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338 >
“호날두, 메이렐레스에게 건네받고! 중앙으로 이동하면서 바로 슈팅! 시몬스가 발로 막아냅니다! 사이드라인 벗어나면서 다시 포르투갈의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성배의 악랄한 수비에 페이스를 잃은 호날두는 본인의 안 좋은 습관을 다시 보여주고 있었다.
슈팅을 난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자, 이대로 조금만 더 버티면 우리 분위기로 경기를 끌고 올 수 있어요. 호날두는 물론이고 포르투갈 공격수들의 플레이가 조급해지고 있거든요?”
포르투갈의 중심은 누가 뭐라고 해도 호날두였다.
호날두가 중심을 딱 잡아주면서 좋은 경기를 펼치면 다른 동료 선수들 역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호날두가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나머지 선수들도 초조해지는 것이었다.
“자, 페레이라의 스로인으로 경기 재개됩니다. 무티뉴, 오른쪽으로. 나니가 볼을 잡고 공격합니다.”
포르투갈이 지금 아쉬워하는 부분은 호날두와 함께 공격을 이끌어주어야 할 나니가 베르마엘렌의 수비에 막혀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성배와 호날두의 대결만큼이나 나니와 베르마엘렌의 대결도 주목을 끄는 대결이었다.
누구 한 명이 확실하게 앞선다고 말할 수 없는 백중세였기에 양 측면에서의 대결이 주목받은 것이었다.
“나니, 접으면서 중앙으로 이동! 왼발 슈팅! 터무니없게 빗나가는 슈팅!”
하지만 나니와 베르마엘렌의 대결이 성배와 호날두의 대결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은 기량과 스타성, 인기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애초에 베르마엘렌과 나니의 대결은 성배와 호날두의 대결 결과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는, 에이스 대결에 종속되었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왜!! 루이스!!”
완전히 흥분해 이성을 잃은 호날두는 터무니없는 슈팅으로 기회를 날려버린 나니를 질책했다.
자신이 반대편에 있었는데 왜 패스하지 않고 무리하냐는 것이었다.
“호날두의 안 좋은 습관이 또 나오고 있네요. 자신이 뭐든 다 하려는 생각으로 동료들의 희생을 강요하다가 동료가 직접 해결했을 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짜증을 내거든요?”
자신이 지금까지 계속 난사했던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나니의 난사만 눈에 보인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호날두였다.
이는 호날두를 에이스로 받들어주는 포르투갈 동료 선수들도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태도였다.
‘좋아. 이제 슬슬 우리 쪽으로 바람이 분다.’
호날두로부터 시작한 흔들림은 예상대로 포르투갈 팀 전체에 퍼져나갔다.
벌써 몇 년째 호날두에게 의존하고 있는 포르투갈은 호날두가 막혔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
호날두가 흔들린다는 것 하나만으로 경기 분위기가 벨기에에게 넘어온 이유였다.
“호날두, 억지로 돌파 시도합니다! 주가 차분하게 따라갑니다.”
호날두는 계속해서 무리한 플레이를 이어갔다.
워낙 개인 기량이 뛰어난 선수였기에 종종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모든 것을 혼자 하려고 했던 옛날의 좋지 않은 습관이 나오기 시작한 호날두는 막기 어려운 선수가 아니었다.
“빠르게 방향 바꾸면서 중앙으로! 펠라이니! 펠라이니가 호날두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미드필더와 센터백의 도움을 받아 호날두를 봉쇄하기 시작한 이후, 포르투갈 공격의 위력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제 벨기에의 턴이었다.
‘열렸다.’
성배의 눈이 반짝였다.
성배의 눈이 반짝인다는 것은 꽤 괜찮은 기회가 찾아왔다는 이야기였다.
“주, 빠르게 앞으로 패스! 메르텐스, 달립니다!”
성배에게 패스를 건네받은 메르텐스가 달리기 시작했다.
포르투갈 수비진과 미드필드진의 간격이 지나치게 벌어져 있었기에 메르텐스의 스피드와 돌파력이 빛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메르텐스! 메르텐스! 멈추지 않습니다!”
포르투갈의 포백라인은 메르텐스를 막을 수 없었다.
아래로 내려가 수비라인을 정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미드필드진은 너무 위쪽으로 올라가 있었기에 메르텐스를 견제할 수 없었고, 메르텐스는 수비진과 미드필드진 사이 공간을 마음 놓고 헤집었다.
“메르텐스, 중앙으로 이동하면서 반대편의 아자르에게!”
메르텐스가 중앙을 거침없이 질주하는 동안 반대편의 아자르 역시 부지런히 따라 올라와 주었다.
비록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는 활약으로 어시스트 한 개밖에 기록하지 못한 아자르지만, 그래도 유럽 최고의 유망주이자 이번 이적시장 최고의 매물로서의 기량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박스 안으로 침투 패스! 메르텐스!!”
아자르에게 볼을 내준 메르텐스는 박스 바깥에서 2초에서 3초 정도 머무르며 침투할 만한 공간을 탐색했다.
메르텐스는 포르투갈 수비진들의 시선이 아자르에게 쏠린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았고, 뒤늦게 도착한 벨로수와 알베스 사이에 잠깐 생겨난 빈틈을 통해 박스 안으로 침투했다.
“메르텐스! 메르텐스!! 골! 골입니다! 벨기에의 날카로운 역습! 드리스 메르텐스, 이번 대회 첫 골을 터뜨립니다! 벨기에, 역습을 통해 선취 골을 만들어내며 리드를 잡았습니다!”
자신의 앞을 스쳐 지나가는 메르텐스의 모습에 알베스가 혼비백산해 따라붙었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알베스가 출발한 그 시점에서 이미 아자르의 패스가 메르텐스의 발에 닿았고, 알베스는 몸을 날려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골대 안에서 흐르는 볼을 지켜봐야만 했다.
“메르텐스와 아자르, 아자르와 메르텐스. 향후 벨기에의 2선을 맡아줘야 할 두 선수가 한 골을 합작해냅니다.”
“포르투갈 수비진과 미드필드진의 간격이 넓어진 그 틈을 메르텐스가 아주 잘 돌파해주었고, 아자르 역시 간결하지만, 정확한 패스로 메르텐스에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줬어요. 두 선수, 역시 유럽이 주목하는 특급 유망주답네요.”
아직 빅 리그에 입성하지는 못했지만, 두 선수 모두 빅 리그 바로 아래 수준의 경쟁력 있는 리그에서 윙어임에도 20골과 20어시스트를 넘긴 뛰어난 선수들이었다.
이 정도의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나저나 메르텐스의 활약이 정말 뛰어납니다. 사실 맨체스터 시티에서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낸 루카쿠나 전 유럽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아자르에 비해 과소평가된 측면이 없지 않았는데, 이번 대회에서 벨기에 공격진을 이끄는 선수는 메르텐스입니다.”
조금 전 들어간 득점을 더해서 이번 대회 벨기에가 기록한 골은 총 6골.
메르텐스는 1골 3어시스트를 기록, 그중 네 골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며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고 있었다.
두 골을 넣은 루카쿠나 두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한 아자르보다 뛰어난 활약이었다.
“메르텐스는 정말 좋은 선수죠. 164cm의 작은 신장이 조금 아쉽지만, 드리블, 슈팅, 프리킥이 뛰어나고요. 호날두, 로벤 등과 같이 최근 들어 각광받기 시작한 인사이드 커터형 윙어라서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좋은 활약을 보여줄 것으로 보이죠?”
드리스 메르텐스는 2006년에 시작된 벨기에의 유소년 육성프로그램 덕분에 빛을 본 선수였다.
유소년 정책이 바뀌기 전이었다면 작은 신장 때문에 기회조차 받지 못하고 사라졌을 것이었다.
하지만 바뀐 유소년 정책은 성장이 늦는 선수들을 배려해 같은 나이에서도 신장에 따라 팀을 나누었고, 그 속에서 지속적인 관심과 기회를 받은 메르텐스는 비록 키가 자라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잠재력과 기량을 증명해내며 뛰어난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벨기에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는 모습입니다! 이제 25분 정도만 잘 버텨내면 유로컵 4강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잘 버텨서 꼭 승리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2006 독일 월드컵 탈락의 충격을 계기로 시작된 벨기에의 유소년 육성 프로젝트는 6년이 지난 2012년에 그 수확을 거두는 중이었다.
늦어도 20대 초반, 빠르면 10대 후반부터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기회를 받았던 선수들이 바로 지금 벨기에의 핵심 선수들이었다.
이는 벨기에의 전력 강화 방안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결과였다.
“자,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됩니다! 고지가 보입니다!”
70분 가까이 포르투갈의 공격을 수월하게 막아냈던 벨기에 수비진이었다.
베르마엘렌이 좀 지쳤다 싶으니 베르통헨과 교체해주고, 데푸르가 좀 지쳤다 싶으니 비첼과 교체해주는 벨기에 수비진은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포르투갈 선수들, 점점 마음이 급해져서 그런 것인지 실수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저런 포르투갈의 실수를 놓치면 안 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지는 것은 포르투갈이었다.
벨기에 역시 조금만 더 버티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젊은 팀 벨기에는 조별리그에서 3전 전승을 거두며 자신감과 집중력이 최고조에 오른 상태였다.
“포르투갈, 결국 선택지는 호날두입니다!”
오늘 경기에서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한 호날두지만, 결국 위급한 상황이 되자 포르투갈이 기대하는 선수 역시 호날두였다.
그렇다고 이 선택을 비판할 수도 없는 것이 나니와 포스티가의 플레이 역시 호날두와 비슷한 수준으로 형편없었기 때문이었다.
“제자리에서 힐 찹! 시도하지만, 주가 너무나도 간단하게 발만 뻗어서 막아냅니다.”
중앙을 바라본 채로 볼을 받아낸 호날두는 멈춰선 그 자세 그대로 오른발을 뒤로 빼면서 인사이드로 방향을 전환하며 돌파하려 했다.
하지만 성배는 호날두의 힐 찹을 항상 머릿속에 새겨두고 있었고, 호날두의 자세가 낮아지고 발이 뒤로 빠지는 순간 힐 찹을 예측, 가볍게 오른발을 뻗는 것만으로 돌파를 저지했다.
“마지막까지 호날두가 원하는 대로의 플레이가 나오지 않네요. 주에게 완벽히 막혔어요. 만약 이대로 승리하게 되어 오늘 경기에서 MOM 한 명을 꼽으라면 저는 주를 꼽겠습니다. 포르투갈의 A이자 Z인 호날두를 완벽하게 막아주었어요.”
지난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도 효과적으로 호날두를 막아냈던 성배지만, 오늘은 그때보다도 훨씬 더 완벽하게 꽁꽁 묶어내며 호날두를 질식하게 만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포르투갈의 동료들은 벤제마, 외질, 디 마리아, 알론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 쪽은 맨시티 못지않거든.’
반면, 성배를 도와주는 벨기에의 수비진은 맨체스터 시티 못지않은 단단함을 자랑했다.
개인 기량이 조금이라도 밀리는 것은 분명하지만, 미드필더의 숫자가 한 명 더 많았고, 세 선수 모두 수비력이 뛰어난 선수였다.
“오늘도 내가 이겼네. 이렇게 되면... 4연승인가?”
“... 빌어먹을.”
2010/11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호날두의 레알에게 0-2 패배를 당한 이후, 두 선수의 맞대결에서는 성배가 연승을 거두는 중이었다.
오늘까지 더하면 4연승.
과거의 천적 관계는 이제 완벽히 역전되어 있었다.
“경기 끝났습니다!! 벨기에, 포르투갈을 1-0으로 꺾어내고 유로 2012, 4강에 진출합니다!”
벨기에는 선취 골 이후 25분 동안 포르투갈의 파상공세를 효율적으로 잘 막아냈다.
포르투갈이 공격 일변도로 나서긴 했지만, 계속해서 패스 미스와 실수를 남발하며 사실상 자멸했다.
호날두는 에이스였지만, 리더는 아니었다.
자멸하는 포르투갈을 수렁에서 건져낼 리더가 존재하지 않았고, 벨기에의 단단한 수비와 내부의 자멸로 포르투갈의 유로 2012는 여기서 끝이 났다.
< 낭만필드 - 33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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