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118화 (118/139)

118. 최후의 발악

서 이사의 분노는 사회자의 능숙한 수습 덕에 해프닝으로 지나갔다. 서 이사도 뒤늦게 아차 했는지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그래. 재벌답게 격식을 차리라고.’

김서준은 그 모습을 비웃으며 프레젠테이션을 이어갔다. 설명은 물 흐르듯 무난하게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 결론.

김서준은 관객들을 바라봤다.

“사용자도 상관없고 마정석의 효율을 그 어떤 장인의 스킬보다 높게 끌어올릴 수 있는 기술. 저희는 이걸 마공학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입을 살짝 벌리는 사람들. 눈을 반짝이는 사람들. 이 자리에 있는 누구 하나 김서준의 말에 환희에 가까운 표정을 짓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스마트폰 다음의 혁신을 보는 느낌인데.”

“과언이 아니지. 이제 일반 경찰과 군인도 무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아니, 어쩌면 일상에도 적용될 수 있는 거 아닌가?”

몇몇은 벌써 돈 냄새를 맡고는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중 단 한 부스만이 인상을 완전히 구기고 있었다.

“젠장···.”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서 이사와 눈이 마주친다.

MP사의 기술은 의미가 없어졌다.

마공학으로 만든 도구는 완벽한 MP사의 상위호환, 아니, 질적으로는 몰라도 만드는 과정에 있어 서는 인간이 가진 스킬의 한 수 위였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벌써 MP사의 뉴스를 김서준과 금호 길드의 뉴스가 밀어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저 입술에서 피가 안 나는 게 다행이지.’

아까 참지 못하고 소리만 쳤을 뿐.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것만도 이미 극한의 인내를 감수하는 게 분명했다.

‘온 힘을 들인 프로젝트가 밟힌 기분. 그 기분 나도 잘 알지. 이거라면 내가 길드에서 쫓겨 날 때 그 기분을 조금이라도 느껴보라고.’

김서준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저희는 지금 혁신의 기점에 섰습니다. 하지만!”

김서준이 언성을 높여 말했다.

“이제 시작하는 지점. 저희는 더 많은 장인이 마공학의 기초를 만들기를 바랍니다. 더 많이 배우고 연구하고 번뜩이는 생각으로 혁신을 이끌기를 바랍니다.”

김서준의 말에 진의를 알아챈 장인들이 움찔했다.

‘장인이라면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지.’

김서준은 MP사의 부스를 바라봤다. 이건 모두에게 보내는 러브콜인 동시에 장인섭 사단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지금 안 오면 당신들이 올 자리는 없을 거라는 경고.

“저, 저 새끼가···.”

부들거리는 서 이사 역시 그 의미를 알아챘는지, 뒤에 있는 장인들을 노려보았다. 장인들은 은근슬쩍 눈을 피했다.

“...그럼 이상 발표를 마칩니다.”

김서준은 마무리 인사와 함께 발표를 마쳤다.

박람회의 시상식은 폐회식 전에 발표된다. 물론 최우수 혁신상을 받을 곳은 누가 봐도 뻔했다.

“신기하군요. 보기에는 무슨 접이식 안테나 같은데. 이게 쉴드 발생기인 겁니까?”

“네. 그리고 막대를 이렇게 옆으로 나란히 두고 장치를 키면 더더욱 강해지게 설계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A나 B등급 몬스터까지도 바리케이드로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모이면 더 강해지는 방식도 가능한 겁니까? 공산품이 아니라 아티펙트 같군요!”

“마공학은 아티펙트에서 그 원리를 찾는 거니까요.”

금호 길드의 좁은 부스는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감당하기 힘들 정도.

“이건 어떻게 켜는 겁니까?”

“여기를 누르면 작동합니다.”

“마공학은 스킬입니까?

“마공학이라는 건, 말 그대로 학문이오. 클클.”

오죽하면 장인섭과 트레스가 나서서 김서준의 응대를 도울 정도였다.

‘이제 슬슬 마무리해야겠네.’

마법진을 사용하는 엘프의 기술과 마정석이 가진 특성과 마나를 이용하는 드워프의 기술이 합쳐진 마공학은 설명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일반적인 상식을 넘는 거니까.’

그리고 일일이 이 모든 걸 설명하려면 스킬을 뛰어넘는 마법의 존재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다.

‘그건 곤란하지. 괜히 엘린이나 드워프의 정체가 의심받을 여지를 줄 필요는 없으니까.’

어차피 투자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방문하는 거래 처에게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혁신상이나 광고, 홍보도 필요 없었다.

‘어차피 장비를 제작하고 나면 투자하려고 난리가 날 게 분명하니까. 중요한 건 장인들을 포섭하는 거지.’

관심 끌기는 이미 대성공이었다. 김서준은 부스를 확장하고 좋은 자리로 옮겨준다는 주최 측의 배려도 거절하고 정리를 준비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서 이사가 김서준의 부스로 찾아온 일 덕분이었다.

“아까는 미안하게 됐습니다. 너무 놀라서 헛소리가 나왔네요.”

“괜찮습니다.”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입에 발린 말을 하지만, 그 안에 부들거리는 게 느껴졌다. 참 듣기 좋은 목소리의 톤이었다.

“듣다 보니 너무 좋아서 저희도 좀 투자를 하려는 데,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요. 이거 진짜 맞습니까?”

“네?”

“이거 말이죠. 진짜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이 된단 말이죠. 기억하시죠? 패튼 사건?”

아티펙트를 양산할 수 있다며 발표했던 패튼은 한 자루의 검을 가지고 와 시연까지 보이며 사기를 벌여 업계를 뒤집었던 사건이었다.

“이것도 혹시 그런 게 아닌가 해서 실험을 좀 해보고 싶은데요? 제가 직접 들고요.”

서 이사 뒤에 경호원 하나가 목을 푸는 게 보였다.

‘유치하긴.’

실험을 해보자고 하곤 쉴드를 깰 건가. 아니, 자기가 들어보니 안 켜진다고 연기라도 할 건가. 뭐가 됐든 유치한 촌극으로 되지도 않는 비방을 하려는 게 눈에 보였다.

“됐습니다.”

“됐다고?”

“그 사기 같으면 무시하던 고소를 하든 맘대로 하세요.”

서 이사는 의외의 태도에 황당한 표정이었다.

‘당연히 내가 응할 거라고 생각했겠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

실제로 지금 이 대화에 은근히 귀를 열고 있는 사업자가 많았다.

“도망치는 겁니까? 이거 의심이 자꾸만 커지네요. 기술의 결함이라도 있나 봅니다.”

계속 자신을 긁으며 실험을 유도하는 걸 보니 의도가 더 뻔히 보인다. 너무 투명해서 머릿속 열심히 일하는 뇌까지 보일 거 같은 기분.

김서준은 다시 한번 비웃어 주며 말했다.

“대답해줄 가치도 없고, 시간도 없네요. 어차피 MP사의 투자를 받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고요.”

“뭐?”

서 이사의 눈썹이 꿈틀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김서준의 입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목소리를 키워 말했다.

“맘대로 생각하세요. 생각은 자유니까. 근데 그거 아세요?”

김서준은 모두를 한번 쭉 바라보곤 말했다.

“고민하다 버스 놓치면 못 탄 사람만 손해입니다. 그러니까 잘 고민해보세요.”

마지막으로 다시 서 이사에게 시선을 옮긴 후 말했다.

“탈지 말지. 신중하게요. 아, 그리고 데리고 계신 분들 간 수 잘 하시고.”

****

천산군 군수, 홍성필은 연신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토종작물은 이미 대박의 징조를 보였다. 군 안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토종작물 사업에 뛰어들고 있을 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토종작물을 키우겠다며 천산군에 몰려들고 있었다.

‘이 기세면 군에서 시로 승격할지도 모르겠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지.’

관광 사업도 완벽했다. 금산 농장은 이미 충남에서 꼭 가야 할 관광지로 선정되어도 차원에서 밀어주고 있었다.

‘온천 사업도 대박이고.’

정확히는 헌터의 성지를 만든다고 했나. 그 계획이 헌터 사이에 소문을 탔는지, 점점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었다.

거기에 이를 눈치챈 몇몇 회사가 호텔을 지을 권한을 연이어 요청하는 중이었다.

‘김서준이 요구한 지역 연계 사업까지 들고 말이지.’

덕분에 천산군은 완전한 갑이 되어 느긋하게 사업을 구상하고 관망하는 중이었다.

홍성필의 지지율 역시 이 기세를 타고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지사 선거나 지역구의원이 아니라 바로 국회로 가도 될 정도지.”

그런데, 오늘 난 뉴스 기사는 이런 홍성필의 꿈을 더 구체화하는 듯했다.

“이런 기술을 가졌다고? 그래서 장비를 양산하겠다고?”

헌터 장비 제조를 위한 공장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양산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건 공장에 준하는 어떤 생산 설비를 만들겠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그런 게 천산군에 들어선다면?’

지역의 장으로서 자신보다 더 높은 실적을 달성한 사람이 전무 할 게 분명했다.

‘김서준. 이거 복덩이도 이런 복덩이가 또 없군.’

천산군에도. 그리고 홍성필 자신에게도 김서준은 굴러들어온 황금 박이었다.

‘다른 사람이 박을 열기 전에 우리가 열어야겠지.’

홍성필은 서둘러 비서를 불러 지시했다.

“이거 관련해서 어떻게 진행할 건지 물어보고 뭐든 지원해준다고 전하세요.”

****

“이건 생각 못 했는데.”

천산군청 쪽 연락을 받은 김서준은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양산한다는 이야기에 공장을 떠올린 듯했다.

‘그래도 헌터 장비인데 공장을 지을 순 없지.’

좀 큰 공방 정도?

그게 홍성필이 원하는 만큼 군의 발전에 도움이 될지 솔직히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가?

‘알아서 돕겠다는데 마다할 건 없지. 내가 뭘 약속한 것도 아니고.’

마침 군에게 요청할 게 있었다.

더 많은 헌터들을 강하게 만들고 포션에 쓸 재료를 구하기 위해 미트루트 생산량을 늘려야 했다.

‘땅이 더 필요하지.’

이제 김서준이 사전에 샀던 땅은 전부 사용했다.

“다들 조심하라움! 지렁이 선생은 우리 편이다움!”

“꽥꽥!”

“멍멍!”

지금 노움과 리노, 토리들이 개간하는 땅이 거의 마지막이었으니까.

‘추가로 땅을 사야 하는 데 땅값이 많이 올라버렸지.’

천산군 전체가 재평가받은 탓이었다. 김서준의 관광 사업과 활발한 활동, 그에 기반을 둔 천산군의 여러 가지 개발 사업은 충분히 재평가를 받을 만했다.

‘살려면 못 살 건 없지만, 도움을 받으면 더 좋겠지.’

나라에서 땅을 사주거나 지원받으면 더 쉽게 땅을 구할 수 있을 터였다.

“리노 공! 거기 두더지가 있다움!”

“멍멍!”

열심히 밭을 개간하는 노움과 리노를 뒤로 한 채 김서준이 옆에 나란히 걷는 고블에게 말했다.

“일단 지원은 받을 수 있는 대로 다 받아. 알겠지?”

“알겠고-블.”

고블은 업무보고를 위해 김서준이 있는 밭으로 소환되었다. 항상 사무실에는 분신을 두고 있는 고블이기에 김서준은 종종 이렇게 외부에서 보고를 받곤 했다.

“근데 엄민호 셰프님 연락 왔던데, 그건 뭐야?”

“아, 새로 나온 술 반응이 너무 좋다고 한번 대접도 할 겸, 다음 회식은 자신이 준비하고 싶다는고-블.”

“와, 엄민호 셰프님이 직접?”

김서준은 화색을 띄웠다. 김서준의 토종작물을 다루는 셰프는 많았지만, 역시 엄민호만큼 잘 다루는 셰프는 없었다.

“좋다고 말씀드리고 얼른 날짜 잡아.”

“그렇게 하겠고-블!”

그렇게 관광과 농사에 대한 보고가 이어졌다. 모두가 순항 중이었다. 고무적인 점은 천산군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이제 천산군 전체에서 토종작물 재배가 시작됐다.

‘이제 곧 천산군 전체가 터전이 되겠네.’

그때 김서준은 토종작물 재배를 전국으로 펼칠 계획이었다.

‘북한 토벌과 함께 한반도 전체를 게이트 청정구역으로 만드는 거지.’

정계와 헌터계, 양쪽의 힘을 모두 등에 업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김서준은 생각했다.

“마지막은 금호 길드에 대한 문의인 고-블!”

금호 길드의 투자는 일단 전부 보류했다. 구색을 갖추고 금호 영농조합과 김서준이 완벽하게 모든 길드원을 통제할 수 있을 때 투자를 받을 셈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투자가 아니라.

“몇 명이나 왔어?”

얼마나 대단한 장인들이 김서준의 길드에 합류를 원하는가였다.

“주인님이 주신 리스트에서는 팀 단위 영입을 막았더니 한 명만 길드로 오기를 원하는 고-블···.”

팀 단위 영입은 자칫 길드 내 계파 갈등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차단했건만, 사단으로 움직이길 즐기는 대가들이 역시나 참여를 거부했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리스트 제외한 대가들은 문의가 너무 많아 세기도 힘들 정도인 고-블! 시키신 대로 문의한 장인을 등급별로 계속 나누고 있고-블!”

과연 고블. 시키는 대로 철저하게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보고를 다 받은 김서준이 마지막으로 핵심 사안을 물었다.

“MP사는 어때? 보내주겠데?”

“그게···. 이번에도 거절했고-블.”

금호 길드의 주 측은 장인섭. 장인섭 사단의 합류가 역시나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김서준은 MP사에 아주 좋은 조건으로 그들을 모셔오길 제안했지만 3번째 거절당했다.

“오히려 계약을 강화해서 이제는 그분들이 원해도 오기 힘들 것으로 보이는 고-블.”

“최후통첩이라고 했는데도 그랬다는 거지?”

“그렇고-블···.”

김서준은 서 이사를 떠올렸다.

‘결국, 후회할 짓을 하는군.’

괜히 죄송해하는 고블을 보며 김서준이 미소를 지었다.

“고블 잘못도 아닌데 그런 표정 안 해도 돼. 고블은 잘하고 있어.”

표정이 조금 풀리는 고블. 그러나 여전히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러면 주인님의 계획이 틀어지는 고-블.”

“아냐.”

김서준은 웃으며 말했다.

“최후통첩이라고 했잖아. 포기한다는 이야기가 아니지.”

“방법이 있고-블?”

고블이 눈을 크게 떴다. 김서준은 그런 고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있지.”

“그게 뭐인 고-블?”

김서준은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고블에게 말했다.

“고블. 지금 바로 미트루트 포션 정식 출원해. 그리고 MP사와 관련 있는 업체는 전부 납품 거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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