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전설의 오꽝 (11)
[이인영, 창원 구장 넘을 수 있을까.]
이어지는 창원 레이더스와의 3연전,
최근 9경기에서 5홈런을 넘긴 슈퍼루키는 여론의 시험을 받았다.
창원 구장은 kbo에서 가장 홈런을 치기 어려운 곳, 창원은 바다와 가까운 탓에 날씨가 따뜻해지면 바다에서 육지로 강한 해풍이 몰려온다.
거기다 남향으로 지어진 구조 때문에 해풍을 정면으로 맞는 꼴, 당연히 프로야구가 한창 이어지는 5 - 8 월에 절대적으로 투수에게 유리한 구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홈런 관련 기록은 언제나 하위권, 작년 시즌은 외인 용병 라이언 샌더스가 41홈런을 때리며 최소 홈런 구단이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났지만 샌더스가 떠나고 다시 홈런과 인연 없는 팀이 됐다.
슈퍼루키는 이 곳에서도 장타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창원 팬들은 어려울 거라며 견제에 나섰다.
물론 이인영은 그런 자극은 깨끗이 무시, 평소처럼 타격훈련에 나섰다.
“이인영 선수 컨디션은 어떤가?”
“직접 보시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경기를 앞두고 한승규 감독은 귀인을 맞이했다.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대표팀을 이끌게 된 김정길 감독, 올해 70이 넘은 노장이지만 위기에 빠진 한국야구를 위해 독이 든 성배를 받았다.
이인영은 대표팀에 태워야 할 인재, 지난 주에도 기자들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역대 좌타자로 40홈런을 넘긴 다섯 번 째 선수가 될 겁니다.”
kbo 역사 상 단일 시즌에 40홈런을 넘긴 좌타자는 4명뿐이다. 그 중 용병이 3명, 다른 한 명이 바로 한승규 감독이다.
그 정도로 달성하기 힘든 기록, 이제 막 2년 차 시즌을 보내고 있는 선수가 김정길 감독에게 그런 칭찬을 받을 받을 줄 누가 알았겠나.
한승규도 호랑이 감독 앞에선 애송이일 뿐, 김정길 감독은 옛 제자의 안내를 받으며 더그아웃에 입성했다.
“이봐 자네, 가서 인사드리라고 하게”
“아니야. 선수가 훈련을 해야지.”
김정길 감독은 인기척을 죽이고 훈련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한 때 내 밑에 있었던 선수 아들이 이렇게 성장해 선수로 뛰고 있다니, 희긋해진 머리만큼 흘러간 세월을 실감했다.
“도루는 좀 자제시키는 게 어떤가?”
“저도 말은 해봤는데 듣질 않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김정길 감독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많은 도루를 하는 선수, 거기다 부상 위험이 높은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고 있으니 걱정이 되는 게 사실, 감독이 말려도 소용없다면 이건 문제 아닐까.
어렵게 만난 자리에서 애정 섞인 조언을 해줬다.
“자네는 안 뛰어도 팀에 도움이 될 선수야. 도루는 좀 자제하는 게 좋지 않겠나?”
“글쎄요. 저는 안 뛰어도 되는 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슈퍼루키의 입장은 확고했다.
홈런 타자면 안 뛰어도 되는 건가. 타격이 좋아도 주루플레이가 좋지 않아 팀에 해를 끼치는 선수는 생각보다 많다.
뛸 수 있다면 뛰는 게 맞는 법, 야구계를 대표하는 전설도 슈퍼루키의 야구관을 바꾸진 못 했다.
‘너 지금 이 분이 누군지 알고 그러는 거냐?’
한승규 감독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겨우 억눌렀다. 전설의 충고에 감히 말대꾸를 하다니, 하지만 김정길 감독이 허허 웃으며 돌아서자 목소리를 높일 명분을 잃어 버렸다.
* * *
“자, 성운 라이온즈의 1회 초 공격으로 경기기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홍현구 선수, 올 시즌 타율 0.294, 홈런 3개, 6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할 초반에 머물렀는데 타율이 많이 올라왔죠. 지난 경기에서도 홈런을 때려냈고, 최근 5경기 타율이 4할이 넘습니다.”
창원 레이더스의 선발 이홍기는 스트라이크 존을 적극 공략했다.
날씨가 더워지는 만큼 투수에게 유리한 홈구장, 상대가 최근 4할을 치는 타자라도 두렵지 않았다.
따아악 ~ !!
“으차!!”
2구를 타격한 홍현구는 멋들어진 배트 플립과 함께 1루로 내달렸다.
홈구장이었다면 충분히 담장을 넘길 타구, 하지만 강풍에 막힌 타구는 펜스 앞에서 잡혔다.
레이더스 선수단에겐 흔한 일이지만 외부 손님들에겐 납득할 수 없는 광경, 홍현구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원래 이렇게 안 뻗었나?”
“야, 바람 봐 바람”
임완수는 손가락으로 펄럭이는 깃발을 가리켰다.
아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언제 이렇게 바뀐 건지, 홍현구는 홈런 하나 날렸다며 불만을 중얼거렸다.
“자, 이제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394, 홈런 5개, 12타점, 모든 지표가 리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도루도 지금 5개로 리그 3위거든요. 왜 성운 라이온즈가 이 선수에게 7억이라는 계약금을 안겨줬는지, 수치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원 레이더스의 포수 김학겸은 바깥쪽으로 빠지는 투구를 주문했다.
상대는 올 시즌 OPS가 1.2나 되는 괴물, 이런 선수를 상대로 정면 승부를 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하지만 이홍기는 승부를 택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않는 배짱투구가 내 장점인데 그걸 버리라니, 초구부터 빠른 볼을 우겨넣었다.
따아악 ~ !!
“받아친 타구가 낮고!! 빠르게!! 우측 담장을 넘어갑니다!!!! 이인영 선수의 선제 솔로 홈런!! 시즌 6호 홈런으로 KBO리그 홈런 부문 단독 선두로 올라섭니다!!”
“정말 무섭네요. 지난 트윈스 전에서도 이렇게 낮은 공을 받아 쳐서 담장을 넘겼는데 ··· 낮은 공은 정말 강점이 있네요.”
방심했다가 한 방 맞은 이홍기는 한동안 외야를 응시했다.
지금도 홈 플레이트 쪽으로 강하게 불고 있는 바람, 탄도가 낮은 탓에 바람의 영향을 안 받은 건가. 하지만 잘 생각하면 정확하게 쳐도 담장을 넘길만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는 것, 왜 투수들이 저 자식을 상대로 도망치는 투구를 하는지 조금은 이해했다.
[창원 구장 정복!!]
-> 하나 받고 한 방 더 가자!!
-> 창원에서 홈런 못 친다고 했던 놈들은 양심 있으면 입 다물어라.
한편, 인터넷으로 중계를 보고 있던 성운 라이온즈 팬들은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을 홈으로 쓰니 어쩌니 하며 언론 플레이를 벌인 눈엣가시들을 잠재운 한 방, 거기다 올 시즌 평균자책점 4위를 기록하고 있는 투수를 상대로 때린 홈런이라 폄하할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조금 자존심 상하는데’
이어지는 3회 초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 슈퍼루키와의 2번 째 대결을 앞두고 이홍기는 고심을 거듭했다.
조심해야 할 상대라는 건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도망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 일단 바깥쪽 빠른 볼로 카운트를 잡아냈다.
그냥 막 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가릴 건 가리는 상대, 2구는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던졌지만 방망이는 나오지 않았다.
“3구는 높게 들어옵니다. 카운트는 투 볼 원 스트라이크”
“글쎄요 ··· 체인지업을 던질 생각이었다면 이 공을 먼저 던지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중요한 건 이걸 참아냈다는 거죠. 눈높이로 들어오는 공이라 골라내기 쉽지 않았는데, 보기에도 빡빡합니다.”
공을 받아든 이홍기는 심호흡으로 뛰는 심장을 다독였다.
이상하게 좁아 보이는 스트라이크 존, 홈런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긴장감보다 나와야 할 공에 침묵을 지키는 배트가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젠 던질 코스도 마땅치 않은 상황, 바깥쪽으로 들어가는 커터를 택했다.
딱 ~ !
이건 파울로 걷어내는 녀석, 도대체 뭘 던지라는 건가.
다시 높은 공으로 유인해 봤지만 볼이 되면서 풀 카운트, 6구가 손에서 빠지면서 볼넷을 주고 말았다.
‘아니야, 분명 잡아낼 방법이 있을 거야.’
이홍기는 포기하지 않고 이인영을 잡아낼 방법을 물색했다.
빠른 볼을 던졌다가 홈런을 맞았으니 다른 구종으로 카운트를 잡아야 하나, 하지만 그런 상식이 볼 배합을 단순하게 만드는 법, 다음 대결은 초구부터 빠른 볼을 몸 쪽으로 붙이기로 했다.
‘그래, 이거야.’
세 번째 맞대결에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이홍기는 주무기인 체인지업을 바깥쪽으로 떨어트려 파울을 유도했다.
문제는 지금부터, 이인영은 올 시즌 슬라이더 타율이 0.250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이홍기의 슬라이더가 뛰어나지 않다는 게 문제, 좌우타를 가리지 않고 쓸 수 있는 체인지업이 있으니 굳이 슬라이더를 연마할 필요가 없었다.
거기다 체인지업은 회전을 줄여서 떨어뜨리는 구종이라 회전을 줘서 꺾이는 각을 만들어 내는 슬라이더와 공존하기 어려운 게 사실,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 놓고도 배터리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딱 ~ !
“다시 파울입니다. 지금도 체인지업인데요.”
“센터 쪽으로 타구를 보내는 스윙을 하는 선수거든요. 여차하면 밀어낼 수 있는 선수라 일반적인 홈런타자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공을 받아든 이홍기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체인지업이 안 먹히니 카운트를 잡고도 승부를 못내는 상황, 역으로 빠른 볼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 마침 김학겸 포수도 같은 생각을 하면서 승부가 이뤄졌다.
딱 ~ !
“파울!! 걷어냅니다.”
“끈질기네요. 이홍기 선수가 특정 선수에게 이렇게 고전하는 건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요.”
“2년 전 은퇴한 이창수 선수가 이홍기 선수를 상대로 타율 5할에 홈런 3개를 때려내긴 했거든요. 그래도 첫 7타석에선 1안타에 그친 걸로 알고 있는데, 이인영 선수는 초면부터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5구는 바깥쪽 멀리 빠지면서 볼, 슬슬 약이 오른 배터리는 몸 쪽으로 들어가는 커터를 택했다.
따아악 ~ !!
“다시 한 번!! 우측으로!! 멀리!! 담자 ~ ~ 앙!! 넘어갑니다!!!! 이인영 선수의 연타석 홈런!!!! 이홍기 선수를 다시 한 번 두들깁니다!!”
“이러면 더는 방법이 없는데요. 그냥 거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이인영은 1루를 지나 천천히 2루로 향했다.
그런데 이때 성이 난 창원 팬이 홈런 볼을 그라운드에 투척,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되돌아온 홈런 볼은 2루 베이스 근처에 떨어졌다.
“어? 지금 뭐죠? 이인영 선수가 홈런 볼을 다시 외야로 던졌습니다.”
“하하 ~ 글쎄요. 무슨 의미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경기가 끝나면 한 번 물어봐야겠네요.”
이날 성운 라이온즈는 2연패를 2연승으로 만회했다.
KBO를 대표하는 투수에게 홈런 2방을 뽑아낸 이인영은 수훈선수에 뽑혔고, 마이크를 잡은 김지영 아나운서는 나긋한 목소리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이인영 선수, 오늘 팀 승리와 연타석 홈런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홍기 선수를 상대로 연타석 홈런을 때려내셨는데, 뭔가 까다롭거나 그런 점은 없으셨습니까?”
“글쎄요 ··· 그냥 편하게 타격한 것 같습니다.”
김지영 아나운서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인지 허세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얼굴,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6회 초에 홈런 볼이 그라운드로 날아오지 않았습니까? 그걸 다시 관중석으로 던지셨는데, 무슨 의미로 그러신 건가요?”
“음 ··· 그 분은 홈런 볼이 필요 없어서 던지신 것 같은데, 필요한 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안 날아온 걸 보니 필요한 분이 가져가신 것 같네요.”
인터뷰를 듣고 있던 해설위원들은 폭소했다.
홈런 볼을 던져버린 행위에 대한 항의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깊은 뜻이 있었을 줄이야, 뭣보다 다시 외야석으로 날아간 홈런 볼은 돌아오지 않았다.
필요한 사람이 있었다는 뜻, 그럼 된 거 아닌가? 덕분에 논란에 휩싸였던 게시판은 조용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