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111화 (110/147)

<-- 밑바닥의 진실 -->                               -‘손대지 마! 더 이상 다가오지 말란 말이야!’

-‘내 아이라면……!’

환상이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제대로 보이지 않던 장면이 셀리안의 연주 덕인지 확실히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가는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꺄아아악!”

“아가씨!”

가시 돋힌 듯한 페로렌의 비명에 셀리안은 연주를 멈추려 했다.

“안돼……! 끄으읏…! 흐윽……! 멈추지 마……!”

그렇지만, 필사적으로 막는 페로렌의 모습에 셀리안은 최선을 다해 연주를 계속했다. 셀리안이 지금 해줄 수 있는 일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봐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페로렌은 장면에 계속 집중했다. 한 명의 임신한 여성과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남성이 서 있었다.

-‘당신이 잉태한 그 아이가 내 아이라면! 난 그 아이를 죽여야만 해!’

-‘당신 아이가 아니야……! 이 아이는 누가 뭐래도 내 아이야! 당신이 손끝 하나 대지 못하도록! 내가 막을 거야!’

-‘그레이아. 당신도 알잖아. 당신은 나를 막지 못해.’

‘그레이아? 저분이……?’

태초의 여신 그레이아. 페로렌은 환영 속에서 그녀의 이름을 듣게 되자 무척 놀란 듯한 눈치였다.

-‘그래 당신 말대로 나는 당신을 막지 못해. 하지만, 당신의 힘을 가진 배 속의 아이라면 가능하겠지.’

그와 동시에 그레이아의 배에서 환한 광채가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당장 그만두지 못해? 크윽!!”

그녀의 행동을 막으려던 남자는 눈 부신 빛에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서성거렸다.

‘아이셀이여! 나 그레이아가 명하노니! 내 딸 테레이스를 지켜다오!”

그레이아의 몸에서 뻗어 나온 광채가 무척 밝아졌다.

‘아이셀이여! 나 그레이아가 명하노니! 힘을 가진 존재는! 그대에게 다가갈 수 없게 해다오!’

광채는 조금 전보다 더욱 밝아졌다.

‘아이셀이여! 나 그레이아가 명하노니! 눈앞의 죄악한 존재가 영원히 찾을 수 없도록 내 딸을 꼭꼭 숨겨다오!’

‘안 돼! 그레이아!!!”

“꺄아아악!!”

그레이아의 몸에서 터져 나온 환한 빛이 페로렌의 눈을 아프게 했다.

“아가씨!”

비명을 지르며 경련을 일으키는 페로렌의 모습에 셀리안은 연주를 멈추고 그녀의 손에서 아이셀을 멀리 떼어냈다.

“알았어……. 다 알았어…….”

“알았다니, 뭘 말씀하시는 거예요?”

“알아냈어……. 전부…….”

“아가씨?! 아가씨! 정신 차려요!

페로렌은 멍하니 알았다는 말을 되뇌더니, 이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 * *

알록달록한 조명이 불을 밝히는 인조 호수. 그곳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서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여기가 정말 벤지 길드의 영역이라고……?

거대한 크기의 인조 호수를 넘어서부터는 전부 벤지길드의 영역이라고 래피드가 말했다.

건물 단지. 건물 한두 개가 아닌 수십 채는 돼 보일 법한 건물이 즐비한 장소가 전부 벤지 길드의 영역이라니……. 이 건물들이 전부 임대라고 해도 실제 돈으로도 몇억은 되지 않을까 싶은데…….

마차가 멈춰선 곳은 여러 건물 사이에 우뚝 솟은 건물이었다. 규모가 제법 있어 보인다.

그 앞에서 래피드는 인벤토리를 뒤적거리는가 싶더니 머리를 긁적인다.

“이런, 씨……. 또 빼놓고 왔네.”

그가 자그마한 장치를 꺼내 누군가와 통신한다.

“민성아. 아직 내 방에 있냐? 테이블에 올려둔 리스트 좀 가지고 형 사무실로 좀 와라.”

마법을 이용하는 물건이 아니라 이어폰처럼 생겼네. 별의별 게 다 있구나. 플로어에는…….

“일단 들어가시죠.”

그를 따라 건물에 들어가니 세상에……. 별천지가 펼쳐진다.

“쮸웁-! 하압……! 아아……. 사장님 좋으세요?”

“하아앙-! 아앙! 흣, 아! 앙! 앙! 으으응-!”

“더 조여 봐! 이 걸레 같은 년아!”

이게 다 뭐야……? 여러 개의 방이 있다. 그곳에 안이 보일 정도로 얇은 커튼이 쳐져 있는데, 그 안에선 저마다 문란 행위를 하고 있었다. 어디를 봐도 선명히 보이는 살 색의 향연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계단을 걸어 위층으로 올라가면 역시나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무슨 업소 같은 건가……? 게임 안에서 이런 걸 차린 거야……?

“잠깐 여기서 기다려요.”

3층으로 올라가서는 래피드 혼자 어딘가 떠났다. 나는 남아서 주변을 둘러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도 지나오면서 본 1, 2층과 마찬가지로 여러 개의 방이 있었는데, 비교적 조용했다.

“이 여자는 어떠십니까?”

“음, 좀 더 살펴보지.”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두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히 상황을 주시하니 배불뚝이 남성이 소파에 앉아있고, 한 남성이 그에게 뭔가를 보여주며 의견을 묻고 있었다.

“이 여자가 좋겠군.”

“알겠습니다.”

곧 남자가 나와서 한 여자를 배불뚝이 사내가 있는 방에 데려다 놓는다.

“그녀와 잠시 대화하고 있으면, 계신 곳으로 이 아이를 금방 데려다 놓겠습니다.”

계신 곳으로 데려다 놓는다는 게 무슨 말이지? 나는 여자를 데려온 남성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방 안의 상황을 계속 주시했다. 그녀는 무척이나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다.

배불뚝이 남성이 그녀에게 묻는다.

“그래, 이름이 뭐지?”

“김예선…… 입니다.”

“나이는……?”

“스물… 한 살입니다.”

그녀가 말하는 내용은 게임 속의 정보가 아닌 듯하다. 마치 현실의 신상 정보를 말하는 느낌인데…….

“세상 많이 좋아졌군……. 진짜로 만지는 것 같은데? 그래도 아직은 현실의 즐거움을 따라올 순 없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읏……. 네…….”

배불뚝이 남성은 그녀의 가슴을 가볍게 주무르면서 의견을 묻는다. 그녀는 두려움 때문에 마지못해서 대답한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그때였다.

어……?!

한순간 여성이 사라졌다. 로그아웃……? 아니야. 로그아웃할 때 와는 다른 현상인데? 로그아웃할 때는 캐릭터가 서서히 빛으로 하며 하늘로 날아간다. 하지만, 저건 꼭…….

외부 충격에 의해 접속이 끊긴 것처럼 보이잖아?

이후에는 남자도 곧 사라졌다. 그 남자는 정상적인 형태로 로그아웃하며 사라졌다.

그런 현상은 비단 저 방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는 방을 몇 개 더 살펴봤지만, 유사하게 들어가 있던 여성이 사라지는 현상이 목격됐다. 그 이후 같이 있던 남자들도 얼마 못 가 사라졌다.

이게 대체…….

“이봐요.”

“헉?!”

갑자기 어깨를 툭 치는 래피드 때문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왜 이렇게 놀랍니까? 뭐 못 볼 거라도 봤어요?”

“아, 아니요.”

“따라와요. 돈도 드리고 얘기 좀 나눌까 하는데, 잠깐 시간 괜찮죠?”

“네. 잠깐이라면…….”

*

-‘200,000,000셀을 획득하였습니다.’

그는 나에게 2억 셀이라는 거금을 쥐여주고, 의자에 나를 앉혔다. 그러더니 입에 파이프를 물고 불을 붙였다. 파이프를 든 손목 문신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어디서 봤더라…….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말이야…….

그는 담배를 한입 쭉 빨더니 물담배만큼 진한 연기를 후우- 내뱉는다.

“말하고자 하는 게 다른 건 아니고. 여기 오면서 대충 봤죠? 우리가 하는 일이 뭔지. 그쪽도 담배 할래요?”

“아니요. 전 됐습니다.”

그의 권유를 사양하고 하는 얘기를 계속 들었다.

“우리 길드가 하는 일이 그거에요. 게임 속에서 떡 치게 해주는 거.”

표현이 다소 쌍스럽긴 하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게 가능한 겁니까?”

“안 될 게 뭐 있어요? 현실에서는 법으로 잡지만, 게임 안에선 뭐든 허용하잖아요. 돈도 안 들지, 성병 걸릴 위험 없지, 현실에선 꿈도 못 꿀 쭉쭉 빵빵한 여자들이 널렸는데, 뭐하러 업소를 가냐고요? 안 그래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확실히 좋은 점이 많긴 하지만, 이건 왠지 게임을 어둠의 손이 물들이는 느낌이라 꺼려진다.

“아니, 왜 이러실까 선수끼리. 보니까 여자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더만……. 손기술도 보니까 한두 번 한 게 아니던데……?”

이 인간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초대장 그 인간이 찍어놓은 영상이라도 푼 거 아니야……?

“잘 들어봐요. 요즘 가상현실 게임 속 성매매 시장규모가 얼만 줄 알아요? 자그마치 1조 9천억이에요. 1조 9천억. 게임 돈 말고 실제 머니!”

1조 9천억. 그렇게나 컸던가……? 제대로 구현된 가상현실 온라인 게임이 몇 개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정도나 되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상현실로 성매매를 하고 있다는 거야?

내가 모르는 세계가 여기 있었다니…….

“장난 아니죠?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에요. 매년 성장률이 50퍼센트씩 뛰고 있는 게 이쪽 업계에요. 게임 시장? 가상현실 접속기 시장? 갈수록 커지죠? 그러면 이쪽 업계도 마찬가지예요. 공생관계라는 거죠. 이쪽이 올라가면, 저쪽이 올라가고. 저쪽이 올라가면, 이쪽도 자연스럽게 따라 올라가는 거예요.”

그는 양손을 번갈아 움직이면서 나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한다.

“지금이 바로 태동하는 황금기. 내가 당신한테 하는 제안 3년 뒤면 하려는 사람으로 차고 넘쳐서 원해도 못 받을 제안이에요. 제가 대기업 부장급 월급 받을 거라고 했죠? 장담하죠. 3년 뒤면 신형 세단 월급으로 뽑을 정도는 벌 테니까.”

똑똑-

열렬한 강의가 이어지던 와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 왔나 보네. 잠시만요.”

그나저나 확실히 끌리는 제안이긴 하다. 불법의 탈을 썼다뿐이지 명확히 따지고 들어가면 불법도 아니고, 내가 해오던 일들과 별반 다르지 않으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손에 쥐는 건데…….

어차피 없어지지 않을 성매매 시장이라면 오히려 이쪽 일을 하면서 이쪽 시장을 키우는 게 더 건강한 시장을 만드는 게 아닐까……?

그렇지만 이쪽 일도 언젠간 불법으로 지정될 것도 생각은 해봐야 한다. 성매매가 불법인 이유는 한두 가지 때문이 아니니까. 윤리나 도덕적 문제도 생각해봐야 하고…….

그렇지만 성매매 대상이 NPC라면 그런 건 문제없을 것 같기도 한데……. 가상의 캐릭터에 윤리나 도덕 문제를 대입한다는 것 자체가 모호하니까.

후우……. 잘 모르겠다. 나름 청렴한 인생을 살아오다 보니, 악마의 속삭임 같은 제안에 머리 아플 정도로 고민을 하게 된다.

“리스트 인원이 153명……. 그래. 민성아. 앞으로 잘 좀 하자? 또 한두 명 올려서 형 화나게 하지 말고 알았지? 돈도 착실히 갚고.”

래피드는 문 앞에서 누군가와 줄곧 말하고 있었다. 앞에서 통화한 그 사람인가 보다. 래피드의 덩치가 큰 것도 아닌데, 어째 반대편에 있는 사람 모습이 안 보이는 것 같네?

“형씨, 저 30분만 자리 좀 비울 테니까 내 제안 생각 좀 해둬요. 민성이 넌 안에 계신 손님 말동무나 좀 해드리고 있어라.”

그는 손에 종이를 들고는 그대로 방을 나선다. 그러고는 민성이라는 사내가 들어오는데 어디서 많이 본…….

“너……! 너 드웍……!”

드웍프가 나를 보고 놀란 듯 달려오더니 내 입을 턱 막는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 새끼 이거 잘 만났다!

“형님……. 제발요……! 지금은 모른 척해주세요……!”

“이런 미친놈이!”

“크어억!”

나는 드웍프를 그대로 엎어 치고는 지팡이로 가슴을 짓눌렀다.

“내가 너를 모르는 척해야 하는 999가지 이유를 10초 안에 대봐 이 새끼야.”

뒤늦게 그의 피부에 나 있는 상처가 눈에 띈다. 왜 이런 꼴을 하고 있는 거야? 치료도 안 하고.

“형님……. 여기 오시면 안 돼요……! 정말 큰일 나요……! 이놈들 진짜 깡패라고요……!”

“뭐……? 뭔 소리야 갑자기……? 살기 위해 별소릴 다 하는구나! 네가.”

“정말이에요. 형님 제가 다 설명할게요……! 제발 믿지 않아도 좋으니까 들어만 주세요…….”

평소와는 달리 눈물까지 보이며 애걸하는 드웍프의 모습에 당장 찢어발기겠다는 마음이 조금은 미동한다. 그래, 어떤 변명이 나올지 들어나 보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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