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의 눈을 떠라 --> 일단 총이 있기 때문에 내가 불리해. 그렇지만, 동료들이 주변에 있으면 총을 함부로 쓰지는 못할 거다.
놈들이 내게 접근하면, 영호신과 일직선 상에 있는 적 하나를 방패막이로 하면서 주변의 적들을 최대한 무찌른다. 적이 총 20명이라고는 해도 이곳에 있는 아직 전부 모이지는 않았어.
적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 해도 드웍프가 무기를 몇 개 빼돌렸으니 찾아오는 데 시간은 걸릴 거야.
한 사내가 저벅저벅 내 앞으로 다가온다. 그는 내 손에 들린 지팡이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근데, 이놈은 웬 지팡이를 들고 있…….”
파악-!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팔을 내리며, 지팡이로 그의 목을 강타한다. 공격이 치명타로 적중한 듯 그의 눈이 회까닥 돌아가며 그대로 의식을 잃는다.
“이 자식! 반항한다!”
다가오는 적들 사이로 나를 조준하는 영호신의 모습이 보인다. 공격권 내에서 총알이 날아들 수 없는 위치를 생각하며 조금씩 이동한다.
자세를 낮추고 한 사내의 무릎을 작살 낸다. 이후 그 맞은편에 서 있는 사내의 허벅지를 지팡이 끝으로 찍는다. 내 몸짓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다가오는 적들을 하나둘 제압해나간다.
그러나 한번 쓰러진 적들이 다시금 일어나서 압박해오는 걸 보니, 적들 레벨이 높아서 그런가 공격이 전보다 약하게 들어가는 느낌이다. 좋은 무기를 꼈음에도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적들이 계속 일어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덕분에 영호신이 나에게 총 쏠 타이밍을 잡지 못한다는 거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공중을 향해 총구를 올린다. 왜 갑자기 저런 행동을 하는 거지? 의문이 듦과 동시에 그의 총구에서 탄환이 탕-! 하며 발사된다.
새라도 맞추려는 건가 싶었지만, 그 순간 하늘 높이 솟은 탄환이 떨어지며 내 어깨에 박혀 들어간다.
“크악!”
-‘434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난데없이 들어오는 피해에 놀라 공격권을 포기하고 급히 몸을 떨어뜨린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분명 아무렇게나 쏜 것 같은데 어떻게 내가 맞을 수 있는 거지?
영호신이 웃으며 다시금 내게 총구를 겨눈다. 총구로 푸른빛이 빨려들 듯 아른거린다.
“얘들아, 힘 빼지 말고 그냥 나와라. 이 형님께서 처리할 테니.”
“야! 야! 다들 비켜!!”
영호신이 소리치자 앞을 가로막던 인신매매단 일원들은 부리나케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한 움직임으로 보아 단순한 공격을 날리는 게 아닌 것 같다.
총구에 강대한 마나가 모여든다.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자포의 모습과 흡사하다. 공중에 흩날리던 마른 솔잎이 에너지의 중심으로 빨려들더니 그대로 분해되어 찌꺼기조차 남지 않는다.
대체 솔잎은 어디로 빨려들어 간 것일까? 잠시 후 저기 모인 에너지가 내게로 발사되면, 사라진 솔잎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겠지……?
나는 빠르게 주변을 눈으로 훑는다. 숨을 곳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아직 근성이 남아 있긴 하지만, 저 강력해 보이는 힘을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던 와중에 문득 잊고 있던 수단 하나가 떠오른다. 지금까지는 쓸 일이 없어서 아껴 뒀던 그 방법. 그래, 이거면 충분히 벗어날 수 있어. 아직 이 최후의 수단이 남아있는 이상 불필요한 근성을 시험해보고 싶진 않다.
“쬐끔, 따끔할 거야.”
영호신의 목소리와 함께 나를 노리는 총구의 빛이 점차 환해진다. 발사의 순간이 임박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것은 단 하나다.
나는 오른손을 한차례 턴다. 그와 동시에 팔목에 걸려있던 심연의 팔찌가 검은빛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화아악-!!!
그와 동시에 나를 중심으로 칠흑의 폭풍이 순식간에 휘몰아치며 7m 반경의 검은 반구 하나를 만들어낸다.
-‘심연이 당신을 집어삼킵니다.’
내 몸은 순식간에 심연에 잠식되어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눈을 감아도, 떠도 똑같은 어둠만이 있을 뿐이다.
어디로든 한 걸음 내디디면 그 즉시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내릴 것 같은 이 기분. 자신의 손조차 내려다볼 수 없는 먹먹함이 마음 한편에 잠들어있던 작은 공포를 불현듯 일깨운다.
“허억…….”
어린 시절 겪었던 끔찍한 트라우마가 다시금 재현되는 것만 같다. 딱 이런 기분이었지……. 숨을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고, 주변에 있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막연한 두려움만이 이 엄습해오는 이 기분…….
그것은 비단 나만 느낀 것 같진 않다.
“여기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여기 어디야?!”
콰앙-!!!
“아아아악!”
영호신의 당혹스러운 음색과 함께 무언가 터지며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온다. 아마 그가 행하려던 공격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적중한 듯하다.
이 정도로 안 보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나조차도 당혹스러울 정도다. 어디가 어디쯤인지 가늠조차 안 돼서 도망가기도 겁난다.
“아무것도 안 보여!”
“크윽! 뭔가에 부딪혔어.”
심연에 삼켜져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한 곳을 방향을 잡아 걸어간다.
걸음을 옮기며 떨리는 몸과 마음을 애써 가다듬는다. 한 번 이겨냈잖아. 두 번이라고 못 이겨낼까? 그때의 그 공포가 되돌아온대도 난 이겨낼 수 있어.
……그런데, 한참을 걸어도 왠지 심연을 벗어 날 수가 없다.
분명 반경 7m라고 들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7m는 더 걸은 것 같은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 보니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계속 같은 자리만 맴도는 것 같다.
집중하자.
집중해.
시각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심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그렇다면 시각에 의존하는 행동은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눈을 감고 귀를 열기로 했다.
“흐으으… 내 보내줘! 여기 뭐야 대체!!”
“거기 누구야……?”
“아까 그놈은 도망갔나?”
눈을 감고 귀를 여니 주변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들이 내는 모든 소리는 보이지 않는 파문을 일으키고, 파문은 그 사람의 위치를 내게 전달한다.
퍼져나가는 파문에 조금 더 집중해본다.
개인이 만들어낸 각각의 파문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주변의 사물과 부딪혀 반사된다. 반사된 파문은 부딪힌 사물의 형체를 그리며 이동하다가 서서히 사라져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심연 속이지만, 각각의 개체가 만들어낸 파장에 귀 기울이자 존재조차 몰랐던 제3의 눈이 떠지고 있다.
팡-! 나는 손뼉을 세게 마주친다. 손바닥의 마찰 부위부터 시작해, 내 반경의 주변 사물과 인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깊디깊은 동굴 속 박쥐와 같이 신호를 보내고 그 신호를 귀로써 읽어 들인다.
다들 불안한 모습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와중에 나만이 홀로 그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이 깜깜한 심연 속에서…….
오직 나만이 말이다.
이거 재밌어졌는데……?
* * *
영호신은 진땀으로 샤워하듯 온몸이 흠뻑 젖었다. 겁도 없이 기지까지 쳐들어온 사내 하나를 잡으려 했을 뿐인데, 어느샌가 빛 한점 새어들지 않는 이 이상한 곳에 갇혀버렸다.
현실인지 꿈인지 가늠조차 안 되는 어둠. 꿈에서 깨도 꿈인 것 같은 글자 그대로 암담한 현실 앞에 모든 사고가 한순간 정지했다.
총술사라는 히든 직업을 가졌음에도, 지금 순간만큼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끄아아악!!”
“뭐! 뭐……! 컥! 크그그아아!!!”
“얘들아 무슨 일이야?! 왜 그러는 거야?!”
부하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러나 소리의 근원이 대체 어디인지는 짐작도 되지 않았다.
‘이쪽……? 인가?’
영호신은 목적도 없이 소리가 나는 것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어어어억!!!”
이번엔 뒤쪽에서 들려왔다. 영호신은 재빨리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자신이 보고 있는 그곳이 진정 비명이 들린 곳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에 확신이 없었다.
“얘들아! 어딨는 거야!”
“형님! 끄아아악 살려……!!”
방향을 잡고 걸어갈수록 혼란스러움만 가중될 뿐이었다.
‘하아……. 이런……!’
끝없이 움직이는 무형의 존재에 영호신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숨을 들이쉬면 사방을 메운 짙은 어둠이, 잿가루처럼 폐를 채우는 느낌이었다. 지금껏 게임을 하면서 지금처럼 긴장되는 순간은 처음이었다.
숨통 하나 트기 힘들 정도의 긴장이 극에 달할 무렵. 바로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커어억!!”
정강이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영호신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맞닥뜨린 공격이라 대비할 수도 없었다.
-‘399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상태이상 ‘다리 골절’을 당했습니다.
‘이놈 꽤 강해. 움직임이 빨라서 공격력은 떨어질 줄 알았는데……. 레벨이 대체 몇이기에?’
영호신은 레벨이 47이지만 건강 능력치를 등한시하다 보니 체력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또 한 번 같은 피해가 들어온다면 죽는 건 불 보듯 뻔했다.
영호신은 총을 들어 골절된 자신의 무릎에‘힐 샷’을 날렸다.
-‘상태이상 ‘다리 골절’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총구로부터 팡! 터지는 소리와 함께 상태이상이 회복되며, 떨어졌던 체력이 전부 차올랐다. 본래 화려한 이펙트를 자랑하는 힐 샷이지만, 지금은 그 시각적 효과마저도 심연에 모두 삼켜진 뒤였다.
영호신은 총을 들고 사방을 경계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적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이 자식!!”
누군가 등을 건드는 느낌에 영호신은 재빨리 뒤를 돌아 총을 격발했다.
탕!
“끄아악! 혀, 형님…….”
그러나 들려오는 건 익숙한 목소리가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 부하였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강력한 둔기에 후두부를 세게 얻어맞고 쓰러졌다.
“컥!”
영호신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힐 샷으로 다시금 체력을 회복했다. 이제 전투당 2회만 사용할 수 있는 힐 샷은 더는 사용할 수 없었다.
“이 자식! 비겁하게 싸우지 말고 밝은 데서 정정당당히 싸우자!”
그러나 심연은 아무런 대답도 돌려주지 않았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영호신은 자신의 신체에 총 한 발을 발사했다. 그리고 다시 공중으로 탄을 하나 쏘아 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주변에 마력 탄이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대지가 미약하게 진동했다.
찌지지징-!!
바람이 불어왔다. 곧 느껴지는 바람이 자신을 누르는 거센 압력으로 바뀌며 코앞에 당도했다. 이윽고……!
“흐읍! 크으아아윽……!!!”
살갗을 남김없이 태우는 가혹할 정도의 통증이 온몸 구석구석을 휩쓸었다.
-‘5122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을 1회 보존하였습니다.
본인이 쏘아 올린 공격이지만 자신도 그 피해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그러나 영호신은 미리 자신을 향해 발사한 버프탄 덕에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분명 페널티가 큰 기술인만큼 그 파괴력이 막강하기에 어둠 속에 숨어있는 적이라도 할지라도 마나탄에 휩쓸렸다면 큰 피해를 보았을 터였다.
영호신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의 형체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주변은 햇빛이 미약하게나마 새어들었다. 비록 쨍쨍한 해는 아니지만, 빛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도 감사할 수 없었다.
‘놈이 죽은 건가?’
심연이 완전히 걷히고 주변을 둘러보니 피해 상황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강력한 공격이었던 만큼 아군이 입은 피해가 실로 처참했기 때문이었다. 영호신은 신체의 절반이 잘려나간 부하들을 보며 미안한 마음을 감출 길 없었다.
비록 NPC라고는 해도 행동하는 모습이 실제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막상 죽어서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쓸쓸해졌다.
‘놈은 어딨지?’
영호신은 자신에게 이 잔악한 기술을 쓰게 만든 뭘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문득 뒤를 돌아보는 순간.
파악-!
“크악!”
지팡이가 안면을 강타해 들어왔다.
-‘89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신은 행동불능이 되었습니다.”
아까와 달리 들어온 피해는 이상할 정도로 적었지만, 궁극기에 맞고 체력이 없던 탓에 행동불능에 빠지고 말았다.
피부가 다 벗겨져 피를 철철 흘리는 그가 쓰러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든 생각은 ‘인간 맞아?’ 였다. 그의 모습을 보아하니 자신의 궁극기를 맞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방어구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고 액세서리도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그가 자신의 궁극기를 맞고 견뎌냈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뿐 아니라 조금 전까지 주변을 잠식했던 심연은 다시 생각해도 끔찍했다. 그러나 영호신을 또 한 번 놀라게 하는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떻게……?”
전신에 피칠갑했던 그의 몸이 전부 회복된 것이다. 물론 자신의 회복 기술인 힐 샷도 엄청난 회복력을 자랑하지만, 자신의 궁극기에 맞은 사람까지 전부 회복시키는 수준은 아니었다.
뭘도 조금은 지친 모습으로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오늘은……. 이만 편히 쉬세요. 선생님.”
“아아악!!!”
-‘당신은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