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사기단-31화 (31/147)

<-- 자유를 위한 투쟁 -->                               “크억!”

-‘482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19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죽음을 1회 견뎌냈습니다.’

발차기에 이어 한 번의 검격으로 무려 2회의 데미지가 들어오다니? 꼴에 기사단 출신이라고 저런 기술도 가진 모양이다. 그의 검 날에 내 아까운 피가 짙게 묻어난다.

검격에 맞고 뒷걸음질한 덕분에 공격권은 풀려버렸다. 이걸 다시 사용하기 위해선 3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3분이면 사실상 이번 결투가 끝날 때까지 사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포기한 척하더니 비겁하게 이런 꼼수를 써?”

“흥. 누가 포기했다는 거냐?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걸 남 탓으로 돌리지 마라.”

전직 기사단이라는 작자가 이런 야비한 짓거리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기사라면 명예로운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체력이 이제 1이기에 피가 다시 차오르기 전까지는 한 방 맞으면 죽는다. 그러나 체력 재생 기술을 따로 배운 적 없기 때문에 1분은 지나야 조금 차오를 것 같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거라곤 죽음을 최대 3회까지 견뎌낼 수 있는 근성 능력치인데, 이미 1회가 발동된 터라 그것마저도 확률이 현저히 낮다. 이대로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체력 재생률 높여주는 음식이라도 먹고 올 걸 하는 아쉬운 마음이 샘솟는다.

그가 몸을 움직인다. 할 수 있다. 나는 이길 수 있다. 놈은 충분히 강하지만 못 이길 정도는 아니다. 괜히 전직 기사단이라는 타이틀에 겁먹어서 신중했던 것뿐. 한 가지 확실한 건 놈은 테드보다 약하다.

그가 어떤 기술을 얼마만큼 숨기고 있든 간에 테드에게서 느낀 만큼의 기백이 그에게선 한 줌의 모래알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다.

곧, 그의 검이 찢긴 가죽 갑옷 사이를 노리고 들어온다. 내지르는 검의 빗면을 지팡이로 쳐내자 금속성이 쨍하며 크게 울린다. 그의 검날이 돌아간 틈을 타 지팡이를 그의 안면을 향해 세차게 휘두른다.

후웅-! 매서운 파공음 뒤에 퍽-! 시원스러운 타격음이 뒤따른다.

“크윽!”

그가 광대를 얻어맞은 채 뒷걸음질한다. 하지만 기세를 살려 몰아치는 것이야말로 상대를 정신없게 하는 방법이다. 지팡이의 손잡이로 그의 목을 걸고 홱 끌어당긴다. 가까워지는 그의 얼굴에 냅다 머리를 들이박는다.

빠악-! 머리에 부딪힌 그의 코끝이 뭉그러지는 느낌이 생생히 전해진다. 아마 코뼈 하나쯤 부러졌을 것이다.

예상대로 그의 코에선 시뻘건 두 개의 핏줄기가 땅으로 내리흐른다. 그는 투지 넘치는 모습으로 고통을 이겨내며 검을 날카로이 휘둘러온다.

“흐아압!!”

그를 발로 차서 밀어내며 이어지는 공격을 간신히 피해낸다. 그러나 곧 그의 검에서 형광의 기운이 연이어 뻗어 나와 분노한 호랑이의 앞발처럼 나를 향해 짓쳐들어온다.

“헉!”

우지끈! 몸이 보내는 위험 신호에 지팡이를 들어 막았지만,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난다. 당혹스럽다. 유일한 무기가 부러졌으니 이젠 뭘로 싸워야 하지? 황망한 내 모습에 그는 여유로운 미소로 답한다.

“흥, 난 아직 몸도 안 풀렸다고.”

쌍코피 흘리면서 그딴 말을 지껄이다니. 건방진 자식 같으니……. 반드시 무릎 꿇려주마.

나는 부러진 손잡이 부분은 던져버리고 70cm 길이로 줄어버린 막대기를 들고 선다. 이제는 그가 먼저 손짓한다.

“덤벼라.”

그 손끝에 걸린 오만함에 부아가 치민다. 나를 완전히 얕잡아 보고 있구나. 그런데 잠깐……. 눈에 띈 점이 하나 있다. 그가 검을 들고 있는 오른쪽 손목이 부어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분명 내가 입혔던 관절 피해가 누적된 것이다. 능력치 면에서는 내가 부족할지 몰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아직 승산은 있다.

“흐아!!”

기합은 크게! 공격은 소심하게 들어간다. 예상과 달리 느릿하게 걸어가자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뭐 하는 짓인가 싶은 눈을 하고 있다.

나는 피를 채우기 위해 그저 시간을 끄는 것이다. 억지로 나서서 죽음을 앞당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가만히 있던 그가 먼저 다가와서는 검을 내리후린다.

이제는 막대기가 되어버린 지팡이를 이용해 공격을 흘려 내며 몸을 회피한다. 그의 검날에 땅이 깊게 파여 쩍-! 갈라진다. 검 끝에서 흘러나오는 저 형광의 기운이 엄청난 절삭력을 자랑하는 것 같다.

“벼룩처럼 잘도 뛰는구나!”

휘익-! 목덜미를 향해 휘둘러지는 검을 굴러 피하며 그와의 거리를 벌린다.

누군 벼룩처럼 뛰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나……. 내 체력은 도대체 언제 차는 거야? 이쯤이면 찰 때가 됐는데.

위험을 보는 눈 덕분에 전투가 길어질수록 공격을 예측하긴 한결 쉬워도 스태미너까지 무한한 건 아니다.

안 되겠다. 이렇게 몸만 사리다간 먼저 지쳐서 나자빠지겠다. 막대기의 끝을 그에게 겨눈 뒤, 천천히 그의 우측으로 돈다.

그의 공격이 빠르게 날아든다. 그러나 내 움직임은 더욱 빨리한다. 이미 어려운 전투를 몇 차례 겪어오면서 내 신체는 알게 모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가 휘두르는 오른팔 바깥쪽으로 깊이 파고들어서 그의 오른 손목을 또 한 번 강타한다. 팍-!

“크아윽!”

짜증 난 듯 뱉어내는 음색과 함께 그가 인상을 크게 찌푸린다. 반응으로 보아 통증이 누적된 건 확실하다. 나는 계속 그의 우측으로 빙빙 돌면서 기회가 보일 때마다 손목을 가격한다.

“크흐윽…….”

“이런, 아프겠는데?”

그의 손목은 어느새 매운 족발을 연상케 할 만큼 벌겋게 부어올랐다. 곧 죽어도 오른손을 고집하던 그가 드디어 왼손으로 검을 바꿔 잡는다. 끈질기게 오른 손목만 집중공격한 효과가 있었다.

이제 잘 쓰지 않는 손으로 검을 쥐었으니, 그의 공격을 피하기는 더더욱 쉬워질 터다.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네놈이 자초한 거다.”

그렇단다. 어휴 무서워라. 기사단이라는 녀석이 허세만 그득해서는…….

“어련하시겠습니까?”

그때 그의 손에서 형광이 길게 죽 뻗어 나와 검신에 맺힌다. 그리고 이어 들려오는 미엘로나의 목소리.

“이를 어쩌나? 내 수행원은 왼손잡이인데……. 페로렌 영애. 수행원 시신 잘 수습하셔야겠어요? 제 수행원이 왼손으로는 힘 조절을 잘 못 하거든요.”

뭐라? 왼손잡이? 그럼 지금까지 반대 손으로 싸웠단 말이야? 그가 검을 찔러 들어온다.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나를 노리며 일직선으로 뻗어 나온다.

피부로 느껴질 법한 위협에 우측으로 몸을 돌려 피한다. 그는 공격을 피해내는 나를 보며 다시 검을 횡으로 긋는다. 살벌하게 다가오는 검기에 납작 엎드린다.

검기는 내 머리칼 서너 가닥을 단칼에 베어 버리고는 움직임을 추격해 엎드린 나를 향해 연속으로 쇄도한다. 바닥에 엎드린 채 데굴데굴 굴러 그와의 거리를 벌린다.

“허억……. 헉.”

확실히 공격이 날카롭고 빨라졌다. 그것뿐 아니라. 검에서 솟구치는 기운도 크고 강력해져서 피하기도 어렵다.

“조금 전 그 여유는 어디 갔지? 아까처럼 나불거려 봐라.”

젠장……. 이렇게 된 이상 그 방법에 건다. 위험부담 때문에 쓰고 싶진 않았는데…….

“어? 저건?!”

그의 뒤를 가리킨다. 그가 고개를 돌린다. 녀석이 한눈을 판 바로 이때다. 그에게 전속력으로 내달린다. 그러나 얼마 못 가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그의 검은 어느새 내 목을 겨누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칼에서 뿜어지는 기운이 내 목에 닿기 직전이다.

“이런 얕은 수라니. 차라리 포기했다면 편했을 것을…….”

이게 먹혀들 거란 생각은 안 했지만. 이 정도 거리밖에 줄이지 못하다니, 나 자신이 한심하다. 나는 투항의 의미로 양손을 어깨높이로 든다.

“이제 포기하는 거냐? 무기를 버리고 의사를 분명히 밝혀라.”

“후우……. 난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힘 빼는 성격이 아니야.”

막대기를 들고 있던 오른손을 펼친다.

“그런데…….”

막대기가 오른손에서 천천히 굴러 땅을 향해 떨어진다. 떨어지는 막대기는 팔뚝에 부딪히며 앞으로 떨어진다.

“조금이라도…….”

허리 지나고, 허벅지를 지난다.

“승산이 있으면…….”

최종으로 막대기가 무릎 높이에 당도한다. 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칼을 밀고 들어온다.

“포기 안 해!!!”

그러나 놈보다 내가 한발 빨랐다. 나는 칼을 피해 고개를 옆으로 뺌과 동시에 막대기를 발로 세게 팍-! 차올린다.

“흣?!”

막대기가 그의 얼굴을 노리며 빠르게 치솟는다. 갑자기 날아드는 막대기에 그는 고개를 돌려 피한다. 무너진 자세를 파고들어 재빨리 무기를 쥔 그의 손을 붙잡는다.

제발 먹혀들어야 할 텐데! 성공해라. 제발!

-‘훔치기에 실패하였습니다.’

실패. 좌절. 절망. 비관. 낙담. 체념. 지금 머릿속에 줄 서서 들어오는 감정들이다. 그의 무기를 훔쳐서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면 되지 않을까 했으나,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러나 포기하긴 이르다.

아직 하나가 남았다!

그가 나를 밀어내려 한다. 밀려나기 전 나는 그의 등 뒤로 매달린다. 무기를 휘두를 수 없도록 팔을 붙잡은 채 그에게 매달려 오직 한가지만을 생각한다.

승리! 아니, 그 뒤에 굳건히 서 있는 자유를 위해! 이러한 내 갈망은 독기 서린 여자의 한보다 강렬하게 작용한다.

“받아라아아아!!!”

각인! 기술을 시전한 순간. 그가 참을 수 없는 고통의 몸부림을 친다.

“크하아아아악!!!

최대한 고통 받아라! 항복을 외칠 때까지 나는 멈추지 않겠다! 그는 전기 고문을 받는 사람처럼 온몸을 떨면서 절규한다. 분명 공격 마법은 아니지만, 웬만한 공격 마법보다 고통스러워한다.

“끄으으아아아!!!”

“항복해! 어서! 항복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물론 죽지 않지만, 항복을 얻어내기 위해선 겁을 조금 줄 필요가 있다.

그가 나를 떼기 위해, 성난 코끼리 같은 움직임으로 몸을 이리저리 튼다. 그러나 내 남은 유일한 비기인데 이것마저 실패할 순 없다. 그가 움직일수록 나는 더욱 꽉 붙든다.

“아아아아아악!!!! 크아아아!! 하……!”

그가 얼마 못 가 입을 열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하면 항복을 받아 낼 수 있어!

“항……!”

조금만 더!!

“보오…….”

“크억!”

이게 무슨…….

-‘382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치명적 피해로 당신은 즉시 죽음을 맞았습니다.’

-‘잠재가 3 감소하였습니다.

항복을 받아내기 직전, 그가 하늘 높이 치켜든 검의 기운이 나의 등을 그대로 베어 들어가며, 내 의식은 끝없는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

-‘행동불능 상태에서 회복하였습니다.’

-‘당신은 하드코어 전용 캐릭터입니다. 한 달 이내 죽음을 두 번 이상 맞이할 경우 완전한 죽음에 이르러 캐릭터가 삭제되니 주의해주세요.’

“이제 곧 눈을 뜰 겁니다.”

근처에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뜨자 신관으로 보이는 사람과 페로렌이 보인다. 방을 보니 도를렌 백작가인듯하다.

역시 죽었던 건가……? 이렇게 허탈할 수가, 다 이긴 거였는데 젠장……! 역시 레벨 1로 버티기엔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몸을 일으키기 전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는 누운 상태 그대로 상태 창을 연다.

이름: 뭘 / 레벨: 1(30레벨업 가능) / 몸 상태: 보통

공격력: 7 / 방어력:1

직업: 부랑자

체력: 20 마력: 10

힘: 1 / 민첩: 1 / 지력: 1 / 건강: 1

카리스마: 2 / 근성: 3 / 통찰: 1

능력치 저장소: 1개

잠재: 67

현재 30까지 레벨업이 가능하다. 1업 당 추가로 3씩의 능력치가 분배된다고 하니, 내 레벨을 잠재 점수로 환산해보면 총 90의 능력치가 올라가는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여태까지 어마어마한 패널티를 안고 싸워왔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진다. 주저 없이 레벨업을 감행한다.

-‘레벨업 시 3의 보너스가 임의로 분배됩니다. 어떤 능력치를 위주로 성장시킬 건지 선택해주세요. 선택한 능력치는 레벨업 시 확정적으로 상승합니다.’

-‘힘 / 민첩 / 지력 / 건강’

역시 힘이 나으려나? 체력이 부족해서 건강도 필요하긴 한데……. 일단 하드코어 캐릭터니까 안정적으로 가는 게 낫겠지. 일단은 건강으로 찍고 힘이 부족하면 잠재를 배분하는 걸로 하자.

일단 건강을 선택하고…….

-‘레벨업을 하시겠습니까?’

떠 오르는 시스템 창에 주저 없이 ‘예’를 선택한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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