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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94화 (94/240)

94화

정도현은 납치범을 뒤쫓고자 관리국에 부탁해서 헬기를 빌려 탔다.

덕분에 늦지 않게 납치범을 따라잡았다.

차량을 발견한 그는 훈련받은 군인처럼 겁도 없이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쿵-!

아스팔트가 쩍 갈라지며 발자국이 적나라하게 남았다.

그가 다가오자 납치범은 핸들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정도현의 손이 더 빨랐다.

“내려.”

쨍그랑-!

정도현이 차량 앞유리를 깨부수고 놈의 멱살을 붙잡아 끄집어냈다.

“큭!”

[조유빈] [LV.86]

끌려 나온 사내는 86레벨. D구역에 있을 만한 놈이 아니다.

‘C구역에서 내려온 탈옥범인가?’

맞든 아니든 만만한 상대는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정도현도 해방단 간부들을 사냥한 후로 한층 강해졌다.

‘81레벨 주제에 무슨 힘이……?!’

쾅-!

납치범의 생각은 거기서 이어지지 못했다.

정도현이 아스팔트 위에 그를 힘껏 메다꽂았다.

“커헉!”

놈이 비명을 뱉었다.

정도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퍼버버벅-!!

상대방을 깔아뭉갠 채 주먹으로 얼굴을 두들겨 팼다.

“뭐, 뭐야?”

“싸움 났는데?”

“말려야 하는 거 아냐?”

도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싸움이 벌어지자 시민들이 차에서 내리더니 웅성댔다. 몇몇은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말려야 하지만 분위기가 너무 살벌해서 아무도 다가갈 수가 없었다.

삐이이이-!

시내에 사이렌이 울렸다. 이건 현장에서 조속히 대피하라는 뜻이었다.

사이렌 소리에 시민들이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차를 버리고 도망쳤다.

그 와중에도 정도현은 폭력을 멈추지 않았다.

덥석-!

납치범, 조유빈이 손목을 붙잡고 공격을 저지했다.

그가 붉게 물든 치아를 씩 드러내며 말했다.

“크흐흐… 너도 있네?”

“뭘?”

“개인 특성.”

“…….”

정도현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댔다.

이 녀석, 어떻게 알았지?

표정과 눈빛이 확신으로 차 있다. 그냥 넘겨짚은 건 아닌 듯한데.

“자세한 얘긴 관리국 가서 찬찬히 나누자.”

“벌써 이겼다고 생각해?”

“……?”

꽈아악-!

조유빈의 손아귀 힘이 급격히 강해졌다. 게다가 눈에 확 띄는 신체 변화도 보인다.

‘문신?’

스스스-!

시커먼 문신이 놈의 목선을 타고 얼굴의 절반을 뒤덮었다.

그러자 상황이 역전됐다.

퍼억! 쾅!

조유빈이 정도현을 발로 걷어차 반대쪽으로 날려 버렸다.

밀려난 정도현과 부딪힌 차들은 유리창이 다 깨지고 차체도 심하게 찌그러졌다.

‘관리국이 보상해 주려나?’

정도현은 먼지를 툭툭 털어 내며 일어섰다.

그는 망가진 차들을 흘끗 보곤 혀를 찼다.

나중에 차주들이 찾아와서 배상하라고 따지진 않겠지?

“진성이 왜 납치했냐?”

“…뭐야. 그냥 관리국 요원인 줄 알았는데, 저 꼬맹이랑도 아는 사이였냐? 아니면 둘 단가?”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지 마.”

“그건 내 마음이지.”

조유빈은 순순히 대답해 줄 생각이 없는지 히죽 웃었다.

정도현은 놈의 버릇을 고쳐 주고자 무기를 꺼냈다.

조유빈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말했다.

“검사였어? 좀 치길래 당연히 격투 쪽인 줄 알았는데. 그럼 신체 강화계 특성인가?”

“말 되게 많네. 들어와.”

타앙-!

조유빈은 사양하지 않고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반쯤 풀어 헤쳐진 셔츠 사이로 얼굴을 뒤덮은 문신의 근원이 보였다.

녀석의 가슴 정중앙에 기하학적인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언뜻 보면 작게 압축한 마법진 같았다.

‘저거 때문에 능력치가 올라간 것 같은데.’

쾅! 카가가각!

정도현은 시퍼런 검기를 휘둘러 대응했다.

조유빈은 마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전사처럼 싸웠다.

온갖 신체 부위를 활용해 칼날을 받아친다. 무에타이를 기반으로 둔 격투술 같았다.

카앙! 카가각!

마치 돌덩이를 내리치는 느낌이다.

검기가 깊이 파고들지 못하고 자꾸 반대로 튕겨 나왔다.

‘힘이랑 맷집. 둘 다 골리앗급이야.’

녀석은 레벨을 넘어선 힘을 지녔다.

피지컬에선 조금 밀린다. 그래도 할 만했다.

정도현이 방어에 집중하며 역습의 기회를 엿보자, 조유빈은 같잖단 표정을 지었다.

“시간 끄는 거야?”

조유빈은 정도현의 작전을 짐작했다.

관리국의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버텨 보려는 거겠지.

그렇게 놔둘 것 같냐.

“「결투장」.”

화아아악-!

조유빈을 중심으로 기이한 마력 파장이 뿜어져 나왔다.

정도현은 미처 피할 틈도 없이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후우웅-!

눈을 감았다 뜨자 주변 풍경이 확 변했다.

높은 건물들과 버려진 차가 가득하던 도로는 온데간데없고, 시커먼 장막이 돔 형태로 깔려 있었다.

그들 외엔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이었다.

[플레이어 ‘조유빈’의 ‘결투장’에 갇혔습니다.]

[결투장 내부에선 당신의 능력치가 10%만큼 감소합니다.]

[줄어든 능력치만큼 조유빈의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몸에서 힘이 빠졌다.

경고문이 말한 대로 능력치의 1할을 적에게 뺏긴 것이다.

반면에 한층 강해진 조유빈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정도현이 주위를 둘러보며 질문했다.

“여긴 아까 있던 곳이랑 다른 공간인가?”

“그래. 내 개인 특성으로 생성된 일종의 아공간이지. 던전처럼 현실과 완전히 단절돼서 아무도 널 구하러 오지 못해.”

“고마워.”

“…뭐?”

시민들의 차량과 근처 어딘가에 있을 진성이가 싸움에 휘말릴까 봐 자꾸 신경 쓰였는데.

알아서 이런 곳으로 이동시켜 주다니. 참 기특했다.

“…너 미쳤어?”

시종일관 미소 짓던 조유빈도 이번만큼은 당황했다.

결투장에 갇힌 적이 고맙다고 말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의 눈에는 그저 미친놈으로만 보였다.

‘빨리 처리하고 빼야겠어.’

관리국의 이목을 끌지 말라. 그게 교단의 방침이었다.

그런데 저놈이 끼어드는 바람에 다 망했다.

곧 요원들이 사방팔방에서 몰려오리라.

‘그 앨 못 데려가는 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진성이를 품에 안고 요원들의 추격을 뿌리칠 순 없다.

포위당하기 전에 정도현을 죽인 뒤 신속히 현장을 벗어나야 한다.

그가 그런 계획을 세울 때.

까득-!

정도현이 도핑제를 씹으며 말했다.

“누구나 다 그럴싸한 계획이 있지. 처맞기 전까진.”

파지지직-!

그가 천뢰격을 생성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적인 벼락의 검기. 조유빈의 눈동자가 커졌다.

설마 심법을 익힌 자를 D구역에서 만날 줄이야.

더군다나 풍겨오는 마력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 * *

정도현과 같이 헬기를 타고 온 한규리.

정도현이 납치범을 맡을 동안 그녀는 진성이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란 명령을 받았다.

“……?”

그런데 납치범과 정도현이 몇 차례 부딪히더니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덕분에 그녀는 진성이와 김지연을 무사히 빼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정도현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녀는 불안해서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렸다.

‘쉽게 당할 분이 아니시지만.’

납치범 역시 만만치 않았다.

레벨도 높았지만 괴상한 능력을 사용했었다.

문신이 얼굴을 반쯤 잠식하더니 그 뒤로 정도현을 조금 밀어붙였다.

‘설마… 순백교 신도인가?’

순백교. 극단적인 플레이어 우월주의 사상에 찌든 자들이 모인 사이비 종교 집단.

해방단이 무력 투쟁과 테러를 불사하는 과격파라 친다면 그들은 온건파에 가까웠다.

하지만 관리국 입장에선 그들 역시 해방단 못지않은 위험한 조직이었다.

그들은 대놓고 범죄나 테러를 저지르진 않는다.

그래서 대중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도 해방단 간부가 되기 전까진 존재조차 몰랐었으니까.

순백교는 그 점을 이용해 은밀히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들었다.

‘거기 교주가 신도들에게 특별한 문신을 새겨 준다 하던데.’

그 문신을 받으면 강해진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만나 본 적이 없어서 몰랐지만.

“……!”

스스스-!

그녀 앞에 차원 게이트가 발생하는 것처럼 공간이 일그러졌다.

거기서 사라졌던 정도현과 조유빈이 불쑥 나타났다.

정도현은 좀 지쳐 보일 뿐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그러나 조유빈은 온몸이 걸레짝이 됐다.

천뢰격에 당해서 군데군데 다 그을렸고, 칼에 베인 자국과 쏟아져 나온 피로 범벅이 됐다.

“정도현 씨! 괜찮으세요?”

“어, 멀쩡해. 진성이는?”

“무사해요. 관리국 요원들한테 잠시 맡겼어요.”

정도현은 고갤 끄덕이며 기절한 조유빈의 가슴팍을 짓밟았다.

꽈아악-!

그러자 괴로움에 찬 신음을 뱉으며 놈이 눈을 떴다.

“으으……!?”

“정신이 들어?”

“너, 뭐 하는 놈이냐…….”

“네가 질문할 입장이야?”

정도현이 비꼬듯 말하자 조유빈은 분한 표정을 지었다.

“젠장!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안 죽여. 수용소 들어가서 새사람이 돼야지?”

“넌 아무것도 모르면 좀 닥쳐!”

“말이 좀 짧다?”

정도현은 복부의 상처를 자근자근 밟아줬다.

그러자 녀석이 좋다고 몸을 마구 비틀었다.

그때, 관리국 요원들이 이쪽으로 우르르 달려왔다.

“도현 씨! 범인을 잡으셨군요!”

“아, 곽 팀장님. 고생 많으십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도현 씨한테 매번 신세만 지네요.”

곽윤수 팀장이 정도현을 알아보곤 반갑게 인사했다.

그는 납치범을 보더니 혀를 내둘렀다.

‘86레벨?’

그가 끌고 온 병력으론 놓쳤거나 큰 희생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난적을 혼자서, 그것도 큰 부상 없이 생포하다니.

아예 범접할 수가 없었다.

“곧 C구역으로 올라가시겠군요.”

“예. 두 달 뒤엔 올라갈 겁니다.”

“도현 씨라면 분명 좋은 길드에 들어가실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정작 정도현은 길드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지만 예의상 그렇게 대답했다.

곽윤수가 부하 요원들한테 지시했다.

“억제구 채워서 연행해.”

“예!”

요원들이 다가오자 조유빈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안 돼! 나 죽는다고! 오지 마!”

“가만히 있어!”

“꽉 붙잡아!”

관리국 요원들이 우르르 달라붙어서 조유빈을 제압했다.

수갑 모양의 마력 억제구를 채우려 들자 녀석은 필사적으로 버둥댔다.

저렇게 반항할 줄 알았으면 그냥 깨우지 말걸.

다시 기절시켜야 하나 고민할 때.

“끄, 끄아아악!”

“헉!”

“뭐, 뭐야?”

“물러서!”

억제구를 채우자마자 조유빈이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화르륵-!

몸에서 시퍼런 불꽃이 치솟았다.

그는 순식간에 휩싸여 맹렬히 타오른다.

그 광경에 요원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끼에에엑-!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희뿌연 연기가 몸속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자아를 지닌 것처럼 하늘을 헤엄쳐 저 멀리 날아갔다.

곽윤수가 부하들을 다그치듯 심문했다.

“방금 어떻게 된 거야!”

“저,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혼자 불타 버려서…….”

“젠장. 자살한 건가?”

기껏 생포한 범죄자가 죽어 버렸다.

정도현은 혹시 억제구를 채운 요원들이 뭔 짓을 했나 싶어서 그들의 안색을 살펴봤다.

하지만 그들도 당황한 건 매한가지.

그의 눈을 속일 솜씨면 관리국 요원이 아니라 이미 연기자가 됐을 터.

저들은 결백했다.

‘목숨을 빼앗는 저주 같은데. 발동 조건이 뭐지?’

억제구를 차면 죽는 건가?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제일 정확하겠지만, 놈의 육신은 이미 한 줌의 잿더미가 되었다.

육체가 저렇게까지 훼손되면 그도 되살릴 수가 없었다.

“정도현 씨.”

“응?”

“추측이라 아닐 수도 있지만… 의심 가는 조직이 있어요.”

“거기가 어딘데.”

“순백교예요.”

정도현이 눈을 크게 떴다. 걔넨 또 누구야?

* * *

끼에에엑-!

명상 중이던 교주 앞에 희뿌연 연기가 날아왔다.

그녀는 그걸 바라보곤 표정을 찡그렸다.

“…조유빈이 당했어?”

그녀에게 돌아온 혼백은 본부의 간부, 조유빈이었다.

D구역에서 개인 특성을 지닌 꼬마를 찾았다길래 데려오라 시켰더니 죽어서 혼만 돌아왔다.

“그럼 「결투장」을 쓰고도 졌다는 건데. D구역에 그런 강자가 있었던가?”

그녀는 고갤 갸웃했다.

C구역이면 모를까. 딱히 짚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입술을 핥았다.

“훌륭한 원석이 숨어 있었네요?”

탐이 났다. 누군진 몰라도 찾아내서 내 것으로 삼고 싶었다.

“조유빈 씨. 지금까지 수고했어요. 이제 편히 쉬세요.”

끼에엑-!

그녀는 조유빈의 혼백을 붙잡고 강제로 힘을 추출했다.

영혼은 소멸했고 그의 유산만이 남았다.

그녀의 손바닥 안에 조그만 보석이 생겨났다.

“다음 순번은 누구죠?”

“접니다.”

부복하고 있던 신도들 중 한 명이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신도에게 보석을 건넸다.

꿀꺽-!

신도가 보석을 삼켰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영혼석을 흡수하셨습니다.]

[개인 특성, 「결투장」을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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