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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85화 (185/240)

185화

사천당가의 가주, 당군평은 성녀의 친위대 이단심문관들과 함께 C구역 동부로 내려왔다.

무한비도의 칼집을 쥔 채 맹렬히 달리던 당군평이 돌연 걸음을 멈췄다.

이단심문관들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음?”

“왜 그러십니까, 가주님?”

“놈의 위치가 한순간에 달라졌네.”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이게 그림자란 녀석의 이동 능력인가?

관리국과 교단이 이십 년 넘도록 꼬리도 붙잡지 못한 이유가 있었군.

당군평은 검집이 알려 주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친위대 대장이 중얼댔다.

“저희를 눈치챈 걸까요?”

“그건 불가능해.”

마력을 감지하고 대피했다기엔 거리가 한참 남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얄궂게도 서로 엇갈린 모양.

“너무 실망할 것 없네, 젊은이. 다시 추격하면 그만이니.”

당군평이 그리 말하며 다시 달렸다.

여유가 넘치는 그의 말투에 친위대 대장은 속으로 비웃었다.

‘다 죽어가다 성녀님의 은총으로 살아난 주제에.’

게다가 사천당가는 5대 가문 중에서도 전투 분야로는 가장 뒤처진다지 않는가.

막말로 그는 당군평과 싸워 이길 자신이 있었다.

독공의 달인이라 해 봤자 결국 태양신께서 내려 주신 특별한 힘, 신성력 앞에선 무력하니까.

‘네놈은 그림자만 처리해 주면 돼.’

성가신 공간 능력자를 암살하는 게 네놈의 역할. 언노운을 붙잡는 건 우리 몫이다.

“대장, 만약 가주가 저희 말에 따르지 않으면 어쩌죠?”

“흥. 그럼 제압하면 그만이다.”

134레벨이라도 늙을 대로 늙어서 기량이 떨어졌을 터. 그 혼자 친위대 열을 당해 낼 리 없다.

친위대 대장은 부하들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하곤 당군평을 따라갔다.

* * *

박성원은 접전 끝에 103레벨의 마녀를 쓰러트렸다.

주문에 맞아서 좀 다치긴 했으나 목숨이 위험할 정돈 아니었다.

예상 밖의 강함에 마녀들은 전원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저런 힘을…….”

그는 싸우기 전에 90레벨이었고, 마녀를 죽여 이제야 92레벨이 됐다.

그런데 그가 선보인 무위는 아무리 봐도 100레벨을 훌쩍 넘어섰다.

‘다 제 업보지.’

정도현은 마음이 꺾인 마녀들을 보며 그리 생각했다.

박성원의 초월적인 강함의 주요 원인은 개인 특성, 「정의 집행」 덕이었다.

마녀들이 죽인 플레이어 수를 헤아리면 어지간한 레드 플레이어는 명함도 못 내밀 테니까.

“성원 오빠, 멋있었어요!”

조마조마하게 전투를 지켜봤던 유가인이 쪼르르 달려와 박성원 품에 매달리듯 안겼다.

정도현이 마련해 둔 회복 포션의 마개까지 뽑아 건넸다.

박성원을 바라보는 눈동자에서 아주 꿀이 뚝뚝 떨어진다.

정도현은 어이없단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둘이 만난 지 뭐 얼마나 됐다고 저래?”

“원래 사랑은 예고도 없이 싹트는 거예요. 선남선녀들은 특히나 더.”

“그래?”

서아린의 말투가 꼭 겪어 본 사람 같았다. 정도현은 궁금증을 못 이기고 슬쩍 찔러 봤다.

“그럼 넌?”

“…네?”

“미인들은 사랑이 갑자기 찾아온다며. 너도 그런 적 있어?”

정도현이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서아린은 말없이 몇 차례 눈만 깜빡거렸다. 한 박자 늦게 말뜻을 이해한 그녀.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

“그… 예쁘다고요? 제가?”

“당연한 거 아냐? 저번에 말 안 했었나?”

그녀의 과민 반응에 정도현은 이상하단 듯이 쳐다봤다.

서아린이 고갤 슬쩍 돌리며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자 진정이 좀 됐다.

“아직은… 그런 적 없어요.”

“역시. 그럼 그렇지.”

“뭐가 그럼 그렇단 거예요?”

정도현이 팔짱을 끼고 고갤 끄덕이자 서아린은 왠지 무시당한 것 같아 뚱한 표정을 지었다.

“며칠 전에 신호영이 나 놀린답시고 헛소릴 해 댔거든.”

“…헛소리? 그 남자가요?”

신호영은 정도현의 집에 머무르기에 할아버지를 뵈러 가면서 몇 번이나 만난 적 있었다.

실내에서도 칙칙한 가면을 쓰고 있는 데다가 상당히 과묵했다.

이상한 소릴 해 댈 사람처럼은 안 보였는데.

“그 남자가 혹시 제 얘길 했어요?”

“응, 네가 날 좋아한다나 뭐라라.”

정도현은 당연히 그 말을 안 믿었기에 무신경하게 말했지만, 서아린은 아니었다.

그녀는 원탁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녀의 얼굴이 홍시처럼 빨개져선 남은 마녀들한테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무나 나와!”

“뭐야, 쟤 왜 저렇게 흥분했어? 나한테 물들었나?”

정도현이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중얼대자,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진규현이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럼 내가 상대해 줄게.”

원탁에서 중년의 마녀가 일어섰다.

머리칼이 미역처럼 제멋대로 자라 헝클어져 있어 인상이 음침하기 짝에 없었다.

미역 머리 마녀는 서아린을 죽이고 살아남을 생각으로 가득했다.

방금 싸웠던 박성원보단 이쪽이 만만했다.

“역행의 마녀라고 해, 앙칼진 아가씨.”

“…역행?”

“자, 그럼 앙칼진 아가씨가 어릴 땐 어땠는지 볼까?”

역행의 마녀는 지팡이 끝에 마력을 모아 서아린을 겨냥했다.

서아린은 주문이 날아오더라도 피할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마법 지팡이를 겨눈 건 그저 눈속임.

“…?”

역행의 마녀의 얼굴과 손등에 잔주름이 생겼다. 그녀가 갑자기 나이를 더 먹은 것이다.

뜻밖의 사태에 서아린의 눈이 커졌다.

‘뭐지?’

바뀐 건 마녀만이 아니었다. 서아린의 키와 팔다리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녀는 달라진 제 몸을 살펴보곤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려졌어?”

목소리도 앳되게 변했다.

서아린은 열 살도 채 안 되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그녀가 어려진 만큼 역으로 나이를 먹은 역행의 마녀는 사악한 얼굴로 비웃었다.

“그렇게 까칠하더니. 어릴 땐 귀엽게 생겼네? 어린애로 돌아간 기분은 어때?”

“너……!”

서아린이 체내의 마력을 끌어 올렸지만 어째 느낌이 이상했다.

마력의 흐름이 평소처럼 원활하지 않았다. 틀림없이 신체 변화 때문이다.

‘몸이 줄어든 게 아니야.’

능력치와 마력은 그대로였지만, 그녀의 육체는 과거의 그 시절로 돌아갔다.

심법을 쓰면 쓸수록 육체도 거기에 맞게 진화한다.

심법이 정착하기 전에는 탁한 기운이 몸속에 쌓여서 혈도가 비좁거나 꽉 막혀 있으니까.

그러면 전신의 마력이 고루 전달되지 못한다.

각설하고, 서아린은 심법을 익히지 않은 상태로 회귀했다.

‘이 상태론 심법을 제대로 펼치기 힘들어.’

마력이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니 검기를 펼쳐도 바람 앞의 촛불처럼 불안정했다.

굳이 검을 휘두르지 않아도 알겠다. 검기가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거란 걸.

서아린은 혀를 차며 상대를 향해 돌진했다.

보법을 펼쳤지만 확연히 느려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후훗! 어린애가 되면 다들 그렇게 허둥대더라고.”

역행의 마녀가 호호 웃으며 주문을 쏴 댔다. 서아린은 좀처럼 다가가질 못하고 피하기 급급했다.

그녀가 고전하자 밤의 마녀는 이때다 싶었는지 정도현에게 넌지시 말했다.

“저러다 저 아가씨 죽을지도 모르겠네요. 정말 괜찮으신가요?”

“쟨 저 정도론 안 죽어. 오히려 잘됐어.”

“…잘됐다뇨?”

“위기를 극복하면 경험치도 왕창 줄 테니까.”

정도현의 대답에 밤의 마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미친놈 같으니라고.

아군이 위험에 처했는데도 경험치를 운운하는가. 그러다 진짜로 동료가 죽으면 어쩌려고?

유가인도 동감인지 박성원에게 말했다.

“저 여자 괜찮을까요? 크게 다치기 전에 항복하는 편이 나을 거 같은데…….”

“괜찮습니다. 서아린 씨는 저보다 더 강하니까요.”

쾅, 콰앙-!

머리 위로 쏟아지는 주문 세례.

서아린이 바닥을 굴러 피했다.

역행의 마녀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는지 공격하고 또 공격했다.

바로 그때. 뻣뻣하고 굼뜨던 서아린의 움직임이 변했다. 유연하면서도 날렵하게.

그러자 역행의 마녀가 깜짝 놀랐다.

“…어?”

어려진 몸으로 무공을 십분 활용하기 힘든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역행의 마녀가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서아린은 정도현이 사준 스킬북을 써서 심법과 무공을 익혔다.

즉, 어려진 육체에 적응하는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다른 플레이어 같았으면 여전히 적응 못 하고 허우적댔겠지만, 그녀는 불과 몇 분 만에 익숙해졌다.

게다가 어린 몸일수록 쌓인 탁기(濁氣)가 적어서 막힌 혈도를 뚫기도 쉬었다.

다시 말해, 수준급의 고수가 마력을 컨트롤하면 어린애 몸이라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어, 어?”

서아린이 쪼끄만 몸으로 정신없이 돌아다니자 역행의 마녀는 심히 당황했다.

그녀가 의기양양했던 건 상대를 어려지게 만드는 개인 특성뿐이었으니까.

서아린이 발 빠르게 대처해 버리니 유리했던 게 싹 사라졌다.

촤악-!

시커먼 검기가 역행의 마녀를 훑고 지나갔다.

서아린이 빙빙 돌며 그녀를 베고 또 베었다.

“끄, 끄륵…….”

잠시 뒤, 역행의 마녀는 피범벅이 된 채 맥없이 쓰러졌다.

서아린은 그녀의 얼굴을 꾹 짓밟으며 말했다.

“당장 내 몸 원래대로 돌려 놔.”

“히, 히익! 시간 좀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와요! 제, 제발 살려…….”

서걱-!

서아린은 정직하게 대답해 준 보상으로 더 괴롭히지 않고 상대의 목을 깔끔히 그어 줬다.

역행의 마녀가 흰자위를 까뒤집으며 절명했다.

서아린의 역전승에 마녀들은 또 한 번 할 말을 잃었다.

“이제 세 명 남았네.”

정도현은 남은 마녀들을 쭉 둘러보며 중얼댔다.

밤의 마녀와 이름 모를 마녀 둘.

그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눈동자만 뒤룩뒤룩 굴려댔다.

“힘들어요…….”

어려진 서아린은 원탁으로 터덜터덜 걸어와 정도현 품에 머릴 툭 기댔다.

몸이 어려져서일까. 그녀답지 않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

정도현은 회복 포션을 건네주며 말했다.

“엘릭서도 마실래?”

“아뇨. 시간 지나면 알아서 풀린대요.”

지금 엘릭서를 마시기엔 아깝다. 한 번 쓰면 꼼짝없이 일주일을 기다려야만 하니까. 남은 전투에서 크게 다칠지도 모르고.

일리 있는 말이었다.

정도현은 고갤 끄덕이며 칭찬하듯 서아린의 머릴 쓰다듬어 줬다.

그러자 그에게 기댄 채 호흡을 고르던 서아린이 얼어붙었다.

“아, 미안.”

이건 놀리려던 게 아니라 습관이었다.

집에서 다윤이를 돌보다, 칭찬할 때 머릴 종종 쓰다듬어 줬으니까.

귀가 빨개진 서아린은 속으로 꿍얼댔다. 어린애한텐 되게 살갑게 구네.

평상시에도 방금처럼 스스럼없이 만져 주면 얼마나 좋을까.

“다윤이한테 해 준 것처럼 무릎에 앉혀 줘요.”

“뭐야, 마음까지 애가 된 거야?”

“시끄러워요. 먼저 애 취급했으면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란 말도 있지 않은가. 서아린이 그리 말하며 양팔을 쭉 벌렸다.

정도현은 자연스레 그녀를 들어 올려 제 무릎 위에다 앉혔다.

서아린은 히죽 웃었다.

역행의 마녀 덕분에 권하율한테 자랑할 게 생겼다.

그녀는 정도현의 가슴팍에 머릴 기대고 숨을 골랐다.

“…기어코 저흴 다 죽여야 직성이 풀리겠습니까?”

좋은 분위기였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끼어들며 산통을 깼다.

밤의 마녀였다. 서아린이 싸늘한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마녀들이 그런 소릴 하니 웃기네. 흑마법사랑 다를 바 없으면서.”

“…그래도 당신들한테 피해를 주지는 않았잖아요?”

“마, 맞아!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이러면 너희도 우리랑 다를 게 뭐야!”

마녀들은 인정에 호소했다.

하지만 정도현에겐 당연히 안 먹혔다.

“너희랑은 다르지. 우린 적어도 민간인은 안 건드리거든. 너흰 여태 실험한답시고 무고한 사람을 몇 명이나 잡아 죽였지?”

그의 질문에 마녀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인체 실험은 흑마법 수양의 기초였다.

그러니 일일이 세지도 못할 만큼 많은 사람을. 그것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잡아다 실험해 왔다.

그 업보가 돌고 돌아 찾아온 것이다.

변명거릴 찾던 밤의 마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 흠칫했다.

‘뭐지?’

정원 입구에서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주 은밀해서 결계를 깔아 둔 밤의 마녀조차 겨우 알아챘을 정도.

그런데 정도현도 기운을 느꼈는지 표정이 바뀌었다.

‘저번에 상대했던 기사들보다 훨씬 강한 자다.’

마녀들의 정원 밖에는 기사급 강자들이 열 명.

B구역에서 또 사람을 보낸 모양이다.

이번엔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걸까.

정도현이 검을 쥐고 일어서며 밤의 마녀한테 말했다.

“거봐, 착한 일 하니까 경험치가 알아서 굴러 들어오잖아.”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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