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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00화 (100/240)

100화

정도현과 백승아가 전투에 막 돌입했을 때.

“끄윽! 내, 내 팔이…·.”

강유성은 바닥에 엎드린 채 눈물을 쏟았다. 오른팔의 감각이 사라졌다.

백승아의 주문에 당해서 돌처럼 굳어 버린 탓이다.

팔만 그런 게 아니었다.

왼쪽 발목 아래도 딱딱하게 변했다.

발을 잘못 디뎠다간 뚝 부러질 것 같았다.

앞길이 탄탄대로였던 그가 졸지에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저 여자, 석화의 마녀였어.’

그가 어렸을 적에 삼촌이 말해 줬다.

석화의 마녀, 백승아.

그 여자는 십여 년 전 강철 길드가 관리국과 힘을 합쳐 토벌했던 암흑가 조직의 수장이었다.

삼촌은 그때 다쳐서 생긴 상처 자국을 자랑스레 보여 줬었다.

‘몸이 돌처럼 굳었다고 했었지.’

교단 지부의 도움으로 상급 성수를 써서 석화를 풀었지만, 치료 시기를 놓쳐 심한 흉터가 남았다고 한다.

‘성수, 성수가 필요해!’

이대로 팔 병신이 될 순 없다.

난 장차 강철 길드를 이끌어 갈 몸이란 말이다!

강유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살금살금 호텔 밖으로 걸어갔다.

쾅! 콰앙!

주문과 검기가 부딪히면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등 뒤로 들렸다.

정도현이 백승아를 붙들어 준 덕에 그는 무사히 건물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가 절뚝대며 나오자 누군가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남윤하였다.

“오, 오빠! 괜찮아? 팔다리가…….”

“성수! 성수가 필요해!”

남윤하는 그에게 어깨를 빌려줬다.

하지만 그는 고맙다는 말 대신 충혈된 눈으로 그녀를 노려봤다.

그가 성수를 가져오라며 부르짖었다.

“서, 성수?”

“그래! 몸을 고치려면 성수가 필요해!”

“혹시 성수 가지고 있는 사람?”

“저는 없는데요…….”

“이런, 아무도 없어?”

사람들이 난감해했다.

성수는 교단의 사제들만이 제조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 포션보다 구하기 훨씬 어려웠다.

던전 공략을 준비할 때나 챙겨 가지, 평상시에 갖고 다니는 이는 없었다.

“제기랄! 밖으로 나가야 해!”

퍽! 퍼억!

성수를 얻으려면 여길 빠져나가서 교단 지부로 가는 수밖에 없다.

강유성은 왼쪽 주먹으로 장벽을 마구 두들겼다. 물론 그 정도론 꿈쩍도 안 했다.

주먹의 살점이 찢어지고 피가 팍 튀었다. 그런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빠, 그만해! 그러다 손 망가지면 어쩌려고…….”

“씨발, 이거 놔!”

“꺅!”

남윤하가 팔을 붙잡고 말렸지만 그는 이미 이성을 반쯤 잃었다.

방해하지 말라며 그녀를 옆으로 밀쳤다.

넘어진 남윤하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일어섰다.

“씨발! 깨져! 깨지라고!”

몇 분 동안 벽을 후려치던 강유성도 결국 무릎을 꿇고 포기했다.

다 틀렸다. 성수를 가진 사람은 없고 여기서 탈출할 방법도 없었다.

“성수, 도현 오빠한텐 있을지도…….”

“…뭐라고?”

조세아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좌절했던 강유성이 고갤 번쩍 들었다.

“저, 정도현한테… 성수가 있다고?”

“아, 확실친 않아. 그래도 오빠라면 미리 준비했을 것 같아서.”

정도현은 석화의 마녀가 습격해 올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대비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그 말을 목구멍 속으로 삼켰다.

희망이 보이자 강유성은 좀비처럼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조세아가 질색하면서 뒷걸음질 쳤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 그럼… 정도현한테 성수 좀 달라고 말해봐!”

“…뭐? 내가 왜?”

“내 팔이랑 다리 상태 어떤지 안 보여?”

강유성은 돌로 변한 부분을 들이밀며 역정을 냈다.

누가 보면 성수를 맡겨 놓은 줄 알겠다.

조세아가 픽 웃으며 마치 누구처럼 말했다.

“그쪽이 그렇게 된 건 내 알 바 아니잖아. 까 놓고 말해서 저 여자가 여길 공격한 것도 당신 때문 아냐?”

“이, 이… 씨발년이!”

“진정하세요!”

“저희끼리 싸울 때가 아닙니다.”

“이거 놔! 씨발, 놓으라고! 저 개같은 년 죽여 버릴 거야!”

조세아 특유의 재수 없는 말투에 강유성은 눈이 확 돌아갔다.

주변 사람들이 기겁하며 그를 뜯어말렸다.

지치고 몸도 성치 않았던 탓에 강유성은 사람들을 쉬이 떨쳐 내지 못했다.

그가 악을 쓰며 버둥대던 중.

쩌적-!

돌로 변한 팔뚝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실금이 생겼다.

“아, 안 돼!”

강유성이 기겁하며 멈췄다.

다행히 파편만 떨어지고 부서지진 않았다. 그는 십년감수했다.

하마터면 팔을 영영 잃을 뻔했다.

“당신이 도현 오빠한테 시비 걸었던 건 생각 안 나죠?”

“…….”

그는 그제야 후회했다.

정도현한테 성수가 있더라도 곱게 내줄 것 같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석화의 마녀를 상대로 놈이 살아남을 순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할 때.

콰아앙-!

호텔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누군가가 건물 밖으로 튕겨 나왔다. 백승아였다.

그녀는 자기 몸에다 석화 주문을 둘러서 검기를 막았는지, 돌 부스러기가 후드득 떨어졌다.

주룩.

그녀의 입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며 중얼 댔다.

“…강하네. 이런 괴물이랑 마주칠 게 뭐람.”

“너도 좀 하네.”

“어리면서 건방지긴. 그 점이 귀엽지만.”

무너진 벽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온 정도현도 몸이 성치 않았다.

주문을 쳐 내면서 석화의 마력에 노출된 탓인지 피부 군데군데가 돌처럼 변했다.

‘세계수의 열매를 먹었는데 이 정도라니.’

내성이 높지 않았으면 상당히 위험했을 터.

석화의 마녀는 동레벨인 골리앗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걘 무식하게 힘만 셌는데, 백승아는 여러가지 주문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했다.

게다가 석화 주문을 몸에 둘러 검기를 튕겨 냈다.

마법사인데도 근접 전투가 만만치 않았다.

“이 누나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귀여운 동생?”

“저 녀석 죽이게 해 달라고?”

“응, 그럼 곱게 물러나 줄게. 그 석화도 풀어 주고.”

정도현은 강유성에 비하면 심한 수준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풀릴 정도.

하지만 치료를 제때 안 하면 후유증이나 흉터가 남는다.

백승아는 정도현의 몸을 치료해 주겠다고 협상을 시도했다.

꿀꺽.

둘의 대화 내용에 강유성이 마른침을 삼켰다.

정도현 입장에선 백승아와 끝장을 볼 필요가 없었다.

줄 건 주고 제 몸부터 챙기는 게 현명했다. 그가 정도현이었어도 저 제안을 수락했으리라.

“싫어.”

“…대체 왜?”

정도현이 협상 테이블을 걷어차자 백승아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는 그의 선택이 납득 가질 않았다.

강유성과 같은 길드원도 아니고, 오늘 처음 본 사이면서 목숨을 걸고 지킨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닐까.

“그래, 누나랑 끝장을 보겠단 거지?”

백승아가 체내의 마력을 강제로 가속시켰다.

내상을 각오하고 마력을 폭주시켜 주문의 위력을 끌어올린 것이다.

그녀의 행동에 정도현은 피식 웃으며 상급 매직 스크롤을 꺼냈다.

“난 뭐, 그런 거 못 할 줄 알아?”

“……!”

파지지직-!

그가 상급 주문의 마력을 절반 가까이 흡수하자 황금빛 천뢰격이 생성됐다.

예전 같았으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젠 레벨업과 비약을 통해 전반적인 능력치가 올라가서 버틸 만했다.

“너, 대체…….”

백승아의 목소리에서 나른함이 싹 가셨다.

정도현이 황금빛 벼락을 쥐고 돌격해 온다. 백승아는 곧바로 대응했다.

땅을 짚자 정도현의 사방에서 거대한 돌벽이 솟구쳤다.

그것들이 그를 깔아뭉개고자 덮쳤다.

콰아앙-!

정도현은 힘으로 돌파했다.

황금빛 벼락 줄기가 벽을 깨부쉈다.

그는 무너지는 파편들을 피하거나 쳐 내며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

하지만 백승아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블링크 주문으로 공간을 도약한 것이다.

그녀가 향한 곳은 강유성과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지점.

‘지더라도 강유성만은 죽여야겠다?’

정도현은 그녀의 속마음을 읽었다.

블링크 같은 이동용 주문은 쿨타임이 길었다.

그러니 근접전에 취약한 마법사한테 목숨 줄과도 같은 스킬.

그걸 저렇게 낭비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복수하고 싶었나 보다.

‘저놈이 죽든 말든 별로 상관없지만.’

눈앞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건 영 찝찝했다. 내가 이겨도 왠지 진 것 같달까.

정도현은 인벤토리에서 중급 매직 스크롤을 꺼냈다.

“너만 쓸 수 있는 거 아니라니까?”

“……!”

그 스크롤에는 「블링크」가 담겨 있었다.

정도현이 공간을 뛰어넘으며 칼을 휘둘렀다. 황금빛 검기가 백승아를 덮쳐 왔다.

그녀는 다급히 마력파를 손으로 쏘아 냈다.

콰아아아-!

검기와 석화의 마력이 허공에서 부딪혀 마구 뒤엉켰다.

퍼엉-!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지며 돌풍이 휘몰아쳤다.

정도현과 백승아는 제각기 뒤로 밀려나며 땅바닥을 뒹굴었다.

둘은 동시에 일어섰다.

똑바로 일어선 정도현과 달리 백승아는 휘청대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허약한 육체가 한계를 맞이한 듯했다.

“허억, 헉…….”

정도현이 싸움을 마무리 짓고자 달려온다.

‘졌네.’

그녀는 속으로 패배를 인정하고 최후의 주문을 준비했다.

지더라도 곱게 죽어 줄 마음은 없었다.

이건 수용소의 투견들과 싸움을 치르며 갈고 닦은 비기였다.

“「메두사」.”

그녀의 흰자위가 먹물처럼 시커멓게 물들었다.

「메두사」는 시야에 들어온 대상을 빠르게 석화시키는 주문이다.

그 대신 대량의 마력과 생명력을 소모한다.

지금처럼 몸이 엉망인 상태에서 발동하면 반드시 죽을 터.

‘아쉽네.’

동생의 복수를 완수했더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지만, 결국 강지호 길드장을 죽이는 덴 실패했다.

그래도 아들보다 더 아꼈다던 조카의 인생을 망가뜨렸으니 그걸로 만족해야겠지.

그 비열한 놈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보고 싶었는데.

“…크윽!”

「메두사」가 발동되자 정도현의 몸 곳곳이 돌로 변했다.

그런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엄청난 정신력이네.’

게다가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정도현의 마법 저항력은 엄청났다.

이 정도 레벨 차이였으면 진즉 전신이 굳었어야 정상일 텐데.

“내 인생 최고의 5분이었어.”

석화의 마도서를 얻고 이렇게 치열히 싸워 본 건 오랜만이었다.

백승아가 그렇게 중얼대며 유언을 남겼다.

서걱-!

섬광이 지나가자 백승아의 머리가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녀를 처치하자 정도현의 석화도 멈췄다.

하지만 이미 돌로 변한 부분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빠, 괜찮아……?!”

조세아가 달려와 주저앉은 정도현을 부축했다. 한눈에 봐도 심각한 상태.

그녀의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졌다.

정도현은 호들갑 떨지 말라며 그녀를 다독였다.

그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누군가가 오열했다.

“안 돼… 이럴 순 없어!”

소리 지른 건 강유성이었다.

그는 전투의 여파에 휩쓸려 크게 넘어졌었다.

그때 돌로 변했던 오른팔은 산산이 쪼개졌고, 발목 아래도 나뭇가지처럼 뚝 부러져 떨어져 나갔다.

저래선 성수를 뿌려도 아무 소용없었다.

‘엘릭서 없으면 못 고치겠네.’

저 녀석이 엘릭서를 구할 방법은 없겠지.

정도현은 인벤토리에서 상급 성수를 꺼냈다.

그걸 몸에 뿌리자 돌로 변한 부분이 서서히 돌아왔다.

“흑, 다행이다…….”

조세아가 코맹맹이 소리로 웅얼댔다.

정도현이 성수를 준비했을 걸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심하게 다칠 줄은 몰랐었다.

그가 던전에서 보여 줬던 압도적인 모습이 그녀의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된 탓이다.

쿠구구구-!

호텔 주변을 둘러싼 장벽이 철거되는 빌딩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술사가 죽어서 주문이 풀린 것이다.

“사, 살았어!”

“정말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트리며 정도현을 구세주처럼 찬양했다.

심지어 남윤하도 강유성을 내팽개치고 정도현한테 쪼르르 달려와 머릴 숙였다.

“저,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도현 씨 덕분에 겨우 살았어요.”

정도현은 남윤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가 그녀를 살려 준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한규리가 이번에 큰 공을 세웠으니 포상을 주고 싶은데, 이 여자만 한 게 또 없을 것 같았다.

‘넘겨주면 죽이든 살리든 한규리가 알아서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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