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1원 상점-89화 (89/240)

89화

해방단 간부들이 회담장에 모이는 건 삼 일 후로 결정됐다.

남은 기한 동안 정도현은 자신과 함께 싸워 줄 이들을 구하기로 했다.

정도현을 제외하면 C구역 간부들과 일대일로 싸워 이길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그러니 팀을 짜야 해.’

간부 한 명당 두 명씩 달라붙어 상대한다.

‘1팀은 서아린과 박성원, 그 둘로 하고.’

그들만큼 든든한 팀원은 없었다.

게다가 오지 말라고 해도 둘은 기어코 뒤따라올 거다.

“1팀이랑 내가 한 놈씩 맡아 주면…….”

남은 C구역 간부는 둘.

그러니 최소 두 팀이 더 필요했다.

정도현은 머릿속으로 후보를 물색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은 있었다.

직접 싸워 봤기에 실력 검증도 이미 끝났다. 배신당할 일도 없다.

‘도핑제를 주면 한 놈 정도는 처리하겠지.’

2팀은 최근에 수하로 거둔 마약 브로커 차상훈과 그리핀 길드장 임세준.

그 녀석들로 정했다.

당장 부릴 수 있는 수하들 중에서 레벨이 가장 높으니까.

“3팀이 문젠데.”

적합한 후보자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둘로 팀을 꾸리자니 마음에 좀 걸렸다.

둘 다 실력과 재능은 있지만 지독한 악연으로 얽혀 있었다.

정도현은 잠시 고민하다 결정을 내렸다. 다른 사람을 구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둘이 만나서 풀 때가 되긴 했지.”

* * *

“여, 브라더!”

퍼플 팬텀의 보스, 심정환이 모처럼 D구역에 내려온 정도현을 반겼다.

그는 정도현의 레벨을 보더니 혀를 내둘렀다.

“벌써 80레벨이야? 잠도 안 자고 사냥만 하는 거야 뭐야?”

“운이 좀 좋았어. 아니, 안 좋다고 봐야 하나? 요새 센 놈들이랑 자꾸 엮였거든.”

“하긴, 몬스터보단 플레이어 잡는 게 레벨 올리긴 더 쉽긴 하지. 그래도 적정선은 잘 지켜라. 안 그럼 나중에 돌아가고 싶어도 나처럼 못 돌아가게 된다?”

“알아. 괴물이 되면서까지 강해지고 싶진 않아.”

정도현의 대답에 심정환은 씁쓸히 웃었다.

그는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정도현이 부러웠다.

소중한 동료들을 전부 잃고, 생명의 은인이자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암흑가에 몸담았다.

이쪽 업계에도 꽤 익숙해졌지만, 가끔은 평범한 삶을 사는 플레이어들이 부럽기도 했다.

암흑가의 치열한 경쟁과 암투에 그는 종종 지치곤 했다.

이 자리는 느긋한 성향을 지닌 그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근데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던전 공략 때문에 한동안 바쁜 거 아녔어?”

“선물을 가져왔어.”

“선물?”

“응. 좀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정도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릭서를 꺼냈다.

물론 심정환은 장님이라 그게 뭔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병을 만져 보더니 고갤 갸웃했다.

“음, 포션인가?”

“마셔 봐. 그럼 뭔지 알 거야.”

“뭐, 이상한 거 아니지?”

“먹기 싫으면 말고.”

“아냐, 아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브라더가 준 건데. 양잿물이라도 마셔야지.”

뽁-!

심정환은 실없는 농담과 함께 코르크 마개를 뽑았다. 그리곤 망설임 없이 내용물을 쭉 들이켰다.

잠시 뒤 그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해졌다.

“어, 어!”

암흑만이 가득하던 그의 시야가 확 밝아졌다. 시력이 돌아온 것이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 않았다.

심정환이 눈을 끔뻑거리며 주변을 빙 둘러봤다. 예전처럼 아주 잘 보였다.

“브, 브라더…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된 거긴, 눈을 고친 거지.”

“고, 고쳤다고? 어떻게?”

신체적 장애를 고치려면 엘릭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엘릭서는 고레벨 플레이어들이나 겨우 구할 수 있는 희귀한 아이템.

돈이 있어도 살 수가 없었다.

그걸 정도현이 구했을 리 없지 않은가.

“70레벨 찍으면 구해다 준다고 약속했는데 한 달이나 늦었네. 미안해.”

“아, 아냐! 진짜 나 때문에 엘릭서를 구해 온 거야?”

“응.”

정도현의 사과에 심정환은 펄쩍 뛰었다. 그가 미안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엘릭서를 구해 온 것만 해도 기적이니까. 평생 장님으로 살아갈 줄 알았는데.

정도현 덕분에 어두컴컴한 지옥에서 벗어났다.

“크흡…….”

감격에 휩싸여 눈물이 절로 났다.

심정환은 울음을 참느라 끅끅대며 흐느꼈다.

“오, 오빠? 왜 그래!”

아래층에 있던 민소이가 소릴 듣고 헐레벌떡 뛰어 올라왔다.

그녀는 정도현이 그에게 뭔가 한 줄 알고 앙칼지게 따졌다.

“오빠한테 대체 뭘 한 거죠?”

“…소이야, 그런 거 아냐.”

심정환이 눈물을 닦으며 그녀의 오해를 바로잡았다.

“나, 앞이 보여.”

“뭐? 오빠. 그게 무슨…….”

눈가의 흉터는 너무 오래돼서 사라지지 않았지만, 시력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앞이 보인다는 말에 그녀가 못 믿겠단 얼굴로 질문했다.

“저, 정말… 정말로 보이는 거야? 이거 몇 갠데?”

“3개.”

“꺅!”

그녀가 펼친 손가락 개수를 정확히 맞혔다. 민소이는 기뻐서 소릴 빽 지르며 심정환을 꽉 끌어안았다.

그도 똑같이 부드럽게 그녀를 감쌌다.

그녀의 뺨 아래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흐윽, 흑… 정말 다행이야…….”

“브라더가 엘릭서를 구해 왔어.”

“에, 엘릭서를? 저, 정말 감사합니다! 아깐 착각해서 정말 죄송했어요…….”

민소이는 곧장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하고 오해한 걸 사죄했다.

정도현은 괜찮다며 웃고 넘겼다.

그도 심정환한테 미안한 부탁을 하러 온 거니까.

“그럼 이제 오빠 시력은 아무 문제 없는 거야?”

“그럼! 엘릭서가 괜히 만병통치약이겠어?”

그 말에 활짝 웃던 민소이가 순간 움찔했다. 그러더니 다급히 제 얼굴을 양손으로 가렸다.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자 심정환은 그녀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소이야, 왜 그래?”

“나, 나… 안 이상해?”

“이상하다니, 뭐가?”

“오빤 내 얼굴 처음 보잖아…….”

민소이가 조그맣게 웅얼댔다.

그녀는 서아린을 만난 뒤로 미모에 대한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

그래서 그에게 얼굴을 보여 주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

푸하핫!

그녀의 낯선 행동에 심정환은 웃음보가 빵 터졌다.

“왜, 왜 웃어? 오빠, 나 진지하거든!”

“소이야. 내가 얼굴 보고 너한테 반한 줄 알아?”

“…….”

“그리고 예쁘기만 하구만, 뭘.”

“모, 몰라!”

그 말에 민소이가 부끄러워서 심정환의 팔뚝을 찰싹 때렸다.

그래도 기분은 좋은지 입꼬리가 씰룩 올라갔다. 그러다 서로를 뜨거운 눈으로 바라봤다.

“크흠, 흠.”

정도현이 헛기침을 뱉자, 둘은 아차 싶은 얼굴로 저들만의 세상에서 빠져나왔다.

심정환이 머쓱하게 웃었다.

“미안, 브라더. 이해 좀 해 줘. 일생에 딱 한 번뿐인 순간이었잖아?”

“그것 때문에 뭐라 그러는 건 아니고…….”

“그럼?”

“형이 꼭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정도현이 처음으로 형이라 불러 줬다.

심정환은 감격스럽단 표정을 지었다.

“그래, 형한테 편하게 말해 봐. 뭔데 그래?”

“실은…….”

정도현은 해방단과 엮여 버린 자신의 상황을 말했다.

얘길 듣던 민소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해방단 간부들을 처리하고 싶다고?”

“응, 형이 좀 도와줬으면 해.”

“그건 너무 무모해요!”

민소이가 반대했지만 심정환이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그가 웃음기를 싹 지우고 진지하게 말했다.

“브라더, 아무 근거도 없이 저지르는 건 아니지?”

“우리가 이길 수 있어.”

“…….”

심정환이 침묵했다. 저건 그가 신중히 고민한다는 뜻이다.

민소이는 돕겠다고 할까 봐 걱정돼서 그의 팔을 꼭 붙잡았다.

해방단은 사십 년 가까이 관리국과 싸워 온 조직이다.

그런 놈들이랑 엮여서 좋을 거 하나 없었다.

물론 정도현이 엘릭서를 구해다 준 은혜에 보답하려면 평생을 다 바쳐도 갚지 못할 거다.

하지만 심정환이 죽어 버리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심정환은 고갤 끄덕였다.

“좋아. 브라더가 그렇게까지 부탁하니까 들어줘야지.”

“고마워, 형.”

“오빠!”

“대신 이거 하나만 약속해 주라, 브라더.”

“뭔데?”

“너도, 나도 죽지 말고 꼭 살아서 돌아오기로.”

“약속할게.”

민소이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심정환이 싸우러 가지 못하게 뜯어말리고 싶었으나, 그런다고 멈출 남자가 아님을 잘 알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가 무사히 돌아오길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하나 더?”

“이건 정말 미안하고 어려운 부탁인데. 작전을 성공시키려면 꼭 형이 해 줘야만 해.”

“불안하게 왜 그래, 브라더?”

정도현이 두 번째 부탁을 언급했다.

뭔가 예사롭지 않다. 심정환은 조금 긴장했다.

“어떤 사람을 죽이지 말았으면 해. 이번 작전 수행에 필요하거든. 쓸 만한 대타를 구하기엔 시간이 얼마 없어서.”

누굴 죽여 달라는 것도 아니고 죽이지 말아 달라고?

언뜻 보면 너무 쉬운 부탁이었다.

말 그대로 안 죽이면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정도현이 어렵다고 강조한 이유가 분명 있을 터.

심정환은 고갤 갸웃하며 자세히 물어봤다.

“그래서 그게 누군데?”

“형이 세상에서 가장 죽이고 싶을 사람.”

심정환의 눈썹이 꿈틀댔다.

내가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이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의 동료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자신의 양쪽 눈을 멀게 만든 장본인.

녀석은 잊었을지 몰라도 그는 한시도 놈을 잊은 적이 없었다.

“혹시 윤우빈, 그 레드 플레이어 말하는 거야?”

“맞아.”

“아, 무슨 소린지 알겠다. 시력도 돌아왔겠다, 내가 복수하겠답시고 그놈 찾아가서 잘못될까 봐 그러는 거지?”

심정환이 피식 웃었다.

물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놈과 싸우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었다.

벌써 7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심정환은 검술과 검기를 갈고 닦았으나 레벨은 제자리 걸음이었다.

반면에 윤우빈은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을 터.

“지금 싸워 봤자 내가 질 게 뻔한데. 브라더, 형을 너무 애 취급하는 거 아냐?”

“그런 거 아니야. 저번에 윤우빈 그놈이랑 마주쳤어.”

“…뭐? 놈이랑 만났었다고?”

정도현이 이미 윤우빈과 엮였었단 말에 심정환의 표정이 돌처럼 굳었다.

“그 새끼가… 너한테도 찾아와서 시비 걸었어?”

“어. 정확히는 살인 청부 받고 온 거였는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일단 넘어가고…….”

“중요한 게 아니긴! 그 망할 자식이 너까지 건드렸단 말이야?”

심정환이 극도로 흥분했다.

눈앞에 놈이 있으면 곧장 칼부터 뽑을 기세였다.

정도현은 그에게 좀 진정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놈이랑 만나서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내가 이겼지. 근데 죽이진 않았어.”

“…왜?”

예전에 심정환은 정도현과 포차에서 술과 안주를 먹으며 7년 전 일을 털어놨었다.

그가 무슨 짓을 당했는지 뻔히 알면서도 살려 뒀다니. 작게나마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후… 살려 둬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거지?”

“응.”

살인 청부를 맡겼던 한은성 팀장을 꾀어내서 처리해야만 했으니까.

그 이후론 한은성을 통제할 목줄로 쓰고자 살려 뒀고.

“이번 작전 끝내면 형한테 넘겨줄게. 죽여도 돼.”

“정말? 그래도 괜찮아?”

“솔직히… 죽이면 좀 곤란해지긴 해.”

한은성을 되살려 노예로 삼은 건 정도현이 아니라 윤우빈이었다.

즉, 윤우빈이 죽으면 한은성을 통제할 이가 사라진다.

물론 그놈 자체는 별 볼 일 없는 놈이지만, 복수심에 미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그가 아니라 주변인들에게 복수하려 들 수도 있다.

정도현의 떨떠름한 표정에 심정환은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그놈을 죽여 버리면 브라더가 곤란해진단 거지?”

“…응.”

“그럼 어쩔 수 없지. 안 죽일게.”

“뭐? 정말 괜찮겠어?”

“내 복수 때문에 브라더가 피해 보는 것도 좀 아니잖아? 그냥 안 하고 말지.”

심정환이 씩 웃으며 그리 말했다.

그의 양보에 정도현은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했다.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줘, 브라더.”

“응? 뭔데?”

“죽이는 건 안 돼도, 반쯤 죽여 놓는 건 괜찮지?”

* * *

D구역 중앙 지역 암흑가.

청부 살인으로 유명한 그린 베놈 길드.

그곳의 길드장, 윤우빈은 부하들과 함께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오한이 들었다.

‘뭐지?’

마치 실전에서 죽을 뻔했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탁.

그는 반절 넘게 남은 맥주잔을 그대로 내려놨다. 한참 웃고 떠들던 부하들이 그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바로 그때.

끼익-!

아지트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왔다.

접수대에 앉아 있던 길드원이 손님들을 응대하려다 흠칫했다.

“8, 80레벨?”

길드장 윤우빈과 레벨이 거의 맞먹는다. 접수원이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손님을 쳐다봤다.

80레벨의 손님이 말했다.

“윤우빈은 어딨지?”

손님의 목소리가 1층 내부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그러자 윤우빈이 기겁하며 벌떡 일어섰다.

그는 개처럼 부리나케 뛰어와 손님에게 인사를 올렸다.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자 부하들이 놀랐다.

“저, 정도현 님! 연락도 없이 어쩐 일로…….”

“오랜만이다, 윤우빈.”

“……?”

80레벨의 손님은 정도현이었다.

그런데 정도현 옆에 있던 일행이 자연스럽게 그를 하대했다.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 같은데?’

윤우빈은 긴가민가해서 슬쩍 고갤 들어 상대가 누군지 확인했다.

얼굴을 보자마자 그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 넌…!”…

“오랜만이다?”

심정환은 지난 시간을 곱씹으며 웃었다.

퍼억-!

윤우빈의 얼굴에 시커먼 그림자가 다가왔다. 심정환의 발길질이었다.

윤우빈은 벽 쪽으로 날아가 머리부터 쾅 처박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