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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2화 (2/240)

나 혼자 1원 상점 - 02화

‘인벤토리.’

정도현은 곧장 인벤토리를 열어 상점에서 구매한 것들을 확인했다.

회복 포션, 창이나 검 따위의 근접 무기들과 최하급 방어구 세트까지.

그는 검 모양의 아이콘을 터치했다.

그러자 그의 손아귀에 단단한 칼자루가 잡혔다. 마술 같았다.

“끼이익!”

“···!”

랫맨은 감탄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녀석이 득달같이 달려들며 앞니를 들이밀었다. 정도현은 자신의 본능에 몸을 맡기며 검을 휘둘렀다.

카앙-!

검과 이빨이 부딪히며 한 차례 불똥이 튀었다.

저릿한 충격이 전류처럼 팔을 타고 오른다. 손아귀가 찢어지는 듯했다.

정도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뒷걸음질 쳤다.

“키이익!”

랫맨은 집요하게 추격해오며 이빨을 딱딱댔다.

정도현은 필사적으로 피하고 또 피했다. 저거에 물리면 무조건 치명상이다.

‘방어구!’

정도현은 살기 위해 인벤토리에서 보호구 아이콘을 클릭했다.

[해당 방어구 세트를 착용하시겠습니까?]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정도현이 착용 버튼을 누른 그 순간, 랫맨의 이빨이 그의 목을 노렸다.

그는 반사적으로 왼팔을 들어올려 급소를 보호했다.

까득-!

그의 팔뚝을 물어뜯은 랫맨은 순간 당황했다.

부드러운 피부가 아니라 단단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랫맨은 맛없는 반찬을 맛본 아이처럼 급하게 뱉었다.

‘아슬아슬했다.’

랫맨의 이빨이 그의 팔뚝에 닿기 직전. 질긴 가죽 보호구가 장착되어 그를 지켜줬다.

정도현은 겨우 한숨 돌리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랫맨은 현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지 꼬리로 땅바닥을 탁탁 두들겼다.

“후···.”

정도현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무기와 방어구도 생겼으니 이제 해볼 만하다.

물론 피지컬 면에선 여전히 그가 약세였다.

하지만 랫맨은 지능이 낮았다. 행동 패턴이 유아처럼 아주 단순했다.

그저 타고난 힘을 휘두르기에 급급할 뿐. 심리전이나 페이크 따윈 없었다.

정도현은 원을 그리듯 오른쪽으로 돌며 슬금슬금 거릴 쟀다.

랫맨은 답답했는지 못 참고 먼저 돌진했다.

‘지금!’

정도현은 성난 황소를 농락하는 투우사처럼 충돌하기 직전에 옆으로 피했다.

설마 그가 싸움을 회피할 줄은 몰랐는지 랫맨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실전에서 알고 난 뒤에 반응하면 늦는다.

푹!

칼날이 랫맨의 가슴팍을 비집고 파고들었다. 달려들던 힘을 역이용한 덕분이었다.

“케르륵···.”

랫맨은 피거품을 뱉으며 정도현을 째려봤다. 녀석의 눈빛에 원망이 그득했다.

마치 그에게 비겁하다고 욕하는 것 같았다.

정도현은 코웃음쳤다. 실전에서 그런 거 따지는 놈이 어딨단 말인가.

그는 칼날을 비틀며 거칠게 뽑아냈다.

뚜둑-!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랫맨의 몸이 뒤로 기우뚱 넘어갔다.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존재를 처치했습니다.]

[추가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정도현] [LV.4]

- HP: 60/550

- MP: 50/300

- 근력: 25

- 체력: 27

- 마력: 22

- 민첩: 27

- 행운: 21

- 개인 특성: 1원 상점

“후우, 후우···. 윽!”

정도현은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랫맨의 사체를 내려다봤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쫙 풀렸다.

그러자 잠시 잊고 있던 옆구리 통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정도현은 갈빗뼈를 부여잡으며 휘청댔다.

할아버지가 다급히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도현아, 괜찮냐?”

“네···.”

“방금 어떻게 된 거냐? 너 설마 플레이어였었니?”

“일단 안전시설로 가요. 설명은 나중에 할게요.”

“그, 그래! 그러자꾸나.”

할아버지는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갤 끄덕였다.

***

안전시설로 대피하고서 수십 분이 지났다.

신고를 받고 뒤늦게 온 F구역 관리국의 처리반이 사태를 수습했다.

몬스터 토벌이 끝나고 안전해졌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정도현과 할아버지는 안전시설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각성했다니. 기막힌 타이밍이었구나.”

“그러게요. 그냥 죽으란 법은 없나 봐요.”

정도현의 할아버지, ‘최진영’은 하늘이 도왔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최진영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래서 앞으론 어쩔 거냐?”

“어쩔 거냐니. 뭘요?”

“플레이어가 됐으면 상위 구역에 들어갈 수 있잖니.”

정도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할아버지 말대로 플레이어가 됐으니 그의 시민 등급도 3급으로 껑충 뛰어오를 거다.

이제 돈만 있으면 상위 구역에 머물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최진영은 그가 뭘 걱정하는지 눈치챘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

플레이어의 지인이나 가족은 5급이어도 상위 구역에서 살 수 있다.

그 대가로 추가 세금을 왕창 낸다.

아무리 플레이어가 됐어도 당장은 감당하기 어려울 터.

그렇다고 할아버지만 남겨두고 가자니 신경 쓰인다.

‘요새 몸도 안 좋으신데.’

곁에 돌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언제 고독사할지 모른다.

“정 걱정되면 여유 될 때 용돈이나 좀 부쳐주든가.”

“정말···. 저 없어도 괜찮겠어요?”

“이 할아비가 지금껏 살아남은 게 운인 줄 아니?”

최진영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정도현은 픽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알았어요. 용돈 매달 보내드릴게요.”

“아니, 됐다. 그건 내가 부담스러워서 싫어. 나 혼자 먹고살 정도는 벌 수 있어.”

최진영은 손재주가 좋아서 젊은 시절에 용접 기술을 익혀뒀다.

일당으로 따지면 정도현보다 몇 배는 많이 받는다.

몸 상태가 안 좋아 자주 일하러 못 나가는 게 흠이지만.

“그래도···.”

“상위 구역에 정착하려면 돈이 많이 들 거다. 돈 허투루 쓰지 말고 아껴.”

최진영의 배려에 정도현은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목이 메고 눈이 시큰거렸다.

최진영은 그런 그의 어깰 토닥여주며 응원해줬다.

“···.”

정도현은 집으로 들어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아쉬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E와 F구역은 멀다. 차로 최소 대여섯 시간 이상 걸린다.

게다가 윗구역에 올라가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거다. 던전 공략에 레벨도 올려야 하니까.

물론 말처럼 그리 쉬운 게 아니다.

하지만 그는 해낼 자신이 있었다.

‘개인 특성이 생겼어.’

개인 특성. 극소수의 플레이어들만 획득하는 그 사람만의 능력이었다.

개인 특성을 가진 플레이어는 대부분 유명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간에.

그는 흥분감에 몸이 떨렸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던 1원 상점을 열었다.

<1원 상점 (LV.1)>

- 최하급 체력 회복 포션 [0]

- 최하급 마력 회복 포션 [0]

- 훈련용 무기 세트 [0]

- 최하급 방어구 세트 [0]

- 상품을 전부 구매했습니다. 매일 자정마다 새로 입고됩니다.

‘숫자는 남은 수량이고. 하루가 지나면 다시 보충되나 보네.’

최하급 회복 포션이 인벤토리에 각각 100개씩이나 있었다.

옆구리도 시린데 어디 맛 좀 볼까.

정도현은 체력 회복 포션 아이콘을 터치해 꺼냈다.

포션은 하층민들 사이에서 기적의 물약이라 불린다.

그도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해당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

내용물을 마시려고 코르크 마개를 뽑으려던 찰나. 사용할 거냐 묻는 문구가 나타났다.

아무래도 플레이어는 일반인과 달리 시스템 덕에 직접 마실 필요도 없는 모양이었다.

‘사용.’

마음속으로 답하자 손에 들려있던 포션이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HP가 100만큼 회복됩니다.]

두 눈이 번쩍 뜨였다.

효과는 굉장했다. 옆구리 통증이 사라지고 온몸에 활력이 넘쳤다.

최하급 포션인데도 이 정도 효능이라니. 괜히 기적의 물약이라 부르는 게 아니었다.

[정도현] [LV.4]

- HP: 175/550

- MP: 50/300

- 근력: 25

- 체력: 27

- 마력: 22

- 민첩: 27

- 행운: 21

- 개인 특성: 1원 상점

레벨이 올라가서 그의 HP와 MP의 최대치가 확 늘었다.

그는 포션을 몇 병 더 꺼내 생명력과 마나를 최대치로 회복했다.

“오오!”

최상의 컨디션이 된 정도현은 주먹을 쥐었다 펴고, 가볍게 스텝도 밟아봤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마치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 뭐든 해낼 것만 같은 전능감마저 들었다.

‘4레벨인데도 이 정도라니.’

플레이어들이 일반인을 왜 멸시하는지 알 것 같았다.

동시에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레벨업을 못하고 안주하는지도 이해가 갔다.

‘여기서 레벨을 올리려면 나보다 센 몬스터를 잡아야 하잖아.’

플레이어는 자신과 동레벨 혹은 더 높은 존재를 사냥해야만 레벨이 올라간다.

정도현은 고작 랫맨 한 마리 상대로 목숨을 내걸었다.

만약 두 마리가 나타났으면 순식간에 당했겠지.

이번엔 할아버지를 구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놈과 싸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었으면 냅다 도망쳤을 것이다.

레벨을 올리려면 매순간 사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니까.’

현실은 냉혹하다. 게임처럼 죽어도 부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고레벨 플레이어는 어딜 가도 대접받는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워 이겨 힘을 쟁취했으니까.

하지만 정도현은 개인 특성이 있다.

그것도 1원 상점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괴랄한 능력이.

상점에서 파는 아이템들은 단돈 1원이다.

‘회복 포션이 이렇게 많으면 어지간해선 안 죽겠지.’

그의 포션은 아직 90개 넘게 남았다.

게다가 오늘 자정이 지나면 상점에 또 입고되어 100개씩 더 살 수 있을 터.

정도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음속에 자신감이 차올랐다.

‘포션을 수백 개씩 들고 다닌다니.’

그럴 수 있는 플레이어는 아마 몇 없을 거다.

최하급 포션도 한 병에 십여만 원 정도로 상당히 비쌌으니까.

감기약이나 소화제 같은 상비약이랑 달리, 연금술사나 생산직 스킬을 지닌 플레이어들만 만들 수 있어서 생산량이 한정적인 탓이었다.

“잠깐만. 그냥 이걸 팔면 되잖아?”

정도현은 좋은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위험하게 던전에 들어갈 필요 없이, 매일 회복 포션을 사서 사람들에게 되팔면 떼돈을 벌지 않을까?

암시장에 내놓으면 수수료를 떼여도 한 병에 최소 십만 원씩 챙길 수 있을 거다.

“···돈이 복사가 된다고?”

1원을 십만 원으로 불린다. 이게 창조 경제지.

그렇게 생각하며 실실 웃던 정도현은 아이템 정보를 살펴보다 입을 다물었다.

[최하급 체력 회복 포션][소비 아이템]

- HP를 100만큼 즉시 회복합니다.

- 대가를 받고 판매할 시 당신은 사망합니다. 단, 무상으로 양도하는 건 가능합니다.

- 위의 제약은 당신에게만 적용됩니다.

포션뿐만 아니라 방어구와 무기도 전부 마찬가지였다. 거래 불가라니.

“좋다 말았네.”

시스템은 호구가 아니었다.

되파는 식의 꼼수는 죽음이란 페널티로 철저히 막아뒀다.

정도현은 실망감에 한숨을 쉬었다.

***

“···흐아암!”

정도현은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났다.

아주 개운했다. 시간을 확인하니 아홉 시가 훌쩍 넘었다.

이젠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인력 시장을 기웃거릴 필요 없었다.

‘문제는 윗구역에 인맥이 하나도 없단 건데···.’

정도현은 어젯밤에 인터넷에서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다.

우선 플레이어 대부분은 다른 플레이어들과 파티를 맺어 던전을 공략한다.

머릿수가 많아지면 획득하는 경험치가 줄겠지만, 그편이 더 안전하니까.

하지만 정도현은 이제 막 각성했고, F구역 출신이었다.

F구역 출신은 윗구역 시민들한테 여러모로 차별당한다.

플레이어라도 예외는 없었다.

F구역 출신은 어지간하면 파티에 끼워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F구역 출신은 같은 F구역 출신끼리 뭉쳐 다닌다고 들었다.

‘그렇다고 F구역 출신이랑 파티를 맺긴 좀 그런데···.’

F구역 주민은 대부분 돈에 눈이 멀어 범죄도 곧잘 저지른다.

이건 지역 차별이나 편견 같은 게 아닌 팩트였다.

게다가 플레이어의 레벨은 다른 플레이어를 죽여도 오른다.

그런 자를 ‘레드 플레이어’라 부른다.

싹수 없는 파티원을 들였다간 거하게 뒤통수 맞고 죽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관리국이 공개한 통계를 보면 레드 플레이어 중 F구역 출신의 비중이 가장 많다고 했다.

“그냥 혼자 들어갈까?”

솔직히 혼자 던전에 들어가긴 겁났다.

아무리 포션이 많아도 급소를 찔려 한 방에 골로 가면 다 무슨 소용인가.

물론 이점도 있었다.

‘모든 경험치를 독식할 수 있어.’

그만큼 레벨업 속도도 빨라질 터.

정도현은 F구역 출신이니 정상적인 파티원을 구하기도 힘들 거고, 온갖 차별과 무시를 당할 거다.

그런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강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포션을 왕창 써대면 파티원들이 욕심을 부릴지도 몰라.’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신참 플레이어가 물 먹듯이 포션을 써댄다?

나 좀 죽여달라고 광고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혼자 활동하면 그런 일도 안 생기겠지.

“그래, 한 번 해보자.”

정도현은 뺨을 두들기며 기합을 넣었다.

“일단 오늘치 포션을 사둘까.”

정도현은 어제처럼 1원 상점을 열고 모든 품목을 싹 쓸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상점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새로운 품목이 입고됩니다.]

<1원 상점 (LV.2)>

- 최하급 체력 회복 포션 [100]

- 최하급 마력 회복 포션 [100]

- 훈련용 무기 세트 [5]

- 최하급 방어구 세트 [5]

- (New) 「무투의 기초」 스킬북 [1]

- (New) 최하급 도핑제 [50]

“어?”

상점 레벨이 올라가고 판매하는 아이템 항목이 두 개 추가로 생겼다.

하나는 「무투의 기초」라는 이름의 스킬북. 다른 하나는 도핑용 포션이었다.

뜻밖의 수확이었다.

‘물건을 사다 보면 상품이 늘어나는 모양이네.’

정도현은 그것들도 몽땅 구매했다.

하나만 입고된 스킬북은 구매하자마자 항목에서 지워졌다.

똑같은 스킬북은 여러 개 구매해도 쓸모가 없으니 딱 한 번만 판매하는 모양이다.

[최하급 도핑제] [소모 아이템]

- 5분간 모든 능력치가 10씩 상승합니다.

- 최대 3회 중첩 가능.

- (대충 되팔렘하면 죽는다는 설명)

···

“능력치를 10이나 올려준다고?”

5분의 제한 시간이 있고, 시중의 가격은 회복 포션이랑 비등할 만큼 비쌌지만 그게 뭐 대순가.

그는 하루에 50개씩 살 수 있는데.

게다가 3회까지 중첩도 된다.

즉, 능력치를 최대 30이나 끌어올릴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럼 동레벨대 몬스터들을 상대로 그가 질 일은 없을 거다.

‘이러면 혼자서도 해볼 만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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