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1원 상점-120화 (120/240)

120화

황금의 악마, ‘아우룸’.

그는 마력을 소모해 황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지녔다.

황금은 인류에겐 오랫동안 화폐 혹은 귀금속으로 쓰였다.

그렇기에 그와 계약하길 원하던 흑마법사와 마녀가 넘쳤다.

중급 악마로 태어났던 아우룸이 상급 악마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백여 년 전, ‘신의 자손’들이 세상에 나타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그들은 압도적인 힘으로 인류를 순식간에 굴복시켰다.

이후 자신들의 우상인 태양신을 숭배하도록 강요했다.

그들에게 거역한 자들은 죽거나 밖으로 쫓겨났고, 복종한 자들만이 살아남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머릴 조아린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신의 자손들에게 관리자로 선택받았고, 스스로를 ‘영광의 일족’이라 칭했다.

이후 영광의 일족은 저 하늘 위에 계신 신의 자손들을 대신해서 세상을 나누고 관리하게 되었다.

그들은 태양신을 숭배하는 태양교를 창설하고 그 외의 종교들은 이단으로 취급했다.

세상이 그렇게 뒤바뀌는 데 신의 자손이 나타나고 20년도 채 안 걸렸다.

이후로 태양교는 황금을 긁어모았다.

그것이 태양신의 성체(聖體)라 주장하면서.

교단이 웃돈을 주면서 사들이자, 황금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상승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황금이 비싸지면 아우룸의 능력을 원하는 이들도 자연히 늘어날 테니까.

하지만 아우룸은 악마였다.

태양교 사제들 눈에는 그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인간을 잡아먹는 악마 따위가 신의 성체를 만들어 낸다고? 모순이었다.

그러니 녀석이 만든 황금은 가짜다.

신성 모독이다. 그들은 그렇게 부르짖었다.

태양교는 아우룸과 계약한 흑마법사들을 보이는 족족 척살했다.

그를 소환하는 방법이나 능력에 대해서도 감췄다.

그렇게 황금의 악마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러다 무려 수십 년 만에 그를 불러낸 이가 나타났다.

젊은 마녀가 황금의 악마를 불러내는 소환진을 찾아낸 것이다.

그에겐 기적과도 같은 기회였기에 곧장 그녀와 계약했다.

그런데 일 년도 채 안 돼서 계약이 끊겼다. 마녀가 죽은 것이다.

악마는 자식을 잃은 부모처럼 분노했고, 자신을 숭배하는 제단을 통해 차원의 벽을 허물고 강림했다.

[아우룸] [LV.97]

사전 준비나 계약자의 도움 없이 넘어온 탓에 대량의 마력을 소모했다.

하지만 그런 걸 따지기엔 그의 분노가 훨씬 앞섰다.

콰득-!

시커먼 안개에서 커다란 손이 튀어나와 바닥을 긁었다.

이윽고 머리와 몸이 순차적으로 빠져나왔다.

아우룸은 올빼미처럼 생긴 얼굴과 인간 남성의 육체를 지닌 존재였다.

덩치도 거인처럼 커다랬다. 7m는 족히 되어 보였다.

<내 계약자를 죽인 놈이 누구냐!>

악마가 숨을 크게 들이쉬곤 버럭 소리 질렀다.

그의 위압감에 요원과 용병들이 덜덜 떨었다. 권하율조차 조금은 동요했을 정도였다.

정도현만 태연하게 손을 들며 대답했다.

“내가 죽였는데?”

<이 건방진 놈이! 넌 곱게 죽이지 않겠다.>

요원과 용병들은 바짝 얼어붙었다.

97레벨. 그들과는 격이 달랐다.

자칫하다간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이봐, 아우룸.”

<뭐냐, 건방진 인간이여.>

“네 계약자는 내가 죽였어. 뒤에 있는 사람들은 관련 없다고.”

<그게 뭐 어쨌단 거냐?>

“저 사람들은 그냥 보내 줘.”

어차피 저들 실력으론 이 싸움에 끼어 봤자 죽거나 다치기만 할 뿐이다.

경험치가 분산될까 봐 이러는 건 아니었다.

<크하핫! 꼴에 동료애는 있단 거냐? 같잖구나, 건방진 인간이여.>

아우룸은 코웃음을 쳤다.

그의 입장에선 정도현의 부탁을 들어줄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그는 모처럼 얻은 계약자를 잃었고, 그 분노를 풀고자 대량의 마력을 낭비해 강림했다.

여기 있는 인간들을 모조리 씹어 삼켜도 수지가 맞지 않는다.

지상으로 올라가 다른 인간들도 먹어 치워야만 되돌아갈 마력을 확보할 수 있을 거다.

<네놈부터 처리한 뒤 나머지 인간들도 모조리 죽여 주마.>

“그래? 그럼 나 죽이기 전까진 아무도 건들지 마라?”

<크하하핫! 인제 보니 건방진 게 아니라 그냥 멍청한 거였구나. 네깟 게 버티면 뭐, 얼마나 버틴…….>

까득-!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정도현이 도핑제를 씹어 삼키며 달려들었다.

권하율도 그 뒤를 따랐다.

“여러분들은 올라가서 지원을 요청하세요!”

권하율이 뒤돌아보며 그렇게 소리쳤다.

그녀를 따르려던 요원과 용병들이 엉거주춤 멈춰 섰다.

요원들은 잠시 눈빛을 교환하더니 그녀가 시키는 대로 돌아섰다.

“이, 이봐! 정말 이래도 되는 거 맞아?”

“우리도 도와야지!”

요원들의 냉정한 행동에 용병들이 당황했다.

고작 둘이서 목숨을 걸고 악마랑 싸우겠다니. 무모했다. 우리도 도와야 승산이 조금은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요원들이 고갤 저었다.

“아까 저 친구 싸우는 거 봤지? 우리랑은 수준이 달라.”

“빨리 나가서 지원을 부르는 게 돕는 거야. 괜히 끼었다간 발목만 잡아.”

용병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요원들 말이 맞았다. 정도현이 마녀를 단숨에 해치운 광경은 잊지 못할 만큼 강렬했다.

그들은 감히 흉내 낼 수도 없었다.

용병들도 납득하곤 발걸음을 돌렸다.

<어딜 도망치느냐!>

아우룸이 마력으로 황금 구슬을 만들었다. 구슬의 직경이 성인 남성만 했다.

아우룸은 그걸 양손으로 붙잡은 뒤 힘껏 내던졌다.

서걱-!

하지만 금빛 포탄은 그들에게 닿지 못했다. 정도현의 검기가 반으로 갈라 버렸다.

<흥, 입만 산 놈은 아니었구나.>

아우룸의 손에서 황금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는 황금빛 액체를 마력으로 조정해 삼지창 모양으로 만들어 굳혔다.

카앙-!

삼지창과 검이 격돌했다.

황금은 사람의 잇자국이 남을 만큼 무른 금속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우룸의 마력이 주입된 황금은 달랐다.

강철보다 훨씬 단단해지는 건 물론이고, 마력 전도율도 월등히 뛰어났다.

카가가강-!

창과 검기가 몇 차례 더 부딪혔다.

도핑제까지 사용했으나 정도현이 힘에서 조금 밀렸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그는 정면으로 받아치지 않고 피하거나 흘렸다.

카각-!

불똥이 팍 튀며 황금의 삼지창이 엉뚱한 곳에 박혔다.

동작이 컸던 탓에 아우룸의 옆구리가 훤히 드러났다.

기회를 엿보던 권하율이 거길 노리고 달려들었다.

<어딜 감히!>

까앙-!

아우룸이 황금으로 손바닥을 덮어 장갑을 만들어 냈다. 황금 장갑이 그녀의 검기를 가볍게 튕겨 냈다.

황금 장갑의 표면에는 작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간지럽지도 않구나, 계집.>

아우룸이 그녀를 비웃으며 주먹을 망치처럼 내리찍었다.

쾅-!

빨랐다. 그녀의 반응 속도론 보고 피하는 게 불가능할 만큼.

「독심술」 덕분에 겨우 피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움직임을 빤히 읽힌 아우룸은 자존심이 상해서 눈을 부릅떴다.

<…운이 좋구나, 계집.>

권하율은 곧장 거릴 벌렸다. 아우룸이 콧김을 훅 뿜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런 그에게 정도현이 질문했다.

“마력으로 황금을 만들어 낸 거냐?”

<그렇다. 내 이름은 아우룸, 일찍이 황금의 악마라 불렸었지. 죽기 전에 똑똑히 기억해 둬라.>

‘검기를 튕겨 내던데, 저걸 어떻게 뚫지?’

마력을 침투시키는 천뢰격은 안 먹힐 것 같다.

설사 통하더라도 내상을 입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터.

도핑제 효과가 다 끝나기 전에 놈을 처치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천뢰격보다 강한 파괴력이 필요했다.

‘파괴력이면 불꽃의 마력이지.’

정도현은 그렇게 판단하고 상급 매직 스크롤을 꺼냈다.

화르륵-!

그의 검에서 불꽃의 검기가 활활 타올랐다.

<화염 주문을 흡수해서 검기로 만든 거냐? 괴상한 재주로군.>

불꽃의 검기를 본 아우룸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우룸도 숨겨 둔 패를 꺼냈다.

스스스-!

그의 전신에서 수은처럼 황금이 흘러나왔다. 그것들이 굳자 마치 황금 갑주를 두른 모양새였다.

황금으로 전신을 감싸다니. 참으로 사치스럽고 성가신 능력이었다.

<크하핫! 어디 내 황금 갑옷을 뚫어 봐라!>

아우룸은 자신만만하게 폭소했다.

그의 마력으로 만든 황금은 모든 종류의 마력에 강한 내성을 지녔고 튕겨 낸다.

그의 황금 갑옷을 뚫으려면 압도적인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도현 개인이 낼 수 있는 위력엔 한계가 있을 터.

‘물론 전신 갑옷을 오래 유지할 순 없지만.’

아우룸은 계약자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이곳에 왔다. 그래서 마력을 상당히 낭비했다.

지금처럼 전신을 황금으로 감싼 상태를 유지하는 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놈들은 그 사실을 모르지.’

둘 다 황금 갑옷을 보고서 전의를 상실했으리라.

두려움에 얼어붙은 인간을 사냥하는 것만큼 쉬운 게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실실 웃을 때.

“정도현 씨. 저 악마, 마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

권하율이 아우룸의 비밀을 떠벌렸다.

정곡을 찔린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계약자 없이 넘어오느라 마력이 얼마 안 남았어요.”

“그럼…….”

“계속 몰아붙이면 황금 갑옷도 약해질 겁니다.”

정도현은 단박에 이해했다. 체력이 풀인데 마력은 얼마 안 남았다 이거지.

놈이 황금 갑옷을 꺼낸 건 압박감을 심기 위한 페이크였다.

‘하마터면 속아 넘어갈 뻔했네.’

권하율이 없었으면 아우룸의 뜻대로 흘러갔을 거다.

그럼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몰라 소극적으로 임했을 터.

그럼 녀석을 쓰러트리기 전에 도핑제 효과가 떨어져 위험했을 것이다.

놈의 약점을 알아냈으니 그걸 노리면 된다.

‘당장은 데미지가 안 들어가도 쫄지 말고 있는 힘껏 패면 된다 이거지?’

녀석은 마력이 고갈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지만, 이쪽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고? 그에겐 마력 포션이 넘쳤으니까.

정도현이 화염검을 앞세운 채 달려갔다. 그가 성큼성큼 다가오자 아우룸이 속으로 당황했다.

저 여자 때문에 계획이 꼬였다.

<제기랄!>

쾅! 콰앙!

아우룸은 창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내리찍으며 정도현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그는 요리조리 피하며 화염의 반월참을 날려 댔다.

쾅! 콰앙!

폭발이 연달아 일었지만 아우룸은 멀쩡했다.

황금 갑옷이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해 준 덕이었다.

하지만 아우룸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공격을 막을 때마다 마력이 줄어들었다. 몸속의 피가 바짝 말라 가는 기분이다.

<…큭!>

아우룸은 어쩔 수 없이 검기를 피했다.

반월참을 계속 막아 내기엔 마력 소모가 극심했다.

검기를 공격 주문처럼 쏴 대다니. 이런 녀석은 처음 상대해본다.

신나게 반월참을 날리던 정도현. 갑자기 그의 팔이 우뚝 멈췄다.

불꽃의 검기가 시들해졌다.

그걸 본 아우룸이 입꼬리를 올렸다.

<크하핫! 그 요상한 기술, 마력 소모가 극심한 모양이지?>

검기를 마구잡이로 흩뿌린 탓에 그의 마력이 금세 바닥났다.

불꽃은 완전히 사그라들었고, 그의 검기도 곧 꺼질 것처럼 희미했다.

‘검기만 없으면 무서워할 필요도 없지.’

평범한 날붙이론 그의 몸에서 피 한 방울 흘리게 만들 수 없을 테니까.

그래. 인간 따위가 이 몸을 궁지에 몰아세울 리 없지.

“권 팀장님. 10초만 버텨주세요.”

“네.”

정도현은 상급 마력 포션을 꺼내들며 그리 말했다.

그걸 본 아우룸이 깜짝 놀라 발걸음을 뗐지만, 권하율이 가만 있지 않았다.

측면에서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렸다.

카앙-!

아우룸은 그녀의 검기를 창으로 쳐낸 뒤 일갈했다.

<벌레 같은 계집이…. 저리 꺼져라!>

아우룸은 날파리를 쫓아내듯 창을 휘둘렀지만, 그녀도 정도현 못지않게 움직임이 유연했다.

상대의 움직임을 완벽히 읽고 피하며 검을 찔러넣었다.

카가각-!

황금 갑옷에 처음으로 생채기가 생겨났다. 마력이 슬슬 부족하다는 신호였다.

‘제기랄, 마력만 충분했으면!’

계약자를 잃은 분노에 휩쓸려 너무 성급히 움직였다.

아우룸이 속으로 후회했지만 그러기엔 이미 늦었다.

등 뒤에서 후끈한 열기가 걸어왔다.

고갤 돌리니 그새 체력과 마력을 회복한 정도현이 시퍼런 불꽃의 검을 들고서 달려온다.

아우룸의 눈동자에 비친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마왕이 따로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