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351화 (239/356)

< 낭만필드 - 351 >

“다시 공격 기회 잡는 벨기에! 어? 바깥으로 그냥 내보냅니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성배는 한 선수의 모습을 보고 터치라인 바깥으로 볼을 내보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롱패스로 공격을 진행하려는 모습을 보였기에 중계진은 의아함을 감추지 않았다.

“아, 이탈리아의 한 선수가 넘어져 있습니다. 치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바깥으로 차낸 것 같습니다.”

성배의 시선에 포착된 선수는 벨기에 선수가 아니었다.

푸른 유니폼을 입은 한 선수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 성배는 곧바로 볼을 바깥으로 내보내 치료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이탈리아는 지금 부상자가 발생하면 큰일 납니다. 교체 카드가 전부 소진되어서, 부상자가 나오면 열 명이서 뛸 수밖에 없습니다.”

이탈리아 벤치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체자레 프란델리 감독은 두 손을 모으고 바라보며 제발 일어나길 기도했고, 모든 이탈리아 선수단이 같은 마음이었다.

3분 전에 몬톨리보 대신 모타를 투입하면서 교체 카드를 이미 전부 소진했기 때문에 부상자가 나오면 안 그래도 불리한 상황에서 수적인 열세까지 감수해야 했다.

“어? 모타 선수 아닌가요? 맞는 것 같은데요?”

쓰러져 있는 선수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지만, 중계진은 바로 확신하지 못했다.

불과 3분 전에 교체 투입된 티아고 모타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티아고 모타가 맞습니다. 등번호 5번! 아, 교체 투입된 지 겨우 3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허벅지를 붙잡고 쓰러져 있습니다.”

하지만 쓰러진 선수는 등번호 5번을 달고 있는 티아고 모타가 맞았다.

불과 3분 전, 프란델리 감독의 마지막 카드로 투입된 그 선수였다.

“마지막까지 밀어붙여도 되겠는데요?”

볼을 걷어낸 성배는 벤치로 다가가 물을 마시며 체력을 회복했다.

빌모츠 감독과의 짧은 대화로 남은 시간 경기 운영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왜? 어차피 이기고 있으니까 한 15분 정도 남으면 잠글 생각인데.”

어차피 토너먼트에서는 많은 골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막판까지 리드를 잡고 있다면 수비를 굳히는 게 일반적이었다.

성배 역시 같은 생각이었지만, 방금 생각이 바뀌었다.

“저 친구. 어차피 못 일어납니다. 자세히 보세요.”

“음? 저거 햄스트링 아니야? 햄스트링이면 다시 뛰기 힘들겠네. 오케이. 이해했어.”

쓰러진 모타는 허벅지 뒤쪽을 부여잡고 있었다.

햄스트링이 올라온 것이었다.

상당히 흔한 부상 중 하나지만, 한 번 부상을 당하면 최소 3, 4주는 치료해야 하는, 가볍지 않은 부상이었다.

즉, 더 이상 뛰는 것은 무리라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상황도 좋고 수적으로도 앞서는데 차라리 마지막까지 공격해서 기회도 안 주는 게 낫겠죠.”

“그래. 이대로 모타가 아웃되면 마지막까지 공격해. 팬들한테 서비스도 할 수 있으니 그게 좋겠어.”

솔직히 모타가 여기서 아웃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탈리아의 승산은 낮았다.

하지만 그나마 지금 상황에서 모타까지 아웃된다면, 이탈리아는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아, 결국 들것에 오릅니다. 사이드라인까지 걸어가는 것도 힘든 것 같습니다.”

모타는 어떻게든 일어나 복귀하려 해보았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뛰기는커녕 걷는 것도, 아니, 다리를 똑바로 펴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복귀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 티아고 모타. 이번 시즌에는 부상 악령을 좀 피했나, 싶더니 이렇게 큰 무대에서 발목을 잡히네요.”

2001/02시즌 바르셀로나에서 데뷔해 라 리가 최우수 신인상을 받는 등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상급 미드필더 자리를 지킨 모타였지만, 부상은 번번이 그런 모타의 발목을 잡았다.

커리어 내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고,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한 이번 시즌에는 좀 잠잠한 것 같더니 유로 2012 결승이라는 큰 무대에서, 그것도 교체 투입 3분 만에 부상으로 이탈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상황이 심각해집니다.”

“안 그래도 체력적인 문제가 심각했거든요? 그나마 이 부분을 모타의 투입으로 만회해보려 했는데, 그 모타가 이탈했어요. 이건 정말 치명적이네요.”

키엘리니의 부상으로 아까운 교체 카드 한 장을 수비수에게 소모한 이탈리아는 한 장의 귀한 교체 카드를 사용해 투입한 모타까지 부상으로 이탈하며 치명타를 맞았다.

정작 교체가 시급한 것은 피를로, 데 로시, 마르키시오 등 대회 내내 많이 뛰어준 선수들이지만, 이젠 교체 카드가 남아있지 않았다.

***

모타의 이탈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었다.

벨기에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역시 모타의 부상이 심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과 승부는 별개였다.

벨기에는 데푸르를 시몬스로 교체해주면서 모타의 부상 이탈 이후 얇아진 이탈리아의 중원을 노렸다.

또, 펠라이니를 빼고 데 브라위너를 투입하면서 2선으로 전진 배치, 4-2-3-1로 포메이션을 전환해 힘이 넘치는 두 명의 교체 선수로 중원 장악력을 더욱 단단히 하면서 마지막까지 골을 노리겠다는 의지도 보여주었다.

“어느새 후반전도 40분을 넘어섰습니다. 벨기에, 주의 두 골과 메르텐스의 한 골을 묶어 3-1로 앞서며 유로 2012 우승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우승, 우승이 바로 눈앞입니다!”

이러한 노림수는 정확히 맞아 들었다.

안 그래도 경기력과 스코어 모두에서 밀리던 이탈리아는 모타의 부상 이후 수적인 열세까지 떠안게 되자, 전의를 상실했다.

완전히 체력이 방전된 이탈리아 미드필더들은 두 명이나 교체된 벨기에의 미드필더들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 결과, 주도권을 완벽하게 가져온 벨기에는 교체 투입된 데 브라위너의 A매치 데뷔 첫 어시스트와 이를 받아 득점으로 연결한 메르텐스의 골로 차이를 벌리며 사실상 우승을 확정지었다.

“3-1, 승부가 사실상 기울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벨기에는 여전히 강력하게 몰아붙이고 있네요. 팬들이 좋아할 경기죠?”

3-1로 승리가 유력해지자, 벨기에는 오히려 더 신이 나서 이탈리아를 신나게 두드렸다.

남은 시간은 추가시간을 더해봐야 겨우 5분을 넘어갔고, 혹시나 한 골을 내준다고 해도 그 뒤에 수비를 굳히면 되는 여유로운 상황이었다.

“아자르, 돌파 시도! 두 선수 사이에서 환상적인 드리블을 보여줍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었지만, 아자르 역시 경기 막판으로 접어들면서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이번 유로컵 우승에 아자르의 영향력은 크지 않았지만, 아자르가 차기 벨기에 에이스 자리에 가장 가깝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마지막에나마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그래서 중요했다.

“아자르, 박스 안쪽의 루카쿠! 빙글 돌아서... 아! 이건!!”

“어? 자, 넘어졌고, 휘슬 울렸죠! 페널티킥, 페널티킥이에요!”

루카쿠는 박스 안쪽 깊숙한 곳에서 골대를 향해 등을 돌린 채 아자르의 패스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몸을 돌리며 슈팅 자세를 만들었다.

이미 몸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에 접어든 바르잘리는 루카쿠의 어깨를 잡고 뒤로 당겨 넘어뜨리고 말았다.

“바르잘리에게 경고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벨기에는 페널티킥을 만들며 한 골을 추가할 기회를 잡았습니다.”

3-1로 이미 승리를 확실시한 벨기에지만, 골은 원래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었다.

“자, 누가 차나요? 전담키커는 아자르지만, 오늘 경기에서 두 골을 기록한 주가 해트트릭을 노릴지, 아니면 루카쿠에게 양보해서 득점왕을 만들어줄지 궁금하네요.”

페널티킥 키커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보통 때였다면 두 골을 기록한 성배에게 맡겨 해트트릭을 노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마리오 고메즈와 함께 3골 1어시스트를 기록 중이지만, 출전 시간이 좀 더 많아 2위로 밀려난 루카쿠에게 맡겨 득점왕을 밀어줄 수도 있었다.

“주. 주가 차세요. 해트트릭해야죠.”

페널티킥 키커 후보이면서 페널티킥을 직접 얻어낸 루카쿠는 성배에게 양보하려 했다.

직접 얻어낸 선수이기에 발언권이 강할 수밖에 없지만, 자신의 득점왕이 눈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배에게 양보한 것이었다.

“로멜루. 네가 차. 득점왕 한 번 해봐야지. 그 나이에 유로컵 득점왕이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어쩌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어.”

성배는 성배 나름대로 루카쿠에게 기회를 양보하려 했다.

유로컵 득점왕이라는 자리는 공격수들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득점왕도 아니었지만, 유로컵에서의 맹활약으로 스타가 된 선수들은 많았다.

2004년의 그리스 선수들이 그랬고, 2008년의 러시아 선수들이 그랬다.

여전히 10대에 불과한 루카쿠지만, 30대를 훌쩍 넘어 은퇴할 때가 되어서까지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주. 주도 페널티킥 넣으면 득점왕인 것 아냐? 지금 세 골 넣고 있잖아.”

메르텐스가 모두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폴란드전에서 프리킥으로 벨기에의, 유로 2012의 첫 골을 넣었던 성배는 오늘 경기에서 두 골을 기록하며 총 세 골을 기록하고 있었다.

어시스트가 없어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었지만, 한 골을 더 넣으면 네 골이 되어 바로 1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어? 그러네. 주가 여기서 한 골 넣으면 득점 1위네.”

“그러게. 해트트릭에 득점왕까지 걸렸으면 주가 차야 하는 것 아냐?”

루카쿠와 성배, 둘 중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못했던 선수들은 메르텐스의 말에 성배 쪽으로 기우는 모습이었다.

벨기에가 득점왕 자리까지 차지할 수 있고, 팀의 중심인 성배가 해트트릭까지 기록할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선택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내 득점왕이 뭐가 중요하다고. 나는 수비수인데.”

어차피 결정은 빌모츠 감독이 하는 것이었다.

해트트릭과 득점왕으로 한 걸음 더 발롱도르에 다가가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루카쿠를 의식해 짐짓 빼는 모양새를 보였다.

“수비수니까 더 중요하지! 수비수가 수비를 완벽하게 해냈는데, 거기서 득점왕까지 가져가 봐.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이 선수는 진짜 엄청난 선수구나, 하겠지. 주가 말했던 대로 발롱도르 트로피도 못 줘서 안달일 거고.”

성배의 득점왕이 눈앞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동료 선수들은 그때부터 성배를 지지해주었다.

마찬가지로 득점왕을 눈앞에 둔 루카쿠까지 성배에게 양보하고 싶다는 모습을 보였기에 분위기는 성배가 페널티킥을 처리하는 쪽으로 흘렀다.

“주! 마크가 네가 차라는데?”

경험을 허투루 쌓은 것이 아닌 시몬스는 혹시 이런 상황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벤치 근처로 움직였다.

빌모츠 감독의 의중을 전해 듣기 위해서였다.

빌모츠의 선택은 성배였다.

“벨기에의 중심은 너고, 네가 살아야 벨기에도 산다고. 뭐 그렇게 전해 달래. 아오, 간지러워.”

벨기에는 이렇게 하나로 뭉쳐 있었다.

누구보다 아쉬울 루카쿠마저도 성배라면 기꺼이 양보하겠다고 나섰고, 감독인 빌모츠 또한 성배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오랜만에 감동이네. 이러다 우는 거 아닌지 몰라.’

옆에서 이렇게까지 밀어주고 믿어주는데, 축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거로 돌아와서는 복수심과 미련, 떵떵거리면서 먹고 살겠다는 욕심에 다시 축구화를 신었지만, 잠시 소외되었던 애정이 최근 몇 년 사이 슬슬 고개를 들더니 어느새 그들만큼 커져 있었다.

“좋아. 알았어. 그럼 고맙게 받지.”

동료들을 스윽 돌아본 성배가 미소 지었다.

그리고 볼을 들고 페널티박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낭만필드 - 351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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