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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74화 (174/240)

174화

백승아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거주하지 못하는 게이트 붕괴 지역으로 향했다.

그녀는 경고문과 철책을 지나 붕괴 지역 안쪽으로 한참을 들어갔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끌어 보고자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잠자코 뒤따르던 당재호가 전음을 보냈다.

‘어디까지 들어갈 생각이지? 이미 충분한 것 같은데.’

끼익.

백승아는 혀를 차며 차를 세웠다.

오래전 거주민들이 철수하고 유령 도시가 된 폐허 한복판.

당재호는 주변을 쭉 둘러보곤 만족스레 고갤 끄덕였다.

‘여기라면 독공을 펼쳐도 괜찮겠지.’

뭐, C구역 플레이어 상대로 독공까지 쓸 필요는 없겠지만.

당재호는 백승아 일행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언노운이 어딨는지만 말해라. 그럼 살려 주겠다.”

“…뭐?”

백승아가 눈을 끔뻑거렸다.

당연히 정도현을 찾아온 줄 알았다. 그런데 언노운이라니?

백승아가 눈동자를 슬쩍 굴려 신호영을 쳐다봤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보란 눈빛으로.

그러자 신호영이 전음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기사를 죽인 게 나라고 착각한 것 같은데.’

당재호가 범인을 착각했다? 물론 그럴 순 있겠지만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그럼 저들은 정도현의 집에 언노운이 있단 걸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걸까.

그리고 저들이 말한 언노운은 그녀 옆에 있지 않은가?

찾는 사람을 코앞에 두고도 알아보질 못하다니. 앞뒤가 안 맞았다.

“…언노운? 그 녀석은 왜?”

“모르는 척하지 마라. 그자가 우리 가문의 기사를 살해했다.”

백승아는 혹시 몰라 저들의 목적을 다시 확인했다. 예상대로 기사를 죽인 자를 추적해 온 건 확실했다.

백승아는 얼굴에 철판 깔고 정보를 더 캐내려 했다.

“그러니까, 언노운이 어딨는지 우리한테 왜 묻냐고.”

“계속 시치미를 떼겠다면 이쪽도 폭력을 쓸 수밖에 없다.”

당재호가 서서히 감정을 드러냈다.

백승아는 그게 뭔지 알 수 있었다.

저건 복수심으로 점철된 살의였다.

그래, 남동생을 떠나보낸 과거의 그녀처럼.

‘그 기사가 가족이거나 연인이었나 보네.’

백승아는 머릴 긁적이며 실토하는 척 찔러봤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쪽 가문의 기사가 죽은 건 우리도 알고 있어. 그런데 우리랑 관련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온 거야? 흔적은 안 남겼는데.”

“그런 건 중요치 않아. 자꾸 말 돌리지 마라. 너희가 살길은 하나다.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만 하면 된다.”

당재호가 단검을 뽑으며 협박했다.

그 뒤에 서 있던 추적대원들도 제각기 흉기를 꺼내 들었다.

이 이상 정보는 못 캔다. 마지노선에 딱 걸렸다.

백승아는 어쩔 수 없이 동료들을 한번씩 쳐다봤다. 전투 준비하라고 말하듯이.

“크르릉!”

“아우우우!”

투랑과 강유라는 늑대 울음소릴 내며 전신 야수화를 발동했다.

신체가 탄탄히 부풀며 후드가 찢어졌다. 머리와 허리 뒤로 늑대 귀와 꼬리가 여실히 드러났다.

둘의 본모습에 당재호와 추격대의 눈이 커졌다.

“…수인족?”

강유라도 강유라였지만, 투랑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견습 기사 수준은 확실히 뛰어넘었다.

마력만 놓고 보면 정식 기사와 동수를 이룰 정도.

저만한 실력자가, 그것도 수인족이 C구역에 흔할 리 없었다.

당재호는 얼마 전 수하에게 보고 받은 내용이 떠올랐다.

그날 이후로 남부 투기장의 관리자가 실종됐다고.

“네 녀석, 남부 투기장의 관리자냐?”

“크르르! 이거 영광이구만. 기사 나리께서 다 알아봐 주시고.”

“그럼 그날 현장에 있었겠군.”

당연히 언노운과 당소예의 전투에 휘말려 죽었겠거니 했는데. 살아 있었던 건가.

놈은 그날의 진상을 알고 있다.

당재호의 온 신경이 투랑한테 쏠렸다.

추격조장은 그의 심정을 귀신같이 알아채곤 대원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저 남자 수인족은 소가주님이 직접 상대하실 거다. 우린 나머지를 처리한다.’

열 명의 추격대원들이 산개했다.

투랑을 빼면 나머진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이건 기회야.’

만리향의 잔향을 가장 먼저 찾아낸 공을 세운 추적대원이 눈빛을 반짝이며 선두에 나섰다.

그는 가장 만만한 이를 노렸다.

95레벨의 백승아. 112레벨인 자신이라면 손쉽게 죽일 수 있다.

‘죽어라!’

그는 단숨에 백승아의 목을 그었다.

까앙-!

그런데 불협화음이 들리며 검기가 튕겨 나왔다. 백승아는 씩 웃으며 속삭였다.

“내가 만만해 보였나 봐?”

덥석!

방심했던 추격대원의 팔뚝을 그녀가 붙잡았다.

그는 급히 그녀의 옆구릴 발로 걷어찼지만 꿈쩍도 안 했다.

게다가 피부의 감촉도 이상했다. 갑옷을 걸친 것처럼 단단하다.

툭, 투둑.

그녀의 옆구리에서 깨진 돌조각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이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뭐, 뭐야?!”

쩌적, 쩌저적!

붙잡힌 팔뚝도 돌로 변했다.

남자가 당황해서 마구 버둥댔다.

칼로 급소를 긋고, 주먹과 발을 휘둘러 마구 두들겨 팼다.

하지만 뭔가 잘못된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콰득!

백승아가 힘을 가해서 석화된 팔뚝을 깨부쉈다. 추격대원은 순식간에 팔을 잃었다.

통증도 없고 피가 흐르지도 않았지만, 그는 냉정을 잃고 비명을 꽥 질렀다.

“내, 내 팔!!”

쾅!

백승아는 시끄럽게 구는 그의 얼굴을 돌로 감싼 주먹으로 힘껏 후려쳤다.

남자가 피를 토하며 빗자루처럼 땅바닥을 쭉 쓸고 지나갔다.

레벨 차이가 심하게 나는데도 한 방에 기절시켰다. 그녀 주위를 맴도는 석화의 마도서 덕이었다. 물론 방심한 것도 있었지만.

하지만 아무리 방심했다 한들 100레벨도 안 되는 C구역 플레이어한테 당하다니.

“이 무슨…….”

대원들은 물론이고 추격조장마저 그녀를 멍하니 쳐다봤다.

신호영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곧장 몸을 날려 추격조장을 기습했다. 장법을 펼쳤다.

추격조장도 기겁하며 단검을 휘둘렀다.

‘이 녀석, 무공을 익혔다!’

신호영의 장법을 맛본 추격조장은 눈이 번쩍 뜨였다.

손바닥에 실린 힘. 예사롭지 않은 마력의 운용법. 거기에 체계적인 연결 동작과 기민한 발놀림까지.

정식으로 무공을 익힌 녀석이다. 그것도 수준급 고수 밑에서.

‘C구역 출신은 절대 아니다. 이놈은 누구지?’

다른 5대 가문에서 쫓겨난 사생아라도 되는 건가?

하지만 다른 가문의 무공과는 달랐다.

만약 비전 무공이라 그에게 생소한 거면 최소 직계 출신이란 소린데.

애당초 대귀족의 핏줄이면 C구역에 있을 리 없었다.

“네놈, 대체 누구냐!”

툭.

신호영은 대답 대신 상대의 가드를 뚫고 복부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가벼운 터치였지만 침투경의 묘리가 담긴 장법. 그렇기에 위력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투콰앙-!

뱃속에서 화약이 터진 것처럼 큰 소리가 울렸다.

“쿨럭!”

추격조장이 선혈을 쭉 토하며 낙엽처럼 땅바닥을 데구루루 뒹굴었다.

백승아와 강유라를 포위한 채 공격하던 추격대는 일동 경악했다.

그들의 대장이 당했다.

거기에 한눈판 순간. 백승아가 땅에 손을 얹으며 주문을 완성했다.

“「가시 지옥」.”

콰직, 콰지직!

땅속에서 바위 가시들이 겹겹이 솟아나 적들을 덮쳤다. 몇몇 대원들은 제때 피하지 못하고 휩쓸렸다.

즉사했는지 백승아의 레벨이 3이나 올라 98이 되었다.

바위 가시들은 치열하게 맞붙던 당재호와 투랑 사이에 끼어들었다.

두 사람은 주고받던 공방을 잠시 멈추곤 서로 거릴 벌렸다.

“…….”

투랑과의 싸움에 집중했던 당재호는 수하들의 상황을 이제 알아챘다.

추격조장이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

바위 가시에 찔린 추격대원 몇은 즉사.

몇몇은 다친 신체 부위가 돌로 변했다.

가장 약한 줄 알았던 백승아가 예상 외로 선전했다.

당재호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우리가 밀리고 있다니.’

그것도 C구역 출신 플레이어들한테 말이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자 숨을 고르던 투랑이 비꼬듯 말했다.

“부하들이 저 꼴인데 웃음이 나오냐?”

“저 여자 실력이 제법이군. 전원 독공을 사용해도 좋다.”

“……!”

당재호의 허가가 떨어지자 추격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그들은 사천당가의 무인.

암기와 단검도 잘 다루지만,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단연 독공이었다.

그걸 안 쓰고 싸웠으니 무력의 반분도 채 발휘하질 못했다.

물론 C구역 출신한테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당재호는 투랑을 응시하며 말했다.

“너도 태생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했겠지.”

“뭐? 갑자기 뭔 소리야.”

“하지만 전부 부질없다. 격의 차이는 노력으로 따라잡을 수 없으니까.”

당재호는 그리 말하며 독공을 사용했다. 그의 몸에서 보랏빛 운무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추격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방으로 독기가 퍼지자 아스팔트 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건물 외벽이 부식됐다.

“네놈… 죽여 주마!”

신호영한테 당했던 추격조장도 다시 일어섰다.

입속에 숨겨 둔 회복용 단약을 삼켜 부상을 회복한 것이다.

물론 내상까지 나은 건 아니다. 마취로 통증을 억누르고 억지로 움직이는 것에 가까웠다.

신호영한테 허를 찔려 당한 게 어지간히도 억울했는지 표정이 아주 살벌했다.

거기다 다른 추격대원들보다 훨씬 진한 독기가 몸에서 흘러나왔다.

“너희한테 승산은 없다. 마지막 기회를 주마. 언노운은 어딨지?”

당재호는 투랑에게 항복을 권했다.

순순히 말한다면 죽이진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하지만 투랑은 오히려 마력을 끌어 올렸다. 당재호는 그런 그를 싸늘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수인족이라 판단력도 짐승 수준이 된 거냐.”

그는 몇 번이나 살 기회를 줬고 그걸 걷어찬 건 건 저들이었다.

말로 해선 도저히 못 알아먹는군.

귀족으로서 품격 떨어지는 행동이지만 어쩔 수 없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말하게 해 주마.”

당재호와 투랑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쾅!

단검을 감싼 보랏빛 검강과 투랑의 주먹이 충돌했다.

당소예와 싸울 때처럼 충격파가 터지며 독기가 고루 퍼졌다. 그때보다 훨씬 독했다.

당재호는 담담한 얼굴로 설명했다.

“몇 분만 있으면 몸이 생각대로 안 움직일 거다.”

“흥. 그 여자처럼 혈독인지 뭔지는 안 쓰는 거냐?”

꿈틀.

투랑이 당소예와 가문의 절기를 언급하자 당재호의 눈가가 움찔했다.

“…함부로 입에 담지 마라.”

카앙!

당재호가 감정을 실어서 칼을 휘두르고 암기를 던졌다.

투랑은 기민하게 움직이며 흘려 내고 피했지만, 몸에 조금씩 생채기가 생겼다.

‘끝났군.’

상처까지 났으니 독기가 훨씬 빠르게 퍼질 터. 당재호는 제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투랑은 난폭하게 덤벼들었다.

“멍청하긴. 발버둥 치면 칠수록 빨리 중독된다.”

해독제가 있으니 심문하기도 전에 죽을 일은 없겠지만 계속 상대하긴 껄끄러웠다.

힘 하나는 무식하게 강했으니까.

쾅, 콰앙, 쾅!

투랑이 검강을 때려 부술 기세로 쳐 댔다. 저렇게 격하게 움직이면 호흡이 빨라지는 건 당연한 이치.

저러면 1분도 채 못 가서 독기가 온몸을 잠식할 거다.

“……?”

분명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어째 놈의 움직임이 점점 더 빨라졌다.

게다가 주먹과 발에 실린 힘도 세찼다.

‘수인족이라 오래 버티는 건가?’

그래 봤자 얼마 못 가 퍼지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몇 분이 흘렀다. 벌써 수백 합은 섞었다.

하지만 투랑의 피부엔 작은 반점조차 생기지 않았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내 독공이 안 통한다고?’

하지만 상위 심법을 익힌 게 아니면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없는데?

“…네놈. 어떻게 독공을 맞고 멀쩡한 거냐!”

“몸에 좋은 사과를 먹었거든!”

투랑의 대답에 당재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뭔 개소리지?

그는 알 턱이 없었다.

정도현이 투랑과 강유라를 위해 세계수의 열매를 백승아한테 맡겨 뒀단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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