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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93화 (93/240)

93화

김지연은 E구역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술집에서 일했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지명한 손님 중 누군가였다.

그녀는 플레이어로 각성하지 못했고 가난했기에 무언가를 배울 기회도 없었다.

어머니는 술 취한 손님한테 잘못맞아서 죽어 버렸다.

그 뒤로 김지연은 어머니 대신 술집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나마 얼굴은 예뻤기에 제법 인기가 있었다.

함께 일하는 언니들과는 우스갯소리로 종종 이런 얘길 나누곤 했다.

어디 돈 많은 남자 한 명 안 굴러들어오나.

물론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다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팍팍한 현실을 잊고 싶어 농담처럼 말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관리국의 높으신 분들이 모여 회식을 했다.

그런데 분위기를 띄워 줄 접객용 도우미가 그날 아파서 김지연이 대타로 불려갔다.

타고난 미모 덕분이었다.

거기서 김지연은 마주쳤다. E구역 부지부장 안태환과.

그가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다.

뭐라더라. 첫사랑과 똑 닮았다고 했던가?

그게 사실이든 작업용 멘트든 김지연은 하늘에 감사했다.

드디어 시궁창 같은 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겠구나.

그녀는 둘도 없을 기회라 여기고 그에게 열과 성을 다했다.

그녀는 곧 하던 일을 관두고 그가 마련해 준 집에서 편하게 생활했다.

그러다 아이도 들어섰다.

그녀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었다.

‘그땐 그런 줄 알았지. 내가 너무 순진했어.’

아이가 태어나면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자 안태환의 태도가 급격히 냉담해졌다.

처음엔 사생아가 있으면 승진에 걸림돌이 될까 봐 그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둘째 문제였다.

그가 변한 이유는 마력 적합성 검사에서 점수가 낮게 나온 탓이었다.

그게 뭐냐고 의사에게 물어봤더니 점수가 높을수록 플레이어가 될 확률도 높다고 했다.

그녀는 당황해서 물어봤다.

딸만 둘인 게 늘 아쉽다고 말했잖아.

아들 한 명쯤 갖고 싶다면서. 그래서 내가 낳아 줬잖아.

그럼 나한테 더 잘해 줘야 하는 거 아냐?

그러자 안태환이 말했다.

플레이어가 되지 못할 사생아는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금 더 지켜보다 처분하겠다고 말이다.

‘개새끼.’

그날을 기점으로 용돈이 팍 줄어들었다.

그녀는 불만을 속으로 삭여야만 했다.

안 그럼 다시 술집에서 손님 비위나 맞춰 줘야 할 테니까.

이미 그녀는 안락한 삶을 맛봤다.

다시는 예전 생활로 돌아가기 싫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절망만 커졌다.

진성이의 마력 적합성 점수는 아무 변동도 없었다.

의사 말로는 다섯 살이 넘으면 점수도 고정되니 더 검사해도 의미가 없다고 했다.

어느덧 진성이는 쑥쑥 커서 다섯 살이 되었다. 점수는 여전히 최하.

안태환은 진성이를 F구역에 버리고 오라 말했다.

이후로는 최소한의 지원금만 줄 테니 쥐 죽은 듯 조용히 살라고 했다.

그의 최후통첩에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다른 지부장 후보에게 정보를 팔아넘겼다.

안태환의 사생아란 점을 부각해 약점으로 써먹을 수 있도록.

자신을 버린 그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녀는 아들을 팔아넘기고 받은 돈을 챙겨서 멀리 도망쳤다.

하지만 안태환은 별문제 없이 지부장 자리에 올랐다.

지부장 후보에게 받았던 돈은 집을 사려다 사기를 당해 잃고 말았다.

그녀는 급격히 우울해졌다.

이제 어떻게 하나 고민할 때.

웬 남자가 그녀를 찾아왔다. 잊고 지냈던 아들의 근황을 들고서.

* * *

“그 애가… 플레이어로 각성했다고요?”

“그래.”

남자는 사진 몇 장을 툭 던졌다.

거기엔 진성이와 웬 곰 같은 사내가 함께 손잡고 걷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 남자가 네 아들을 입양했더군.”

“…입양이요?”

“안태환 지부장과 모종의 거래를 했겠지. 아이를 맡아 주면 돈을 주겠단 식으로.”

하다하다 생판 남한테 자식을 떠넘기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론 아들을 팔아넘기고 도망쳤던 그녀가 불평할 건 아니었지만.

“그래서 찾아온 용건이 뭔데요?”

“교주님이 이 애를 데려오라 했거든. 그쪽이 좀 도와줬으면 해. 될 수 있는 한 조용히 처리하는 편이 좋아서.”

“그 애를 왜…….”

“그건 알 필요 없고. 할 거야 말 거야?”

“도와주면 그쪽은 저한테 뭘 줄 거죠?”

한 번 팔아넘겼는데 두 번이라고 못 할까. 그녀는 협조하는 대가로 보수를 요구했다.

딸깍-!

남자는 가방을 열어 돈뭉치를 보여 줬다. 저번에 받았던 것보다 훨씬 많아 보인다.

김지연이 군침을 삼켰다.

“좋아요. 그 애 지금 어딨죠?”

“D구역.”

“…뭐? 걔가 거길 어떻게?”

김지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는 구역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살고 있다니. 부러웠다.

“쓸데없는 호기심은 넣어 둬. 넌 그 애만 잘 설득하면 돼.”

“…….”

“고작 다섯 살짜리잖아. 살살 구슬리는 거, 어렵지 않지?”

“…알았어요. 그래서 D구역엔 어떻게 들어가죠?”

“받아. 임시 통행증이야. 넌 나랑 관광 목적으로 며칠 들어가는 설정이야.”

그녀는 남자가 내민 통행증을 받고선 히죽 웃었다.

안 그래도 돈이 부족해서 곤란했는데 타이밍이 아주 기가 막혔다.

이번에 받을 보수로 작은 카페나 차려야겠다.

* * *

남자와 함께 D구역으로 올라온 김지연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 애는 해바라기처럼 자신만 바라봤었다.

그러니 얼굴만 비쳐도 강아지처럼 쫄래쫄래 뛰쳐나올 거다.

“보호자가 나왔다. 시작해.”

차 안에 잠복한 채 기다리던 중, 진성이를 입양했다던 남자가 아파트 단지에서 나가 어디론가 향했다.

아마 일하러 나가는 모양.

김지연은 차에서 내려 진성이가 사는 곳으로 올라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진성아, 엄마야.”

“…….”

예상과 달리 문은 열리지 않았다. 울며불며 한달음에 뛰쳐나올 줄 알았는데.

“진성아? 빨리 문 좀 열어 봐. 엄마라니까?”

김지연은 저도 모르게 예전처럼 언성을 높일 뻔했다. 겨우 참았다.

그 남자가 말했다. 괜히 소란 일으키다 신고라도 당하면 뒷수습하기 귀찮아진다고.

‘그래. 불쑥 찾아와서 놀란 거겠지.’

너무 당황하면 머릿속이 얼어붙지 않던가. 분명 그런 걸 거다.

“…돌아가세요.”

“어?”

그러나 진성이의 목소리는 냉랭했다.

정말 다섯 살짜리 꼬맹이가 말하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

그녀는 당혹감에 문고리를 붙잡고 마구 당겼다.

하지만 그런다고 굳게 닫긴 문이 열리진 않았다.

“이, 이거 좀 열어 봐! 엄마한테 많이 화났구나? 우리 얼굴 보고 얘기 좀 하자. 응?”

“화 안 났어요. 쓸모없어서 버려진 건데 누굴 탓하겠어요.”

진성이가 핵심을 짚으며 빈정댔다. 그녀의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멍청한 줄 알았는데 상당히 날카로웠다.

그녀는 다급히 변명했다. 그런 게 아니라고.

“진성이 버린 거 아냐. 엄마가 나쁜 사람들한테 깜빡 속은 거야.”

“…….”

“그러니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될까, 응?”

끼익.

그녀의 애원에 마음이 바뀌었는지 문이 빼꼼 열렸다.

하지만 안전 고리가 걸려 있었다.

진성이가 얼굴을 반쯤 내민 채 말했다.

“왜 왔어요?”

“왜긴. 진성이 데리러 왔지.”

“제가 각성해서 온 거죠?”

“아니야.”

정곡을 찔렸지만 김지연은 태연히 연기했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딱한 사정이 있어서 헤어진 것처럼 보일 거다.

“미안해. 엄마가 다 잘못했어. 앞으론 정말 잘할게. 제발 용서해 줘. 응?”

“알았어요. 용서할게요.”

그녀는 속으로 비웃었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했고 애는 애였다.

이제 그 남자 차에 태우기만 하면 된다.

“이제 됐죠? 돌아가요.”

“…뭐?”

“난 엄마 말고 아빠랑 같이 살 거예요.”

“아빠라면… 그 던전 브로커 말하는 거니?”

“이젠 관리국 청소부예요.”

정도현이 지부장에게 따로 부탁해 일자리를 알선해 줬다.

관리국 본부에서 일하는 거라 다른 곳에 비해 여건이 괜찮았다. 벌이도 나쁘지 않았고.

아빠랑 아들 둘이서 먹고살 만큼은 됐다.

“절 낳아 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엄마는 절 사랑하지 않잖아요.”

“무, 무슨 소릴 그렇게 해?”

얘 말하는 것 좀 봐. 아침 드라마라도 꼬박꼬박 챙겨 본 걸까?

김지연은 말문이 탁 막혔다.

진성이가 그대로 문을 닫으려는 순간.

“하, 진짜 쓸모없는 년.”

“읍……!?”

덥석-!

차에서 대기하는 줄 알았던 남자가 김지연 옆에서 불쑥 나타났다.

그는 그녀의 코와 입을 새하얀 천으로 우악스럽게 틀어막았다.

“읍, 으읍!”

김지연이 버둥댔지만 일반인의 완력으론 플레이어를 떨쳐낼 수 없었다.

그녀는 이내 고갤 떨구며 축 늘어졌다.

그걸 본 진성이의 표정이 굳었다.

아무리 미워도 세상에 하나뿐인 어머니였다.

남자가 김지연의 목을 한손으로 움켜쥔 채 말했다.

“꼬맹아. 엄마 죽는 꼴 보기 싫지? 괜히 소란 피우지 말고 얌전히 따라와. 아, 뒤에 감춘 휴대폰도 내놓고.”

“…….”

진성이는 어쩔 수 없이 현관문을 열고 남자를 따라갔다.

* * *

“…이렇게 된 거예요.”

정도현은 한규리를 불러다 텅 빈 집을 조사했다.

그녀의 개인 특성, 「사이코메트리」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살펴본 것이다.

진성이가 말도 없이 외출한 게 이상했는데 납치당한 거였다.

그것도 진성이의 엄마가 인질로 잡혀서.

‘좋은 의도는 아니겠지.’

돈이 목적은 아니다. 그랬으면 진즉 송정민한테 연락했겠지.

번거롭게 진성이의 어머니를 데려오지도 않았을 거고.

한규리는 바닥을 더듬으며 과거의 그들을 추적했다.

“…여기 주차된 차를 타고 밖으로 빠져나갔어요.”

“차종이랑 차량 번호 말해 봐.”

정도현은 곧장 강민겸 지부장한테 연락했다.

“지부장님. 정말 급한 일입니다. 차량 좀 추적해 주시겠습니까?”

[어허, 이 친구. 큰일 날 소릴. 그런 거 함부로 했다간 관리국이 갑질하니, 인권 침해다 뭐다 소문나서 언론들이 물어뜯어. 많이 급한 일인가?]

“제 지인의 아들이 납치당했습니다.”

[뭐라고? 씨발. 당장 번호 불러!]

* * *

진성이를 납치한 남자는 차를 몰아 부둣가로 향했다.

그는 곧장 C구역으로 밀항해 넘어갈 생각이었다.

진성이는 미동도 없이 쓰러져 있는 어머니를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그 모습에 남자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까진 못 일어날걸? 플레이어한테도 통하는 수면제거든.”

“…저희 어디로 가는 거예요?”

“그건 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진성이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네 개인 특성은 무슨 효과냐?”

“그게 뭐예요?”

“모르는 척해도 소용없어. 아저씨가 다 알고 왔거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거짓말인 걸 바로 간파당했다.

저 아저씨, 나한테 개인 특성이 있는지 알고 온 걸까? 하지만 어떻게?

아빠랑 한 약속이라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무서워서 울고 싶었다. 예전에 갱단한테 납치당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꾹 참았다.

운다고 나쁜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건 이미 학습했으니까.

“…어떻게 알아요?”

“다 아는 방법이 있지.”

목소리로 봐선 그냥 떠본 건 아닌 것 같았다.

정말로 특성이 있는지 없는지 분간할 수 있나 보다.

다만 무슨 효과인지 물어본 걸 보면 여부만 알아볼 수 있는 듯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알려 주세요. 그럼 저도 무슨 능력인지 말해 드릴게요.”

진성이는 최대한 순진한 척 연기했다.

상대를 방심시켜 정보를 캐내려 한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픽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너 먼저 말해 봐.”

“…….”

“큭큭! 처음부터 말할 생각 없었지? 어른을 속이려 들면 쓰나.”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천천히 감속했다. 빨간불이었다.

두두두두두-!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헬기 소리가 들렸다.

“응?”

남자가 의아한 얼굴로 바깥을 쳐다봤다. 상공에 관리국 헬기가 떠 있었다.

‘헬기까지 뜨다니. 별일이군.’

시내 한복판에 범죄자라도 나타난 건가.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다 움찔했다.

헬기가 쭉 지나가지 않고 도로 상공에서 멈췄다.

“……!”

쿵-!

헬기에서 웬 남자가 뛰어내려 도로에 착지했다.

진성이는 그가 누군지 알아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현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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