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71화 (71/139)

71. 초청회 준비

“수석 연구원님! 이거 봤어요?”

휴대폰 문자를 받은 조수가 잔뜩 흥분해 송기호에게 달려왔다. 산양삼 성분표에 눈을 고정한 채 송기호는 말했다.

“뭐?”

“김서준 농부님 농장이 완성됐데요! 그래서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을 초대한다는 데, 저희도 부른데요!”

“봤다.”

송기호가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 대답에 조수가 한껏 더 격양된 소리로 말했다.

“역시, 연구원님도 받으셨구나! 가실 거죠?”

송기호는 들고 있던 표를 내려놨다. 하얀 가운 위로 생머리를 늘어뜨린 조수가 눈을 반짝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안 가. 갈 시간 없다. 바쁜 거 안 보여?”

그 순간 조수의 눈이 갈 곳을 잃은 아이처럼 흔들리는 게 보였다.

“아, 네···.”

잔뜩 실망한 조수가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순간, 송기호는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했다.

“농담이다. 가야지.”

“...?”

조수가 놀라 송기호를 쳐다봤다. 서류철을 뒤적이며 송기호는 말을 이었다.

“금수산, 땅 조사표 기억나지?”

“물론이죠. 여기서 일하면서 그렇게 좋은 땅은 본 적이 없는걸요?”

“나도 그래. 그 좋은 땅 위에 지어진 농장이야. 모르긴 몰라도 최소 충남을 대표하는 농장이 될 거야.”

“산양삼도요.”

“산양삼은 아마 세계 최고 품질로 자랄 거고. 여하튼 그런 역사적인 장소의 오픈 날 빠질 수 없지.”

조수는 그제야 마음을 푹 놓았다.

그 날 김서준의 산양삼밭을 다녀온 이후, 새로운 산양삼의 희망을 봤다며 감격했다. 거기에 김서준과 마을 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이후에는 완전히 열정에 불이 붙은 상태.

‘그랬으니 안 갈 리가 없으시지. 덕분에 하루 푹 놀고 오겠네. SNS에 올릴 사진도 잔뜩 찍고!’

놀 생각을 하니 자연스레 입이 귀에 걸렸다.

“그렇게 좋나?”

“아, 하하···.”

“어쨌든 좋은 소식은 많이 알려야지. 충남일보랑 농민신문, 그리고 우리 협회랑 관련 있는 기자들 전부 연락 돌려. 금천면에 주목할만한 농장이 나타났다고.”

“알겠습니다!”

****

“어때?”

“멍멍!!”

“수평이 좀 안 맞습니다움! 좀 더 옆으로 가셔야 합니다움!”

김서준이 들고 있던 표지판을 들고 게걸음으로 살짝 움직였다. 다시 표지판은 가볍게 땅에 대고 노움과 리노를 바라봤다. 날카로운 눈매로 김서준을 바라보던 둘.

“멍멍!”

리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동의 한다움! 됐습니다움!”

노움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렸던 반가운 신호였다. 양손에 힘을 잔뜩 주고 들고 있던 표지판을 아래로 꾸욱 눌렀다. 커다란 판에 달린 두 개의 다리가 땅을 파고들었다.

“노움, 마무리 부탁해.”

“알겠습니다움!”

노움이 그 자리의 땅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늪처럼 변한 땅이 표지판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정도만 하자.”

“알겠습니다움!”

노움이 손을 멈추자 땅이 순식간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진짜 대단하네.’

신농의 힘과 함께 정령의 힘도 커졌다. 덕분에 노움은 흙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물론 포크 레인처럼 대규모로는 어려웠지만, 이런 작은 작업에는 탁월했다.

“끝났습니다움!”

“수고했어.”

김서준이 노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노움은 ‘헤헤’ 소리를 내며 기분 좋게 웃었다.

“근데, 이게 뭡니까움?”

“안내 표지판이지. 우리 농장의 동물들은 사람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표지판.”

김서준이 표지판에 적힌 문구를 보며 말했다.

“사람들은 반달이나 일호 가족이랑 갑자기 마주치면 무서울 수도 있으니까. 멧돼지도 있고.”

김서준은 동물들의 터전을 뺏고 싶지 않았다. 더 많은 미트루트를 보급하고 신갈나무를 심었다. 리노를 통해 동물들이 자유롭게 활동해도 된다는 의사를 전했다.

‘멧돼지부터 작은 산짐승들까지 전부 말이야.’

리노를 바라본 김서준이 재차 확인했다.

“동물들에게 이야기 전했지?”

“멍!”

“다들 사람 봐도 공격하지 말고 태연하여지라는 말도 전했고?”

“멍멍!!”

“잘했어.”

부드러운 리노의 이마를 토닥였다. 식물뿐 아니라 동물을 포함한 모든 자연과 교감하는 농장. 김서준이 이상으로 그렸던 농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진짜 다들 없었으면 어쩔뻔했어.’

혼자였으면 절대 못 할 일이었다. 김서준은 문득 느껴지는 감사함에 둘을 꼭 껴안았다.

“움···.”

“멍···.”

둘은 녹을 것 같은 얼굴로 김서준의 품에 쏙 들어갔다.

김서준만큼이나 마을도 분주했다. 이제 곧 몰려들 손님들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최 씨 할아버지 완전 대박이네.”

잦은 손님들의 방문으로 마을의 하나뿐인 슈퍼에도 끊임없이 물건이 입고되고 있었다. 호산마을의 주민들도 와서 함께 준비하고 있으니, 마을 전체가 정겨워 보였다.

“서준이 왔어?”

“안녕하십니까.”

“아, 어르신. 안녕하세요.”

임종철에게 인사하며 옆에 있는 박보현에게도 인사했다. 그러자 노움과 리노도 따라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움!”

“멍!”

“아고, 우리 새끼들도 왔네.”

박보현은 농부 일에 적응했는지, 피부가 살짝 검어지고 몸도 좀 더 다부져졌다. 임종철이 익히 말했던 대로 정말 성실하게 농부가 되어가는 중인 듯 보였다.

“일은 할 만해요?”

“너무 잘 알려주시고 재밌어서 푹 빠졌습니다.”

“원래 농사는 재밌는거다움!”

“하하, 네 말이 맞아. 정말 재밌더라.”

“오늘이나 내일 언제 가온길 한번 와요. 행사 때문에 이틀은 무료로 개방하니까.”

“아 내일은 종자 말린걸···.”

박보현이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자 임종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무 성실해도 탈이여. 자, 지난번에는 네가 하고 내가 놀러 갔으니께, 이번에는 네가 놀다 와. 그려.”

“그래요. 보현 씨. 휴식도 중요해요.”

“아,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대답하는 박보현의 모습이 기꺼워 김서준은 괜히 어깨를 토닥였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 감사함에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역시나 흐뭇한 일이었다.

“근데 오늘은 어디 가시는 거예요?”

“어디 가는 게 아니 구. 마을 구경하러 나온 겨. 마을이 이렇게 활력 넘치는 건 오랜만이잖여. 진짜 난 자네가 이렇게까지 마을을 바꿔 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니께.”

“저도 꼭 이사님처럼, 받은 은혜를 돌려주고 나누는 농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제가 그 정도로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요. 같이 잘 해봐요.”

김서준은 흐뭇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아, 어차피 산책 나온 거면 트리 한번 가실래요? 생각해보니까 보현 씨는 한 번도 안 가봤지 않나요?”

“트리요? 지금 봄인데 왜 갑자기 크리스마스트리를···.”

박보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가보기는커녕 처음 듣는 이야기인 듯한 반응이었다. 임종철이 낭패라는 듯 말했다.

“이거 내 불찰이구먼. 하도 바빠서 일만 시키느라, 트리도 못 데려가고.”

“아닙니다. 갑자기 종자 준비부터 농사 교육까지 많은 걸 부탁드린 제 탓이죠. 시간 있으면 지금 한번 가봐요. 아마 분명 맘에 드실 거에요.”

“그려. 바로 가보자고.”

박보현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김서준과 임종철의 뒤를 따라 걸었다.

‘저게···.’

박보현이 이곳에서 일한 첫날부터 궁금했던 존재가 있었다. 마을 저 먼 치에 보이는 탑인지 전망대인지 뭔지 모를 무언가. 그 정체가 궁금했건만.

‘트리였어···?’

건물 3층 높이는 되어 보이는 아주 거대한 소나무와 화려한 장식. 이건 분명 트리였다.

‘게다가 저 계단하고 꼭대기에도 뭐가 있는데?’

박보현이 넋을 놓고 트리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서준, 왔나?”

“서준 씨!”

엘린과 트레스였다. 두 사람은 사람들이 오기 전 마지막으로 트리를 점검 중이었다. 나머지 일행과도 인사를 마친 후, 트레스가 말했다.

“마침 잘 왔군! 새로 설치한 장비가 완성됐네!”

“설치한 장비요?”

“궁금하다움!”

“멍멍!”

“클클, 이리 와 보시게.”

김서준과 일행들은 트레스를 따라 계단에 입구로 향했다. 트리 주변에는 쓰레기통과 다양한 장식이 추가되어 있었다.

‘엘린 역시 미적 감각은 나보다 한 수 위라니까.’

트리는 그 자체로 훌륭하다. 하지만 랜드마크치곤 아쉬운 점이 있었다. 입구가 휑하다는 점도 그랬다. 그래서 엘린에게 포토존을 부탁했다.

‘포토존을 만들었네.’

엘린은 인별그램에서 봤던 것들을 활용해 예쁜 포토존을 꾸민 듯했다. 노움과 리노는 물론, 나머지 일행들도 잘 꾸며진 포토존을 두리번거리며 감탄을 뱉었다.

“놀라긴 일러요. 아마 여기가 진짜 포토존이 될걸요?”

계단에 입구에 선 엘린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트레스 역시 옆에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서준 씨, 이리 와보세요.”

엘린의 부름에 김서준은 천천히 입구로 다가갔다.

“한번 들어가 볼래요?”

김서준이 다가가다 문득 지난번에 엘린과 TV를 보며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저런 거 포토존에 만들면 좋긴 할 거 같아요.”

마치 허공에 벽이 있는 듯, 기울어진 채 5시간이나 버티고 있어서 화제가 됐다는 마술사의 뉴스. 외국에는 저런 식으로 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렇게 공중에 떠 있는 거처럼요? 저게 신기한가? 플라이 마법 쓰면 되는 데···.”

“저, 저희는 마법 못 쓰는데···.”

“아, 그러네요.”

“엘린 혹시 이거 결계로 못 만들까요?”

엘린은 그 뒤로 고민하겠다고 했었다. 그 뒤로 한참 소식이 없었는데.

‘설마 그건가?’

김서준은 그런 생각으로 조심스레 앞으로 나섰다.

-툭.

무언가 막힌 느낌. 허공을 더듬자 손바닥에서 단단한 감촉이 느껴졌다.

“이건?”

엘린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찡긋했다.

“정말 만들었군요.”

김서준은 그 날의 대화를 떠올리며 조심스레 허공에 기댔다. 마치 린 댄스처럼 김서준의 몸이 뒤로 20도 정도 기울어졌다.

“이, 이사님.”

“자네. 그건 또 무슨 능력인가!”

“멍멍!”

김서준도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얼핏 보면 하늘을 날고 있는 모양이었다.

“겨, 결계다움! 결계가 쳐져 있다움!”

노움이 소리쳤다. 엘린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역시 노움님! 맞아요. 결계로 만든 투명 계단이에요. 서준 씨가 말한대서 착안해서 만들었어요.”

“다들 기대보세요.”

모두 조심스레 입구로 다가갔다. 그리곤 조심스레 투명 계단 위로 올라섰다.

“정말 뭐가 있네요.”

“신기하군! 아무리 봐도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말이야.”

“과연 신농님과 마을이 자랑할만한 트리에요. 입구부터 이렇게 신기한 현상이라니!”

박보현을 비롯한 모두가 감탄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보며 엘린과 트레스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모두가 감탄하는 사이, 김서준이 물었다.

“입구에 설치한 걸 보면, 입장권과 관련이 있는 결계인가요?”

“클클, 맞소.”

트레스가 주머니에서 티켓을 꺼냈다.

“이렇게 티켓을 사지 않으면 투명 벽이 작동하도록 했소.”

“그러니까 포토존이면서 동시에 통제도 되는 거네요.”

“이제 마음 놓고 키오스크를 설치할 수 있다는 말이지. 다 서준의 아이디어 덕분이오. 클클.”

****

“흠,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건가?”

중국의 S급 헌터, 하오위의 얼굴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나이 40까지 헌터 일을 했다. 아웃브레이크를 본 횟수는 누구보다 많았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워낙 마력이 약해서 탐지에 잡히지 않은 게이트라는 점은 이해가 됐다. 하지만, 아웃브레이크 후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건 이해가 안 됐다.

‘하물며 고블린 한 마리는 튀어나왔어야 해. 안 그러면 이건 아웃브레이크가 아니라 다른 현상으로 연구를 해봐야겠지.’

그는 등에 걸쳐 멘 도끼를 추켜 올리며 풀숲을 해쳤다.

-샤락.

주변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다. 모두 나라의 안위를 걱정해 온 헌터들인 만큼 진지하게 집중해서 온 숲을 뒤지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하오위님! 여기!”

단발머리에 A급 헌터 중 유일하게 채찍을 무기로 사용하는 자신의 오른팔, 신리였다.

“무슨 일이지?”

“얼른 와보세요.”

하오위는 서둘러 신리에게 다가갔다. 무성한 수풀을 해치고 가는 사이 신리의 얼굴이 급격하게 찌푸려졌다.

‘뭐지? 뭐길래 저렇게 혐오스러운 표정이야?’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얼굴을 한 신리는 이내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뭘 발견한 거야?”

하오 위는 아래를 내려봤다. 엄지손가락만 한 메뚜기가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이게 뭐가 어떻다는 거지? 설마 징그럽다고 부른 거냐? 역시 너도 여자···.”

“아, 뭐래요! 이거 봐봐요. 보라색이잖아요!”

신리의 말대로였다. 메뚜기가 녹색도 흙색도 아닌 보라색을 띠고 있었다.

“설마 이게 몬스터라는 거냐?”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다는 건가.

“우리가 모르는 종인가 보지.”

“그럴 리가요. 눈은 붉고 보라색 피부를 가진 메뚜기라니! 게다가 잘 느껴보세요. 미세하게 마기가 느껴져요.”

하오 위도 천천히 촉을 세웠다. 그러자 아주 미약한 마기가 느껴졌다.

“그럼 이게 아웃브레이크에서 나온 몬스터라는 건가···?”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고작 메뚜기 대 6마리라니. 이렇게 끝나만 준다면 깔끔했다.

“정황상 그런 거 같은데, 대장이 죽여요. 난 싫어. 으 징그러워.”

“크크. 알겠다. 가라.”

하오 위는 그렇게 말하며 메뚜기 한 마리를 발로 짓밟았다. 보라색 피를 뿌리며 메뚜기가 완전히 짓밟혔다.

“이거 그냥 메뚜기랑 다른 바가 없잖아?”

하오 위는 그렇게 생각하며 또 한 마리의 메뚜기를 짓이겼다.

그 순간,

-파드닥.

벌레의 날갯짓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꺅!”

신리가 비명을 질렀다. 수풀 곳곳에서 날아오르기 시작한 메뚜기 대략 30마리가 떠오르더니 그 붉은 눈동자로 헌터들을 바라봤다.

“모두 무기 꺼내!”

헌터들이 모두 긴장한 얼굴로 무기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팟.

메뚜기 때가 사방으로 퍼져 도망쳤다. 당황한 채 머뭇거린 그 사이 몇몇은 이미 숲을 벗어났다. 망했음을 직감한 하오위는 말했다.

“카오차오(靠草 : 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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