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51화 (51/196)

아무래도 낚인 건 내 쪽인가 본데.51회

중간 고사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

슬라임 능력 중에는 물건이나, 생물 가리지 않고 대상의 모습을 카피 해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정아영 교관이 인질로 변신 해 함정을 파 놓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아영 교관이 슬라임 능력으로 변한 건 인질이 아니라 카펫이었고, 나는 꼼짝없이 정아영 교관에게 뒤를 내주고야 말았다.

내 몸을 뒤에서 꽉 끌어안은 정아영 교관.

“헤헤. 잡았당!”

손에서 느껴지는 악력이 그렇게 쎄진 않았다.

나는 정중하게 말했다.

“놓으시죠.”

“그건 안 되지~”

“다쳐도 책임 못 집니다.”

“에이~ 허세 부리는 남자는 멋없는데.”

“....”

맞다.

정아영 교관을 다치게 하기 위해서는 S급 능력이나 S급 스텟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했다.

슬라임 능력은 공격 능력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방어 능력이 다른 의미로 박태산에 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뒤통수로 정아영 교관의 얼굴을 찍었다.

물컹.

딱딱한 감촉이 아닌 액체괴물에 머리를 박은 것처럼 튕겨 나왔다.

나를 뒤에서 잡고 있는 팔을 떼어내려고 해도 자꾸 내 손이 미끄러졌다.

‘슬라임화’를 시전한 정아영 교관은 인간 슬라임이나 다름없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인질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여학생이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교관님.”

“웅?”

“이렇게 시험 시간이 끝날 때까지 잡고 계실 생각은 아니시죠?”

“몰라? 다른 교관님들이 그 전에 도착하시면 널 아웃시키던가, 아니면 계속 잡고 있으려구. 왱?”

왜긴 왜야.

이대로 가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 전체가 성적을 낮게 받을 게 분명한데.

이번 작전은 우리 팀 애들이 나를 전적으로 믿고 맡긴 작전이었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GG를 선언해버리면 다른 애들은 몰라도 성적에 신경 쓰는 한설휘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지 않을까?

‘그렇게는 안 되지.’

나는 앞으로 한 발자국 걸었다.

“어..엇?”

정아영 교관이 당황했다.

정아영 교관의 스텟은 지혜 스텟을 제외하면 나랑 비슷했다.

그래서 등에 짐짝을 메고 있는 느낌이었지만 움직일만 했다.

만약 등에서 포박하고 있는 게 박태산이었다면..

‘생각도 하기 싫다.’

붙잡히고 있어서 그런지 팔을 움직이는데 약간의 제약이 있었다.

하지만 팔꿈치 밑으로는 움직일 수 있었고, 나는 인질을 포박하고 있는 밧줄을 풀기 시작했다.

“너어어.. 그런 섣부른 행동하면 빌런이 인질을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

“여기에 빌런은 교관님 한 명이고. 교관님이 그런 행동을 하려면 저를 잡고 있는 손을 놓아야 하는데.”

나는 밧줄을 바닥에 던졌다.

“제가 누구 능력을 카피하고 있는지 아실 텐데요?”

“무..무시하는 발언은 굉장히 나쁜 거야!”

정아영은 헌터 학교가 아니라 유치원 교사직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나는 인질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날 수 있지?”

“어..음..”

살짝 당황한 인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리로 와 봐.”

나는 박태산과 금석이 뚫어 놓은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나를 따라오는 인질.

“너..너 무슨 짓을 하려고?”

정아영의 말에 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인질을 쳐다봤다.

“내 목을 감싸면서 안아.”

“..응?”

“너 인질이잖아. 나는 너를 구하러 온 헌터고. 그럼 내 말을 들어야하지 않겠어?”

“어..응.”

인질이 내 앞으로 다가와 내 목을 끌어안았다.

“더 세게.”

“응.”

앞과 뒤로 정아영 교관과 인질을 끌어안고 있는 모양새가 됐다.

‘햄버거 안의 패티가 된 기분인데.’

나는 뒤 쪽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교관님도 꽉 안으세요.”

“어엉.. 응? 왜?”

“날아갈 거니까요.”

“날아? 그게 무슨 말..꺄악!!”

정아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밖으로 몸을 날렸다.

“플라이.”

이곳까지 오느라 제법 시간을 소모한 탓에 몇 분밖에 비행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장 날아간다면 입구까지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하늘로 비상했다.

달고 있는 무게가 있어서 그런지 비상하는 속도가 혼자일 때 보다 조금 더뎠다.

“켁..야. 너무 세게 안 잡아도 돼. 목 졸리잖아.”

“무..무서운 걸 어떡해!!”

“꺄아악!!”

앞뒤로 두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지상과 거리가 멀어지자 나는 곧장 입구 쪽으로 날아갔다.

계속 두 여자의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간지럽혔다.

그리고 처음에는 아무 의식도 안 했는데 앞뒤로 여자에게 안겨 있으니 느낌이 참..

‘나쁘진..않네.’

날아가는 동안 나는 격전지 세 곳을 살폈다.

‘정시아와 한설휘는 무난무난 하고.’

아무리 두 사람이 학생 중에 최강이라고는 하지만 상대는 교관이었다.

그래서 쉽사리 승기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었다.

‘실력을 조금 아끼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두 사람과는 달리 금석은 박태산에게 일방적으로 얻어터지고 있었다.

‘서둘러야겠네.’

건물들을 가로질러 입구 근처까지 도착을 했을 때, 점점 몸이 아래로 처지기 시작했다.

마나가 거의 고갈이 된 탓이었다.

나는 욕심 부리지 않고 바닥에 착지를 했다.

“으으..”

“으아아.”

앞뒤로 안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입구 앞에 서 있다가 빌런이 오는 거 같으면 바로 입구로 나가. 알겠지?”

“그게 무슨 말이야?”

“입구 밖으로 나가지 말고 있으라고. 네가 입구 밖으로 나가면 시험 종료니까.”

“그러니까 왜 나가지 말라는 거냐고. 빨리 인질을 구하는 게 좋은 거잖아.”

“그렇긴 한데.”

인질의 말대로 인질 구출이 목적이고 인질 구출이 가장 높은 점수를 차지했다.

하지만 다음으로 높은 점수를 차지하는 게 한 가지 있었다.

‘팀원 전원 생존.’

인질 구출 과정에서 팀원이 죽어버리면 감점을 많이 당했다.

하지만 전원 생존 할 시 가산점을 많이 받았다.

만약 지금과 같이 나를 제외한 팀원들이 교관들과 전투를 벌이는 상황에서 상황 종료가 되면 감점도 가산점도 없었다.

인질을 구출하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충분히 ‘팀원 전원 생존’도 노려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원들 구하러 가야 돼.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해. 알았지?”

“..알겠어. 빌런이 오는 것 같으면 바로 나가면 되지?”

“응.”

내 말에 인질이 입구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거이거. 욕심이 많은 친구네?”

갑작스러운 비행으로 정신을 못 차리던 정아영 교관이 정신을 차렸는지 내 등에서 얼굴을 떼며 말했다.

“동료를 버리는 사람이 되기 싫은 것뿐입니다.”

“이요오오올!!”

내 멘트에 정아영 교관이 엄지를 척하고 세우는 소리를 냈다.

“기생오라비인 줄 알았는데. 너 꽤 멋진 놈이었구나?”

“....”

나는 뒤에 정아영 교관을 달고 달리기 시작했다.

첫 목적지는 한설휘가 있는 격전지였다.

한창 달리고 있을 때 등이 갑자기 가벼워졌다.

제 자리에 멈춰서 뒤를 쳐다봤다.

정아영이 내 몸에서 떨어져서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인질한테 가시려고요?”

“응? 아니이~ 내가 가 봤자 입구 바로 앞에 있으면 붙잡지도 못해. 나 그렇게 안 빠르거든.”

“능력 사용하시면 가능하잖아요.”

“그렇긴 한데~”

고개를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나를 쳐다보는 정아영 교관.

“그냥. 동료 구하러 가는 놈은 오랜만에 봐서.”

“....”

“응원하고 싶어졌다고나 할까?”

“그 말은 방해를 안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요?”

“아니 근데~ 내가 명색에 빌런 역할인데 가만히 있으면 나중에 태산씨가 ‘아닛!! 정아영 교관님!! 근무 태만 아닙니꺅!!’이라고 할 게 뻔하고.”

내 앞으로 걸어오는 정아영 교관.

내 손을 잡고 자신의 어깨를 가볍게 때렸다.

“으윽..”

제 자리에 살포시 쓰러졌다.

눈을 감으며 명랑하게 한 마디 했다.

“기절~”

“....”

내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 실눈을 뜨는 정아영 교관.

“뭐해? 동료 구하러 안 가?”

참 하는 짓이 귀여운 교관이었다.

“그럼 믿고 갑니다?”

“웅~ 이건 너와 나의 비밀이야. 알징?”

“예.”

나는 한설휘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한설휘!”

한설휘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한창 화염 능력으로 교관과 교전 중이던 한설휘가 내 쪽을 힐끔 쳐다봤다.

“뭐야!!”

내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소리치는 그녀.

“빨리 정리 해! ‘보이지 않는 공포’”

나는 한설휘와 교전 중인 교관을 향해 정시아의 능력을 사용했다.

능력을 사용하자마자 교관의 움직임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얼른!!”

금석이 사망처리 되기 전에 빨리 아이들을 모아서 녀석을 구출하러 가야했다.

아까 공중에서 보니 박태산이 단단히 오늘을 벼르고 있던 모양새였다.

내 말에 한설휘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교관에게 능력을 사용했다.

“화염의 인도자.”

교관의 몸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화악하고 불이 붙었다.

곧바로 능력을 캔슬 하는 한설휘.

“교관님 사망. 맞죠?”

한설휘의 말에 아이템 교관이 양 손을 들며 웃었다.

“한설휘 따라 와!”

나는 한설휘를 데리고 정시아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가는 동안 현 상황을 간략하게 브리핑했다.

곧바로 납득을 하는 한설휘.

“뭐야?!”

몬스터 학개론 교관과 교전 중이던 정시아가 우리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설명은 나중에!”

나와 한설휘가 몬스터 학개론 교관에게 달려들었다.

단숨에 교관을 제압했다.

“달려!!”

우리들은 금석이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교관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진심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진심인 교관이 단 한 명 있었다.

박태산.

그는 금석이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따끔하게 혼내줄 생각으로 진심을 다하고 있었다.

“오호라!!”

상황 설명을 들은 정시아가 손바닥을 부딪혔다.

“그럼 금석만 살려서 돌아가면 우리 만점인 것인가?!”

내 희망사항도 그러했다.

하지만 괜히 갔다가 금석뿐만 아니라 우리도 사망 처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걱정스럽긴 했다.

“저기!!”

한설휘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넓은 공터에서 흙먼지를 뒤집어 쓴 금석이 바닥에 쥐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고,

금석의 바로 앞에 박태산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이미 죽은 거 아니야?”

“죽은 지 꽤 된 것 같은데?”

한설휘의 말에 정시아가 맞장구를 쳤다.

우리의 등장에 박태산이 고개가 천천히 우리 쪽을 향했다.

“멈춰 서라. 이 녀석을 살리고 싶으면.”

그의 한 마디에 우리는 급 브레이크를 밟았다.

“저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아직 살아있는 것 같은데?”

“응응. 내 생각도 그래.”

정시아와 한설휘가 속닥속닥했다.

“너희들이 여기 나타난 걸 보니 다른 교관들은 다 죽은 모양이군.”

박태산의 표정은 덤덤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나를 쳐다보는 박태산.

피식 하고 있었다.

‘뭐지. 저 웃음의 의미는?’

“조금만 기다려라. 거의 다 끝났으니까. 끝나면 이 녀석을 넘겨주겠다. 금석. 아직 10번 남았다.”

박태산의 말에 우리의 시선이 엎어져 있는 금석에게로 향했다.

작게 금석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웅얼웅얼.

“아직 덜 혼났나보군.”

“다신..개기지 않겠습니다. 다신 개기지 않겠습니다. 다신 개기지 않겠습니다.”

똑같은 문장을 10번 되풀이해서 말하는 금석.

“일어나라.”

박태산의 말에 금석이 꾸물꾸물 일어났다.

눈빛이 상당히 순한 양이 돼 있었다.

‘얼마나 맞았으면..’

나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일부러 금석한테 체벌을 가하기 위해서 이렇게 팀을 짠 거 아니야?’

만약 일반 팀이었으면 이렇게까지 금석과 1:1인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터.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였다.

금석에게는 말이 아닌 매가 약이라는 걸 눈치 챈 모양인데,

이런 시간이 아니면 그럴 수가 없으니.

“되게 영리한 캐릭터였네.”

“응?”

“뭐가?”

동시에 나를 쳐다보는 정시아와 한설휘.

“아니야 아무것도. 교관님 이제 금석을 넘겨주시죠.”

“좋다.”

박태산이 금석의 어깨를 잡았다.

그 다음 동작으로 자연스럽게 양 손으로 금석의 머리와 턱을 잡았다.

그 다음 동작으로 가볍게 금석의 머리를 옆으로 꺾는 시늉을 하는 박태산.

“금석은 사망 했다.”

말을 하고 금석의 등을 밀어 우리 쪽으로 보내는 박태산.

“살려서 넘겨준다는 소리는 안 했다.”

“....”

나는 오늘 박태산에게 가지고 있던 전반적인 이미지를 대폭 수정했다.

‘곰 같은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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