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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75화 (175/240)

175화

“컥!”

“크악!”

독공만 믿고 자신만만하게 덤볐던 추격대원들이 무력하게 쓰러졌다.

신호영을 제외한 백승아 일행 전원은 세계수의 열매를 먹어서 어지간한 독에는 끄떡없었다.

“제, 제길… 어째서냐!”

신호영과 싸우던 추격조장도 발악하듯 소릴 질렀다.

그 역시 「태양신공」을 익혔기에 독기에 내성이 있었다. 굳이 「태양신공」을 극성으로 펼칠 필요도 없었다.

그의 신체로 파고든 독기는 극양의 기운을 만나 곧바로 사멸했다.

정식 기사에 근접한 실력자인 추격조장도 독공이 막히니 별수 없었다.

쩌엉-!

고전을 면치 못하던 그의 가슴팍에 신호영의 장법이 작렬했다.

“쿨럭!”

가뜩이나 내상을 입은 채로 무리했다. 거기에 결정타까지 꽂혔다.

사천당가가 자랑하는 회복용 단약을 먹었더라도 버틸 재간이 없었다.

푸확-!

추격조장이 피를 한가득 쏟으며 고꾸라졌다. 그를 끝으로 추격대는 전멸했다. 남은 건 당재호 한 명뿐.

백승아 일행이 당재호를 포위했다.

투랑이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아까 뭐랬더라? 격의 차이가 어쨌다고?”

“…….”

투랑의 말에 당재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C구역 놈들한테 가문의 추격대가 당하다니.

어떻게 한 건진 몰라도 저들에게는 독공이 전혀 듣질 않는다.

‘혈독술은 먹히겠지만…….’

저들을 중독시킬 수준의 혈독을 만들려면 최소 100레벨이 넘는 플레이어의 혈액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정도로 귀한 혈액은 당장 수중에 없었다.

투랑 하나 처치 못 하는 판국에 넷을 동시에 상대하라니.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바로 그 순간.

“소, 소가주님…….”

옆에서 다 죽어 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전멸한 줄 알았던 추격대원 중 한 명이 살아 있었다.

얼굴이 낯익다. 자신만만하게 앞장섰다 백승아한테 팔을 잃은 그 사내였다.

그는 백승아의 주문에 복부를 꿰뚫렸는지 남은 왼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피와 내장이 바닥으로 줄줄 쏟아져 애처롭기 짝에 없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당재호는 애원하던 수하에게 암기를 던졌다.

푹-!

미간에 정확히 꽂힌 비도. 추격대원은 눈을 까뒤집고 그대로 죽었다.

“뭐야?”

갑자기 자기 부하를 죽이다니.

살 가망성이 없어서 제 손으로 편하게 끝내 준 건가?

다들 그렇게 생각했지만 백승아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런 게 아니야.’

백승아는 당재호의 눈빛을 읽었다.

저 눈, 연민이나 배려와는 영 거리가 멀었다.

저건 멸시였다.

아니나 다를까. 당재호가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댔다.

“한심한 것들. 너흰 사천당가의 일원이 아니다. 그래도 죽어서라도 도움은 되겠구나.”

당재호가 혈독술을 극성으로 펼쳤다.

그러자 죽은 수하들 몸에서 혈액이 줄줄 뽑혀 허공으로 모여들었다.

혈독술을 익힌 지 얼마 안 된 당소예와 달리, 당재호는 일정 이상의 경지에 도달했기에 가능했다.

“다들 조심해!”

핏방울이 서서히 붉은색에서 보라색으로 변했다. 투랑이 털을 곤두세우며 아군들에게 경고했다.

저번에 당했던 혈독이다. 정도현마저 중독시킨 독이니 그들 역시 위험할 터.

“장난은 끝이다.”

당재호는 혈독을 장막처럼 넓게 펼친 뒤 그 너머로 암기를 흩뿌렸다.

혈독이 듬뿍 발린 암기가 백승아 일행을 노렸다. 다들 기겁하며 뒤로 도약해 거릴 벌렸다.

하지만 전부 피하기엔 너무 많았다.

게다가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일 터.

“다들 내 뒤로 모여!”

백승아가 그리 외치며 커다란 암벽을 세웠다. 일행들은 그녀 뒤로 피신했다.

팅, 터엉!

암기들이 벽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혈독이 닿자 두꺼운 바위도 융해되며 연탄처럼 구멍이 숭숭 뚫렸다.

그 작은 틈새로 또다른 암기가 파고들었다.

“…큭!”

백승아는 바위를 추가로 일으켜 암기를 막아 냈다. 하지만 오래 못 버틴다.

혈독은 공기로도 퍼지니까.

그들 주변에 독기가 감돌면 숨만 쉬어도 서서히 중독될 터.

“젠장, 이대론 다 죽겠어. 이봐, 백승아. 날 내보내 줘. 어떻게든 놈을 끝내 볼게.”

“승권 님 혼자선 무립니다!”

강유라가 투랑을 뜯어말렸다.

아까도 백중지세로 싸웠는데, 혈독까지 다루는 당재호를 무슨 수로 이기겠는가.

“하지만 딱히 뾰족한 수도 없잖아.”

“그럼 저도 가겠습니다! 절 방패로 쓰십시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누가 연인 아니랄까 봐 둘은 티격 댔다.

그 사이로 백승아가 끼어들었다.

“내가 갈게. 실은 나한테 비장의 패가 있어.”

“뭐? 정말이냐?”

투랑과 강유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백승아는 여기서 레벨이 가장 낮다.

물론 110레벨대 추격대원을 몇 명이나 죽인 걸 보면, 본인의 레벨을 한참 벗어난 실력자긴 했다.

하지만 투랑이나 당재호를 혼자서 쓰러트릴 정도까진 아니었다.

그녀의 결연한 표정에 신호영은 뭔가 직감했다.

“혹시 그 비장의 패, 네 목숨을 바쳐야 하는 건가?”

“…죽을지 모를 만큼 위험하긴 해.”

백승아는 뜨끔한 얼굴로 고갤 끄덕였다.

“그래도 괜찮아. 동생이 엘릭서를 몇 개 챙겨 줬거든. 죽지만 않으면 괜찮아.”

“그럼 내가 나서겠다. 나한테도 비장의 패가 있어.”

“그건 안 돼. 교단한테 위치 걸린다며?”

정도현한테 미리 들었다.

신호영이 「태양신공」을 쓰면 교단이 감지하고 병력을 보낸다고.

그렇게 되면 당장은 당재호를 처리할 수 있겠지만 더한 위기가 찾아올 터.

그녀의 지적에 신호영은 침묵했다.

그 말대로 「태양신공」은 최후의 보루였다.

백승아의 비장의 패가 뭔지는 몰라도 그녀가 먼저 나서는 게 이치에 맞았다.

신호영은 면목 없단 듯 고갤 떨궜다.

“…미안하다.”

“벽 치우면 최대한 멀리 떨어져.”

백승아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개인 특성, 「과충전」을 발동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매일 조금씩 마력을 모아 뒀다.

충전해 둔 마력이 많을수록 그녀의 몸이 망가지지만, 지금은 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자 힘을 얻은 거였으니까.

“……!”

쿠구구궁-!

백승아의 몸에서 정체 모를 거대한 마력이 샘솟았다.

투랑의 야수화보다 상승폭이 더 컸다.

묵직한 파장이 퍼지며 그들을 가둔 암벽이 허물어졌다.

외부에서 암기를 쉴 새 없이 던져 대던 당재호도 그녀의 변화를 인지하곤 숨이 멎었다.

“무슨……!?”

백승아가 석화 주문으로 전신에 갑주를 둘렀다. 그런 그녀가 무릎을 굽히자.

쾅-!

그녀 발밑에 큼직한 크레이터가 생기며 미사일처럼 발사됐다.

암석을 휘감은 주먹이 당재호의 명치에 꽂혔다.

“컥!”

그가 피를 토하며 저 멀리 폐건물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안 그래도 노후화된 건물이 폭탄으로 철거되듯 와르르 무너졌다.

그 광경에 동료들이 입을 쩍 벌렸다.

어마어마한 파괴력이었다.

“…크흡!”

주먹을 날렸던 백승아도 멀쩡하진 않았다.

바위 갑주로 몸을 최대한 보호했음에도 팔뼈가 뚝 부러졌다. 다리 근육들도 아프다며 비명을 지른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당재호는 아직 안 죽었으니까.

‘그걸 반응했어.’

당재호는 그녀의 주먹이 닿기 직전, 검강을 방패처럼 들어올려 방어했다.

무시무시한 반응 속도였다.

물론 그녀는 힘으로 검강을 꿰뚫었다.

그 대신 주먹이 급소를 비껴 갔다.

‘그래도 피해는 줬어. 계속 몰아붙여야 해!’

백승아는 이를 꽉 깨물고 다시 다릴 굽혔다.

놈이 허를 찔려 휘청대는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 이걸 못 살리면 못 이긴다.

콰앙-!

그녀가 땅을 박차 높이 도약해 무너진 건물 위로 뚝 떨어졌다.

그 자리에 폭탄이라도 투하된 것처럼 대지가 크게 요동쳤다.

충격의 여파로 건물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그것들 사이로 당재호가 보였다.

단정했던 머리는 헝클어져 엉망이 됐고, 입가에는 핏자국이 선명했다.

그와 그녀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마주쳤다.

“이 망할 년이!”

당재호가 욕설을 뱉었다.

말투에서 진득한 살기가 느껴진다.

평민 따위가 감히 대귀족인 내 몸에 상처를 내다니.

이 치욕,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만천화우(滿天花雨)」!”

가주와 소가주만이 익히는 사천당가 최고의 절기. 당재호는 그걸 사용했다.

거창한 기술명과 달리 그가 내던진 건 단 한 자루의 비도.

그에게 다시 달려들던 백승아는 고민했다. 저걸 피할지 아니면 갑주로 받아 내고 역습을 꾀할지.

바로 그 순간.

“……!”

날아오던 비도가 분열했다.

하나에서 둘. 둘로 늘어난 각각의 비도들이 넷으로.

그렇게 수십, 수백으로 증식한 비도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그녀 몸에 꽂혔다.

투두두둥-!

수백의 단검이 총알처럼 그녀를 두들긴다.

바위 갑주가 쩍쩍 갈라지며 내부로 충격이 전해졌다.

흠씬 두들겨 맞은 백승아가 쓰러지며 바닥을 굴렀다.

“…큭!”

그녀와 함께 지면으로 흩뿌려진 비도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하나로 합쳐지더니 부메랑처럼 주인의 손으로 돌아갔다.

‘설마 무한비도(無限飛刀)까지 쓰게 될 줄이야.’

무한비도는 사천당가의 하나뿐인 신물이자 가주의 상징이었다.

만천화우를 제대로 펼치기 위해선 반드시 이 무한비도가 필요했다.

가주는 이번 임무가 위험하니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무한비도를 그에게 맡겼다.

‘만천화우를 쓰지 않았으면 위험했다.’

일격에 자신의 검강을 깨부수다니. 엄청난 괴력이었다.

한 방 더 허용했으면 그가 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그는 이제 거릴 유지하면서 한 번 더 만천화우를 펼치면 된다.

“죽어라!”

백승아가 비틀대며 일어섰다.

만천화우를 정면으로 맞고도 살아 있다니. 실로 경이로운 맷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다.

그녀의 갑주는 반쯤 깨져서 제 형태를 잃었다. 이번 공격으로 끝을 내주마.

파바바밧!

또다시 수백 자루로 분열한 비도들.

저걸 전부 피하거나 막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무한비도의 무서움은 원본을 고스란히 복사한다는 점이다.

즉, 칼날에 독을 묻히면 증식한 비도들에도 똑같은 독이 발려 있단 뜻. 한 자루만 스쳐도 끝이다.

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쿠르르릉-!

지진이 일어났다. 아스팔트 바닥이 뜯기고 건물 잔해들도 허공으로 떠올랐다.

“무슨…….”

그것들은 태풍에 삼켜지듯 백승아 쪽으로 모여들었다.

수백 자루의 비도가 그녀 지척에 가지도 못하고 가로막혀 우수수 떨어졌다.

이윽고 아스팔트와 건물 잔해로 겹겹이 쌓아 올린 거대한 골렘이 완성됐다.

그녀가 거북이처럼 그 속에 숨어 버린 것이다.

당재호는 당황했다.

저렇게 두껍고 거대하면 비도를 던져도 뚫을 수가 없었다.

만천화우를 계속 펼치면 못 뚫을 건 없겠지만 그전에 마력이 동나 탈진하리라.

“…그건 네년도 마찬가지겠지.”

저런 걸 유지하려면 그만큼 마력이 많이 들 터.

게다가 육중해서 움직임도 굼뜰 거다.

그를 붙잡기도 전에 골렘은 자멸하리라.

그녀도 그걸 알기에 처음부터 쓰지 않은 거겠지.

당재호의 추측은 정확했다.

그녀가 몸에 갑주를 두르고 직접 움직인 건 속도를 살려 최대한 빠르게 승부를 보기 위해서였다.

시간은 그녀의 편이 아니니까.

전투가 길어질수록 「과충전」으로 생기는 부담도 커진다.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재호가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라는걸.

탓.

당재호의 배후로 누군가가 접근했다.

은신용 아이템을 쓴 신호영이었다.

당재호는 지척까지 다가오고 나서야 그를 눈치챘다.

그래서 한 박자 반응이 늦고 말았다.

고수들의 싸움에선 찰나의 실수로도 승패가 가려진다.

“네놈!”

“잘 가라.”

투웅-!

그의 손바닥이 당재호의 등짝을 힘껏 후려쳤다.

당재호는 그대로 산처럼 거대한 골렘 쪽으로 튕겨 날아갔다.

“이런 씨……!”

스스스.

황급히 일어선 그. 그런데 전신이 시커멨다. 고갤 들자 태양 대신 골렘의 주먹이 보였다.

그는 깨달았다. 피하기엔 늦었고 검강으로도 막을 수 없다.

‘죽는다.’

당재호는 무심코 그리 생각했다.

지켜보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골렘의 주먹이 그를 짓뭉개려던 순간.

쩌저저적-!

서리 바람이 몰아치더니 골렘의 팔이 반쯤 얼어붙었다.

가뜩이나 느려터진 주먹이 아예 정지 수준으로 감속했다.

희망을 버렸던 당재호는 허둥지둥 몸을 내던져 땅바닥을 굴렀다.

무인으로서 정말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행동.

쿠우웅-!

그래도 그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주먹의 반경을 벗어나 살아남았다.

“헉, 허억… 방금 그건…….”

숨을 고르던 당재호의 어깨가 흠칫했다.

방금 불었던 서리 바람. 그가 아는 기술이었다.

언뜻 보면 빙결 주문 같지만, 저건 그런 사술과는 궤가 달랐다.

‘냉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빙공(氷功)이다.’

5대 가문 중 하나인 북해빙궁, 그들이 사용하는 무공이었다.

당재호는 서리 바람이 날아든 곳을 바라봤다.

낡은 건물 옥상. 그곳에 백은색의 머리칼을 지닌 여인이 서 있었다.

그 옆에 다른 자들도 여럿 보인다.

임무를 받고 C구역에 먼저 내려와 있던 5대 가문의 기사들이었다.

저들이 어떻게 이곳 위치를 알아냈는진 몰라도, 궁지에 빠진 그를 구해 주러 왔다.

이로써 형세가 다시 역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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