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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30화 (130/240)

130화

위대한 사냥꾼의 활.

착용 조건 LV.80의 에픽 등급 무기.

이 활은 다른 에픽 무기들과 달리 강력한 공격 스킬이나 능력치 상승 효과는 없었다.

끽해야 짐승형 몬스터 한정으로 추가 피해를 입히는 게 전부.

하지만 그 어떤 에픽 무기로도 대체할 수 없는 특수 효과가 있었다.

이 활로 타격을 준 대상은 ‘도주 불가’ 디버프에 걸린다.

“포기해. 이제 도망 못 치니까.”

“…….”

친절하게 설명해 줬는데 진규현이 죽일 듯이 노려봤다.

정도현은 사냥꾼의 활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검을 뽑았다.

스윽.

진규현은 옆구리에서 손을 뗐다.

별도의 치료 조치 없이도 상처가 다 아물었다. 인간 같지 않은 재생력이다.

‘인간이 아니긴 하지.’

정도현은 그의 머리 위에 달린 고양이 귀를 봤다. 저걸 보니 「묘인화」를 쓴 서아린이 떠올랐다.

둘 다 80레벨 찍어서 곧 이주 시험 본다고 했는데.

“너, 마탑의 실험체였다며?”

타앗-!

진규현은 대답 대신 맹수처럼 달려들며 손톱을 들이밀었다.

채앵, 챙!

검기와 손톱이 부딪힐 때마다 살벌한 마찰음과 함께 불똥이 터졌다.

맨손이었지만 마치 날붙이를 휘두르는 것 같았다.

진규현과 공방을 주고받던 정도현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94레벨인데 되게 강하네. 그 근육질 마녀보다 강해.’

수인족 특성상 피지컬 면에선 인간보다 훨씬 우월할 수밖에 없다.

동레벨 플레이어와 능력치를 비교해 보면 진규현이 한참 앞설 터.

게다가 그의 얼굴은 순백교의 영혼 낙인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아직 87레벨에 불과한 정도현이 이렇게 맞받아치는 건 자연의 섭리에 맞지 않았다.

“이 괴물 같은 놈이!”

진규현이 그렇게 외치며 뒤로 거릴 벌렸다.

그러나 일정 거리만큼 멀어지자 경고 문구가 표시됐다. 그의 다리가 제멋대로 멈췄다.

그사이에 정도현은 스토커처럼 바짝 달라붙으며 말했다.

“말했잖아. 도망 못 친다고.”

“…큭!”

진규현이 질색하며 팔을 휘저었다.

뾰족한 손톱들이 어지럽게 날아들었다.

정도현은 차분히 막아 내며 패턴을 읽었다.

카앙-!

어느 순간부터 정도현의 검이 상대보다 한발 앞섰다.

그러자 팽팽하게 유지되던 전투의 흐름이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이제 진규현은 공격을 막아 내기에 급급해졌다. 잠깐이라도 한눈팔면 목이 달아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아직 버틸 만해!’

절대 혼자 싸우면 안 된다고 교주가 그렇게나 겁을 줬는데 생각보단 할 만했다.

그는 묘인의 힘을 얻은 이후로 체력과 지구력에는 자신 있었다.

아무리 정도현이 괴물같이 강해도 사람인 이상 체력적인 한계가 있을 터.

이대로 쭉 버틴다면 분명 그보다 먼저 지칠 거다.

그때가 역습할 타이밍이다.

진규현이 그렇게 판단했을 때.

정도현이 손톱을 쳐내며 친구한테 잡담하듯 자연스레 말했다.

“내가 얼마 전에 근육질 마녀랑 싸운다고 뇌기가 거의 다 떨어졌거든? 급속 충전 좀 할게.”

“…뭐?”

터엉-!

정도현이 칼을 크게 휘둘러 그를 밀쳐 냈다.

쭉 밀려나던 진규현은 도주 불가의 효과로 몸이 우뚝 멈췄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인의 손이 자신의 몸을 붙잡은 느낌이다.

‘근육질 마녀? 방전돼서 충전한다고?’

영문 모를 소리에 진규현은 갈피를 못 잡았다. 저 녀석 혹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건가?

그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정도현이 매직 스크롤을 꺼냈다.

“이런 미친…….”

매직 스크롤이 빛나더니 정도현 주위로 거대한 마력이 몰려들었다.

진규현은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상급 매직 스크롤이라고?’

파직, 파지직!

정도현의 손바닥 위에 시뻘건 벼락 구체가 생겼다.

진규현은 온 신경을 집중시키며 그 구체만 주시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투사체 주문은 피하기 쉬운 편이다.

진규현은 자세를 바짝 낮추고 어느 방향으로든 뛸 수 있게 대비했다.

그 모습에 정도현이 웃으며 말했다.

“다들 그러더라. 상급 주문 보면 쫄아서 거리를 벌리거나, 피하려 하는 거.”

“……?”

“그 덕에 편하게 충전할 수 있거든.”

진규현은 그가 뭐라는 건지 전혀 이해를 못 했다. 그러자 정도현이 몸소 시범을 보여 줬다.

파지지직-!

몸속으로 전격이 쭉쭉 흘러들어왔다.

무려 상급 주문의 마력을 한 줌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진규현은 인형의 마녀 못지않게 아연실색했다.

“아니, 뭐 저딴 새끼가…….”

콰르릉-!

천뢰격이 우렁차게 포효하며 진규현의 불평을 삼켰다.

진규현은 도망칠 수도, 그렇다고 나아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정도현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끄흡!”

파직, 파지지직!

검기를 쳐낼 때마다 수십, 수백 개의 날카로운 바늘을 삼킨 기분이다. 온몸이 따끔했다.

진규현이 고통 섞인 신음을 흘렸다.

반면에 정도현은 칼질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 * *

한편, 아카데미를 경호하던 요원들은 갑자기 출몰한 슬라임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이것들 대체 뭐야!”

“근처에 게이트라도 붕괴한 거 아냐?”

“그럴 리가! 여긴 중앙이라고. 안전지대잖아.”

안전지대란 차원 게이트가 발생하지 않는 특수한 지역을 뜻한다.

왜 그런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덕에 안전지대의 땅값은 아주 비쌌다.

C구역 중부는 전부 안전지대였다.

그렇기에 아카데미 같은 중요한 시설들이 밀집됐고, 자연스레 C구역의 수도로 발전해 왔다.

슬라임을 갈기갈기 썰어 대던 요원이 따지듯 물었다.

“그럼 이건 다 어디서 튀어나온 건데!”

“누가 소환한 거 아닐까?”

“그 말은…… 아카데미를 상대로 테러를 저질렀다고?”

아직 확실친 않지만 그게 사실이면 정말로 미친놈이었다.

요원들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범인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졌다.

“이 슬라임. 약한데 더럽게 안 죽어!”

“재생 못 할 때까지 계속 뭉개 버려!”

퍽, 퍼억, 콰직!

요원들은 고작 슬라임 몇 마리 때문에 몇 분이란 시간을 지체했다.

푸른 슬라임들은 평범한 슬라임과 달랐다. 변종 몬스터인지 재생력이 특출났다.

약점인 핵을 파괴하지 않으면 갈가리 찢어 버려도 저들끼리 다시 뭉쳐 서서히 재생한다.

심지어 마법에 내성까지 있는지 극상성인 화염 주문으로 지져도 잠시 쭈그러들 뿐, 가만히 놔두면 원래대로 복구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슬라임의 레벨이 70 초반 정도로 낮다는 점이다.

만약 이보다 레벨이 더 높았으면 상대하기 벅찼으리라.

“어?”

“왜 그래?”

“저기 지나가는 여자 요원 좀 봐 봐.”

슬라임을 망치로 내리찍던 요원은 어디론가 급히 뛰어가는 여자 요원을 발견했다.

권하율이었다.

망치를 든 요원이 멍하니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자 동료가 한심하단 눈으로 말했다.

“지금 여자 구경할 때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냐. 야, 이 새끼 또 부활한다!”

동료의 핀잔에 망치를 든 요원이 억울하단 표정을 지었다.

완전히 뭉개 버렸던 슬라임이 꾸물대며 재생하려 들자, 그 요원은 질린 얼굴로 망치를 번쩍 치켜들었다.

쾅-!

땅바닥과 함께 슬라임 점액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렇게 몇 분이 더 지나서야 얼추 정리됐다.

요원은 망치와 방어구에 묻은 끈적한 점액을 털어 내며 생각했다.

‘방금 여자 요원이 지나갈 때 주변 슬라임들이 아예 공격을 안 하던데. 대체 뭐였지?’

요원은 이유가 궁금했지만 권하율은 이미 저 멀리 가버렸다.

‘그냥 운이 좋았거나 내가 잘못 봤겠지.’

요원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슬라임은 아직 여기저기 들끓고 있고 구할 시민은 많았다.

* * *

정도현의 작전이 시작되기 전, 권하율은 여동생에게 연락해 따로 만나기로 했다.

그녀는 여동생이 기다리는 장소에 도착했다.

“아, 언니!”

“무사해서 다행이다.”

권하율은 권하루를 보자마자 꼭 끌어안았다.

종종 통화는 했었지만, 얼굴을 마주한 건 2년 만이었다. 너무 반가워서 그런지 손이 멋대로 나갔다.

“언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설명 좀 해 줘.”

“그게…….”

통화로는 똑 부러지게 설명해 주지 못했다. 혹여나 관리국이 이번 사건을 조사하다 그녀의 통화 내용을 열람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만나서 얘기해 주겠다고 얼버무렸었다. 권하율은 동생에게 사실을 전했다.

“테, 테러……?!”

“응. 그래서 시민들을 대피시켜야 했어.”

정도현은 선수를 치기로 했다.

테러가 터지기 전에 가짜 테러를 일으켜, 시민들을 아카데미에서 내보낸 것이다.

그럼 순백교 놈들은 허탕만 칠 터.

“그럼 저 슬라임들은…….”

“언니의 동료가 풀어 둔 몬스터야. 사람들을 습격하는 척 연기하고 있어.”

정확히는 동료가 아닌 소환수였지만, 정도현은 굳이 거기까진 말해 주지 않았다.

“그럼 그 테러범들은 지금 어딨어? 설마…….”

“아카데미를 샅샅이 수색했는데 아직 못 찾았어. 넌 혹시 수상쩍은 사람 못 봤어?”

“…수상쩍은 사람?”

언니의 질문에 권하루는 무심코 누군가가 떠올렸다.

있었다. 수상쩍은 사람이.

고양이로 변할 수 있고,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이름 모를 아저씨.

동생의 속마음을 듣던 권하율은 눈썹이 꿈틀했다.

“…그 사람이야.”

“그 사람? 그 아저씨가 왜?”

권하루는 언니의 「독심술」에 이미 적응했다. 그래서 앞뒤 문장을 생략해도 무슨 소린지 곧바로 이해했다.

방금 고양이 아저씨를 떠올렸으니, 언니가 말한 그 사람은 틀림없이 그 아저씨일 거다.

“공간 이동 능력자. 그 남자가 테러범들을 아카데미로 침투시키는 역할을 맡았어.”

“……!”

그 말에 권하루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아저씨가 테러범들이랑 한통속이었다고?

그제야 그녀도 아저씨가 한 말이 이해됐다. 기숙사에서 절대 나오지 말라고 했던 이유가.

‘내가 테러에 휘말릴까 봐 그랬던 거야.’

권하루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아저씨와 만난 건 고작 한 달.

그중에서 그와 제대로 대화해 본 시간은 십여 분에 불과했다.

그러니 사실상 남이다.

“언니. 그 아저씨는… 죽는 거야?”

“…….”

권하율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동생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그녀도 이해했으니까.

그 남자는 몇 주 전, 권하루가 심적으로 많이 지쳤을 때 나타나 위안을 줬다.

물론 나쁜 목적으로 아카데미에 잠입한 거였지만, 알게 모르게 동생을 지탱해 준 건 사실이었다.

“…잘 모르겠어. 하지만 악용하면 너무 위험한 능력이야.”

그러니 사살될 확률이 높았다.

권하율이 냉정하게 말하자 권하루는 힘없이 고갤 떨궜다.

“…회유하는 건 안 돼? 내가 한번 설득해 볼게.”

“불가능해. 순백교 신도들은 교주를 배신할 수 없어. 그랬다간 영혼을 빼앗겨서 죽거든.”

“아…….”

언니의 설명에 권하루는 절망감과 직면했다.

진규현이 범죄자와 한패인 건 잘 알겠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

그녀는 도저히 진규현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게 돕고 싶었다.

“내 동료가 그 남자를 찾고 있을 거야.”

정도현은 예전에 순백교 간부한테서 빼앗은 영혼석의 목걸이가 있었다.

그걸로 진규현을 찾아보겠다며 그는 단독으로 움직였다.

정도현이라면 분명 늦지 않게 찾아냈을 터.

“언니 따라와. 빨리 대피하자.”

정도현이 진규현을 못 찾았거나 놓쳤을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아카데미 안에 있는 건 위험하다. 시민들과 함께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만 했다.

“언니, 부탁이야…… 그 아저씨 좀 살려 줘…….”

그런데 권하루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지난 3년 가까이 쌓였던 설움이 한꺼번에 몰려온 것이다.

언니 외엔 아무도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었다. 그런 사람이 죽는다고 생각하자 서러웠다.

동생이 울면서 애원하자 권하율은 말문이 막혔다.

나랑 통화할 땐 늘 강한 척했지만, 역시 속으로는 많이 힘들었구나.

권하율은 동생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아직 확실친 않지만…… 그 남자, 안 죽을지도 몰라. 언니의 동료가 한번 설득해 보겠다고 했거든.”

“뭐? 하지만 아깐 회유가 안 된다고 했잖아…… 배신하면 죽는다면서?”

“그런 게 있어.”

엘릭서를 쓰면 영혼 낙인도 지워질 거다.

‘정도현 씨는 그 남자를 포섭해, 뭔가 계획을 꾸미고 있어.’

어떤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남자가 정도현에게 협력한다면 목숨만은 건질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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