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인플루언서
“여기는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이오.”
“저기요! 제가 누군지 몰라요? 저 너튜버 아르미라니까요?”
뾰쪽한 턱에 빨간 입술, 화려한 옷을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트레스는 곤란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트레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노와 도스를 바라봤다. 그러나 둘 다 어깨를 으쓱한다.
“너튜버가 뭐요? 아르미는 또 뭐고? 그대 이름이오?”
트레스는 최대한 정중히 물었다. 그러자 여자가 더 답답해하며 말했다.
“아니, 아무리 외국인이라도 그렇지 너튜버도 몰라요? SNS 몰라요?”
“들어본 적은 있지만, 뭔지는 잘 모르겠군. 그게 대단한 건가?”
“대단하죠! 제가 글을 쓰면 보는 사람이 100만 명이 넘어요. ‘제가 여기 양조장 대박이다. 술 진짜 맛있고 경치도 끝내준다.’ 이렇게 피드도 올리고 영상 올리면 이 집, 아니 농장 전체가 대박 난다니까요? 그러니까 이제 답답하게 굴지 말고 좀 들여보내 달라고요.”
트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안 되오.”
김서준은 트레스에게 신신당부했다.
‘양조장은 당분간 비밀입니다.’
트레스의 양조장은 마나 공학의 결집체였다. 양조장 전체가 마도구로 된 건 물론 반자동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뿐인가.
트렌트 가죽을 이용한 로스팅 통.
샐러맨더의 가죽을 이용한 화구
자이언트 멘티스의 칼날을 이용한 분쇄기 등.
몬스터의 사체를 활용하는 방식이 현재 인간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현재 인간들에게는 너무 충격적일 거라 했지.’
김서준은 이 기술만은 비밀로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앞에 선 여자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김서준의 허락 없이는 절대 보여줄 수 없었다.
“하, 이 아저씨들 답답하네. 저기요.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제가 영상을 어떻게 편집할 거 같아요? SNS에 어떻게 글을 올릴까요? 네?”
“아가씨, 그게 뭐 어떻다는 거요?”
우노는 정말로 그게 뭐가 대단하다는 건지 알지 못해 되물었다. 여자는 우노의 당당한 태도에 더 화가 났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반면 트레스는 아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세계의 신문 같은 건가 보군.’
트레스는 서둘러 김서준에게 연락했다.
“이 아저씨들 진짜 한번 망해봐야 정신 차리겠네!”
“뭐요?”
우노가 순간 발끈해 근육을 꿈틀거렸다. 그러자 너튜버라고 밝힌 여자가 움찔했다.
“저기요. 좋게좋게 서로 끝내면 좋을 거 같은데요?”
그러자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남자가 나서서 말했다.
“잘 모르시는 거 같은데. 이거 진짜 홍보에 엄청 도움 되는 거예요. 다른 곳이었으면 돈 주고 해달라고 빌어도 안 해드리는 겁니다. 근데 여기가 워낙 맘에 들어서 저희가 인심 좀 써보려는 데 이런 식은 좀 그러네요.”
트레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오랜만에 그 시절 인간들을 보는 거 같군.’
드워프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벌이면서 마치 선심 쓰듯 얘기했던 인간들. 그 때문에, 결국 인간과 드워프의 관계도 최악으로 치 닿지 않았던가.
‘하긴, 모두가 서준과 같을 순 없지.’
아니,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의 꿈과 능력을 존중해주는 서준과 마을 사람들이 특이한 경우일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딴 선심 필요 없으니 이제 물러나시오. 우리도 바빠서 말이오.”
“안에 한 번 찍는 게 그렇게 힘든 일입니까? 다 좋자고 하는 일을.”
남자가 혀를 끌끌 차더니 말했다.
“아니면, 만든 술이라도 협찬해주세요. 그러면 좀 좋게 편집 해드릴 테니까.”
“그, 그래요! 그거라도 주면 제가 최소한 악평은 안 할 테니까요.”
“술을 달라?”
“그래요. 내부공개가 어려우면 좋은 거로 협찬해주세요. 제일 고급 품종으로.”
“말도 안 되는군.”
트레스가 바로 잘라 말했다.
“그럼 그냥 악플이나 먹고 망할 준비나 하시던가요.”
여자가 감정이 상했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남자 역시 뒤이어 말했다.
“좋은 기회를 이렇게 위기로 바꾸는 것도 재주겠죠. 안타깝네요.”
“인간들은 항상 이런 식이로군.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이니.”
트레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여전히 같은 모습이었다.
“마지막입니다. 정말 협찬도, 내부 촬영도 응하지 않으실 겁니까? 저희 채널에 어떤 내용이 올라가든 감당할 수 있다는 거죠?”
정중한 협박이 들렸다. 당장이라도 망치를 휘두르고 싶은 감정을 트레스는 겨우 억눌렀다.
“이래서 촌구석 사람들이 안 되는 거라니까. 가자. 아름아. 한번 데어 봐야 정신 차리지.”
“나중에 사과할 준비나 해두세요. 된통 당하고 오늘을 후회하면서 무릎 꿇고 빌면 저희가 도와드릴 수도 있으니까요.”
둘은 빈정대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트레스의 참을성도 한계에 다다랐다. 그때였다. 맹렬한 기세가 등 뒤에서 느껴졌다.
‘우노?’
우노의 얼굴에 싸늘한 표정이 떠올랐다. 꿈틀거리는 안면의 근육이 그 분노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우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술을 나누는 일은 즐거운 일이오. 특히나 좋은 사람과는 말이지. 하지만···.”
우노가 눈에 쌍심지를 켰다.
“너희는 뭐지? 친구도 손님도 아니지. 거기에 우릴 상대로 협박이나 하는 데다, 우리가 만든 술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돈도 안 내고 마시겠다고 하는군.”
우노가 옆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어느새 거대한 망치가 나타났다.
“거기에 협박을 해? 감히 우리 망치의 후예를···?”
-구구구구.
땅이 미세하게 울렸다.
‘그래. 우노 말이 맞아. 우리가 빚은 술을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 협박을 했는데 참을 수는 없지. 전사를 협박했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언제나 참기를 종용하는 트레스였지만 이번만은 막지 않았다.
‘서준에게 미안하지만, 이번 만은 우노가 맞아.’
본능적으로 살기를 느낀 두 사람의 맘이 가늘게 떨렸다. 그러다 갑자기 여자가 태연한 척 소리쳤다.
“오호, 폭력까지. 그럼 좋네! 그래, 때려봐요! 아주 예쁘게 잘 찍어서 올려드릴 테니까. 여자까지 때리면 금상첨화지!”
“아냐, 아냐. 몸이 재산인데 몸의 흉 생기면 어쩌려고. 그리고 자기 알잖아. 나도 헌터였던 거.”
그러더니 남자가 여자에게 카메라를 넘겼다. 우노는 그런 말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일촉즉발의 상황.
“잠깐만요!”
누군가 소리쳤다. 모두의 이목이 그리로 쏠렸다. 훤칠한 키에 농부답지 않은 하얀 피부. 김서준이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김서준이 다급하게 달려와 둘 사이에 서서 물었다.
“무슨 일이예요?”
“....”
사정을 모두 들은 김서준은 기가 찼다.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한 양조장에 들여 보내달라는 것뿐 아니라, 술을 협찬해달라고?’
먼저 광고를 요청한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와서 촬영해놓고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거기다 말하는 태도 역시 완벽한 갑의 모습에 반협박성 말투까지.
‘우노, 도스, 트레스가 참은 게 다행이네.’
불같은 성질을 가진 거 같지만 세 사람은 생각보다 참을성이 뛰어났다. 그런 그들이 외 격노했는지 알법했다.
“보니까 사업수완도 있으신 거 같은데, 이거 정말 좋은 기회인 거 아시죠?”
“저희 채널 ‘아르미’ 구독자가 100만이 다 돼갑니다. 효과는 확실하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김서준의 속내도 모른 채 두 사람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아, 가온길 식사 무료로 제공해주시면 가온 길 영상도 따로 올려드릴게요. 체험농원도 함께 해드려도 되겠다.”
“아니면, V 로그를 1박 2일로 찍는 건 어떠려나? 여기 게스트 하우스도 있다던데.”
“그거 좋네. 제일 좋은 방으로 주세요. 광고는 무조건 VIP룸으로 나가야 좋은 거 아시죠?”
“하···.”
김서준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모두가 이렇지는 않겠지만···.’
인터넷에서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설마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설마가 사람을 잡는 걸까.
‘게다가 생각보다 더 심하네. 갑질도 이런 갑질이 따로 없구나.’
김서준의 생각을 읽은 거처럼 너튜버 아르미가 말했다.
“서준 씨. 혹시나 해서 말하는 데 갑질 같은 게 아니에요. 저희는 정말 이 금산농장이 잘되길 바라고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이걸 저희 구독자님들과 나누고 더 알려드리고 싶은 거고요. 거기에 소정의 협찬을 받으려는 거고요. 이해하시죠?”
예쁘장한 외모의 여자는 눈을 찡끗하며 말했다.
‘안 되겠네.’
김서준이 말했다.
“좋아요. 좋은데 확인 좀 할게요. 구독자 100만 맞아요? 공개가 안 돼 있던데. 거기에 조회 수도 만 단위인데요?”
“100만 구독자라도 매번 100만 찍나요. 영상마다 다르죠. 저희 몰카 찍은 거 보세요. 그건 또 몇백만 되요.”
“오늘 찍을 건 몰카가 아니잖아요. 홍보가 안 될 거 같은데요?”
그러자 아르미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지금 저희 채널 무시하는 거예요? 저희 채널 구독자님들이 얼마나 반응이 빠르신데.”
교묘하게 구독자를 무시하냐며 말한다. 김서준은 뻔한 수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휴대폰 스크롤을 내리며 말했다.
“그냥 사실을 말하는 겁니다. 와 최근에는 계속 하락세네요? 메리트가 너무 없는데.”
“하···.”
“김서준 씨, 어그로 끌면 그딴 조회 수 올리는 거 금방입니다. 그 몰카 영상 섬네일 보세요. 저 섬네일 때문에 이렇게 된 겁니다. 협찬해주시면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요?”
“물론이죠. 저희 채널 구독자가 또 잼민이도 많아서. 영상 보고 부모들한테 가보자고 땡깡부려서 오는 경우도 많을 겁니다. 믿고 맡겨주셔도 돼요.”
“아, 정말 대단한 채널이네요.”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준 낮은 콘텐츠에 수준 낮은 구독자만 있다는 이야기 잘 들었고요. 저는 협찬 안 할 테니까 돈 내고 규칙 맞춰서 드시고요. 안 그러실 거면 그냥 저희 농장에서 꺼져 주시고요.”
김서준의 말에 아르미가 소리쳤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저희를 모욕하시는 거예요?”
“모욕은 무슨. 그 쪽 한 말 그대로 요약 정리한 겁니다. 아닌 거 같으면 인터넷에 올려서 확인해보죠.”
“네?”
“녹음하셨죠. 대화?”
아르미가 흠칫했다. 딱, 예상대로.
질문부터가 뻔했다.
‘녹음한 대화를 악의적으로 편집하려고 했겠지.’
김서준은 휴대폰을 올려놓았다.
“저도 녹음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갑질 폭로라고 신문사 제보하면 딱 좋겠네요. 아니면 이참에 제가 너튜버를 해도 되고. 아 그거 좋겠다. 마침 유명세도 탔는데.”
“아, 아니 그게······.”
“저기요. 김서준 씨 진정하시고요. 괜히 서로 피봐서 뭐합니까.”
카메라를 들고 있던 피디라는 작자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이미지도 좋으신데 괜히 공방 전하면서 서로 이미지 깎을 필요 없잖아요. 그리고 서로 좋은 일 하자고 한 건데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억지로 갑질하는 게 서로 좋은 건가요? 됐고요. 저는 이번일 알리고 제가 잘못한 건지, 제 ‘이미지’ 걸고 폭로할 테니까 한번 끝까지 가보시죠. 그게 싫으시면 저랑 오늘 본 제 동료들에게 사과하고 가시던가.”
아르미가 얼굴이 잔뜩 붉어져 소리쳤다.
“우리 구독자들이 당신 말을 믿을 거 같아? 진짜 꼴값하네. 너튜버 생태계도 모르는 게.”
김서준은 비웃었다. 그 모습이 겁먹은 개새끼가 다가오지 말라고 짖는 모양처럼 보였다.
‘끝났네.’
김서준은 더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 뭐 다른 사람이라면 그랬겠지. 근데, 이런 어쩌나. 내가 김서준이네. 지금 대한민국에서 호감도 2위라지? 화제성은 1위라더라? 광고문의가 너무 많은데 다 거절하느라 바빠 죽겠어. 자 그럼 이제 누가 꼴값인지 한번 다 까볼까?”
“이······.”
나긋나긋한 김서준의 말에 두 사람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다 피디라는 남자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협박이나 갑질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서로 좋은 일이 될 거 같아서···.”
“됐고요. 제가 한 말 들었죠. 어떻게 하실 거에요? 아니면 정신적 피해 보상금까지 받을까요?”
피디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마지못해 대답했다. 옆에 있던 여자는 마지막까지 부들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모든 일이 끝나고 오랜만에 김서준부터 드워프 삼 형제, 엘린에 신동원과 강하진 셰프까지, 금산농장의 핵심이 모두 가온 길에 모였다.
저녁 밥상의 이야기는 단연 좀 전의 불청객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런 녀석들은 머리에 망치를 먹여줘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서준이 죄송할 게 무엇이오! 드워프만큼 인간도 다양한 탓이지.”
결국, 둘은 모두에게 사과하고 갔다.
알고 보니 가온 길에서도 무전취식을 했다고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한 신동원이 대충 무마했다는데, 김서준은 그 비용과 사과까지 모두 받아냈다.
“이해해주셔서, 그리고 참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사태를 방지할 수 있도록 안내문을 미리 걸어 둬야겠습니다.”
김서준의 말에 모두가 끄덕였다. 그때 엘린이 말했다.
“근데 광고 인플루언서들이랑 찍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긴 한데 고민이네요. 이번에 크게 데여서. 섭외한 사람이 또 저런 식일까 봐.”
채널 아르미는 명랑한 소녀 컨셉으로 채널 이미지가 꽤 괜찮았다. 그런 소녀의 실상이 이렇다는 걸 겪으니 인플루언서에 대한 신뢰가 싹 사라졌다.
“이미지 좋은 인플루언서로 광고 찍고 너튜버에도 올려서 대대적 홍보 시작하려 했는데···. 고민이네요.”
신동원이 말했다.
“하긴, 저도 가끔 아르미 채널 봤는데 저럴 줄은 몰랐으니까요. 요즘 예쁜 사람은 마음도 예쁘다던데. 아니었나 봐요.”
“클클. 그게 예쁘면 여기 엘린은 여신이겠소. 클클클.”
“셰프. 엘프가 있는데 저 정도 인간에게 예쁘다는 표현은 과하오. 클클.”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엘린은 민망한 듯 살짝 볼에 홍조를 띄웠다. 그때 김서준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네요. 우리도 인플루언서가 있었네요.”
“네?”
“인플루언서 엘스가든(Ell's Garden)의 너튜버 데뷔. 어때요?”
김서준의 말에 엘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