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밸런스가 쫌 이상한데?50회
중간 고사
금석과 내가 한 조인 건 딱히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한설휘와 정시아도 같은 조라니.’
이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명실상부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은 우리 반에서 뿐만 아니라 전교에서도 오버 밸런스를 자랑하는 녀석들인데.
팀을 짜는 건 박태산과 전투, 전술을 담당하고 있는 몇 몇의 교관들이었다.
팀을 짜는 요소에는 분명 ‘유대 관계’가 포함 돼 있었다.
친하고 서로를 잘 알면 알수록 팀으로써 시너지가 잘 나는 법이었으니까.
‘그래도 이건 쫌..’
“팀장님, 소파에 앉아서 뭐해? 회의 참여 안 할 거야?”
“....”
더 문제는 내가 이 팀의 팀장 역할이라는 점이었다.
내가 자청한 게 아니라 팀전 명단에 각 조의 팀장이 붉은 글씨로 표시 돼 있었다.
나는 정시아의 말에 소파에서 미끄러지듯 바닥에 앉았다.
우리 팀은 팀전 명단을 받고 난 후, 자연스럽게 금석과 내가 살고 있는 기숙사로 향했다.
내일 있을 팀전에 대한 회의를 하기 위해.
내일 치를 시험 종목을 박태산이 친절히 알려준 덕분에 대비를 할 수가 있었다.
그러라고 미리 알려준 것 같긴 하지만.
나는 무릎 위에 올라오는 레이를 쓰다듬으며 세 사람을 쳐다봤다.
정시아. 한설휘. 금석.
“내가 팀장이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되지?”
“그건 쫌..심했다.”
“아무리 팀장이라도 마음대로 하는 건 안 되지!! 여기가 북한도 아니고!”
두 여자가 반발했다.
오로지 금석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에는 내일 우리 팀만 난이도가 굉장히 헬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데.”
내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
“우리 팀 명단 보는 순간 그 생각부터 들던데.”
내일의 시험 종목은 ‘인명 구조 시험’이었다.
학기 중에 수업한 내용의 연장선이었다.
그런데 다른 팀과 마찬가지로 시험의 내용이 같다면 우리 팀이 다른 팀 보다 훨씬 빠르고 안전하게 시험을 완수할 게 분명했다.
박태산이 우리에게 그런 특혜를 주려고 팀을 이렇게 짠 건 분명히 아니었다.
특혜와 거리가 먼 사람이기도 했고.
즉, 답은 하나.
‘난이도를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레이의 머리털을 손끝으로 간질이며, 내가 생각한 계획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팀을 구성한 걸 후회하게 만들어 줄 계획이었다.
+ + +
“5조. 준비 됐나?”
박태산이 말했다.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 장소는 ‘인명 구조 수업’과 마찬가지로 시가지 훈련장이었다.
시가지 훈련장 입구.
“10분 뒤. 출발해라.”
박태산이 말을 마치고 시가지 훈련장 입구로 들어갔다.
수업과 시험의 차이는 빌런 역할이 학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교관.’
그들이 바로 이번 시험의 빌런 역할이었다.
하지만 적당 선에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인명 구조가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적당 선.
우리에게는 아마 해당이 되지 않는 말이 아닐까?
“조금 긴장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정시아가 머리를 묶으면서 말했다.
“나는 별로. 어차피 시험일뿐이잖아.”
한설휘가 손에 스파크를 튀기듯 불꽃을 튀기며 말했다.
나 역시 아무 생각이 없긴 했다.
성적을 좋게 받아야 하긴 했지만, 긴장감은 별로 없었다.
“박태산..박태산..크흐흐..”
금석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빌런 역할을 수행하는 교관 중 박태산 교관도 포함 돼 있었다.
그래서 금석에게 오늘은 합법적으로 박태산 교관을 공격해도 된다는 말을 하니, 그 때부터 저 상태였다.
‘박태산 은근히 소심해서 뒤끝 있는 스타일인데.’
인명 구조가 목적이 아니라 의도를 불순하게 가지고 공격하려 든다면 아마도..
괜히 금석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했다가는 전투 의지를 꺾을 것 같아서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전투력이 200%인 지금이 딱 좋았다.
“근데 우리 학교에 플라이 능력 있는 애가 없는데, 누구 능력 카피 한 거야?”
머리를 다 묶은 정시아가 나를 쳐다봤다.
“주말에 외출했다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너는 뭐 제한 같은 거 없어? 신지수 선생님한테 들었는데 자기 동기는 최대 5개 능력만 저장할 수 있다던데. 카피 조건도 까다롭다 그러고.”
“나도 궁금하긴 했어. 너 보니까 시아랑 금석 능력 대부분 사용 할 수 있던 것 같은데. 아니야? 거기다가 플라이 능력까지 카피 했으면 몇 개의 능력을 카피 한 거야?”
정시아의 의문에 한설휘가 숟가락을 얹었다,
충분히 그런 의문이 생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대답을 했다.
“나도 모르겠어. 능력 개화 한 게 이번 년이라서. 나도 알아보는 중이야.”
“그래?”
정시아가 수긍했다.
“그럼 아무 능력이나 막 카피 하고 다니지 마. 혹시 나중에 페널티 후폭풍 맞을 수도 있잖아.”
한설휘가 걱정했다.
그녀들과 잡담을 하고 있는 사이 1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방송이 흘러 나왔다.
[5조의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시험 시간은 1시간. 1시간 내에 인명 구조에 성공하시면 됩니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상황실에 있는 교관의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시가지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일단 우리는 다 같이 앞에 보이는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인질이 붙잡혀 있는 장소는 미리 공지가 됐다.
여기서 500m 떨어진 A상가 건물.
또 하나, 미리 공지 된 정보가 있었다.
빌런 역할을 수행 하는 교관들의 정보.
박태산을 포함해 총 네 명이었다.
그 중 꽤 독특한 능력을 사용하는 교관이 있었다.
오늘의 변수 포인트라면 아무래도 그 교관을 통해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라임 능력자이자 ‘외국어’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정아영 교관.
그녀는 전투 및 전술 과목의 부교관이었다.
그녀를 제외하면 다들 사용하는 능력이 투박했다.
“준비 됐지?”
“응.”
“고고!”
“박태사아아안!!”
“가자.”
나는 플라이 능력을 사용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상이 멀게 보이는 높이까지.
다른 아이들은 A상가 건물이 있는 곳으로 옥상과 옥상을 통해 이동하기 시작 했다.
지상으로 가는 곳 보다 옥상으로 이동하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시야 확보하기가 좋았다.
A~B급 스텟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기에 가능한 이동 방법이었다.
나 역시 힘들지만 이러한 전술 이동이 아예 불가능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교관들에게 의외의 변수 역할이었다.
내가 플라이 능력이 있다는 것.
아직 학교에서 아는 사람은 나랑 팀이 된 애들뿐이었다.
교관들은 분명히 지상만 경계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 틈에 쥐도 새도 모르게 공중에 짜잔 하고 나타나 인질을 구조 할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확실하게 교관들의 눈을 지상으로 돌려야 했다.
나는 천천히 비행을 하며 지상을 내려다 봤다.
옥상을 통해 이동을 하던 애들이 100m 거리를 남겨두고 갑자기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땅에 착지를 하자마자 뿔뿔이 흩어져 은밀 기동을 시작하는 아이들.
녀석들의 역할은 최대한 교관들의 시선을 끄는 미끼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저께나 어제의 주요 평가 항목은 개인의 피지컬이었다.
하지만 팀전은 오로지 전술 수행 평가였다.
얼마나 안전하고 신속하게 인질 구조에 성공하냐.
이 것이 이번 시험 평가의 전부였다.
굳이 피지컬을 뽐낼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한 명. 두 명.’
두 명의 교관이 미끼를 물었다.
각자 한설휘와 정시아가 가는 길목에 몸을 숨기고 잠복했다.
나는 허리춤에서 무전기를 꺼냈다.
“한설휘, 정시아. 20m 전방에 매복자 있다.”
어떤 교관인지도 말해주고 싶었지만 지상과 거리가 워낙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가 않았다.
내 말에 그녀들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실전상황도 아닌데 너무 몰입 하고 있는 거 아니야?‘
반대로 금석은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리며 도로 한복판에 서 있었다.
‘나 여기 있다~’라고 주장을 하고 있었다.
은밀 기동을 잘 하는가 싶더니, 고삐를 쥐고 있는 한설휘와 정시아와 멀어지자 바로 고삐가 풀려버렸다.
치직.
[몬스터 학개론 교관.]
무전기에서 짧게 흘러나오는 정시아의 목소리.
치직.
[아이템 교관.]
이번에는 한설휘의 목소리.
지상을 보니 각자 1:1로 대치를 하고 있었다.
‘남은 건 박태산과 정아영.’
둘은 아무래도 A상가 건물 안이나 근처에서 매복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무전기를 들었다.
“금석. 플랜 C로 간다.”
내 말에 금석이 성난 황소처럼 A상가 건물이 있는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A상가 건물 위 쪽 하늘에서 천천히 낙하를 했다.
A상가 건물 옥상에 착지를 했을 때, 밑에서 우당탕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무전기에서도 동일한 효과음이 흘러나왔다.
일부러 금석은 무전기를 켜고 있었다.
[인질을 놔줘라!! 악당 놈!!]
‘놈? 박태산인 건가?’
나는 무전기의 볼륨을 줄이고 금석이 전하는 정보를 분석했다.
[인질을 2층도 아니고 3층에 묶어 두다니!! 아주 악랄한 놈이로다!!]
금석의 연기 톤이 굉장히 어색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언급으로 인해 3층에 인질이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안되겠구나!! 내가 널 혼쭐을 내주겠다!! 박태산 이 나쁜 노오옴!!]
“....”
결국 사심 채우기에 들어가는 금석.
한동안 조용히 건물이 지진 난 것처럼 진동했다.
잠자코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작게 박태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쌓인 게 많았나 보군. 이 시간은 학생이 교관을 합법적으로 공격해도 되는 시간이긴 하지만, 교관 역시 학생을 합법적으로 공격해도 되는 시간이기도 하지. 자 그럼. 우리 어디 한 번 서로의 역할에 충실해져볼까?]
건물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더 격해지기 시작했다.
[이 개시이이바바알!!]
진동이 절정을 찍었을 때 금석의 절규 소리가 들려왔다.
와장창-!
창문이 깨지고 금석이 건물 밖으로 날아갔다.
따라 나가는 박태산.
나는 몸을 숙이고 건물 밖으로 고개를 살짝 들이밀었다.
[이 참에 너의 버릇을 확실하게 고쳐주겠다.]
박태산이 금석을 들어 투포환 하듯이 멀리 집어 던졌다.
따라가는 박태산.
그들이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질 만큼 멀어졌다.
“....”
이렇게 되면 금석이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현 상황을 분석을 하면 이런 결과가 나왔다.
인질은 3층에 있고.
3층에는 인질 한 명 뿐이다.
아직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교관이 한 명 있었다.
‘정아영 교관.’
나는 피식 웃었다.
‘박태산의 연기도 금석만큼이나 영 허술하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박태산은 일부러 금석과 함께 자리를 떴다.
일부러 명분을 제시하면서.
그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옥상 문을 열고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3층까지 내려가는데 아무런 방해도 없었고, 나는 편안하게 3층에 도착했다.
“읍..읍..”
학생 또래로 보이는 여학생이 의자에 포박 당한 채 나를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나는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얼마나 역할에 충실하면 눈에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나는 일부러 주변을 살피는 액션을 취했다.
그리고 일부러 혼잣말을 했다.
“아무도 없군. 후후.”
내 혼잣말에 여학생이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여학생의 입에 붙어 있는 테이프를 떼려고 손을 가져갔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테이프에 손을 갖다 댔을 때, 씨익 웃으면서 여학생의 뒤로 돌아가 초크 하듯이 목을 졸랐다.
“학생 인질 역할 하느라. 안 그래요, 정아영 교관님?”
“으우웁!!”
내 말이 무슨 말이냐는 듯 여학생이 의자에서 뛸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들썩 거렸다.
“진짜 인질 어디 있어요?”
“읍읍!!”
‘끝까지 연기를 할 생각이네.’
나는 졸랐던 목을 놓으며 여학생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가뜩이나 입을 막고 있는 테이프 때문에 호흡이 힘들었는데, 나 때문에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나는 여학생의 입에 붙어 있는 테이프를 뜯었다.
“꺄악!!”
따가웠는지 비명을 지르는 여학생.
입가가 진정이 되면 될수록 나를 보는 눈빛에 원망을 담은 살기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미쳤어? 도랏어? 왜 목을 졸라, 왜!! 인질인데 공격 하면 어쩌자는 거야!!”
따발총을 쏘듯이 말을 하는 여학생.
금석이나 박태산 보다는 연기가 낫긴 한데.
“연기 그만 하시..”
나는 말을 하다가 바닥을 쳐다봤다.
금석의 ‘야수의 본능’으로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밟고 있던 카펫이 파란 푸딩처럼 변하는가 싶더니 내 몸을 타고 올라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