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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45화 (145/240)

145화

서아린은 정도현과 함께 상영관에 들어왔다.

내부는 어두컴컴했지만, 그녀 눈에는 관객들의 모습이 아주 잘 보였다.

대부분 커플이었다. 하긴, 장르가 로맨스니까 당연하겠지.

‘저쪽은 손잡고 있네.’

앞줄에 앉은 커플은 단란했다.

서아린은 그들을 빤히 훔쳐보다 고갤 돌려 정도현을 흘끔 바라봤다.

그녀는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할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포기했다.

‘갑자기 손잡으면 이상하게 보이겠지.’

그래, 서두르면 잘될 것도 안 된다고 그랬어. 서아린은 그렇게 애써 변명했다.

“그나저나 너도 영화 좋아하는 줄 몰랐네.”

“…네?”

“다른 걸 부탁할 줄 알았거든.”

정도현이 탄산음료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그 말에 서아린은 뚱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영화 보는 게 목적이 아니라 당신과 같이 있고 싶어서 온 건데.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원.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거 아냐?’

전투에 돌입하면 빠릿빠릿한데, 유독 이런 쪽에선 헛다릴 짚어 댄다.

서아린 눈에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였다.

“…뭐, 싫어하진 않죠.”

서아린은 대충 얼버무리곤 팝콘을 몇 개 집어 먹었다.

잠시 뒤, 영화가 시작됐다.

내용은 뻔했다. 예상한 내용만 흘러나오자 지루하기 짝에 없었다.

그래선지 하품이 절로 나왔다.

“……?”

고갤 옆으로 돌린 채 입 가리고 하품하던 서아린.

어떤 남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 남자가 황급히 고갤 돌린다.

하는 행동이 영 수상쩍었다.

처음부터 영화가 아니라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뭐지?’

괜스레 섬뜩했다. 성난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경계심이 바짝 곤두섰다.

마치 던전에서 몬스터와 마주친 느낌이다.

심지어 저 남자는 플레이어도 아닌 일반인이었다. 머리 위에 시스템 정보가 보이지 않았다.

마력도 일절 느껴지지 않았고.

서아린은 모르는 척 고갤 돌리곤 스크린을 바라봤다.

그리곤 정도현한테만 겨우 들릴 만큼 목소릴 낮춰 말했다.

“도현 씨.”

“응?”

“요새 던전에 자주 들어가서 예민해진 걸지도 모르겠는데. 제 왼쪽 뒷줄 끝자리에 있는 남자가…….”

“나도 알아. 우리 쳐다보는 거.”

“…네?”

정도현이 안색 하나 안 바꾸고 그리 말했다. 역시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서아린은 이제 영화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안면이 굳고 저도 모르게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진정해, 티 내지 말고.”

“…아.”

정도현이 긴장한 서아린의 손등에 손을 포갰다. 그 따스한 감촉에 그녀의 귀가 움찔했다.

뺨이 제멋대로 붉어졌다.

“네가 말한 남자 말고도 두 명 더 있어.”

“…세 명이나 있어요?”

“응. 표 살 때부터 우릴 감시하더라고.”

서아린은 우연히 한 명 찾아냈지만, 정도현은 처음부터 저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보니까 플레이어는 아니던데요.”

“일반인은 절대 아니야. 기분 나쁜 마력이 느껴져. 제법 교묘하게 감췄어.”

무공 스킬 중엔 상대의 기를 읽어 내는 기법도 있었다.

그러니 저들처럼 마력을 감추는 등의 얄팍한 수작은 그에게 통하지 않았다.

“…흑마법사일까요?”

“모르지.”

마녀일 수도 있어. 정도현은 무심코 밤의 마녀를 떠올리곤 그렇게 중얼댔다.

그 마녀도 자신을 감시했으니까.

이번엔 까마귀가 아니라 사람을 붙여 둔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굳이 날 감시할 이유도 없는데.’

물론 불가침 조약이었다.

단순히 감시만 하는 건 맹약 위반까진 아닐 터.

하지만 그걸 들켜 버리면 밤의 마녀 쪽이 불리하다.

그와의 갈등을 피하려고 먼저 동맹을 제안했는데, 한 번 들켰던 짓을 또 시도했을까?

‘다른 세력이면…….’

다른 암흑가의 지배자가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손정규가 죽었단 걸 벌써 알아챘단 소리.

‘어떻게 알았지?’

유일하게 아는 인간, 박건수한테 피의 맹약을 걸어 뒀는데.

살인 멸구도 고려해 봤으나 녀석을 죽이면 그건 또 그거대로 소문이 퍼진다.

누군지는 몰라도 피의 맹약을 무시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나 보다.

“일단 시민들이 없는 곳으로 가자.”

“…알았어요.”

서아린은 저도 모르게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영화를 못 봐서가 아니라, 그와 함께 있는 이 시간을 방해받아서 그랬다.

그녀의 반응에 정도현은 우는 아이를 타이르듯 말했다.

“삐치지 마. 영화야 다음에 다시 보면 되지.”

“…그런 거 아니에요.”

그의 오해에 서아린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 * *

영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정도현 일행이 밖으로 나갔다.

둘을 감시하던 이들도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설마 눈치챘나?’

「핏빛 장막」으로 마력을 갈무리해서 못 느꼈을 텐데?

서아린과 눈이 마주치긴 했지만, 단순한 우연으로 넘길 만큼 찰나였다.

“그러고 보니 표를 살 때도 저 남자가 우리 쪽을 한 번 쳐다봤었어.”

“뭐?”

“진짜로 눈치챈 거야?”

“그땐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직감을 올려 주는 스킬이라도 있나 보군.”

친위대의 눈빛이 싹 바뀌었다.

오늘은 조용히 감시만 하려 했는데 저들에게 들켜 버렸다.

타겟들이 경계심을 품어 버렸으니 이제 감시는 물 건너갔다.

친위대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빈손으로 돌아가면…….”

“여제께서 우릴 가만두지 않으시겠지.”

“이렇게 된 거 그냥 둘 다 끌고 가자.”

누군가가 낸 의견에 나머지 둘도 동조했다. 감이 좋아서 알아챘으면 뭐 어쩔 건가.

어차피 94, 83레벨. 그들의 적수가 못 됐다.

“이쪽이다.”

친위대가 코를 킁킁대며 정도현 일행이 남긴 체취와 피 냄새를 추적했다.

그들은 철혈의 여제께 직접 피를 하사받은 권속.

그래서 흡혈귀의 능력도 일부 쓸 수 있었다.

“이 방향이면 시내 바깥인데…….”

“설마 우릴 꾀어내려는 건가?”

“흥, 건방지긴.”

친위대도 정도현 일행의 노림수가 뭔지 눈치챘다.

아무래도 그들을 일반인으로 착각하고 꾀어내거나 따돌리려는 모양.

하지만 그들은 흡혈귀의 능력으로 마력을 감췄을 뿐, 엄연한 플레이어였다.

심지어 정도현 일행보다 레벨도 더 높았다.

“찾았다.”

도망쳤던 정도현 일행을 따라잡았다.

하지만 바로 습격하진 않았다.

번화가라 주변에 이목이 너무 많았다.

‘어이, 기다려라!’

멈칫.

정도현 일행의 머릿속에 친위대의 육성이 울려 퍼졌다.

흡혈귀의 스킬, 「피의 공명」이었다.

시야에 있는 대상에게 초음파처럼 마력의 파장을 쏘아, 말을 전하는 능력이었다.

지금처럼 남몰래 대화를 주고받을 때 아주 유용했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도망친 거 아닌데.]

‘…어떻게!?’

정도현도 친위대처럼 머릿속에 직접 말을 걸었다.

인간이 「피의 공명」을 쓰다니?

그가 쓴 건 「전음」이라는 무공 스킬이지만 친위대는 거기까진 몰랐다.

「피의 공명」과 「전음」은 원리도 똑같았기에 구별할 수도 없었다.

‘도망친 게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엄한 사람들 말려들까 봐 그런 거지. 조용히 따라와.]

자길 따라오란 말에 친위대는 정도현을 비웃었다.

쥐뿔도 없는 게 허세 부리기는.

그러다 친위대 한 명이 웃음기를 싹 지우곤 동료들한테만 「피의 공명」을 사용했다.

‘좀 이상하지 않아?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본데.’

‘…함정을 파 둔 건가?’

‘어쩌면 석화의 마도사를 죽인 녀석을 불렀을지도 몰라.’

정도현과 서아린은 무섭지 않지만, 석화의 마도사를 살해한 존재는 두려웠다.

그들의 힘만으론 역부족일 터.

‘어쩌지?’

‘그냥 여기서 싸우면 안 돼?’

‘그건 안 된다. 여제님께서 괜한 분란 일으키지 말라 하셨잖아.’

친위대는 저들끼리 숙덕대며 작당 모의를 했다. 잠시 뒤, 셋의 의견이 하나로 뭉쳐졌다.

친위대의 대표가 정도현에게 말을 걸었다.

‘좋아. 장소를 옮기지. 대신 너희가 우릴 따라와라. 안 그러면 여기 있는 시민들을 죽이겠다.’

정도현이 시민들의 안위를 걱정하던 걸 역이용했다.

협박은 효과가 있었다. 정도현의 눈썹이 불만스럽단 듯 올라갔다.

그가 고갤 끄덕였다.

[알았어. 따라가지. 앞장서.]

* * *

친위대와 정도현 일행은 한참을 달려 외진 곳에 도착했다.

주변에 사람도 없겠다, 친위대는 꽁꽁 억눌러 둔 마력을 내뿜었다.

안구가 시뻘겋게 물들고, 송곳니는 뾰족이 자라나 입술 아래로 툭 튀어나왔다.

손톱도 맹수 못지않게 길쭉해졌다.

플레이어가 아니라 몬스터 같았다.

[???] [LV.98]

[???] [LV.96]

[???] [LV.95]

한 명은 대형 길드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레벨이 높았다. 다른 두 명도 그리 만만치 않았다.

서아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저런 사람들이 왜 우릴 감시한 걸까.

“95레벨만 맡아 줘. 나머진 내가 맡을게.”

“네.”

정도현이 칼을 뽑으며 서아린에게 말했다.

둘의 대화에 친위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리 레벨을 보고도 맞서 싸우겠다고?

“꼴에 장비템은 좋은 걸 쓰나 본데. 그거 믿고 까부는 거면…….”

타앗-!

친위대 대장이 뭐라 말하는데 정도현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측면에서 바람을 가르며 검기가 날아든다.

그가 기겁하며 손톱으로 쳐 냈다.

카아앙-!

친위대 대장은 당황했다. 대지를 밟고 있는 감촉이 사라졌다.

검기에 담긴 힘이 어찌나 센지 순간 공중에 떴다.

‘내가 밀렸다고?’

아니다. 순간 허를 찔려서 이렇게 된 거다.

친위대 대장은 그렇게 위안하며 팔을 크게 휘둘렀다.

여제님께 데려가야 하니 죽이면 안 되지만, 팔 하나쯤 날려 버려도 상관없겠지.

콰직-!

한쪽 팔이 뜯겨 날아갔다.

정도현이 아니라 그의 팔이.

“끄흡…!?”

친위대 대장이 어깨를 부여잡고 물러났다.

밀려난 것도 모자라 팔까지 잃었다.

고작 94레벨한테 말이다.

친위대 대장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이 개새끼가!”

촤악!

어깨에서 줄줄 쏟아지던 혈액이 암기처럼 변해 쏘아졌다.

정도현이 잔상을 남기며 좌우로 피했다.

타앙-!

그가 땅을 박차며 방향을 확 꺾었다.

친위대 대장이 급히 고갤 돌렸다.

이번엔 그가 아닌 96레벨 친위대를 노린다.

“허억!”

쾅!

정도현의 칼질 한 번에 친위대가 피를 토하며 멀리 날아갔다.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상대를 순식간에 몰아붙였다. 심지어 두 명을 동시에.

“도, 도와줘!”

우리만으론 속수무책이다. 셋이서 덤벼야 한다.

친위대 대장이 그렇게 판단하고 남은 동료를 불렀지만, 그 한 명은 서아린이랑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뭐, 뭐 하는 거야! 82레벨이잖아! 뭘 쩔쩔매고 있어!”

“…큭!”

서아린의 시커먼 단검에 닿을 때마다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둠의 마력이 친위대의 마력과 방어력을 무시한 탓이다.

게다가 현란한 단검술에 현혹되어 눈 둘 곳을 모르겠다.

“젠장!”

친위대 대장은 어쩔 수 없이 남은 동료의 조력은 포기하고 정도현에게 달려들었다.

꾸물-!

달리는 도중 잘린 팔을 주워 절단면에 갖다 댔다. 팔의 근육과 살점이 순식간에 이어졌다.

그걸 본 정도현이 그립단 표정으로 중얼댔다.

“오, 재생 능력. 간만에 보네.”

“뒈져라!”

“흐아아압!”

친위대 두 명이 사력을 다해 합공을 펼쳤다. 시뻘건 마력으로 덮인 손톱을 마구 휘젓는다.

하지만 정도현은 여유롭게 공격을 쳐 내고 흘려보냈다.

“이, 이럴 리가… 커헉!?”

푹!

옆에 있던 동료의 목젖에 칼날이 꽂혔다.

96레벨 친위대가 무릎을 꿇더니 털썩 쓰러졌다. 친위대 대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망쳐야 한다!’

이길 수 없다. 뭐, 저딴 괴물이 다 있어.

친위대 대장은 동료들을 내버린 채 혼자 도망쳤다.

“어딜 가려고.”

정도현은 달아나는 그를 향해 반월참을 마구 날렸다.

촤자자작-!

피한다고 피해 봤지만 결국 따라잡혔다.

검기가 지나가며 팔다리를 토막 냈다.

친위대 대장이 균형을 잃고 넘어져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끄, 끄허… 허윽…….”

친위대 대장은 떨어져 나간 사지를 주워다 어떻게든 이어 붙이려 꼴사납게 기었다.

정도현이 걸어왔다. 서아린 쪽은 걱정도 안 되는지 걸음걸이가 아주 느긋했다.

실제로 서아린은 친위대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친위대의 전신은 상처투성이였고, 그녀는 그가 흘린 피만 뒤집어썼을 뿐 아주 멀쩡했다.

저기도 곧 결판이 날 것 같았다.

“이, 이 자식…….”

퍼억!

정도현이 친위대 대장의 가슴팍을 발로 짓밟았다.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지만, 몸이 꿈쩍도 안 했다. 정도현이 그를 내려다보며 질문했다.

“너흰 어디서 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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