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13화 (13/139)

13. 세렌디피티(serendipity)

정수기에서 물을 내리던 김서준이 슬쩍 식탁으로 눈을 흘겼다. 격투기 선수가 더 잘 어울릴 거 같은 덩치가 큰 남자는 얌전히 식탁에 앉아 있었다.

'뭐야?'

인상과 달리 비를 쫄딱 맞은 고양이 같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래?'

김서준은 좀 전의 장면을 떠올렸다.

대문을 연 순간, 살려달라고 절규하며 냉큼 들어온 남자는 허리를 120도로 접으며 소리쳤다.

“감자를 팔아주세요!”

가히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비는 그를 김서준은 일단 집으로 들였다. 잔뜩 흥분했던 그는 이제는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물 한잔 드세요.”

“...감사합니다.”

남자는 김서준이 내민 냉수를 단숨에 들이켰다.

“이름이 뭐예요?”

“신동원입니다.”

“그래요. 동원 씨 이제 천천히 이야기해보세요. 무슨 일이신 거예요?”

“저는 천안 야간 시장에서 ‘감자 남자’라는 푸드 트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사기를 당했습니다.”

“사기요?”

“네. 싸구려 감자를 납품 받았습니다. 너무, 너무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부모님께 손을 벌렸는데···.”

그때, 받은 게 임종철의 감자. 즉, 김서준의 감자. 여기까지는 안타까운 사연에 불과했다.

“네?”

그런데 다음 이어진 이야기가 놀라웠다.

“그러니까 제 감자를 쓸 땐 맛집이라고 난리 났었는데 지금은 사기꾼으로 몰리고 있다는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인터넷 알바 풀어서 여론을 조작했다고 난리입니다. 항의 전화는 물론이고 악성 DM에, 손님도 뚝 끊겨버렸습니다.”

“허···.”

“아저씨께 물어보니 그 감자는 파는 게 아니라며 직접 찾아 가보라고 하시더군요. 부탁입니다. 제발 제게 감자를 팔아주세요!”

신동원은 또다시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소리쳤다. 김서준이 그런 그를 만류했다.

“잠시만요. 저도 생각 좀 정리할게요.”

“네. 죄송합니다···.”

김서준은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곤 곧장 인별그램을 열었다.

└이 집 갑자기 맛 변했어요ㅠㅠ

└시장 주변 살아서 자주 갔는데 어제 가니까 맛이 완전히 달라졌음.

└SNS 보고 갔다가 완전 돈 날림. 기다린 시간 개 아까움. 가지 마세요.

└집에서 설탕 찍어 먹는 게 더 맛있어요. 이거 허위 광고예요.

‘#감자남자’를 검색하자마자 악플이 쏟아졌다.

“심각하긴 하네요.”

신동원이 고개를 푹 숙였다.

‘왜 저렇게까지 간절한지 이해가 되긴 하네.’

위로 조금만 올려보니 칭찬 일색에 인증샷도 즐비했다. 또 먹고 싶다며 올린 인증샷도 수백 장이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간 기분이겠지.’

하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었다.

‘감자 하나 바꿨다고 이렇게까지 반응이 달라질 수가 있나?’

물론 김서준이 생각해도 자신이 수확한 감자가 특출나게 맛있긴 했다. 하지만, 그냥 감자도 아니고 감자 요리가 아니던가?

“감자가 문제인 게 확실해요? 혹시 다른 문제가 있는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다른 재료는 전부 동일하고 조리법도 똑같습니다! 근데 맛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원인은 서준 님의 감자가 틀림없습니다!”

정말 신동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일이었다. 그냥 맛있는 재료와 요리의 맛을 좌우하는 수준은 천지 차이가 아니던가.

‘물론 사례 하나를 가지고 판단할 수 없겠지. 하지만 저게 사실이라면··.’

그때였다.

-딩동

또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임종철과 어디서 본듯한 인상 좋은 중년 남자가 보였다.

“동원 씨. 마침 어르신도 오셨네요.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 결정하죠.”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마중을 나갔다.

“오셨습니까? 어르신?”

임종철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 뒤로 50대의 남성이 함께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가온 뫼’라는 한식당을 운영하는 엄민호입니다.”

“아, 한식대전에 나오셨던 셰프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이름을 듣는 순간 어디서 봤는지가 떠올랐다. 김서준은 내색하지 않고 자연스레 인사했다. 길드에서 일할 때 체득한 처세술이 빛을 발했다.

“그런데 저는 무슨 일로 찾으신 건가요?”

정황상 엄민호가 어르신이 말한 손님.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와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임종철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 친구가 자네에게 사고 싶은 게 있다는구먼.”

“제게요?”

엄민호가 극진한 태도로 김서준에게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김서준 님의 감자를 사고 싶습니다.”

“....셰프님도요?”

“네?”

두 사람이 놀라 눈썹을 치켜 들었다.

****

모두가 떠나고 집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김서준은 갓 내린 커피 한잔을 들고 소파에 앉았다.

“흠···.”

헌터로 일하던 시절.

김서준은 전쟁터에 떨어진 일개 병사와도 같았다. 현대 무기와 미사일이 오가는 사이. 총 하나 들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아득바득 노력하는 게 겨우 였다.

‘심지어 그 노력하는 모습이 싫다며 총구를 겨누는 동지까지 있었고.’

D등급 헌터가 성공하는 건 그렇게 생사를 오가는 일만큼이나 힘든 일.

그때 김서준은 종종 상상하곤 했다. 내게도 그들만큼 거대한 미사일, 탱크 이런 것들이 있다면 어떨까.

‘거기에 내 노력이 합쳐졌다면 나도 소민이의 옆에 아니 그 위에 설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전부 상상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이 딱 그런 거 아닌가?”

엄민호 셰프는 충남을 대표하는 한식의 대가. 그만큼 식재료에 눈이 밝은 사람은 찾기 힘들 터였다.

그런 대가가 말했다.

“임종철 명장님과 견주어 모자라지 않았던 채소는 김서준 님의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임종철이 대한민국에 한 명뿐이라는 농사 명장이라는 사실은 놀라웠다. 그러나 그보다 놀라웠던 사실은 엄민호가 자신의 감자를 명장과 나란히 두었다는 것.

'게다가 어르신까지 그 생각에 동의하셨어.'

요컨대 분야 최고의 장인들이 김서준이 가진 능력이 농업계에서만큼은 탱크이자 미사일이라고 보장한 셈.

‘게다가 리스크도 거의 없어.’

리스크 메니지먼트(Risk Management).

즉, 위험 관리 부분에서도 부담이 없었다. 팔아야 할 감자는 먹고 남는 걸 납품하면 그만이었다. 더 필요하다면 더 심으면 된다.

‘자라는 속도도 빠르고. 남는 게 땅이니까.’

다른 문제가 생겨도 걱정이 없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한번 해보게. 내가 도와줄 테니 말일세.”

무려 명장인 어르신이 뒷배를 봐주시니.

‘판은 이보다 완벽할 수가 없어.’

가뜩이나 흔들리던 마음이 크게 움직인다. 김서준의 사업가 기질에 불이 붙는 듯했다. 김서준은 마음을 억눌렀다.

‘너무 성급할 필요는 없지.’

사활이 걸린 사업도 아니고. 그 시절처럼 아둥바둥하며 불안해 할 필요도 전혀 없었다. 차분히 한 스텝씩 즐겁게 밟아 나갈 생각이었다.

‘모두의 말대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말이지.’

김서준은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지갑에 챙겨둔 엄민호의 명함에 적힌 번호를 눌렀다.

며칠 후.

“어서 오십시오.”

김서준은 엄민호의 가게, 가온 뫼에서 그와 다시 만났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제 파트너가 될 분인데 이 정도는 기본이죠. 오는 길은 불편하지 않으셨습니까?”

“괜찮았습니다.”

“다행이네요. 안으로 드시죠.”

커다란 양반댁을 모티브로 지었는지, 식당은 거대한 한옥을 개조한 느낌이었다. 직원들은 모두 개량 한복을 입고 있어 더더욱 전통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김서준은 고풍스러운 소품과 조명이 달린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직접 그를 안내한 엄민호가 물었다.

“한정식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럼 그걸로 준비하겠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시죠.”

잠시 후, 멀끔한 정장으로 갈아입은 엄민호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와 함께 하나둘 음식이 상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잘 먹겠습니다.”

놋그릇에 담겨나오는 찬들은 하나같이 먹음직스러웠다. 김서준은 가장 먼저 잡채로 젓가락을 움직였다.

‘채소의 식감도 적당하고 간도 딱 좋고. 역시 대가는 다르구나!’

잡채는 김서준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그만큼 여기저기서 많이 먹었건만. 이만큼 맛좋은 잡채는 처음이었다.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대단했다.

“입에 좀 맞으십니까?”

“네. 너무 맛있네요.”

“예전만 못합니다. 어르신의 채소를 쓸 때는 이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그 정도인가요?”

“다른 분들은 몰라도 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서준 님의 식재료가 들어간다면 분명 훨씬 더 맛있어질 겁니다.”

반찬만큼이나 다채로운 주제로 대화가 오갔다. 대화는 내내 화기애애 했다.

‘나이에 비해 속이 깊어. 사업에 대한 수완도 있어 보이고. 역시 어르신의 인정을 받은 분다워.’

엄민호는 이야기를 나눌수록 김서준이 맘에 들었다.

마침내 식사가 끝나고 두 사람의 식탁 위로 종이가 하나씩 올라왔다.

“이제 납품 계약에 관해 이야기해볼까요? 제가 제시하는 조건은 그 서류에 다 담았습니다.”

엄민호의 말에 김서준이 찬찬히 내용을 살폈다. 볼수록 김서준의 눈이 점점 커졌다.

‘납품 기한 위반에 대한 위약금도 거의 없는 수준이고. 독점 거래도 아니고. 언제든 계약 해지까지! 전부 내가 말한 거에 맞춰 주셨잖아?’

가격 역시 마찬가지. 시세의 2배를 보장하고 흉작일 경우, 최저 가격을 보장하는 조항도 들어 있었다.

“명장님의 인정을 받은 분이니 동일하게 대우를 해드렸습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정도면 불공정 계약이나 다름없는데···.”

“괜찮습니다. 최고의 식재료를 구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역시 이 분은 달라.’

전문가 중에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진심이 덜한 경우도 많다. 특히 한탕주의가 많은 헌터들은 그런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엄민호는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요리에 자부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대하는 게 분명했다.

그 마음은 계약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바꾸고 싶은 조항이 있습니까?”

엄민호가 물었다. 사실 여기서 뭘 더 요구하는 게 말이 안 되는 상황.

하나, 김서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셰프님. 계약과 상관 없이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어떤 내용일까요?”

“셰프님. 혹시 그때 그 푸드 트럭 사장 기억하십니까?”

“기억합니다.”

“그분을 좀 키워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감자를 사겠다며 김서준의 집에 왔던 날.

엄민호는 김서준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저 청년에게는 감자를 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신동원이 발끈하여 소리쳤다. 엄민호가 굳은 표정으로 정색했다.

“자네가 진심인 건 알겠네. 하지만, 요리에 기본이 없어. 위생도 못 지키고. 그때 경황이 없어서 말은 못 했지만, 자네는 아직 장사할 수준이 아니야. 차라리 홀 직원을 한다면 모를까.”

“하지만, 분명 처음에는 장사가···.”

“운이 좋았던 거지. 말도 안 되는 감자를 만났으니 말이야. 정말 제대로 하고 싶다면 바닥부터 제대로 배우게.”

구구절절 맞는 이야기. 다만 안타까웠다.

‘다른 건 몰라도 간절함만은 진짜였으니까.’

마치 헌터로서 어떻게든 성공해보려던 자신의 과거 같았다. 모른 채 넘어가기엔 자꾸만 눈에 밟힐 정도로.

“흠···.”

엄민호는 아무나 주방에 들이지 않기로 유명했다. 워낙 지원자가 많기도 했고 엄민호가 제자 양성에 엄격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이유가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때 보니 친한 관계는 아니신 듯하던데···.”

“네. 친하지 않습니다. 그때 이후로 연락도 안 했고요.”

엄민호의 얼굴에 의아함이 부풀었다.

"일단은 받은 행운을 돌려주는 의미도 있어요. 어쨌든 제가 대가님과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맺은 건 그 분의 덕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예요."

김서준이 조금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장님. 요식업을 하고 싶어서 5년 동안 원양어선 타고 돈을 모았대요. 푸드 트럭은 그 시작점이었고요. 5년 동안 품은 꿈을 방법을 몰라서 포기하는 건 너무 안타깝잖아요.”

김서준은 매일이 좌절로 가득했더 그날, 매일 소원처럼 빌던 그 말을 토해냈다.

“누군가 방향을 알려주면 좋지 않을까요?”

며칠 후, 신동원으로부터 편지가 도착했다.

“21세기에 편지라니.”

김서준이 피식 웃으며 봉투를 열었다.

-..그날 제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삶의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래는 깜깜하게 물들었습니다.

-...셰프님의 연락은 구원의 손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이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제 은인이십니다. 휴일이 없어 찾아뵙고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언젠가 제 식당을 연 그날 가장 첫 손님으로 선생님을 초대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편지 끝머리에 눈물 자국이 남아 종이가 울어있었다.

‘생긴 건 상남자이신 분이 의외로 감성적이네.’

김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교감으로 그 감정을 느낀 리노가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그 귀여운 존재에게 김서준이 말했다.

“그럼 오늘도 밭에 가볼까?”

“멍!”

기분 좋게 대문을 연 그때였다.

“혹시 김서준 씨 되십니까? 저는 우리 식품에···.”

“안녕하십니까! 저는 총각의 야채가게에서···.”

“저는 ‘씩씩버거’의 김명훈입니다. 혹시 감자 건에 대해서···.”

집 앞에 양복 입은 남녀가 몰려들며 명함을 내밀었다. 리노가 당황해 김서준을 바라봤다. 김서준은 당황한 얼굴로 생각했다.

‘이거 첫 스텝이 좀 커진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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