 교황이 이상하게 여길 터.
‘당사자들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지금은 아침이라 보는 눈들이 많아서 안 되고. 밤에 다시 와야겠다.
* * *
정도현은 교단 창고에서 성유물을 세 개 챙겨왔다.
창고의 관리인이 가져가면 안 된다며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지만, 성준휘는 깡패처럼 힘으로 뜯어냈다.
평범한 물을 담아 둬도 하루만 지나면 최상급 성수로 바뀌는 ‘성배’.
최상급 치유 주문을 하루에 여러 번 사용하게 해 주는 ‘황금 십자가’.
그리고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를 대폭 올려주는 ‘태양의 왕관’까지.
“얻을 것도 다 얻었고…….”
이제 유령들의 정체를 확인할 때다.
정도현은 바깥이 어두컴컴해지자 슬그머니 행동에 나섰다.
투명화 망토를 뒤집어쓴 뒤 발소릴 죽인 채 유령들이 잔뜩 보였던 곳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수백이 넘던 꼬마 유령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는지 몇 명밖에 안 보였다.
‘어? 저 형 아침에 봤는데?’
‘진짜네.’
‘여긴 왜 온 거지?’
투명화 망토를 입었는데도 꼬마 유령들은 정도현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건 정도현도 마찬가지.
그가 유령들을 응시하자 아이들은 설마 하는 눈빛으로 다가왔다.
‘형, 혹시 우리가 보여?’
‘보이는 것 같은데?’
‘들리면 대답해 줘!’
“그래, 보여. 목소리도 잘 들리고.”
정도현이 조곤조곤 대답했다.
그러자 꼬마 유령들이 신나서 소리치고 공중제비를 휙 돌았다.
어차피 다른 이들에겐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겠지만.
정도현은 흥분한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얘들아, 어쩌다 유령이 된 거니?”
정도현의 질문에 아이들은 입을 모아 설명했다.
‘땅 밑에서 무서운 어른들이 막 주사 놨어.’
‘그때부터 몸에 열이 나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는데…….’
‘그러다 어느 순간 몸에서 빠져나왔어요.’
“주사?”
너무 어려서 아직 죽음이란 개념조차 생소한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자행했단 말인가?
흑마법사들이나 할 법한 끔찍한 짓거릴 교단 본부에서 하고 있었다니.
정도현은 말문이 막혔다.
꽈악.
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걸로도 분이 안 풀려서 이를 꽉 깨물었다.
그래도 애들 앞에서 화를 낼 순 없으니 심호흡으로 끓어오르는 마음속 불길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너희 말고 얼마나 더 있었니?”
‘엄청 많았어요.’
‘아침에 저희랑 같이 놀았던 친구들보다 더 많아요.’
수백 명의 유령. 그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대성당 지하에 갇혀 모종의 인체 실험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 같이 놀던 친구들이 갑자기 하나둘 사라졌어.’
하늘이 허락한 시간만큼 살지 못하고 죽은 자는 유령이 된다.
하지만 이승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미련이나 강한 원한을 품고 원귀가 된 게 아니면 아무리 길어 봐야 49일 이내만 머물 수 있다.
사라진 꼬마 귀신들은 저승이나 천국으로 떠났겠지.
“즐겁게 놀고 집으로 돌아간 걸 거야.”
‘그런 건가?’
‘우린 언제 집에 돌아갈 수 있어?’
‘집이 어딨는지 모르는데…….’
‘흑, 엄마랑 아빠가 보고 싶어…….’
F구역에서 B구역까지 끌려왔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긴커녕 대성당 부지 밖을 돌아다니기도 무서웠을 터.
“괜찮아.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부모님이 데리러 오실 거야.”
‘저, 정말?’
‘다행이다…….’
그것 말고는 해 줄 말이 없었다.
정도현의 거짓말에 아이들은 근심이 풀렸는지 밝게 웃었다. 그 순진무구함에 오히려 가슴이 옥죄어 왔다.
이미 죽어 버린 아이들을 위해 그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너희가 갇혔던 곳엔 어떻게 들어가니?”
‘저 멀리 보이는 건물에 숨겨진 계단이 있어!’
‘알려 줄까?’
정도현은 고갤 끄덕였다.
엎어 버리기 전에 일단 지하 실험실의 실태를 두 눈으로 확인해 두고 싶었다.
* * *
대성당 부지는 넓다, 5대 가문이 보유한 사유지보다 훨씬.
면적으로 따지면 소도시 수준은 될 터.
그렇기에 침입자나 다른 세력의 첩자가 숨어들지 못하게 밤낮으로 순찰과 경계 근무를 서야만 했다.
“하암…….”
“씨발. 갑자기 경계 근무는 왜 늘리고 지랄이야.”
대성당 부지 외곽의 순찰을 맡은 사제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그럴 만도 했다. 말 한마디 없이 오늘부터 야간 경계 인원을 두 배로 늘렸으니까.
그 결과, 원래는 비번이었을 몇몇 이들마저 쉬지 못하고 투입됐다.
“들리는 말로는 메시아 때문이라던데?”
“메시아가 왜? 그 새끼가 우리보고 근무 더 서라고 시켰대?”
“인류의 구원자라더니, 완전 씹새끼네.”
“아니, 그게 아니라 팔라딘 경이 메시아한테 져서 무릎까지 꿇었다잖아. 그게 무슨 뜻이겠어?”
팔라딘이, 더 나아가 성기사단이 메시아를 지지한다는 뜻이다.
고로 메시아는 하루아침에 교단 세력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됐다.
“교황이랑 성녀 쪽 세력은 똥줄이 타겠지.”
“그게 뭐? 우리가 근무 더 서게 된 거랑 뭔 상관인데?”
“이런 때일 수록 아랫것들이 허튼 생각 못 하게 굴려 대는 법이지. 쉽게 말해 군기를 잡는 거야.”
“뭔 개소리야. 우리한테 화풀이하는 거라고?”
“좀 다른데……. 어떻게 보면 비슷하지.”
“아오, 씹새끼들.”
메시아고 교황이고 성녀고 간에.
며칠에 한 번꼴로 돌아오는 비번을 날려 먹은 사제들의 분노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그런 그들이 간부들을 마구 씹어 댈 때.
“…응?”
“왜 그래?”
“아니, 방금 어디서 시선이 느껴진 것 같아서…….”
어떤 사제가 주변을 두리번대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 근처엔 그들 외에 아무도 없었다.
가뜩이나 한밤중이라 어쩐지 오싹했다.
“…기분 탓이겠지.”
얘길 꺼냈던 사제는 애써 웃으며 동료들을 안심시켰다. 그래, 피곤해서 착각한 걸 거야.
그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푹-!
따끔한 통증과 함께 시야가 어두컴컴해졌다.
어째선지 마취라도 된 것처럼 전신에 힘이 쭉 빠지더니 털썩 쓰러졌다.
옆에서도 하나둘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는커녕 손가락조차 까딱하질 않았다. 이내 짙은 수마가 몰려왔다.
‘와! 형 되게 세다!’
그 광경을 처음부터 지켜봤던 꼬마 유령들이 환호했다.
그리고 그들을 제압한 당사자, 정도현은 점혈로 기절시킨 사제들을 안 보이도록 치운 뒤 낡은 건물로 들어갔다.
안은 별것 없었다. 창고로 쓰는 건지 크고 작은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어른들은 저기 있는 책장을 옆으로 밀었었어.’
꼬마 유령들은 구석에 세워진 큼직한 책장을 가리켰다.
드르륵-!
힘을 줘서 밀자 그 뒤에 숨겨진 계단이 나왔다.
“……!”
정도현은 그제야 눈치챘다.
이 낡은 건물은 단순한 창고도, 위장용 건물도 아니었음을.
‘지하에서 새어 나오는 마력 자체를 차단하는 건물이었어.’
숨겨진 입구가 열리자 확실하게 느껴졌다.
지하 속에 웅크린 거대한 마력을.
그리고 그 곁에서 죽어 가고 있는 생명들을 말이다.
“안내해 줘서 고마워. 여기서부턴 형 혼자 갈게.”
‘응…….’
‘여긴 무서워…….’
아이들은 이미 죽었는데도 지하 실험실로 내려가길 두려워했다.
정도현은 겁에 질린 아이들에게 그리 말한 뒤 혼자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오자 승강기가 있었다.
“깊게도 파묻어 뒀군.”
승강기 아래쪽은 시커멨다. 눈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깊었다.
‘희미한 생명력은 실험체로 쓰인 아이들이야. 그럼 그 중심에 있는 거대한 존재는 대체 뭐지?’
교단은 도대체 지하에 뭘 숨겨 둔 걸까.
정도현은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고자 승강기 버튼을 눌러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