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70화 (70/139)

70. 징조

송이버섯은 양식이 불가능하다. 모두 생산량은 자연에 의존했다. 그러다 보니 출하 시기가 가을로 정해져 있었다.

물론 김서준의 경우는 예외였다.

사시사철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는 축복받은 나무에서는 매달 약 5kg 정도의 송이버섯이 자라났다.

‘하지만 그건 나만 아는 사실이니까.’

지금 와서 봄이기에 더는 출하할 양이 없다는 건 이상할 게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판매를 중지해서, 아예 관심을 끊자는 말이지.”

“네. 거기에 출하 시기가 정해진 만큼 경매는 불가피하다는 걸 어필할 수도 있겠죠.”

정 회장 입장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이야기였다. 이런 상황에 물건이 없다는 말보다 더 좋은 탈출구는 없었다.

다만, 이럴 경우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손해를 감수해야 할 텐데?”

여기서 손해는 정 회장과 IW 그룹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IW그룹에게 이 정도는 손해도 아니었다.

오히려 VVIP 관리가 훨씬 더 중요했다.

‘나를 걱정해주시는 거겠지.’

동시에 정 회장이 김서준을 나름 파트너로 봐준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김서준은 기분 좋게 말했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뒤로는 셰이드 왕자와 계약을 하는 거죠. 더 비싼 값으로요. 하지만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걸렸을 때 감당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그렇겠지.”

“두 번째는 그냥 두는 거죠.”

“그냥 둔다?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건가?”

김서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두는 데 좀 특별한 곳에 담아두려고요.”

“담아둔다? 자네 설마···?”

“네. 담금주로 담아두려고요. 마침 저희 농장에 술이라면 누구보다 전문가인 사람들도 있고요.”

정 회장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담금주라···. 하긴, 담금주라면 향과 약효를 그대로 담아내겠지. 보관하는 데도 문제가 없고. 잘만 담근다면 오히려 더 비싸게 팔 수도 있겠군.”

중얼거리며 무언가 생각하던 정 회장은 이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기발한 생각이야. 어차피 소수에게만 납품하는 상황이니 담금주가 된다고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 게다가 그 대단한 송이버섯이 통으로 들어간 술이라니. 상상만 해도 할 거 같군. 첫 고객은 아무래도 내가 돼야겠어.”

정 회장은 껄껄 웃었다.

“물론 입니다.”

“그럼 이제 식사하지. 얘기를 너무 길게 하는 바람에 음식 다 식겠구먼.”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테이블 위에는 형형색색의 음식이 깔렸다. 정 회장은 김서준에게 말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신경을 많이 썼군.’

형형색색에 보기도 좋고 향도 좋은 음식들이 가득했다. 기분 좋은 망설임으로 움찔거리던 젓가락이 이내 움직였다.

한번 움직인 정 회장의 젓가락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정말 맛있군. 역시 자네 작물은 대단해.”

어지간한 맛집은 다 다녀봤단 정 회장이었지만, 감탄해 마지않을 수 없는 맛이었다.

‘강하진 셰프가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요리사가 가진 기량을 200% 끌어내는 대단한 재료 덕일 터였다. 정 회장의 입이 호선을 그렸다.

“이 작물을 발견하고 납품하는 것만으로도 난 내가 이 사회에 이바지한다고 느끼는 데 어떤가?”

“너무 과장 같은데요?”

“역시 그런가? 하하.”

농담이지만, 그 안에 반쯤은 진심이었다. 그 정도로 김서준의 작물은 대단했다. 어느 곳에서 맛본 채소보다 녹진하고 싱싱한 맛이었으니 말이다.

“계약했던 대로 금산마을의 작물은 하늘 농원의 이름으로 납품될 걸세. 다만, 자네 작물과 금산마을의 작물은 다른 등급으로 책정할걸세.”

“네. 이해합니다.”

같은 종자를 쓴다지만 마을 사람들의 작물과 김서준이 기른 작물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종자만큼 농부도 중요하니까.’

김서준은 임종철도 인정한 농부. 아무리 오랜 경력을 가진 농부라도 범인으로서는 따라잡기 힘들었다.

“그런데 계약 대상이 개인에서 영농조합으로 바뀌었다는데, 어떻게 된 건가?”

“아, 이번에 옆 마을과 함께 영농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말씀드린 데로 제대로 마을을 키워보려고요.”

“말 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시작한 건가. 참 볼수록 탐나는 인재야. 그럼 이제 이사장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닙니다.”

김서준은 겸손한 얼굴로 대답했다. 볼수록 탐나는 인재였다.

‘우리 아들들이 이 친구 반만 따라가도 믿고 맡겼을 텐데 말이야.’

정 회장은 안타까운 마음에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여하튼 나라에서 상이라도 줘야겠어. 젊은 농부가 농사도 잘 짓고. 마을도 살리고. 시대가 바라는 청년 농부의 표본 아니겠나.”

“아닙니다. 저보다 대단한 농부들이 많을 겁니다.”

멋쩍게 김서준이 대답하던 그때였다. 노크 소리와 함께 강하진 셰프가 들어왔다.

“곁들이기 좋은 술을 가져왔습니다.”

강하진 셰프가 투명한 병에 담긴 사과주를 가져왔다. 라벨이나 특별한 장식은 없었지만, 안에 담긴 연두색 술과 기포가 묘하게 우아한 느낌을 자아냈다.

“오호, 이건···.”

“서준 씨가 직접 키운 사과로 빚은 사이다입니다. 매장에서는 손님들이 헷갈리실까 봐 사드르(cidre)라는 불어로 부르고 있습니다.”

“호. 설마 옆에 양조장에서···?”

“맞습니다.”

“갓 양조장에서 방금 빚은 술을 바로 마신 다라. 이거 기대되는군.”

강하진 셰프가 가져온 병따개로 직접 병을 땄다. 탄산이 터지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사과의 상큼한 향이 퍼져 나왔다.

“대단하군. 그냥 병을 열었는데 이 정도 향이라니.”

“김서준 씨의 사과 자체가 워낙 풍부한 향을 가진 덕에 가능하다고 합니다. 물론 장인들의 기술도 한몫했고요.”

“과연 그렇군. 역시 재료가 좋으니 뭐든 다 가능하구먼.”

“단맛은 취향에 따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회장님 취향에 맞는 적당히 드라이한 술로 가져왔습니다.”

“역시 하진 셰프야. 이런 디테일이 좋았지.”

강하진 셰프는 감사 인사와 함께 가져온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꽃봉오리처럼 생긴 잔에 탄산을 머금은 연둣빛 술이 따라 내렸다. 공기와 만나는 면이 많아지자 향이 더 그윽하게 퍼졌다.

그 향에 벌써 기분이 좋아진 정 회장의 입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김서준에게까지 서빙을 마친 강하진 셰프가 나섰다. 가볍게 짠 한 뒤 술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건···!’

말했던 대로 진한 향에 비해 단맛은 쌉쌀한 술맛의 뒤편에서 은은하게 퍼졌다. 이 묘한 괴리감이 기분이 좋았다. 원하는 것만 딱 뽑아 즐기는 기분이랄까.

‘게다가, 탄산도 적절하군. 목이 아픈 느낌도 없고 적당히 시원한 느낌이야.’

먹고 있던 음식에 딱 잘 어울렸다.

“전부 계산하고 만든 건가? 이분들에게 담금주를 맡기려는 게로군.”

“맡습니다.”

“이거야 원. 이러다 VIP고 뭐고 내가 다 사게 되는 거 아닐까 모르겠어. 허허허.”

“정말 좋은 공간이야. 보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이렇게 길을 걷고 있으면 정말 마음마저 정화되는 기분이라니 말이야.”

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함께 산책에 나섰다.

‘조금 취하셨나 보네.’

계약할 때와 달리 임종철처럼 편안한 얼굴을 한 정 회장은 한껏 산림욕을 즐겼다. 김서준은 정 회장이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천천히 발맞춰 걸었다.

“농원을 중심으로 마을에 관광업을 두겠다는 거지?”

“네. 힐링 형 체험농원들과 게스트하우스를 들일 겁니다. 캠핑장도 기획 중이고요.”

“젊은이들의 힐링 성지가 되겠다는 건가.”

“누구에게나 그런 장소면 더 좋겠죠.”

농장을 만들었던 동기처럼.

누군가 자신처럼 자연에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놀라고, 마음을 치료받고, 나아가 농부와 농장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여전히 생각했다.

관광과 사업도 중요하지만, 금산농장의 진짜 가치는 그곳에 있었다.

“그래. 자네 이상처럼 누군가 영감을 받고. 제2의 김서준이 된다면 그것도 좋겠지.”

정 회장이 기분 좋게 웃었다.

“아, 근데 말이야. 여기는 벌레가 없군.”

“벌레요?”

“자네도 알지. 우리 그룹이 아랍에 논 조성하는 사업하는 거 말이야.”

“네. 뉴스로 종종 보고 있습니다.”

김서준도 꽤 관심 있게 보는 뉴스 중 하나였다. IW그룹의 일이라 서기도 했지만, 사막에 한국에 기술로 논을 만든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괜히 나라에 대한 자긍심도 느낄 수 있어 챙겨보곤 했다.

“순조롭다고 하던데요? 얼마 전에는 첫 수확도 마쳤다고 들은 거 같은데.”

“맞아. 맞는데 거기 벌레가 좀 극성이라더군.”

“벌레요?”

“음. 메뚜기 같은 것들 있지 않나. 곡식 갉아먹는 작은 녀석들 말이지.”

“아아···.”

“자네 산에는 그런 벌레가 안 보이는군. 혹시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벌레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세계수의 가호로 금수산에는 벌레조차 먹을 게 넘쳤다.

‘게다가 아쥴과 세계수의 가호로 보호받고 있기도 했고.’

김서준은 이런 자세한 사정을 건너 대략적으로 대답했다.

“제 능력 덕에 이 일대에는 병충해가 거의 없습니다.”

“허, 그렇구먼. 하긴 자네는 그냥 농부가 아니라, 헌터였지. 이런 스킬이 있는 게 이상할 일은 아니지. 이거 농부가 직업인 헌터라도 수배해야 하는 건가.”

그냥 농부가 아니라 신농을 구해야 한다는 말은 넣어두기로 했다. 어차피 농부라는 직업을 가진 헌터가 김서준 말고 또 있을 리 만무했다.

“농약으로도 안 되던가요?”

“물론 되네. 하지만 기왕이면 건강한 유기농이 좋지 않겠나? 왕족들도 그걸 원하고 말이야. 뭐,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그러라고 연구원들에게 월급 주는 거니까 말이야.”

혹사당할 연구원들에게 김서준은 먼저 심심한 위로를 보냈다.

“여튼 자네도 조심하게. 혹시 모르지 않나. 자네 능력을 뚫고 벌레가 들어올지도 말이야.”

방금 아리아와 이야기했기 때문일까. 묘하게 정 회장의 그 가벼운 농담은 김서준의 뇌리에 박혔다.

****

“후···.”

전소민은 푹신한 의자에 앉아 몸을 축 늘어뜨렸다.

“피곤하십니까.”

함께 사무실로 돌아온 한 비서가 물었다.

“그 자리가 그렇죠.”

대한민국 최강이라 불리는 S급 헌터 20명이 모두 모여 벌어지는 파티와 회의. 그 불편하고도 조용한 전쟁터는 한번 다녀올 때마다 이렇게 기가 빨렸다.

“다들 웃으면서 근황 확인하고 기 싸움하는 데 진짜 진이 빠진다니까요.”

S급 헌터는 대부분 길드를 대표하는 이들. 참여한 이유가 소속된 길드를 위함인 건 당연했다.

덕분에 즐거운 파티는 기 싸움과 정치 시간으로. 나라의 안전과 헌터 계의 동향을 알아가는 자리는 소리 없는 전쟁터가 되었다.

특히나 소규모 길드로 전락한 데다 20위로 순위조차 말석인 전소민은 더더욱 그랬다.

“반쯤 무시하고 시작하는 거도 그렇지만, 대놓고 이용해 먹으려는 건 진짜 무슨 심보들인지···.”

전소민은 다시 한번 그 끔찍한 행사를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고생하셨습니다.”

“후, 안 되겠다. 한 비서님. 그거 좀 주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한 비서는 사무실 구석에 있는 냉장고에서 작은 물통 하나를 꺼냈다. 물통 안에는 살짝 노란 빛의 차가 들어있었다.

“끓여서 드릴까요?”

“네. 부탁드려요.”

한 비서가 전기 포트에 차를 부은 후, 끓였다. 잠시 후 물이 끓는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피어오르며 그윽한 파 향이 사무실에 퍼졌다.

“으흠···.”

낮은 신음과 함께 전소민의 몸이 축 늘어졌다.

“향만 맡아도 피로가 풀리는 거 같네요.”

한 비서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향이 좋긴 하지만, 아마도 이걸 보내주신 분이 생각나서 그런 거 아닐까요.’

지금 끓이는 차는 삼동파 뿌리 차였다. 김서준이 힘들어하는 전소민을 위해 보내준 선물 중 하나였다.

“비서님도 같이 마셔요.”

“감사합니다.”

한 비서는 사양 않고 잔 하나를 가져왔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조용한 티 타임을 가졌다.

“진짜 향도 좋고. 맛도 좋고. 원래 파 차가 이렇게 맛있는 걸까요?”

“아마 부 길드 장 님의 파가 유난히 더 그런 거 같습니다. 예전에 동생이 다이어트한다고 끓인 차를 마셔 봤는데 이 맛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역시, 서준이는 진짜 대단한 거 같아요.”

수줍게 이야기하는 전소민. 이럴 때 보면 과연 S급 헌터도 결국 평범한 소녀라는 게 새삼 느껴졌다.

“근데 한 비서님. 비서님은 어떤 거 같아요?”

“아웃브레이크가 터졌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는 그 게이트 말이죠.”

“네. 그런 적은 처음 보고 된 거니까요.”

오늘 회의가 열린 가장 주된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정말 크라이시스의 징조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했던 전문가들도 별다른 근거는 없었으니까요.”

아직 무엇도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크라이시스일 수 있으니 예의주시하고 대비하기로 회의는 결론이 났다.

크라이시스가 벌어지면 인접국인 한국에도 여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 비서는 차 한 모금을 더 들이키곤 말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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