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356 (14권, 완) >
[(단독!!) 벨기에 영웅의 벨기에 복귀! 그런데...]
벨기에의 영웅이자 A매치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한 주성배가 벨기에 무대로 복귀한다는 소식을 본지 기자가 단독으로 입수했다!
와우! 기사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본지 기자들의 심정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주성배의 벨기에 복귀.
이 얼마나 심장 떨리는 말이란 말인가.
15년 전 RSC 안더레흐트를 떠나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에서 활약하며 2012 FIFA 발롱도르를 따내는 등 세계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올랐던 주성배가 드디어 벨기에 무대로 돌아온다는 말이다!
다만, 그 무대가 주필러 리그는 아니다.
주성배가 복귀하는 팀은 2부 리그의 로얄 앤트워프.
주는 로얄 앤트워프의 선수이자 구단주(!!)로 벨기에 무대에 복귀한다.
벨기에에서도 손꼽히는 부자로 유명한 그는 아무도 모르게 물밑으로 협상을 벌여왔고, 끝내 720만 유로에 64%의 지분을 매입하며 팀을 인수, 구단주로 취임했다.
로얄 앤트워프는 브뤼셀 다음가는 벨기에 제2의 도시이자, 플란데런 안트베르펀 주의 주도, 도심권 인구가 119만 명이나 되는 대도시, 안트베르펀에 연고를 둔 벨기에 명문 클럽.
비록 벌써 18년이나 2부 리그에서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프랑스계 도시에 연고를 둔 클럽에 비해 네덜란드계 클럽들이 부진한 현 상황에서 어느 정도 성적만 올려주면 급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큰 클럽이다.
맨체스터 시티는 주의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 남은 계약 기간 2년 동안 로얄 앤트워프에 임대 해주는 형식으로 보내주었다고 전해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맨체스터 시티와 주의 끈끈한 관계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어쨌든 맨체스터 시티의 배려 덕분에 우리는 주가 벨기에에서 뛰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 잘 된 일이다.
벌써부터 벨기에의 그라운드를 누빌 주의 모습이 기대되어 밤에 잠도 오지 않는 것은 본지 기자들만이 아닐 것이라 확신한다.
ㄴ 미친! 맨체스터 시티를 떠난다기에 미국이나 중국 같은 곳으로 떠날 줄 알았는데, 벨기에 복귀라니! 복귀라니! 복귀라니! 진짜 눈물 나려고 한다...
ㄴ 이거 진짜야? 혹시 기레기 아니야? 아니지, 여기서 그런 쓰레기 기사를 낼 리가 없지. 여기도 못 믿으면 믿을 언론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진짜로 주가 복귀한다는 거 아니야? 미쳤어. 당장 시즌권 사러 가야겠다!
ㄴ 다들 멈춰! 움직이지 마! 내가 먼저 갈 거니까! 어차피 코딱지만 한 벨기에 땅인데, 끝에서 끝이라고는 하지만, 충분히 경기 보러 갈 수 있어!
ㄴ 그런데 구단주 겸 선수라니. 대단하다... 역시 주는 항상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대단한 일을 별것 아닌 것처럼 해낸다니까? 그나저나 주가 가진 재산이면 주필러 리그 구단주 중에서도 거의 첫 손에 꼽히는 수준인데, 로얄 앤트워프도 무서워지겠네. 맨체스터 시티에서 제대로만 배웠으면 진짜 어마어마한 폭풍이 몰아칠 것 같은데.
ㄴ 그러게. 로얄 앤트워프 진짜 어마어마해지겠다. 안 그래도 프랑스 클럽들만 잘 나가서 배 아팠는데, 주가 이번 기회에 네덜란드계의 자존심을 좀 세워줬으면 좋겠네. 언제까지 안더레흐트야?
성배의 제2의 인생이 시작될 곳은 바로 벨기에였다.
꽤 오랫동안 로얄 앤트워프 인수에 대해 알아본 성배는 이번 시즌 중 비밀리에 클럽을 인수, 구단주로 취임했다.
만수르 구단주와 직접 대면해 대화를 나눈 끝에 남은 2년의 계약 기간 동안 임대 선수 형식으로 보내주겠다는 약속과 더불어 여러 가지 약속도 받아놓은 상황이었다.
A매치 117경기 출장으로 벨기에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초의 FIFA 센추리 클럽 가입자이면서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한, 벨기에 선수로서는 최초로 FIFA 발롱도르 트로피를 수상한 역사상 최고의 선수.
주장완장을 차고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과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준우승, 유로 2012 우승과 유로 2016 4강, 유로 2020 준우승을 이끈 벨기에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영웅.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A매치 27골로 벨기에 역대 A매치 최다 득점 8위에 올라있는 성배의 귀환은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 성배의 로얄 앤트워프 이적이 발표되자, 시즌권은 순식간에 매진되었고, 모든 언론은 성배와 로얄 앤트워프에 대한 기사로 도배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전설, 뱅상 콤파니. 절친 주성배와 함께 뛴다!]
폭풍이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2년 전 맨체스터 시티는 떠나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뉴욕 시티로 이적했던 뱅상 콤파니의 영입이었다.
***
“자, 저도 들어왔고, 뱅상까지 영입했으니 수비 라인은 대충 어느 정도 정비가 되었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로얄 앤트워프의 구단주로 취임한 성배는 빠르게 팀을 정비해나갔다.
당장 이번 시즌이나 다음 시즌, 2년 안에 승격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기반이 되는 자금 또한 충분했다.
“예. 당장은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개편의 바람에 단장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모습이었다.
항상 당당했던, 성배를 팀에서 쫓아내는 데 동의했던 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비안키 감독님, 명단은 확인해보셨습니까? 어떤 선수를 임대하면 되겠습니까?”
“우선 공격수와 중앙 미드필더 위주로 검토하는 중인데... 아직... 파악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시간을 드려야 합니까? 이제 일주일 뒤면 선수들 휴가도 끝납니다! 시즌 준비 안 하실 겁니까? 승격하기 싫으십니까?”
성배를 쫓아내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비안키 감독 역시 성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맨체스터 시티를 떠나면서 성배는 만수르 구단주를 비롯한 보드진과 이미 이야기를 끝내놓은 상황이었다.
프리미어리그 수준에서 뛸 정도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기량을 가진 선수들을 우선적으로 임대해주고 영입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었다.
그래서 비안키 감독에게 명단을 주고 검토하라고 말해놓은 상황이었는데, 아직도 검토를 끝내지 못한 듯했다.
‘어차피 오래 데려갈 사람은 아니니까.’
과거의 감정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과거를 떠나 실제로도 비안키 감독은 성배가 그린 청사진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인물이었다.
이미 그를 대신할 대체자까지 생각을 끝내놓았다.
‘빨리 영민이 형님 계약 건이 마무리되어야 하는데.’
바로 유영민 코치, 아니 유영민 감독이었다.
성배는 은혜를 잊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 물심양면으로 자신을 도와주었던 유영민에게 도움을 준 것이었다.
한국 내셔널리그 코치로 활동하던 유영민을 맨체스터 시티로 불러들여 코치 연수 기회를 주었고, 열심히 도와주었다.
그 결과, 맨체스터 시티 보드진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유영민은 유소년팀 코치, U-16팀 감독과 리저브팀 수석 코치를 거쳐 멜버른 시티의 감독까지 맡으며 차근차근 성장했다.
“즉전감 영입도 중요하지만, 어차피 주필러 리그는 셀링 리그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시한 유소년 시설 개선과 시스템 개혁에도 신경 써주세요.”
“알겠습니다. 차질없이 준비하겠습니다.”
벨기에 클럽의 경쟁력은 결국 유소년 시스템에 있었다.
이제는 유럽 전역과 남미, 아프리카까지 뻗어 나간 알랭 에이전시와 대한민국 최대, 최고의 유소년 교육 시설로 거듭난 K.I.S FC의 도움을 받으면 유망주 수급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이들을 제대로 키워줄 환경만 조성되면 안더레흐트를 넘어서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마루앙, 케빈과의 계약이 대충 마무리되면 즉전감 영입에 대해서는 일단 한숨 돌릴 수 있을 겁니다. 이들을 데리고 어떤 마케팅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세요. 이런 스타들을 데려왔는데도 인지도를 높이지 못하면 전 세계가 비웃을 겁니다.”
성배는 마루앙 펠라이니, 케빈 미랄라스와도 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빅 리그에서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선수들이나 기량이 심각하게 하락한 선수들은 데려올 수 없겠지만, 미국이나 중동으로 넘어간 선수들은 충분히 영입할 수 있었다.
2부 리그라고는 하지만 성배와 콤파니의 합류로 모든 이목이 집중된 로얄 앤트워프는 그들에게도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로얄 앤트워프라는 클럽의 자생력을 갖추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역시 스타 마케팅이었다.
성배와 콤파니에 펠라이니와 미랄라스까지.
벨기에 최고의 황금시대를 이끈 선수들이 모인다면 순식간에 인지도를 올리며 자생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케팅이 중요했다.
“스트리밍 사이트들을 둘러보다 보니 생각보다 로얄 앤트워프를 다루는 스트리머들이 많더군요. 거기서 가장 구독자가 많은 채널을 운영하는 스트리머 세 명입니다. 이들과 연계해서 할 수 있는 이벤트도 생각해보세요.”
이 세 명의 명단에는 자스민도 끼어 있었다.
전생에서처럼 자스민은 로얄 앤트워프를 다루며 유명 스트리머로 자리 잡은 상태였다.
스트리밍 사이트들의 파급력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는 지금, 그녀를 비롯한 스트리머들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꽤 괜찮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고, 제가 말씀드린 부분들, 잘 좀 해결해주시길 부탁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성배의 지시에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들은 모두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안 그래도 성배의 구단주 취임 이후 쏟아지는 관심으로 정신이 없었는데, 업무량까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 비안키 감독님은 잠시 남아주세요. 여쭤볼 게 있습니다.”
성배의 부름에 비안키는 흠칫 놀라며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안 그래도 요즘 성배와 대화를 나눌 때마다 흰 머리가 늘어나고 있었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벨기에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영웅이라는 것만으로도 같은 축구인으로서 부담스러웠는데, 구단주로 나타나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상사가 되었으니 대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물어보실 것이라는 게...”
“아, 비안키 감독님. 제가 요즘 이상한 소리를 들어서 말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클럽을 인수했는데, 핵심 선수 중에 이적을 요청한 선수가 있다고요?”
성배의 말에 비안키의 얼굴이 하얘졌다.
성배가 자신의 지도력과 장악력을 의심한다고 여긴 것이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성배가 팀을 인수하면서 현재 벨기에에서 가장 뜨거운 클럽이 된 데다가, 콤파니를 영입하고 각종 대형 영입들을 준비하며 전력을 강화하는 시점에서 핵심 선수가 이적을 요청했다는 건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그게 말입니다... 그 친구가 예전부터 팀을 떠나고 싶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제가 알고 있는 것과는 좀 다르군요. 그레고리 그 친구는 집안부터 열렬한 우리 서포터 집안이고 선수 본인도 태어날 때부터 로얄 앤트워프의 유니폼을 꿈꿨다고 하던데요.”
이적을 요청한 선수는 바로 그레고리 빌헬름이었다.
성배를 밀어내고 주전 레프트백을 차지했던 그 선수가 맞았다.
지금 시점에서는 성배와 전혀 모르는 사이였지만,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거친 엘리트 유망주로 로얄 앤트워프라는 클럽에 과분한 선수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그, 그게...”
“그레고리가 얼마나 중요한 선수인지 모르신다는 말씀은 안 하실 테고... 무슨 일입니까, 도대체? 그레고리가 없으면 계획 자체가 어긋납니다. 모르십니까?”
레프트백에 빌헬름을 기용하고 성배 본인은 라이트백으로 뛰겠다는 것이 이번 시즌 수비진 운용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직접 그를 지도해 뛰어난 선수로 키운 뒤 비싼 이적료를 받고 빅클럽으로 이적시키겠다는 것은 장기적인 플랜이었다.
하지만 그런 빌헬름이 이적을 요청하면 이 모든 계획이 어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저도 그 친구가 왜 이적을 요청했는지는 모르겠...”
“됐습니다. 선수에게 직접 물어보겠습니다. 그레고리를 불러주세요.”
성배는 비안키 감독의 변명을 끊으며 말했다.
“그... 무슨 이야기를 하실 것인지 여쭤봐도...”
“할 말이 하나밖에 더 있겠습니까? 왜 이적을 원하는지 물어봐야죠.”
그레고리에 대한 좋은 감정은 여전했고, 그가 더욱 좋은 선수로 성장하도록 도와주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몇 시즌 더 붙잡아두고 싶은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우리 팀에는 그레고리가 필요합니다. 승격 안 하실 겁니까? 승격하면 또 끝입니까? 그레고리 정도의 수비수를 영입할 수 있을 때까지 이적은 곤란합니다.”
그레고리가 팀을 떠나지 않으면 자신만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레고리 본인도 성배에게 여러 가지를 배워 훨씬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성배 정도 되는 전설적인 선수에게 배운다는 것은 모든 선수가 꿈꾸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비안키 감독님. 이번 일은 좀 실망스럽습니다. 앞으로 두고 보겠습니다.”
“... 죄송합니다.”
비안키 감독은 성배의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 보지 못했다.
성배에게 방출을 통보하면서도 당당하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신임 단장으로는 누가 좋을까. 뛰어난 사람 누구 없나.'
자신을 쫓아냈던 비안키나 단장에 대한 복수심은 없었다.
성배는 로얄 앤트워프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겠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두 사람에 대한 감정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들과 성배의 격차를 감안했을 때, 성배가 그들을 싫어하는 것은 사람이 쥐를 싫어하는 것과 같았다.
'일단 그레고리는 붙잡는다고 가정하고... 다음은 누가 좋으려나.'
구단주 자리에 앉은 성배는 빠르고 신속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팀을 개혁해나가기 시작했다.
무르다 못해 흐물거리던 과거의 성격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냉철하다 못해 차갑던 회귀 초반의 성격도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과거와 현재의 성격이 적절히 섞여 따뜻하면서도 냉정한 성격을 갖게 된 성배는 로얄 앤트워프의 구단주로서 축구 인생의 2막을, 아니 3막을 시작했다.
< 낭만필드 - 356 (14권, 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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