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89화 (89/139)

89. 포션만들기

“흠···.”

허철영은 고민에 빠졌다.

중국의 새로운 움직임 때문이었다.

“국장님. 이거 확실한 겁니까?”

“국정원과도 더블 체크한 사항입니다. 확실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북한이라니···.”

북한.

게이트가 나타난 이후 북한은 허망하리만치 쉽게 무너졌다. 북한의 국민은 독재자의 강력한 권위와 공포 앞에 탄압받았다. 분노가 들끓어도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헌터로서 각성했다. 권위와 공포에 대항할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독재자에게서 벗어나자!”

“자유를 되찾자!”

억압의 사슬은 완벽히 풀려나갔고, 각성한 헌터들은 충성 대신 반란과 혁명을 주도했다.

신의 혈통이라고 포장했던 최고지도자 혈통 중 단 한 명도 각성하지 못한 일도 컸다.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했고, 독재자들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몬스터를 물리친 이들이 지역에 호족처럼 세력을 득세하기 시작했다. 독재의 총과 혁명과 반란의 검이 맞붙었다.

‘그때 일어났지. 세계 최악의 크라이시스(Crisis)가.’

북한의 하늘을 덮을 정도로 많은 게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거기에 역대 최악의 몬스터이자 최초의 SS급 보스 몬스터, 오거 엠퍼러까지 나타났다.

‘그 녀석에게 북한에 유명했던 랭커들이 전부 찢겨 죽었지.’

랭커들이 쓸려나가고, 군대는 무용지물. 북한은 순식간에 범람하는 몬스터의 바다에 쓸려나갔다.

‘결국, 초토화되었지.’

UN은 공식적으로 북한이 최초로 몬스터에 의한 멸망 국으로 선언했다. 빠르게 북한이 경계를 맞댄 지역에 방벽을 쌓고 몬스터의 범람을 막아내는 게 겨우 였다.

‘그 어느 나라도 귀한 전력인 헌터를 소비해 북한에 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었지.’

그런데 이번 바이올렛 호퍼 사태로 자존심을 구긴 중국이 선언했다.

“북한을 정벌하고 그 땅을 차지하겠다니···.”

위성 사진에 따르면 북한에는 A급 몬스터가 셀 수 없이 많았고 오거 엠퍼러 역시 건재했다. S급으로 예상되는 나이트 오거나 자이언트 오거도 꽤 많았다.

“중국도 바보가 아닐 거야. 분명 이렇게 가면 수많은 헌터가 죽을 텐데, 도대체 무슨 꿍꿍이랍니까? 이제와서 영토 확장하고 힘자랑이라도 하겠답니까?”

“말씀하신 의도도 있지만, 국정원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지난 사태에 하오위 편에 섰던 헌터를 축출하고 인체 실험을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합니다.”

허철영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사태에 반기를 든 헌터를 축출하는 건 그럴 만했다.

‘중국이라면 납치 살인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지. 그래서 하오위에게 귀화를 제안했던 거고.’

하지만 전 세계에 북한 땅 회복을 선언한 상황에 전투 의지도 없는 헌터만 파견할 중국이 아니었다.

화산 길드, 무당 길드와 같은 중국 최고의 길드 정도는 투입해야 할 터.

‘그런데 그건 전력 손실로 이어질 거고.’

하지만, 인체 실험을 하기 위함이라면? 강한 헌터를 더 강하게 만드는 실험이 성공했고 그 최종 테스트를 위한 거라면?

‘가능하다. 가능한데······.’

그래도 이 시대에 인체 실험이라니. 아무리 중국이라도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었다.

“...확실하답니까?”

허철영 대통령의 반응을 본 국장이 말했다.

“저희 조사에 따르면 조금 다릅니다. 아무래도 찾는 게 있다는 거 같습니다.”

“찾는 거요?”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도청한 내용에 따르면 석판을 찾으라고 했답니다.”

“석판?”

아리송한 이야기였다. 석판이 S급 신물이라도 되는 걸까.

‘아니, 그렇다 하더라도 S급 신물 하나를 위해 헌터를 대규모 투입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

허철영은 고심했다. 상대 의도를 모르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고작 마음의 불안으로 고급 전력인 헌터를 투입할 수는 없었다.

허철영은 고심 끝에 신음하듯 말했다.

“...일단은 사태를 좀 더 관망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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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 모델인가요?

-Снимайте и публикуйте, пожалуйста, больше слогов из вашей повседневной жизни.

-이 언니 여태 왜 사진 안 올린거임? 너무 예뻐서 주그뮤ㅠㅠ

-미모, 미쳣...

-Your posts are the reason for my happiness so much positivity

엘린의 SNS에 얼굴이 올라간 이후, 엘린은 순식간에 인별그램 셀럽으로 등극했다. 역시 엘프의 외모에는 호불호가 없었다.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지만.’

그 인기는 그대로 너튜브로 이어졌다. 엘린이 찍은 V 로그는 3일 만에 25만 조회 수를 넘어 인기 동영상에 올랐다.

‘아마 동영상 하나로 이 정도 조회 수를 받은 건 엘린밖에 없겠지.’

다행인 건 엘린의 개인정보가 워낙 철저히 비밀이라는 점이다. 인별그램의 DM과 댓글 말고는 알려진 정보가 없다 보니 김서준이 매니저 역할을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종종 마을로 직접 찾아오는 연예 기획사는 좀 귀찮지만···.’

당연한 이야기지만 엘린의 홍보 효과도 대박이었다. 엘린의 외모가 금산농장과 엘린의 외모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덕이었다.

‘게다가 노움과 리노가 의외였지.’

영상이 공개된 이후, 리노와 노움의 귀여운 외모도 화제가 된 덕이었다. 오죽하면 SNS 화젯거리를 모아 뉴스화하는 황색언론 중에 리노와 노움 이야기를 안 다룬 기사가 없었을까.

‘금산농장에 가면 꼭 봐야 하는 리스트에도 오르고 말이야.’

지금도 그랬다.

“달려라움!”

“멍멍!”

초원을 노니는 양을 타고 다니는 노움과 양치기 개로 변모한 리노를 보기 위해, 수없이 많은 관광객이 울타리에 몰려 있었다. 일전에도 인기가 많았지만, 지금은 반달이를 제치고 금산농장의 완벽한 마스코트가 되었다.

“노움! 여기 한번 봐줘!”

“리노야. 이쪽으로도 양 몰아줘!”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소리치고 간식도 건네며 리노와 노움을 유혹했다. 그러나, 김서준에게 철저하게 교육받은 둘은 그 주변을 천천히 돌며 가벼운 팬서비스만 할 뿐, 절대로 그걸 받지 않았다.

“잘하고 있네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쓴 단발머리의 소녀가 다가와 말했다.

“노움이랑 리노는 원래 똑똑하니까요.”

김서준은 낯선 외모의 여자에게 자연스레 대답했다.

“그 모습은 또 새로운 모습이네요?”

“다 서준 씨 때문이죠.”

“하하. 저도 그렇게 엘린 팬이 많을 줄 몰랐어요.”

김서준이 V 로그를 올린 다음 날을 떠올리며 말했다. 생각 없이 산책로를 걷다 붙잡힌 엘린은 김서준이 올 때까지 수십장의 사진을 찍어야 했다.

그 뒤로 엘린은 SNS와는 전혀 다른 외모로 매일 모습을 바꾸고 다녔다.

“근데 진짜 신기하네요. 그 영상이 이렇게 효과가 뛰어날 줄 몰랐어요.”

“그럴 만도 하죠. 엘프잖아요.”

김서준의 말에 엘린이 살짝 볼을 붉혔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금산농장 공식 모델님.”

“네. 근데요. 정말 저걸로 괜찮겠어요?”

엘린이 양을 보며 말했다. 우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젖소, 특이하면서도 드워프들이 책임지겠다던 염소, 셰프들이 원한 소 대신 김서준은 양을 골랐다.

“네, 괜찮아요. 수익을 낼 농사는 지금도 많아요. 마지막 조각은 어렸을 적 로망을 채우는 데 써도 좋을 정도로요.”

김서준이 양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그 양떼 목장에 시선이 팔린 아이들을 바라봤다. 어렸을 적 자신의 모습이 겹치자 괜히 웃음이 피식 튀어나왔다.

“그리고 처음부터 마지막은 관광용으로 만들 생각이었어요. 비교적 관리도 쉽고 냄새도 덜 나고 관상용으로도 좋은 양이 딱 맞아요.”

김서준의 말에 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제 금산농장은 다 완성된 건가요?”

“네. 홍보도 TV 광고만 찍으면 끝이고, 기반은 다잡은 거 같아요. 이제는 토종 작물 사업을 넓히고 터전 넓히기에 집중해야죠.”

터전 넓히기를 하자 김서준은 또 하나의 사업이 떠올랐다.

“아, 미트루트는 어때요? 좀 진전이 있어요?”

“마침 이야기 드리려고 했는데요.”

엘린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연구가 아무래도 막다른 길에 다다른 거 같아서요. 서준 씨가 좀 도와주실래요?”

‘올 때마다 신기하네.’

오랜만에 온 엘린의 공방은 여전했다. 온통 나무로 된 가구에서는 그윽한 향이 나고, 탁자에는 온통 정체 모를 약물이 가능했다.

“이거죠?”

김서준은 책상 위에 영롱한 붉은 빛을 뿜어내는 약병을 보며 말했다.

“네. 맞아요.”

투명한 약병 안에 액체는 지난번보다 검은빛이 덜하고 찐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지난번보다 훨씬 붉네요?”

“클클. 정제를 더 했기 때문이오.”

공방에서 엘린과 함께 연구하던 도스가 대답했다.

“세포 내에 정신 계열 성분이 있었어요. 아드레날린 분비를 강하게 촉진 시키는 동시에 이성을 약하게 만드는 거죠. 그 성분을 정제하니까 이런 빛깔이 되더라고요.”

엘린의 설명을 들으며 김서준은 약병을 살폈다. 설명대로면 일전의 검은 빛이 바로 그 성분인 듯했다.

“그럼 문제는 다 해결된 거 아닌가요?”

“그게 다였으면 좋았을 텐데···.”

엘린이 아쉽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서준. 안타깝게도 저 성분은 부가적인 문제요. 진짜 문제는 미트루트가 가진 기본 성질이요.”

“기본 성질이요?”

“미트루트는 생명력을 자극하지. 몸 안에 생명력이 들끓으면, 그 생물은 호전적으로 변하기 마련인데, 미트루트는 워낙 효과가 좋다 보니 그 수준이 심각하오.”

김서준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호전적으로 변한다는 것과 이성을 잃는 건 다르지 않은가. 더군다나 포션은 전투 중에 사용하는 일이 다반사.

‘호전적으로 변하는 게 그렇게 대수인가?’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생각이 변했다.

“그러니까 우노가 던전을 전부 부술 뻔했다는 거죠?”

“그러네. 적이 있을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뒤가 문제였소. 우노의 말을 빌리면 화를 주체하기가 힘들었다고 하더군.”

몬스터를 전부 처리한 후에도 포션을 사용한 우노는 계속 흥분상태였고, 결국 던전의 벽을 전부 허문 다음에야 멈췄다는 거다.

“거기다 참을성도 많이 사라진다고 하오. 트레스가 걷는 소리가 거슬려서 화가 치밀었다고 하더군. 트레스에 머리를 노리고 싶은 걸 겨우 참고 던전에 망치질한 거라고 하오.”

“대, 대단하네요···.”

김서준이 그 아찔한 상황을 상상해보니 괜히 소름이 돋았다.

“현장에서 쓰는 건 무리겠네요. 잘못하면 칼부림이 날 테니까요.”

“그렇소.”

도스가 씁쓸한 말투로 대답했다.

“문제는 더는 정제할 수 없다는 점이에요.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했어요. 이제 남은 방법은 희석뿐이지만···.”

“희석하면 트롤의 피로 만든 포션 정도 수준인가요?”

“오히려 그보다 못하겠죠. 효과는 비슷한데 미트루트는 부작용이 있는 셈이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김서준이 다시 포션을 바라봤다. 아쉬웠다. 미트루트의 효과는 초주검을 만들어놓은 몬스터도 일으킨다 하지 않았는가.

‘위험성만 없다면 이만한 포션이 없는데···.’

더군다나 트롤의 피는 트롤을 잡아야 했다. B~A등급인 트롤이 흔히 보이는 몬스터도 아니고, 가축은 더더욱 아닌 만큼 비싸고 점점 만들기도 힘들어지는 상황이었다.

‘반면 미트루트는 키우기도 쉽고 재배도 가능하지. 이렇게 포기하긴 너무 아쉬워.’

이성을 유지하는 일이라. 안타까운 마음에 부작용을 곱씹어보다 김서준이 손가락을 튕겼다.

“아!”

“서준, 무슨 생각이 난 것이오?”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김서준이 씨익 웃었다. 그리고 아리아와 함께 나눴던 티타임을 떠올리며 말했다.

“혹시 블랜딩이라고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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