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33화 (33/309)

33화. 전설의 오꽝 (12)

따악 ~ !!

“이 타구가! 내야를 빠져나가는군요!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레이더스가 다시 앞서 나갑니다!!”

“지금은 전진수비가 돼 있었는데, 하필이면 비어 있던 2루 쪽으로 타구가 향했어요. 성운 라이온즈 입장에선 아쉽게 됐습니다.”

이어지는 2차전, 1차전에서 6대 2 승리를 거둔 성운 라이온즈는 6회까지 2대 2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하지만 선발 존 워커는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역전 적시타를 허용, 불펜에게 마운드를 넘겨야 했다.

‘젠장!!’

2경기 연속 승리를 놓친 워커는 글러브를 집어던지려다 그냥 내려 놨다.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것도 프로의 덕목, 존 워커의 아버지는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196홈런(13시즌)을 기록한 선수였고 커리어가 긴 만큼 별의 별 상황을 다 겪었다.

짜릿한 역전타를 쳐도 무표정으로 일관했던 아버지, 그건 사소한 감정표현이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프로 의식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야구를 존 워커는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먼저 배웠고, 그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잘 되는 날이 있으면 안 되는 날도 있는 법, 미국 - 일본에서 연이어 실패하고 한국까지 왔지만 어쨌든 좋아하는 야구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면 화를 낼 일도 아니었다.

따악 ~ !

이어지는 7회 초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 선두타자 임완수가 내야 쪽 깊은 타구를 날렸다.

잘 맞진 않았지만 좋은 코스, 여기에 특유의 근성이 더해지면서 내야안타가 완성됐다.

홍현구 - 이인영 - 김상규로 이어지는 라인 업, 창원 레이더스는 필승조 원종우를 마운드에 올렸다.

최고 158km를 던지는 국가대표급 불펜, 하지만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속구 비율이 전체투구의 70%가 넘는 단조로운 피칭이 문제, 변화구는 던지지 않고 마무리한 경기도 적지 않다.

kbo에선 통했지만 프리미어12에선 일본 타선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투구, 도쿄 올림픽 금메달을 노리는 김정길 감독은 특별석에 앉아 고심을 거듭했다.

“초구는 스윙입니다. 153km, 역시 좋은 구위를 가지고 있네요.”

“원종우 선수가 없는 레이더스는 상상도 할 수 없죠. 그만큼 팬들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초구를 때린 홍현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빠른 볼이라도 떨어지는 궤적을 그리기 마련, 낮은 공은 배트가 조금 늦게 출발해도 어느 정도 컨택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빠르고 높게 들어오는 공은 늦게 출발하면 아예 컨택이 되질 않는다.

타자 입장에선 그만큼 여유가 없는 편, 홍현구는 히팅 포인트를 조정했지만 빨리 쳐야한다는 압박감은 자세 붕괴로 이어졌다.

딱 ~ !

“투수 앞 땅볼! 투수가 잡아서 2루! 다시 1루에서 아웃입니다! 더블 플레이!! 레이더스가 위기를 넘어갑니다!!”

“성운 라이온즈 입장에선 최악의 결과네요. 다음 타자가 이인영 선수였는데, 여기서 진루타만 나왔어도 어떻게든 됐을 텐데 말이죠.”

대기 타석에 몸을 풀던 이인영은 천천히 타석으로 향했다.

오늘 성적은 3타수 무안타, 극적인 역전타로 부진을 만회하는 시나리오를 꿈꿨지만 지금은 출루에 집중했다.

“초구는 높게 들어옵니다.”

“레이더스가 오늘은 슬라이더를 잘 활용해서 이인영 선수를 막아냈거든요. 하지만 원종우 선수가 빠른 볼 위주의 투구를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 승부는 상성이 별로 좋지 않다고 봅니다.”

해설위원의 염려와 달리, 원종우는 빠른 볼을 앞세웠다.

프리미어12에서 명백한 한계를 드러냈지만 kbo에선 충분히 먹히는 스타일, 빠른 볼에 자신이 있으니 도망치는 피칭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스트라이크!!”

2구를 지켜본 이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지만 못 칠 수준은 아니고, 타이밍만 잡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다.

따아악 ~ !!

“엇?!!”

심상치 않은 파열음, 우익수 한동수는 뒷걸음질 치다 추격을 포기했다.

이번에도 손 쓸 틈 도 없이 넘어간 홈런, 유유히 베이스를 도는 루키를 멍하니 지켜봐야 했다.

시즌 첫 10경기에서 무 홈런에 그쳤던 선수가 최근 11경기에서 8홈런이라니, 그것도 국가 대표 급 선수들을 연달아 공략한 결과라 창원 팬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말도 안 돼’

한편, 원종우는 글러브를 허리에 댄 채 고개를 떨궜다.

프리미어12에서 겪은 악몽의 재현, 대만과의 경기에서 지아하오에게 동점 홈런을 내줬을 때도 이랬다.

대만은 투수력이 떨어져 타자들의 성적이 뻥튀기 됐다는 평가는 이제 옛말, 싹수가 보이는 유망주들은 NPB에서 실력을 키웠고, 자국 리그에서도 투수 용병이 꾸준히 영입되면서 타자들의 변화구 대응 능력은 크게 상승했다.

2017 WBC에서 일본과 함께 본선 무대에 진출하고, 프리미어 12에서 한국을 상대로 8대 2 대승을 거둔 게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제는 대만에게도 쫒기는 신세, 특별석에 앉은 김정길 감독은 떨어지는 국내 투수들의 수준에 한숨을 쉬었다.

이런 실력으로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을까, 이틀 연속 홈런을 때려낸 이인영의 활약보다 갈수록 떨어지는 투수들의 실력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Good Boy!!"

한편, 동점 홈런을 친 이인영은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아쉽게 물러났던 존 워커도 그 행렬에 동참, 하지만 이인영은 덤덤한 표정으로 세리머니를 마치고 더그아웃에 들어섰다.

슈퍼 루키는 세리머니가 조금 심심한 편, 배트 플립을 대놓고 하는 선수들이 많지만 이인영은 큰 타구를 쳐도 그 자리에 배트를 내려놓는다.

동점이나 역전타를 쳐도 변화가 없는 표정, 그렇다고 냉혈안은 아니지만 그라운드에서 필요 이상의 감정 표현은 하지 않았다.

딱히 상대를 배려하는 게 아니라 경기가 끝날 때까지 냉정함을 유지하기 위함, 웃는 건 팀의 승리가 확정된 그 다음도 늦지 않다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동점 홈런으로 분위기를 탄 성운 라이온즈는 8회 초에 역전에 성공, 이틀 연속 승리를 거두며 지구 5위 자리를 유지했다.

어제 연타석 홈런, 오늘 동점 홈런을 쳐낸 슈퍼루키는 이틀 연속 수훈선수에 선정, 준비를 마친 김지영 아나운서는 마이크를 잡았다.

“이인영 선수, 오늘 활약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어제는 이홍기 선수, 오늘은 원종우 선수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내셨는데요. 특급 투수들에게 강한 비결이 있을까요?”

이인영은 답을 망설였다.

어제 인터뷰에서 이홍기를 상대로 편하게 타격을 했다는 말을 했는데, 그게 또 몇 몇 팬들의 심기를 자극했다.

국가 대표급 투수를 두들기고 쉬운 공이라고 폄하하는 건 우리나라 야구 수준을 깔보는 행동이라는 것, 하지만 최근 국제대회에서 대표 팀이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내는 것도 사실 아닌가.

국가 대표급 선수를 상대로 홈런을 때리면 ‘좋은 공이었는데 운이 좋았습니다.’ 이렇게 겸손을 떨어야 하나?

이인영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원종우 선수는 좋은 공을 가졌지만 볼배합이 너무 단순했습니다. 빠른 볼에 타이밍을 맞추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 생각대로 된 것 같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빠른 볼을 노리고 들어가신 건가요?”

“네, 원종우 선수의 주무기는 빠른 볼이니까요. 다른 건 생각할 게 없었습니다.”

김지영 아나운서는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내가 던진 질문이 원종우 선수의 약점을 들춰낸 꼴, 그런데 그 공을 못 쳐서 빌빌 거리는 다른 타자들은 뭐가 되는 건가. 이래저래 당황스러운 상황,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

“이번 달에만 홈런 8개를 기록하셨는데요, 이게 성운 라이온즈 역사상 월간 최다 홈런이라는 거 아시나요?”

“아 ··· 그런 가요? 그럼 월간 MVP 받을 수 있겠네요?”

월간 MVP는 한국야구기자회 투표와 팬 투표를 각각 50% 비율로 합산해 산정, 수상자는 상금 200만원에 부상으로 한국은행이 제공하는 70만원 상당의 골드바까지 받을 수 있다.

이인영은 4월, 21경기에서 타율 0.414, 홈런 8개, 15타점을 수확했다.

여기에 장타율(0.863), 출루율(0.510) 모두 경이로운 수준, 내가 안 받으면 누가 받겠나, 이 정도면 받을 자격 있다며 존재감을 어필했다.

예상대로 기자들은 몰표를 던졌고, 팬 투표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이인영은 생애 첫 월간 MVP 수상을 확정지었다.

공식 수상은 다음 달 7일,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슈퍼 루키는 연속 수상을 위해 질주를 거듭했다.

따아악 ~ !!

“잡아당긴 타구가!! 오른쪽!! 멀리!! 담장 ~ !! 너머로 사라집니다!!!! 이인영 선수의 솔로 홈런!! 올 시즌 가장 먼저 두 자릿수 홈런에 안착합니다!!”

“이러다 정말 50홈런 넘기는 거 아닌가요? 최근 14경기에서 10홈런입니다. 제가 해설위원을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무섭게 달려가는 선수는 본 적이 없어요.”

거침없는 질주에 정재일 해설위원은 할 말을 잃었다.

올 시즌은 올림픽 때문에 124게임으로 치러진다. 그런데 지금 이인영은 24경기에서 10홈런, 산술적으로 50홈런 이상도 가능하다.

더 놀라운 건 타율(0.400), 출루율(0.493) 모두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 일본에서 날아온 전력 분석원들도 경계 어린 눈빛으로 슈퍼 루키의 활약을 지켜봤다.

한국은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 없는 상대, 거기다 올 시즌 KBO를 휘젓는 괴물이 나타났으니 일본 여론이 경계심을 바짝 끌어올리는 건 당연했다.

[韓国の 怪童]

일본의 한 기자는 이인영을 이렇게 불렀다.

카이도[怪童]는 일본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는 신인에게 부여하는 칭호, 지난 1967년, 텐도 마사야스가 신인으로 25승 3패, 평균자책점 2.14를 기록하면서 카이도라는 명칭을 최초로 수여 받았다.

지금도 가끔 괴동이라 불리는 신인 선수들이 등장하지만, 겨우 만 20세에 이 정도의 파워 툴을 보여주는 선수는 거의 없다.

파워는 아무리 천재라도 늦게 터지는 재능, 그런데 이인영의 올 시즌 평균 타구 속도는 무려 149km다.

걸렸다 하면 장타가 터져 나오는데, 이게 또 정교한 도끼질이라 더 흉악하게 느껴지는 이미지, 일본이 벌벌 떨자 슈퍼 루키의 위상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그래도 카이도라는 별명은 좀 아니지]

-> 그래, 그냥 우리말로 괴동이라고 부르자

-> 난 그것도 마음에 안 들어, 일본에서 부르는 거 해석한 거잖아.

한국 야구팬들은 카이도라는 별명을 두고 토론을 이어갔다.

슈퍼 루키, 춤추는 곰, 살 빠진 곰, 건방진 곰, 이인영은 지금까지 팬들에게 많은 별명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다 귀여운 이미지라 뭔가 임팩트 있는 별명이 없다. 이때 일본에서 튀어나온 카이도라는 호칭, 뭔가 발음부터 강렬하지 않은가.

일부 팬들은 카이도라는 별명도 추가하자고 했지만, 많은 팬들은 일본식 발음이라는 이유로 거부감을 표했다.

별명 하나를 두고 팬들이 이렇게 진지하게 논의를 한 적이 있었던가.

그만큼 선수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뜻, 이인영은 SNS를 통해 간략한 소감을 남겼다.

[살 빠진 곰, 건방진 곰보다는 마음에 들어요.]

카이도, 뭔가 판타지 게임의 캐릭터 이름처럼 들리지 않는가.

뭣보다 일본이 위협을 느끼고 지어준 별명이라면 딱히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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