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D구역 토벌 의뢰 5일차.
화르륵-!
사방에서 달려드는 식물형 몬스터들을 화염의 검기가 모조리 불살랐다.
전투를 끝마친 정도현이 적당한 곳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했다.
‘몬스터들 레벨이 상당히 올랐어.’
첫날 71~72이었던 몬스터들 레벨이 이젠 74~75까지 올라갔다.
물론 몬스터도 플레이어를 사냥하면 레벨이 오른다.
하지만 며칠 만에 이렇게 성장하다니. 비정상적이었다.
‘성장의 비약을 쓴 나도 여태 1레벨밖에 못 올렸는데.’
몬스터들이 강해진 만큼 더 많은 경험치가 들어오니 좋긴 한데 이유가 신경 쓰였다.
어쩌면 보스의 마력에 영향을 받아 강해진 걸지도 모른다.
원인이야 어쨌든 불길한 징조였다.
‘보스 토벌은 아직 시도조차 안 했고.’
곽윤수 팀장한테 몇 번이나 물어봤지만, 그때마다 일정 조율 중이란 답변만 돌아왔다.
아마 윗선에서 토벌하지 말란 지령을 내린 모양이었다. 질질 끄는 이유를 당최 모르겠다.
“아, 도현 씨!”
“벌써 그쪽 구역 다 정리한 겁니까?”
“예, 여러분들도 고생하세요.”
다른 곳으로 이동하던 중 다른 파티와 마주쳤다. 그러자 그들이 먼저 아는 체하며 살갑게 굴었다.
첫날과 태도가 정반대였다.
이유는 정도현의 정산 수치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그 혼자서 잡은 몬스터의 수가 두세 팀의 것과 맞먹었다.
그러자 자기 길드로 들어오라 권하는 이들까지 나왔다. 물론 정중히 거절했다.
‘슬슬 돌아가야겠어.’
몇 시간의 사냥을 끝마친 그는 숙소로 복귀했다.
카운터에서 오늘치 수급을 정산하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며칠 전도 그렇고. 오늘도 두 팀이나 당했다면서?”
“몬스터들 레벨이 꽤 올랐잖아.”
“아무리 봐도 보스가 원흉 같은데. 왜 여태껏 안 잡고 놔두는 거래?”
“난들 알겠냐.”
“야, 좀 불안한데 그냥 의뢰 포기하고 돌아갈까?”
“이번 주까지만 채우자. 안 그럼 받아먹은 거 반절 뱉어야 하잖아.”
날이 갈수록 토벌대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그럴 만도 했다. 며칠 동안 대여섯 팀이 돌아오지 못했으니까.
오늘치 정산을 끝마친 정도현이 저녁 거릴 들고 텅 빈 테이블에 혼자 앉자, 주위에서 슬금슬금 다가왔다.
“도현 씨, 내일부터는 저희 팀이랑 같이 다니시죠.”
“이럴 때 뭉쳐야죠.”
“저희랑 갑시다.”
파티장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정도현과 동행하길 원했다. 한 명이라도 더 뭉쳐야 생존에 유리하니까.
그 한 명이 정도현 같은 실력자라면 더더욱 놓칠 수 없었다.
정도현은 당연히 거절했다. 우르르 몰려다니면 그만큼 경험치 손실이 나니까.
그의 지조 있는 고집에 플레이어들이 속으로 투덜댔다.
몇몇은 재수 없다고 느꼈는지 혼자 돌아다니다 콱 죽어 버리면 좋겠다고 저주했다.
* * *
한편, 보스가 있는 곳에선 사람들이 살려 달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 이거 당장 풀어!”
“마탑이 대체 왜 이런 짓을…….”
보스의 나무줄기에 붙잡힌 이들은 오늘 복귀하지 못한 토벌대였다.
그들은 몬스터들에게 당한 게 아니었다.
웬 마법사가 이들을 급습했다.
기절했다 눈을 떠 보니 보스 몬스터 앞이었다.
더 믿기지 않는 건 보스 옆에 있는 마법사들의 복식이었다.
저들이 두른 로브엔 마탑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들을 공격한 건 흑마법사가 아니었다. 마탑이 자신들을 납치해 온 것이다.
푹!
나무줄기가 주삿바늘처럼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보스는 그들의 마력을 천천히 빨아먹었다.
“끄, 끄어어…….”
“사, 살려…….”
플레이어들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지만, 보스는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으읍! 읍!”
나무줄기가 목을 타고 빙빙 올라가 입을 틀어막았다.
플레이어들이 할 수 있는 건 공포에 질린 눈으로 보스를 쳐다보는 것뿐이었다.
[쥬레이어드] [LV.84]
‘84레벨이라고?’
아무리 보스라도 레벨이 너무 높았다.
70레벨 초반인 그들이 어떻게 손쓸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레벨이 높은 건 보스만이 아니다.
그들을 납치해 온 마탑의 마법사들 역시 만만찮았다.
‘저들도 전부 80레벨이 넘잖아?’
그런데 상당히 젊었다. 많이 쳐줘야 20대 중반으로 보인다.
저렇게 젊은데 80레벨이 넘다니.
‘설마 상위 구역 마법사들인가?’
그게 아니면 저 나이대에 레벨이 저리 높은 게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그러는 사이에 누군가의 마력이 전부 바닥나 미라처럼 전신이 쭈글쭈글해졌다.
툭.
보스는 다 피운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버리듯 시체를 휙 던졌다.
[맛있구나. 요새 잡아 오는 사냥감들은 정말 맛있어. 이전에 먹은 것들은 상한 음식 같구나.]
“이들은 플레이어니까, 질적으로 다르지.”
[플레이어? 너희 같은 존재를 말하는 건가?]
“그래.”
[플레이어를 더 먹고 싶구나. 저들의 마력은 풍부해서 한 명만 먹어도 강해지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네가 강해지면 열매도 더 많이 열리겠지.”
[그렇다.]
마탑주가 보스와 아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 광경에 플레이어들이 덜덜 떨었다.
아무리 봐도 저들은 보스를 사육하고 있었다.
‘보스한테 인신 공양을 한다고?’
‘죄다 미쳤어!’
[쥬레이어드] [LV.85]
플레이어 몇 명을 더 먹어 치운 보스의 레벨이 하나 올랐다.
레벨이 왜 저리 높나 했더니 사람들을 하도 잡아먹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필시 저 마법사들이 도와줬으리라.
“마탑주님.”
“말해 보게, 황 장로.”
“이 이상 제물을 바치는 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건가?”
“그게…….”
장로 중 유일하게 열매를 먹지 않은 황 장로가 조심스레 간언했다.
“보스의 레벨이 예상보다 너무 높아진 듯하여 우려됩니다.”
“허, 조금만 더 하면 황 장로가 먹을 열매가 열릴 텐데?”
마탑주가 멸시하듯 쳐다보자 황 장로는 조용히 고갤 떨궜다.
열매를 먹고 젊어진 장로들이 킬킬대며 그를 비웃었다.
“그리고 보스 레벨 좀 오른다고 저 녀석 하나 못 없앨 것 같나?”
마탑주가 짐짓 오만한 말투로 말했다.
물론 그럴 만했다.
젊음을 되찾은 마탑주와 장로들은 전성기 시절의 역량을 회복했다.
아니, 젊음과 노련한 경험이 합쳐졌으니 전성기 그 이상이었다.
반면 레벨이 좀 오르더라도 저 녀석은 단순하기 짝이 없는 몬스터일 뿐.
“그리고 놈을 죽이긴 아까워. 열매를 양산할 방법을 찾을 때까진 살려 둬야 해.”
““마탑주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마탑주의 주장에 다른 장로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대답하지 않은 건 황 장로뿐이었다.
저들의 광기에 황 장로는 입을 다물었다.
‘다들 이상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 장로와 의견이 일치했던 장로들이 하루아침에 돌변했다.
황 장로는 한층 우람해진 보스를 불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황 장로, 내일은 자네가 제물을 구해 오게.”
“…예?”
“자네가 먹을 열매이니 자네 손으로 완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 알겠습니다.”
내키지 않았지만 마탑주의 명령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 * *
다음 날, 정도현은 몇몇 파티장들의 제안을 무시하고 혼자 돌아다녔다.
‘몬스터들 레벨이 또 올랐어.’
어제보다 좀 더 세진 몬스터들.
정도현은 덤벼드는 놈들을 잿더미로 만든 뒤 안쪽 구역으로 이동했다.
그러다 이변을 감지했다.
‘이건… 피 냄새?’
근방에서 피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플레이어들이 크게 다친 모양이었다.
정도현은 잠시 고민하다 그들을 구해 주기로 정했다.
몬스터들을 대신 처치하고 경험치를 얻을 셈이었다.
쿠웅-! 쿵!
피 냄새를 쫓던 중 묘한 소리가 울렸다. 마치 절벽에서 커다란 바위가 굴러떨어져 지면과 충돌한 듯했다.
발끝을 타고 묵직한 진동이 전해진다.
그 진동에 일정한 리듬이 담겼다. 마치 사람의 발소리 같다.
‘암석형 몬스터인가?’
그런 생각이 먼저 떠올랐지만 그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식물 외에 다른 종족의 몬스터가 여기 있어선 안 된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던전에는 한 종류의 몬스터만 존재하니까.
식물과 암석형 몬스터가 공존할 리 없었다.
정도현은 걸음을 재촉했다.
어쩌면 저 소리의 주인이 다른 파티를 몰살시킨 주범일지 모른다.
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대, 대장!”
“커헉!”
시커먼 바위 골렘들이 어떤 파티를 포위한 채 바짝 몰아붙이고 있었다.
퍼억-!
파티장으로 보이는 방패의 사내가 골렘의 주먹을 막았지만,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하고 멀리 날아갔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 파티장이 컥컥대며 피를 토했다.
‘골렘이 여기 왜 있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은 저들을 구하는 게 먼저였다.
정도현은 푸른 검기를 꺼내며 난입했다.
플레이어들이 그를 한눈에 알아봤다.
“저, 정도현?”
“도현 씨, 제발 살려 주세요!”
플레이어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파티원들과 달리 파티장은 회의적이었다.
‘검기론 안 돼.’
저 바위 골렘들은 너무도 단단했다.
그와 파티원들도 검기로 타격해 봤지만 좀처럼 부서지질 않았다.
게다가 그리 빠르진 않아도 자체 수복 능력까지 지녔다.
놈들을 쓰러트리려면 고화력의 주문으로 단숨에 깨부숴야 한다. 칼질만으론 도저히 답이 없었다.
‘검기로 부수기 전에 마력이 다할 거야.’
그렇게 생각한 직후 파티장은 믿기 힘든 광경을 보았다.
쩌적-!
정도현의 손바닥 위에 큼직한 얼음 구체가 생겨났다. 마법 주문이었다.
‘검사가 어떻게 주문을?’
얼음 주문은 연기로 변하더니 그의 검을 휘감았다. 검기는 투명한 얼음처럼 변했다.
쩌저저적-!
한기가 서린 칼을 휘두르자 바위 골렘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아…….”
전신이 반절 가까이 얼어붙은 골렘들.
그 탓에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정도현은 그 사이를 누비며 놈들의 관절 부위를 찔렀다.
하지만 너무 단단해서 쉽게 부러지지 않았다.
그렇게 수십 초가 흘렀다.
고군분투하는 정도현을 파티원들이 안타깝게 쳐다볼 때.
“어?”
“매직 스크롤을 또?”
“이번엔 화염 주문이야!”
정도현이 매직 스크롤로 화염을 일으켰다.
그가 불꽃을 훅 들이마시자 검기가 이글거렸다. 푸른 화염으로 칼날을 벼려 낸 것 같았다.
쾅-!
급속도로 얼어붙었던 부위에 고열을 가하자 그 단단하던 암석도 손쉽게 금이 쩍 갈라졌다.
“그오오오!”
골렘의 다리가 완전히 박살 났다. 녀석이 균형을 잃고 기우뚱 넘어갔다.
쿠웅-!
흙먼지가 안개처럼 뿌옇게 일었다.
정도현은 나머지 골렘들도 똑같이 다리 병신으로 만들어 줬다.
쿠웅! 쿵!
철옹성 같던 골렘들이 그의 손에 하나둘 박살 나자 파티원들은 멍하니 쳐다봤다.
잠시 뒤, 바위 골렘들이 전부 정지했다.
‘경험치는 안 들어왔다.’
정도현은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경험치가 안 들어왔다. 즉, 이 골렘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들이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토벌대를 공격했다.’
분명 이 근처에 골렘을 조종하는 술사가 있겠지. 그 녀석을 잡아야 한다.
최근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과도 연관이 있을 터.
‘흑마법사인가?’
게이트 붕괴로 혼란해진 틈을 타, 플레이어의 시체를 챙기려던 걸지 모른다.
정도현이 그렇게 생각할 때.
사박.
지척에서 은밀한 발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서아린에 비하면 발소릴 죽이는 게 참으로 어설펐다.
정도현은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몸을 날렸다.
“…허억!”
반쯤 무너진 건물 뒤에 숨어 있던 노인. 정도현이 달려오자 그는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
그저 한 걸음 슬쩍 뗐을 뿐인데 위치를 들켰다. 짐승보다 더한 육감이었다.
[황도형] [LV.80]
“자, 잠깐만! 하, 항복하겠네!”
황도형은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그렇게 소리쳤다.
하지만 정도현은 상대가 노인이라 해서 방심하거나 봐주지 않았다.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까.
“…컥!”
뻐억-!
정도현이 황도형의 턱을 시원하게 걷어찼다.
레벨은 정도현보다 훨씬 높지만, 마법사라서 신체 능력이 한참 뒤떨어졌다.
한 방에 황도형이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응?”
정도현은 그가 입고 있는 로브를 보곤 멈칫했다.
황금빛 날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건 마탑의 표식이었다.
‘마탑이 왜 여기 있지?’
* * *
정도현은 황도형을 숙소 건물로 끌고 왔다.
그는 곽윤수 팀장에게 범인을 넘겨주곤 사태를 설명했다.
“그럼 얼마 전부터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은…….”
“마탑에 습격당한 거겠죠. 그보다 마탑 소속이 왜 여기 있을까요?”
“그, 그게…….”
곽윤수는 뭔가 아는 게 있는지 대답을 망설였다.
정도현은 곤란해하는 그를 대신해, 포박당한 황도형을 노려보며 말했다.
“어르신, 왜 사람들 공격했죠?”
“…….”
황도형은 잠시 망설이다 한숨을 쉬며 전부 털어놨다.
마탑주와 장로들이 보스와 손을 잡고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설명을 듣던 곽윤수 팀장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보스 몬스터한테 사람들을 바쳐요?”
“그렇네. 처음엔 대피소에 고립된 주민들을 잡아다 바쳤지만, 그것도 며칠 못 갔네. 그래서 마탑주는 토벌대의 플레이어들을 노렸지.”
플레이어는 풍부한 마력을 지녔기에 열매도 빨리 맺혔다.
그래서 마탑주는 장로들을 시켜 토벌대를 사냥했다.
황도형은 마탑주의 뜻에 거스를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겁쟁이처럼 방관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한 황도형이 고갤 들지 못했다.
“곽 팀장님, 일단 본부에 보고하시죠.”
“아, 알겠습니다!”
곽윤수는 곧장 강민겸 지부장한테 연락해 현 상황을 보고했다.
그는 당장 보스를 토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강민겸이 이를 허가하지 않았다.
[일단은 대기해. 내가 그쪽으로 가서 마탑주랑 따로 얘기해 볼 테니까.]
“대기라뇨? 지금도 사람들이 잡아먹히고 있을지 모릅니다. 당장 보스부터 없애야…….”
[병력 이끌고 갔다가 마탑주가 나중에 문제 삼으면 네가 책임질래? 허튼짓하지 말고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