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110화 (109/147)

<-- 여왕벌 -->

“완벽하군요. 그 정도라면 충분합니다.”

아직 마쳤다고 보고도 안 했는데, 초대장 남이 내 얼굴을 보자마자 저런 소리를 한다.

“계속 지켜보니, 뛰어난 조교 기술을 가지셨더군요.”

지켜봐? 내가 그런 짓 한 것들을 다 봤다고……? 세상에나!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네……! 어쩐지 가끔 귓속말로 조언해주는 타이밍이 너무 적절하다 싶었지.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일주일 만에 한 사람의 인격을 파괴한다 게 보통이 아닌데 말입니다.”

인격을 파괴한다니 무슨 말을 저리 험악하게 하나 몰라……?

“크흠……. 칭찬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럼요. 칭찬 맞습니다. 그럼 약속대로 돈을 지급하겠습니다.”

[퀘스트 완료!-여왕벌 사냥][난이도: 매우 높음]

여왕벌민아를 의뢰인에게 잘 전달하였습니다. 의뢰인이 매우 흡족해합니다.

-‘200,000,000셀을 획득하였습니다.

-‘히든 마법 기술 ‘진성 각인’이 강화되어 새로운 능력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억 셀이라니……. 역시 돈이 최고야. 거기다 기술까지 얻고…….

[영혼 전이]

진성 각인이 새겨진 대상에게 영혼을 전이하여 신체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복종도가 90 이상인 대상에게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 이거 설마! 전에 왕녀한테 썼던 그 기술인가? 그거라면 좋겠는데……. 써먹을 곳도 많을 거고. 나중에 시험 좀 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약속대로 조교까지 마쳤는데 왜 2억뿐이지?

“2억을 더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급할 겁니다. 단, 나머지 금액은 여기서 드리는 게 아니고 제가 알려드리는 장소로 그녀를 배달해주시면 그쪽 사람이 당신에게 돈을 지급할 겁니다.”

그쪽 사람……? 이거 미루다가 또 뒤통수 맞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일단 2억은 받았으니 손해라고 하긴 뭐하고……. 뭐가 됐든 가보자. 가보고 난 뒤에 판단해도 늦지 않으니까.

*

나는 여왕벌에게 안대를 씌운 채 목적지로 향하고 있다. 한참을 가고 있자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온다.

“주인님……. 어디로 가는 거예요?”

왠지 불안함을 느낀 듯하다. 그렇지만 나는 여왕벌의 물음에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리 막 다루던 노예라지만 너를 팔아 버릴 거라는 말을 굳이 입 밖으로 내서 귀찮은 일 만들고 싶진 않다.

여왕벌을 조교하던 장소에서 빠른 걸음으로 20분 정도 걷자 초대장 남이 말해준 그곳에 당도했다.

저택 같은 곳이었는데 지상의 저택 같이 화려한 느낌은 아니지만 나름 깔끔하고 무던해 보인다. 그러나 플로어 자체가 해가 막지고 난 후의 하늘처럼 어두컴컴해서 그리 살고 싶은 생각은 안 든다.

건물의 대문을 두드리자 한 사내가 문 앞에 나와 나를 마중한다.

“아, 오기로 하신 분이시군요.”

초대장 남이 미리 말해두었나 보다. 나는 그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간다.

“이거 안 놓지……? 안 놔?! 이래도 안 놔?!”

“형님! 크아아악! 아윽! 자,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누나는 한 번만 봐주세요! 형님……!!”

그는 살벌한 소리가 들려오는 방 앞에 나를 세워 두더니 방문을 노크하고 조심스럽게 들어간다.

“형님. 손님이 왔습니다.

“손님? 누구?”

“그, 여왕벌…….”

“아아……! 알겠어. 금방 나갈게.”

잠시 후 방에서 갈색 머리를 한 사내가 나온다. 그의 눈은 피곤함에 전 건지 약에 취한 사람처럼 퀭하다.

“여왕벌 훈련시켰다는 그분? 이야, 그 싸가지를 어떻게 훈련시키셨대? 반갑습니다. 래피드입니다.”

그는 반갑다며 손을 내민다. 그러나 선뜻 손이 마중 나가지 않는다. 누구 것인지 모를 붉은 핏자국이 그의 손에 선명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첫인상부터 영 끔찍한데……?

내가 말없이 손만 멀뚱히 보고 있자, 뭔가를 느꼈는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는 서둘러 피를 닦기 시작한다.

“어, 이런 실례했네요. 닦는다고 닦았는데 아직도 묻어 있었네. 드럽게시리…….”

그가 손을 닦으면서 보인 손목의 문신이 어딘가 익숙하다. 보라색 눈동자 문신……. 저런 문신을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어디였지……?

문신에 대해 떠올리던 중 그가 말을 걸어온다.

“뭐, 귀찮은 거 집어치우고 대금 받으러 온 거죠?

“아예, 맞습니다.”

“그 전에 물건부터 확인해볼까……?”

그는 나를 지나쳐 여왕벌에게 향한다. 여왕벌의 안대를 벗긴 그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민아야?”

여왕벌민아. 그게 아이디이긴 하지만, 어쩐지 그가 부르는 말투는 꼭 친구를 부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로 아는 사이인가?

“누, 누구……?

그렇게 생각했지만, 여왕벌은 눈앞의 남자를 처음 보는 눈치다. 그는 여왕벌의 반응이 내심 서운했는지 고개를 젓는다.

“이런……. 실망인데? 얼굴이 좀 다르다고 그새 내 목소리를 잊은 거야? 이 개 같은 년이!”

짝-! 그가 돌변하며 여왕벌의 따귀를 때린다.

“꺄아악!”

나는 놀라서 그의 팔을 붙잡았다.

“이봐요! 뭐 하는 겁니까?!”

그가 나를 쳐다본다. 그 눈에는 건강한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퇴폐적인 느낌이 감돈다.

“물건 확인이라고 했잖습니까? 훈련 요구 조건이 몇 개 있었을 텐데요? 좀 놔 주실래요? 돈 받아야 하잖아요?”

나는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그의 손을 그냥 놔주었다. 사내는 맞으면서 흥분을 느끼는 여왕벌의 팬티에 손을 넣고 끈적하게 손을 움직였다.

“하아……. 읏…….”

“우리 민아. 벌써 젖었네? 왜 이렇게 변태가 됐니? …일단 하나는 합격. 민아야, 주인님이라고 불러봐. 내가 네 새로운 주인이니까.”

“주……. 주인님? 당신이……?”

여왕벌은 나를 슬며시 쳐다본다. 그녀에게 맞는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곧 수긍하고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인다.

“네……. 주인님…….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부족한 저를 벌해주세요.”

그녀는 내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한다. 비록 그에게 주인님이라고 부르고는 있어도 내 한마디라면 언제든 마음을 바꿔 돌아올 정도로 말이다.

사내는 여왕벌을 똑바로 바라본다. 하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말이다.

“그래, 원하는 대로 해줄게.”

여왕벌을 구타에 가깝게 때리기 시작했다.

“노예 년이! 건방지게! 주인을 몰라보고!”

“꺄아악! 아악! 커어억!”

과하다 싶을 정도의 폭력이 눈앞에서 일어나자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치솟는다. 참자……. 참아……. 이럴 거 생각 못 한 거 아니잖아? 이제 내 소유도 아닌데 내가 화낼 일이 뭐가 있어?

하지만 이 남자의 폭력은 정도를 모르고 심해져 간다.

“죽어어어!!!”

탓-! 결국 참지 못하고 나서서 남자의 발길질을 막았다.

“그만하시죠. 전 아직 돈 못 받았는데. 지나친 행동 아닌가요?”

행동을 제지하자 그도 제정신이 들었는지 발을 거둔다.

“하아……. 그렇죠. 하마터면 자제 못 할 뻔했네. 후우!”

자제를 못 해? 진짜 죽일뻔했다는 거야? 이런 사람들은 실제 모습이 어떨지 참 궁금하다. 스스로 자제를 못 할 정도의 폭력적인 모습이라니……. 사회 부적응자나 그런 건 아니겠지……?

“물건은 확실히 마음에 드네. 나 따라와요. 돈 줄 테니까.”

그는 사람을 시켜 여왕벌을 어디론가 데려가고 나를 다른 장소로 안내했다. 마차를 타고 장소를 이동하면서 그는 나에게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따로 길드 없으면 우리 길드 들어올래요? 형씨 능력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데…….”

이런 사람이 있는 길드라면 별로 들고 싶지가 않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꽤 강력한 조건을 걸어온다.

“만약 형씨가 우리 길드에 들어온다면 일시불로 10억 셀 드리죠. 우리 길드는 능력 여하에 따라 한 달에 대기업 부장만큼도 벌어요. 어쩌면 그것보다 더 벌 수도 있고……. 생각 좀 있으신가?”

돈을 많이 벌게해 준다는 말. 분명히 끌리는 제안이긴 하지만, 고민된다. 제안을 건넨 사람이 그 강력한 제안을 상쇄할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아니 무슨 남자가 이렇게 튕겨? 그냥 들어와요. 파격적인 제안까지 건넸구만. 이 밑바닥에서 ‘나 벤지 길드다’ 하면 사람들이 다 우러러본다니까? ”

벤지 길드……? 그게 이 사람 길드 명인가 보네.

“뭐 가능하면 빨리 결정해서 오늘 중으로 답 줘요.”

* * *

페로렌은 우올로 한편에 마련된 자신의 방에서 아이셀을 가지고 열심히 씨름 중이었다.

“본질을 조율해라…….”

‘본질을 조율하라는 게 무슨 의미일까?’

페로렌은 뭘이 우올로를 되찾도록 도와준 ‘루드 가게’의 영감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었다. 그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기에 혹시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 그가 해준 말은 단 하나였다. ‘눈에 보이는 것만 조율하려 하지 말고 본질을 찾아서 조율하도록 해. 그러면 네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테니.’

정답도 아니고 수수께끼도 아닌 그 말을 듣고 나니, 오히려 더 머리가 아파졌다. 본질이라는 게 무엇일까? 아이셀의 본질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것일까?

“하아…….”

페로렌은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며 손의 장갑을 벗었다. 어느새 그녀의 손등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아이셀이 그레이아 여신의 마법이라는 것밖에는 알지 못하는데…….’

그녀는 테이블 위에 폭 엎어져서 자택을 떠나올 때 가지고 온 가족사진을 바라봤다. 그곳엔 할아버지와 테드 자신이 행복한 모습으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비록 말로는 할아버지가 싫다고 했지만 힘들 때 본다면 무엇보다 힘이 되는 사진이었다.

“할아버지.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거야……? 알려줘요. 할아버지…….”

그러나 사진 속 자신의 할아버지는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한참을 사진만 바라보고 있던 페로렌은 다시 고개를 들고 대답이 없는 할아버지한테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보고 하라는 거지? 치, 알았어요……. 나 이걸 꼭 완성해서 그걸 계기로 언젠간 할아버지보다 유명해질 테니까 그곳에서 손녀 자랑이나 왕창 해두시라고요.”

페로렌은 심기일전한 뒤 다시 세공 도구를 잡았다. 그러나 장갑을 뺐다는 것을 깜빡한 무심코 아이셀을 맨손으로 쥐었다. 그 순간 코앞에 검은 괴형체가 보이더니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손대지 마!’

“허억?!!”

페로렌은 화들짝 놀라며 손을 털었다. 손에서 떨어진 아이셀이 바닥을 굴렀다. 아이셀을 줍기 위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 손이……. 왜……?’

무슨 이유에서인지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때와 같아…….’

뭘에게 아이셀을 처음 건네받았을 때처럼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잡는 게 두려워……. 나는 이렇게 두려운데……. 어떻게 뭘은 아무렇지 않은 거지……?’

뭘을 제외한 타인은 아이셀을 맨손으로 잡을 수 없다. 셀리안도 만져보고는 기겁을 할 정도로 아이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운 힘이 숨어 있었다.

‘혹시 이 힘이……?’

만약 자신을 두렵게 하는 이 힘이 뭔지 밝혀낼 수 있다면, 본질을 조율하라는 영감님의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페로렌은 급히 셀리안을 호출했다.

“안 돼요! 아가씨……! 제 가슴은 뭘 님에게만 드릴 거라구요……!”

셀리안은 다짜고짜 자신의 가슴을 양팔로 가리고는 그렇게 소리쳤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또 가슴 만지시려는 거 아니에요?”

지난날 셀리안과 함께했던 뭘과의 정사가 끝난 뒤 둘의 사이는 자매처럼 가까워졌다. 이후 페로렌은 셀리안을 볼 때마다 장난스럽게 가슴 만지곤 했는데, 지금도 그런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 그런 거 아니야! 나 좀 도와줘.”

“네? 뭔데요? 가슴 커지는 마사지 도와드려요?”

“그런 거 아니라니까!! 가슴 얘기는 그만해!

셀리안은 페로렌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러니까 목걸이 조율을 위해. 그게 꼭 필요한 작업이라는 거죠?”

“반드시라고는 말 못 하지만……. 그래도 시도해볼 가치가 있어.”

“알겠어요. 대신 제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멈출게요.”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한 페로렌은 셀리안의 연주를 기다렸다.

‘두려움을 없애는 연주…….’

그것이 얼마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몰랐지만, 목걸이를 잡고 있어도 놓지 않을 정도면 충분했다. 곧 아름다운 연주가 시작되고 페로렌의 마음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해졌다.

‘두려워하지 마. 참아낼 수 있어.’

페로렌은 책상 위에 올려둔 아이셀에 손을 가져갔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잡자마자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발작처럼 일으키는 보석.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곱씹은 채 아이셀 위로 차분히 손을 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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